[include(틀:역대 충청남도지사)] [[파일:external/www.chungnam.net/img_010501_04.gif|width=150]] 李寧鎭 1908년 08월 07일 ~ ?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1908년 [[충청남도]] [[서산시|서산군]]에서 태어났다. [[일본]] [[홋카이도대학|홋카이도제국대학]] 농학부 농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귀국하여 [[온양온천]]주식회사 사장, 삼환농장사장, 온양농예중학교(현 아산중학교) [[재단]][[이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남도 아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서용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같은 해 10월부터 1951년 12월까지 관선 [[충청남도지사]]를 지냈다. 충청남도지사 시절에는 [[6.25 전쟁]] 직후 충청도로 피신해온 이승만 대통령 일행을 각별히 보좌하였으며, 당시 임신한 몸이었던 이영진 지사의 부인은 무리하게 이들을 수발하다 유산하는 아픔을 겪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이런 피난 보좌역에 그치지 않고, '''"각하께서 수도에 한 발이라도 더 가까이 계셔야 한다"'''며 이승만 대통령에게 좀더 북쪽으로 이동해 임시 국무장소를 마련할 것을 진언하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프란체스카 도너|프란체스카]] 여사에게 부정적으로 낙인찍히기도 하였다. 프란체스카 여사의 회고록에는 이영진 지사에 대해, "남편을 위험한 지역으로 내몰려는 나쁜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내용이 서술되어있다.] 도지사를 역임한 이후에는 북삼화학공사 이사장, 재단[[법인]] 풍문여자중학교-[[풍문여자고등학교]] [[이사(직위)|이사]]를 지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공화당에서 중앙상임위원을 지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 공천에서 [[이민우(1905)|이민우]]에 밀려 탈락하였다. [[분류:1908년 출생]][[분류:서산시 출신 인물]][[분류:충청남도지사]][[분류:홋카이도대학 출신]][[분류:이승만 정부/인사]][[분류:제6대 국회의원]][[분류:민주공화당(1963년)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