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제3대 국회의원]][[분류:제4대 국회의원]][[분류:자유당 국회의원]][[분류:경찰공무원]][[분류:실향민]][[분류:북청군 출신 인물]][[분류:1911년 출생]][[분류:1994년 사망]] [include(틀:역대 대한민국 경찰청장)] 李成株 1911년 3월 29일 ~ 1994년 11월 23일 [[대한민국]]의 전 [[경찰공무원]], [[정치인]]이다. 1911년 [[함경남도]] [[북청군]] 신포면(현 [[북한]] 함경남도 [[신포시]])에서 태어났다. 북청 대성중학교와 [[영남대학교|청구대학교]] 법과를 졸업하였다. [[일제강점기]] 말기 북청군에 신포중학교를 설립하였다. [[8.15 광복]] 후 우익 단체인 [[대한청년단]] 총본부 부단장, 대한독립촉성전국청년총연맹 부위원장 등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이사(직위)|이사]], [[제주특별자치도|제주도청]]과 [[경상남도청]]과 [[충청북도청]]의 경찰국장을[* 지금의 [[지방경찰청]]([[행정자치부]] 직할의 광역경찰청)과 전혀 다른 직제로서 XX도청 직할의 XX부국이다. [[대한민국 제1공화국|제1공화국]]은 [[미군정청]]의 경무부(警務部)와 관구경찰청(管區警察廳)을 [[행정안전부|내무부]]의 치안국과 10개 [[도청(행정)|도청]]의 경찰국으로 축소했기 때문에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지방공무원]]으로 근무한 경찰관들은 박봉과 격무에 시달렸지만, [[행정안전부|내무부]]가 모든 도청의 고위직(예를 들면 [[대한민국 대통령]]→[[도지사]]/[[국무총리]]→부지사/내무부 [[장관]]→[[국장(직위)|국장]]/내무부 [[차관]]→[[과장]])을 임명하여 파견하는 방식으로 경찰국을 통제했다. ] 재임하다가 [[행정안전부|내무부]]의 치안국장(1950년대~1960년대의 [[공무원/계급|이사관]]급 경찰총수)으로 승진했다. 1956년 [[민주당(1955년)|민주당]] [[한동석]]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별세하자 [[경기도]] [[고양시|고양군]] [[선거구]]에서 [[재보궐선거]]가 치러졌다. [[자유당]] 후보로 해당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5년 정우회 [[장택상]] 국회의원을 공산당 대변인이라고 운운하여 [[대한민국 국회]]에서 징계동의안이 제기되었으나 투표에서 부결되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자유당 원내부총무에 임명되었다. 1959년 신 [[국가보안법]] 파동 때 무술경위를 진두지휘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류광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1년 [[3.15 부정선거]] 가담 등을 이유로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에 의해 공민권이 제한되었다. [[5.16 군사정변]] 이후 정치정화법에 묶여 정치활동이 금지되었다가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이후 해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