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align=center>[[파일:330px-Ève_Curie_1937.jpg|width=100%]]|| [목차] == 개요 == Ève Curie(1904.12.6 ~ 2007.10.22) [[프랑스]] 및 [[미국]]의 [[피아니스트]] 겸 [[저널리스트]] 겸 [[작가]] 겸 사회운동가. [[마리 퀴리]]와 [[피에르 퀴리]]의 [[차녀]]. 흔히 '이브' 퀴리로 알려져 있지만 [[프랑스어]] 발음 및 표기법으로는 '''에브'''가 맞다. 이브라고 불리는 것은 이후 그가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고 오랜 기간 미국에서 살면서 영어식 이름으로 많이 알려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 일생 == 퀴리 집안의 전통을 어기고 과학자의 길을 포기했으며, 이후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기 위해 상당히 고생했다고 한다. 이때 [[솔베이 회의|마리의 친구들]]의 시선이 따가워서 힘들어했다고 한다. 마리 본인은 이브에게 과학자의 길을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딸이 연주회에 입고 나가는 [[드레스]]에 대해서는 불평을 했다고 한다. 수수한 옷만 입고 복장에 대해선 어느 정도 보수적이었던 마리에게 딸이 입는 드레스는 '등이 몇 km는 파인' 것처럼 보였다고. 당대 유명한 미인에 늘 [[하이힐]]을 신고 화장을 하는 등 언제나 멋쟁이였고 성격도 사교적이라, 파티 등에서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대체로 예술가적이고 셀레브리티적인 타입이었던듯 하다. 당시 사진을 보면 [[https://pbs.twimg.com/media/DOrQO0qWAAES2bd.jpg|미모가]] [[https://www.gettyimages.com/detail/news-photo/eve-curie-madame-curies-daughter-wearing-long-form-fitting-news-photo/501818034?adppopup=true|굉장하다]].[* 미모 전성기때는 '프랑스 최고의 미녀'라는 찬사를 받을 정도로 유명한 미인이었다. 실제로 당시 사진을 보면 당시 시대의 여배우들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정도이다. 당대에도 미인으로 유명할 정도의 미모가 나온 것이 의외일 수 있으나, 마리 퀴리도 과학자 이미지가 너무 강하고 꾸미는데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이목구비도 준수하고 젊을적 일하던 부잣집 아들과 사랑에 빠져 결혼할뻔하고 독신으로 살려고 한 피에르 퀴리와 결혼해 금슬좋게 산 걸 보면 이 미모와 매력이 갑자기 튀어나온건 아니었다. 피에르 퀴리도 --수염과 노총각 이미지에 가려졌지만-- 훤칠하고 준수한 외모. 잘보면 퀴리부부와 많이 닮은게 그야말로 부모의 장점만 뽑아놨다. 그래도 전가족이 외곬수로 연구만 하는 과학자인데 사교적이고 외향적이며 패셔너블한 셀레브리티적인 성격은 누굴 닮은 건지 미스테리. ~~[[격세유전]]이란 게 있잖아~~] 마리가 죽은 이후 어머니의 전기인 <퀴리 부인전>을 썼고, 이 책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국내에도 <마담 퀴리>로 2006년에 정식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넘어가자 이브는 [[프랑스]]에서 탈출하여 [[미국]]으로 피했고 이후 미국에서 살게 된다. 이후 반나치 활동에 전념하여 1941년에 프랑스 시민권을 박탈당하지만 [[나치 독일]]의 패망 이후 이브의 프랑스 시민권은 회복되었다. 1958년에는 [[미국 시민권]]을 얻어 [[이중국적]]이 되었다. 이브는 남편인 [[미국인]] [[외교관]] 헨리 라부아스 주니어(1904~1987)와 함께 [[유니세프]]에서 활동하였으며, 이 단체는 1965년에 [[노벨평화상]]을 받게 된다. 이때 남편이 UNICEF를 대표하여 상을 받았는데, 이 일 때문에 이브 퀴리는 '''"저는 우리 집안의 수치입니다."'''라는 농담을 했다고 한다. [[피에르 퀴리|아버지]], [[마리 퀴리|어머니]], [[이렌 졸리오퀴리|언니]], [[프레데리크 졸리오퀴리|형부]], 남편까지 모두 노벨상을 탔는데 자신만 못 탄 게 이유라고. 노벨상 대신 [[레지옹 도뇌르]], 전미 도서상(National Book Award), 폴란드 부활기사십자훈장(Order of Polonia Restituta) 등 [[방탄훈장|훈장]]으로 [[찰갑]]을 만들고 100세 생일에 세계 국가원수들로부터 축전을 받은 사람만이 칠 수 있는 [[개드립]]이다. 과학자의 길을 포기해서 [[방사선 피폭]]되지 않아 60대에 사망한 어머니, 언니와 달리 103세까지 [[장수]]할 수 있었다. 여러모로 퀴리 가문 내에서 독특한 존재였던 셈. 이브 퀴리는 [[UNICEF]]에서의 활동으로 존경받는 일생을 살았지만, 50세라는 뒤늦은 나이에 결혼을 해서 남편과의 사이에서는 자식이 없었다. 그래서 입양한 의붓딸이며 라부아스의 죽은 전처와의 사이에 태어난 딸인 앤 페레츠 라부아스가 이브를 어머니로 모셨다.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마리 스크워도프스카 퀴리, version=349, paragraph=3.1)] [[분류:폴란드계 미국인]][[분류:프랑스계 미국인]][[분류:피아니스트]][[분류:미국 여성 작가]][[분류:1904년 출생]][[분류:2007년 사망]][[분류:복수국적자]][[분류:미국으로 귀화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