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해체된 축구단]][[분류:1992년 설립]][[분류:1998년 해체]] ||<-2><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0><:><#ffffff>[[파일:이랜드푸마.jpg|width=200]] [br] || ||<-2><:><#ffd25d> '''{{{#072854 이랜드 푸마 }}}''' || ||<:><#072854> '''{{{#ffffff 정식명칭 }}}''' ||<:> 이랜드 푸마 축구단 || ||<:><#072854> '''{{{#ffffff 영문명칭 }}}''' ||<:> E-Land PUMA || ||<:><#072854> '''{{{#ffffff 소속리그 }}}''' ||<:> [[전국실업축구연맹전]] || ||<:><#072854> '''{{{#ffffff 창단연도 }}}''' ||<:> [[1992년]] ^^([age(1992-12-21)]주년)^^|| ||<:><#072854> '''{{{#ffffff 해산연도 }}}''' ||<:> [[1998년]] ^^([age(1998-02-28)]주년)^^|| ||<:><#072854> '''{{{#ffffff 팀명 변천사 }}}''' ||<:> 이랜드 축구단 (1992) [br] 이랜드 푸마 축구단 (1993~1998) || ||<:><#072854> '''{{{#ffffff 감독 }}}''' ||<:> [[이영무]] || [목차] == 소개 == 1992년 창단되어 1998년까지 존재했던 실업축구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중견기업 [[이랜드그룹]]이 [[서울 이랜드 FC]] 이전 창단했던 팀이기도 하다. [[서울 이랜드 FC]] 창단 당시에는 구단 차원에서의 언급이 별로 없었으나 이랜드 푸마 선수출신인 [[정정용]] 감독을 선임하고 나서부턴 은연중에 '''전신'''으로써 언급되곤 한다. 다만 공식적으로는 지금은 없어진 [[고양 자이크로 FC|고양 Hi FC]]의 전신으로 보고 있다. 서울 이랜드와의 관계는 같은 모기업의 축구팀이나 인적 유산의 공유[* 서울 이랜드 2대 감독이 [[박건하]], 4대 감독이 [[인창수]], 그리고 6대 감독인 현 감독이 [[정정용]]이니 실제로 인력풀은 거의 같다고 봐도 무방하다 ~~리얼이랜드~~] 정도로 봐야할 듯. == 역사 == 프로축구 6개 구단 체제가 고착화되던 1992년에 향후 프로구단 전환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나름 야심차게 [[이랜드그룹]]이 창단을 준비했던 구단이다. 구단의 뿌리가 [[기독교]]에 있었던 것도 있고 마침 당시 아마추어 구단 중 재정난을 겪고 있던 임마누엘 축구단이 있었기 때문에 임마누엘의 선수단 10명과 [[이영무]] 감독, 김학수 코치를 데려왔고, 프로행을 거부한 선수 등 12명을 추가로 영입해서 첫 선수단을 구성했다. 지금이야 [[이영무]] 감독이 [[고양 자이크로 FC|고양 Hi FC]]에서의 막장 행보로 욕을 많이 먹지만, 이때 당시에는 그냥 좀 독실한 능력있는 축구인의 한명으로 평가받던 시기였으므로 당시 창단때부터 화제가 되었다. 이후 이랜드 구단은 [[전국실업축구연맹전]]에서 창단과 동시에 상위권 팀으로 거듭났고, 1994년 아마추어 대회인 전국축구선수권대회와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1995년에는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춘계리그, 전국축구선수권대회, 그리고 실업축구 컵대회인 실업축구선수권대회까지 3관왕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한다. 당시 이런 무시무시한 성적에는 그럴만한 동기부여가 있었는데, 바로 1995년 K리그에 전라권 구단 창단 계획이 있었고, 이에 [[이랜드그룹]] 박성수 회장의 고향이 [[목포시]]인 것을 근거로 삼아 이랜드 푸마도 이 자리를 노리고 프로화를 추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당시 [[K리그/드래프트|드래프트]]를 거부하고 나온 특급 유망주 [[박건하]]를 영입할 수 있었고, 전력이 거의 프로급으로 갖춰질 수 있었다. 선수들도 프로에 갈 수 있다는 동기부여가 있었기 때문에 성적이 잘 나왔다고. 하지만 결국 [[포스코]]의 [[전남 드래곤즈]]가 창단되어 이는 무산되었다. 구단의 투자도 만만치 않게 빵빵했다. 1994년 2관왕을 달성하고 베트남에서 열린 호치민시티컵 친선축구에서도 한국 대표로 나가 우승을 차지했다. 이에 한껏 고무된 구단은 1995년 해외 전지훈련을 보내줘 선수단이 [[태국]]에서 동계훈련을 하고 오는 등 실업구단에선 보기 힘든 대접을 받았다. 1996 시즌을 대비해선 독일과 영국을 가는 유럽 전지훈련도 소화했고, 선수수급도 매년 7~8명의 대학리그 준척급 선수들을 수혈하는 등 거의 프로와 다름없이 운영되었다. 그러던 와중 1997년 IMF발 금융위기가 터졌고, 소비재 중심의 [[이랜드그룹]]은 경기불황의 직격탄을 맞아 경영난에 빠진다. 더이상 축구단을 운영할 여력이 안되었던 이랜드는 1998시즌 직전인 1998년 2월에 팀 해체를 선언하고 축구단을 접었다. 이후 이 선수단과 [[이영무]]감독을 [[고양 자이크로 FC|할렐루야 축구단]]이 흡수합병하면서 지금 우리가 아는 [[고양 자이크로 FC|고양 Hi FC]]의 전신 할렐루야 축구단이 완성된다.[* 원년 프로팀인 [[할렐루야 독수리]]와는 이름만 같은 팀이다.] == 주요 선수 == * [[박건하]] - 이랜드 소속으로 1995년 국가대표에도 뽑혔던 팀의 에이스이자 상징같았던 존재. 1997년 드래프트를 통해 [[수원 삼성]]에 입단. 이후 [[서울 이랜드 FC]]의 제 2대 감독으로 부임한다. 2020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제 6대 감독으로 부임한다. * [[인창수]] - 당시 박건하와 짝을 이루던 공격수로 2시즌을 뛰고 1996년 다시 아르헨티나로 돌아가 선수생활을 한다. 이후 [[서울 이랜드 FC]]의 제 4대 감독으로 부임한다. * [[정정용]] - 포지션은 중앙수비수. 해체시점까지 뛰었으며 이후 2020년 [[서울 이랜드 FC]]의 제 6대 감독으로 부임한다. * [[제용삼]] - 박건하 이후 주전공격수. 이후 1998년 [[FC 서울|안양 LG]]에 지명되어 프로에 입문한다. * 박종관 - 현 단국대학교 축구부 코치 * 김두함 - 팀의 기둥이었던 선수. 이후 [[수원 삼성]]에 입단했지만 1경기만 나오고 프로에선 자취를 감췄다. == 우승 기록 == * [[전국실업축구연맹전]] - 1995 춘계, 1996 춘계 (2회) * [[전국축구대회 역대 우승팀|전국축구선수권대회]] - 1994, 1995 (2회) * 전국실업축구선수권대회[* [[한국 내셔널리그]]의 리그컵이었던 내셔널선수권대회의 전신] - 1995 *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 1994 * 호치민시티컵[* 베트남에서 90년대에 열던 친선축구대회] - 1994 1995년이 최전성기로 이 때 이랜드는 리그인 [[전국실업축구연맹전]], 리그컵인 전국실업축구선수권, 그리고 아마추어 FA컵의 일종인 전국축구선수권을 모두 제패해 '''미니 트레블'''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