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2010년대 시위]][[분류:2011년 시위]][[분류:2012년 시위]][[분류:2013년 시위]][[분류:이라크의 역사]][[분류:이라크의 정치]][[분류:2019년 시위]][[분류:2020년대 시위]][[분류:서아시아사]][[분류:민주화 운동]][[분류:학살]] [include(틀:이라크의 역사)] [목차] == 개요 == 이라크 시위는 [[2011년]]부터 이어지는 [[이라크]]의 반정부 시위를 말한다. == 발단 == [[이라크]] 정부는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 이후 [[의원내각제]]로 개편되었다. 2011년 당시 국가원수는 제74대 총리인 [[누리 알말리키]]였는데, 세계에서 4번째로 부패한 국가로 알려지고[* 국제투명성기구 자료], 어려운 국가 상황에 잘 대처하지 못하여 국민들의 불만이 커져가는 상황이었다. 알말리키는 국민의 불만을 의식하여 연봉 50% 삭감 및 [[2014년]] 선거에 나서지 않을 뜻을 내비쳤으나, 주요 도시에서 반정부 시위가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 진행 == === 2011년 === ==== 2월 ==== [[2월 12일]]에 수백 명의 시위대가 [[바그다드]]와 [[카르발라]]에 모여 안보 정책과 부패 개혁, 공공 서비스 개선 등을 요구하였다. 이라크 정부는 시위 이후 [[전기]]요금 인하를 포함한 대책안을 발표하였다. [[2월 18일]]에는 [[쿠르드족]] 자치 지역의 시민들이 높은 실업률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며 자치정부 대통령의 집권당 사무실을 급습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한 명이 숨지고 30여 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category=mbn00008&news_seq_no=1035757|#]] [[2월 20일]]에는 술레이마니야 지역에서 약 1500명 규모의 시위가 벌어졌는데, 여기 참여한 17세의 세르코 모하메드가 복부에 총탄을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였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4923714|#]] 이라크 정부는 시위가 확산되자 수입품 가격의 80%까지 [[관세]]를 부과할 수 있게 하는 개정 관세법의 시행을 유보하였다. 성직자 아야톨라 알리 알-시스타니는 이라크 국민의 고통을 이해하나 유혈 사태는 자제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이라크 중부의 [[사마라]]에서 폭탄 차량을 이용한 [[테러리즘]]이 벌어져, 경찰관 10명이 숨을 거뒀다. 알말리키 총리는 국영 방송사를 통하여 시위의 배후에 [[사담 후세인]] 지지세력과 [[알카에다]]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주장은 [[리비아]]의 [[무아마르 알 카다피]]가 [[2011 리비아 민주화 운동]]에 관하여 내놓은 입장과 같다.[[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rabafrica/465267.html|#]] [[2월 25일]]에 [[신발투척]]으로 유명한 기자 문타다르 알-자이디가 반정부 시위를 위해 귀국하다가 군 당국에 연행되었다.[[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category=mbn00008&news_seq_no=1037586|#]] 25일은 대규모 시위가 예정돼 있던 '분노의 날'(Day of Rage)로, [[바그다드]] 해방 광장에 5천여 명의 시위대가 모여 경찰과 군인에게 물건을 집어던졌다. 같은 날 [[모술]]과 하위자 마을 등에서도 시위가 일어났다.[[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1022522092672522|#]] 경찰은 이에 발포로 대응하여 이날 하루에만 이라크 전역에서 최소 29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 3월 ==== [[3월 8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시위를 주도한 정당(이라크 국민당, 이라크 공산당 ~~[[국공합작]]?~~) 2곳이 보안군으로부터 사무실 퇴거 명령을 받았다. 이라크 국민당 당수인 미탈 알-알루시는 정부의 위헌적인 시도라고 강하게 비판하였다. 반면 이라크 정부는 공공 소유의 건물을 정부가 사용하도록 하려는 것일 뿐이라 주장하였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4946987|#]] [[3월 21일]] 이라크 정부는 [[2011 리비아 민주화 운동]]을 지원하고 [[무아마르 알 카다피]]를 축출하기 위한 국제 사회의 개입에 대하여 지지 입장을 내놓았다. [[3월 29일]]에는 이라크 살라후딘 주 지방의회에 무장 괴한이 난입하여 [[폭탄 테러]]를 가하였다. 테러 사건으로 58명의 사망자 및 97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으며 이라크의 긴장이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1033004291077208|#]] ==== 4월 ==== [[알카에다]] 연계조직인 '이라크 이슬람 국가'(훗날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가 3월 29일 벌어진 테러 사건을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였다.[[https://www.ytn.co.kr/_ln/0104_201104030539196289|#]] [[4월 11일]]에는 [[팔루자]]와 [[바그다드]]에서 연달아 발생한 폭탄 테러로 인하여 10세 여아와 경찰관 2명을 포함한 10명이 사망하였다.[[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category=mbn00008&news_seq_no=1048807|#]] [[4월 12일]]에 이라크를 거점으로 삼던 [[이란]]의 반체제단체인 이란인민무자헤딘기구(PMOI)가 이라크 정부로부터 퇴거 명령을 받았다. [[4월 14일]]에는 이라크에 주둔한 [[미군]] 기지가 무장단체로부터 [[박격포]] 공격을 받았는데, 반미 시아파 지도자인 무크타다 알-사드르와의 연관성이 점쳐지고 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5010664|#]] 정기적인 시위는 한동안 잠잠해진 가운데, 무장 [[테러]] 등 불안정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 5월~12월 ==== 미군에 의한 [[오사마 빈 라덴]]의 사살과 관련하여 조성된 원리주의자들의 반미 정서가 확대되어 반미 시위 및 [[테러리즘]]이 이어지고 있다. 12월에 들어서며 [[미군]]의 이라크 철군 행보가 가속화하는 모양새다.[[https://news.mt.co.kr/mtview.php?no=2011121211218269039&outlink=1&ref=https%3A%2F%2Fnews.naver.com|#]]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경제 지원을 약속하였고, 15일에는 [[이라크 전쟁]]의 공식적인 종결 선언을 하였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5422180|#]] [[12월 4일]] 알말리키 총리는 [[AP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하여 자신에 대한 암살 시도가 있었다고 밝혔다. [[12월 6일]]은 이슬람 [[시아파]] 최대의 성일인 [[아슈라]]로, 이날 바그다드에서 시아파 순례자들을 겨냥한 테러가 발생하여 8명이 숨지고 2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2&aid=0001978846|#]] [[시아파]] 출신인 알말리키 총리가 공무원 암살 등의 혐의로 [[수니파]] 출신 부통령 타리크 알하셰미의 체포 영장을 발부하여 종파 갈등의 불이 붙었다. 역시 수니파 출신인 살레 알무트라크 부총리는 TV 화면의 조작을 주장하며 알말리키를 '[[사담 후세인]]보다 더한 [[독재자]]'라고 비난하였다. 총리는 이에 대하여 무트라크의 해임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12212120585&code=970209|#]] 격화된 종파분쟁을 보여주듯 22일 바그다드에서 연쇄 폭탄 테러가 일어나 25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5433473|#]] 이라크 내무부는 최소 74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고 발표하였으며, [[알자지라]]는 최소 63명의 사망자 및 200명 이상의 부상자가 속출하였다고 보도했다. === 2012년 12월 === [[2011년]] 12월 미군 철수 이후 이라크는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의 종파 갈등이 심화되었다. 말리키 총리는 비교적 중립의 위치에서 종파 갈등을 중재하였던 잘랄 탈라바니 대통령이 뇌출혈로 쓰러져 [[독일]]의 병원에 이송된 틈을 타 [[수니파]] 계열 라피아 알 에사위 재무장관의 경호원 10명을 체포하였다. 해외 도피 중인 알하셰미 부통령은 성명을 통하여 말리키 총리를 '[[이란]]의 앞잡이'라며 비판하였다. [[2012년]] [[12월 27일]] 걸프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수천 명의 [[수니파]] 시위대가 안바르 주 주도 [[라마디]]에서 [[시리아]] 방향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시위를 진행하였다. 시위대는 수니파의 권리 존중과 수니파 수감자의 석방 및 말리키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였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6010686|#]][[https://www.voakorea.com/a/1574840.html|#]] 또한 시위대는 반테러법이 정적을 제거하는 데에 악용되고 있음을 주장하며 폐지를 요구하였다. [[12월 31일]] 말리키 총리는 반정부 시위대에게 '반헌법', '외부 세력 개입', '혼란조장'을 이유로 해산을 통첩하였다. 다만 총리는 일부 수니파 여성 수감자들에 대한 석방을 허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총리는 수니파 성직자인 할레드 알 물라와의 만남에서 교도소의 여성 수감자 920명 중 약 700명을 석방하겠다고 약속하였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4908350|#]] === 2013년 === ==== 1월 ==== [[1월 15일]]에 안바르주의 [[팔루자]]에서 폭탄 조끼를 이용한 자살 폭탄테러가 발생하여 수니파 의원인 알 이사위가 사망하였다. 안바르주 당국은 사흘의 추모기간을 정하였으며, 수니파 반정부 시위는 이번 표적 테러로 말미암아 격화될 전망이다.[[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1583441&plink=OLDURL|#]] [[1월 23일]]에는 바그다드 북쪽 210km 방면에 위치한 투즈 코마르토시의 시아파 사원에서 [[장례식]] 도중 자살 폭탄테러가 발생하여 수십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https://www.ytn.co.kr/_ln/0104_201301240350575422|#]] [[대한민국]] [[외교통상부]]는 이라크의 불안한 상황과 관련하여 [[여행금지|여행금지국가]] 지정을 [[7월 31일]]까지로 연장하였다. [[1월 25일]]에 진행된 '물러서지 않는 금요일'(No Retreat Friday) 시위와 관련하여 [[이라크군]] 당국이 시위대에게 발포하여 5명이 숨지고 23명이 다쳤다.[[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1600365&plink=OLDURL|#]] 불상의 수니파 무장괴한 조직은 이를 규탄하며 다음날 국경의 검문소를 공격하여 군인 2명을 숨지게 하였다.[[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1602197&plink=OLDURL|#]] ==== 2월 ==== [[2월 3일]] 오전 북부 [[키르쿠크]]의 경찰 본부에서 차량 테러 사건이 발생하여 100여 명의 사상자가 속출하였다.[[https://www.ytn.co.kr/_ln/0104_201302040523555306|#]] [[2월 8일]]에도 북부 [[카디미야]] 근처의 시장에서 시아파를 겨냥한 차량 테러가 발생하여 17명이 숨지고 45명이 부상을 입었다. 쇼말리 마을 및 [[카르발라]]와 [[모술]] 등에서도 테러가 발생하여 이날 기준으로 최근 일주일새 이라크 내 폭력사태로 인한 사망자가 100명을 넘어섰다.[[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1602197&plink=OLDURL|#]] [[2월 9일]]에는 한때 [[미군]]의 리버티 기지로 이용되었던 이란 반체제 망명자 캠프가 [[로켓]]포 공격을 받아 최소 6명이 사망하고 100명 이상이 부상을 당하였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4972235|#]] [[2월 22일]]에는 '이라크냐, 말리키냐'(Iraq or Maliki) 등의 시위 구호를 내건 시위대 수천 명이 바그다드와 모술 등 주요 도시에 집결하여 내각의 퇴진을 요구하였다. [[2월 23일]] [[독일]]의 의료진에 따르면 [[뇌출혈]]로 쓰러져 응급 처치 후 독일로 이송되었던 잘랄 탈라바니 이라크 대통령의 상태가 호전되어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탈라바니 대통령은 [[수니파]](부총리, 부통령)와 [[시아파]](총리) 사이의 갈등이 심화될 당시에 중재자로서 타협안을 내놓았던 인물로, 그가 부재중인 사이 격화되었던 이라크 시국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4994745|#]] ==== 3월 ==== [[3월 1일]]에 라파 알-에사위 재무장관이 시위에 참석하여 연설하였고, 재무장관직을 사임하겠다고 통보하였다. [[3월 4일]] [[시리아 내전]]중 반군의 확장을 피하여 이라크 영토내로 피신한 [[시리아군]], 공무원 등 최소 42명이 매복 공격을 당하여 숨을 거두었다. [[3월 11일]] 이라크이슬람국가(ISI)가 자신들의 소행이라 주장하였다. [[3월 8일]]에 경찰이 [[모술]]의 수니파 시위대에게 발포하여 1명이 숨지고 5명이 부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시위 과정에서의 사망자 발생은 같은 해 [[1월 25일]]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6135862|#]] 다음날 이라크의 농업장관 이제디네 알-다울라는 발포 사건에 대하여 정부에 강력히 항의하며 사임의 의사를 밝혔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6135900|#]] [[3월 14일]]에는 이라크 바그다드 중심부에서 폭탄테러 사건이 일어나 22명의 사망자 및 도합 70명에 이르는 사상자가 발생하였다.[[https://www.ytn.co.kr/_ln/0104_201303142255295184|#]] === 그 이후(2019년 반정부 시위) === [[2014년]] 1월까지 지속되었던 이 시위에서 일부 극단주의자로 변질된 단체들은 [[다에시]]라는 테러단체가 결성되어 2014년 6월 29일에 자칭 국가로 선포하고, [[2017년]]까지 국제적 분쟁 및 테러들을 일으켰으나 2017년 12월부터 [[2018년]] 1월이후부터는 이들의 행보가 많이 약화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무능한 정부와 총리들 및 많이 개선되어도 여전히 불안정하기도 한 치안으로 인해 여러 불만들이 쌓여 2018년에 시작되어 [[2019년]] 10월에 본격적으로 일어난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인해 10월 29일, 총리가 사임하겠다고 밝혔고, 훗날 11월 29일만에 이라크의 총리는 물러났다.[* 2019년 이라크 시위는 훗날 2019년 [[레바논]] 반정부 시위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 이후인 [[2020년]]에도 여전히 크고 작은 반정부 시위들이 나타나고 있다. 2020년 5월에는 새로운 내각이 들어섰다[[https://www.yna.co.kr/view/AKR20200507150600111?input=1195m|#]]. 2020년 8월, 11월에도 시위는 여전히 일어났다[[https://newsis.com/view/?id=NISI20200818_0000583681|#]], [[https://newsis.com/view/?id=NISI20201105_0000631223|#]]. == 여담 == * 2019년 10월 1일에 시작된 혁명의 이름을 10월 혁명(아랍어:ثورة تشرين)이라고 부른다. 또한 이라크에서 신분이 낮거나 가난한 젊은이들이 툭툭(삼륜차)을 타고 거리나 광장에서 시위를 해서 툭툭 혁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https://www.news1.kr/articles/?3767383]|#]] * 2019년 시위가 일어났던 장소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의 타흐리르[* 아랍어로 해방(Tahrir)을 의미한다.] 광장인데[[https://en.wikipedia.org/wiki/2018%E2%80%932020_Arab_protests#/media/File:Iraqi_protests_in_October_2019_(Liberation_square).jpg|#]], [[https://en.wikipedia.org/wiki/Tahrir_Square_(disambiguation)|이집트와 예멘, 시리아 등에서도 수도에 이러한 이름을 가진 광장들이 있다]]. 우연이지만 8년 전인 2011년 아랍의 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집트와 예멘, 그리고 시리아에서도 이 타흐리르 광장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시위가 나타났다. * 이라크 혁명 이후 이라크 시민들은 시위가 나타났던 타흐리르 광장의 사둔 터널에 여러 개의 [[벽화]]들을 그렸다[[https://newsis.com/view/?id=NISI20191122_0000434301|#]], [[https://news.naver.com/main/read.nhn?oid=003&aid=0009571366|#]]. == 관련 문서 == * [[아랍의 봄]] * [[재스민 혁명]] * [[이라크 내전]] *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