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일본 내각총리대신)] ---- ||<-2><table bordercolor=#0230AE><table align=right><#003478><table width=410>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1C20B2 0%, #4449D3)" '''[[일본국 내각총리대신|{{{#C3C965 일본 제국 제29대 내각총리대신}}}]][br]{{{#C3C965 {{{+1 이누카이 쓰요시}}}[br]犬養毅 | Inukai Tsuyoshi}}}'''}}} || ||<tablebgcolor=#fff><-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Inukai_Tsuyoshi.jpg|width=100%]]}}} || ||<|2><colbgcolor=#0230AE><width=100> {{{#C3C965 '''출생'''}}} ||[[1855년]] [[6월 4일]] || ||빗추국 [[카야]]군 가와이리촌 (現 [[오카야마현]] [[오카야마시]] 키타구) || ||<|2> {{{#C3C965 '''사망'''}}} ||[[1932년]] [[5월 15일]] (향년 76세) || ||도쿄부 도쿄시 고지마치구 수상관저 (現 [[도쿄도]] [[치요다구]] [[수상관저]]) || ||<|2> {{{#C3C965 '''재임기간'''}}} ||<(><#f5f5f5,#2D2F34> 제29대 내각총리대신 || ||[[1931년]] [[12월 13일]] ~ [[1932년]] [[5월 15일]] || ||<-2><bgcolor=#fff,#1f2023><color=#373a3c,#ddd>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tablewidth=100%><table bgcolor=#fff,#1F2023><colbgcolor=#0230AE><colcolor=#c3c965><width=100> '''배우자''' ||이누카이 치요코 || || '''자녀''' ||요시자와 미사오 {{{-2 (장녀)}}} 이누카이 스기 {{{-2 (장남)}}} 이누카이 타케루 {{{-2 (삼남)}}} || || '''학력''' ||[[게이오기주쿠대학|게이오기주쿠]][* 대학 승격 전, 사숙 시절에 재학하였다. 게이오기주쿠는 1920년 2월에야 비로소 정식 대학으로 승격된다. 같은 날 도쿄전문학교도 [[와세다대학]]으로 함께 승격되었다. 이로써 [[소케이]]는 나란히 일본 최초의 사립대학이 되었다.] {{{-2 (중퇴)}}} || || '''정당''' ||[include(틀:입헌정우회)] || || '''지역구''' ||오카야마 2구 || || '''의원 선수''' ||'''18''' (중) || || '''의원 대수''' ||[[제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 || '''약력''' ||우편호치신문 기자[* [[세이난 전쟁]] 당시 종군기자로 활동하였다. 발도대가 사쓰마군을 향해 "[[보신 전쟁|보신]]의 원수(戊辰の仇)!"라고 외치면서 돌격하는 모습을 이누카이가 직접 취재하여, 발도대와 사쓰마군의 관계에 대한 중요한 사료가 되기도.][br]도카이경제신보 창간인[br]통계원 권소서기관[br][[와세다대학|도쿄전문학교]] 제1회 의원 중의원 의원 제15·35대 문부대신 제27·29대 체신대신 제45대 외무대신 제50대 내무대신 제6대 입헌정우회 총재 제29대 내각총리대신 || }}}}}}}}} || [목차] [clearfix] == 개요 == [[일본]]의 [[정치인]], [[각료]], [[일본 내각총리대신|내각총리대신]]. 총리로 재직한 세월은 고작 5개월에 불과하지만, 오랜 세월 정치거물이었고 총리직은 그의 인생의 정점이었다. 무엇보다 [[1932년]] [[5월 15일]] [[해군]] [[장교]]들에게 피습당해 '''총리 재직 중''' 죽었다([[5.15 사건]]). == 생애 == === 총리 이전 ===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external/dictionary.goo.ne.jp/102650.jpg|width=240]]}}}|| || 문부대신 시절 || 이누카이 쓰요시는 [[1855년]] [[6월 4일]], [[에도 막부]] 빗추국(현재 [[오카야마현]])에서 태어났다. 아호는 모쿠도(목당/木堂)이서 모쿠도 선생이라고 많이 불렸다고 한다. [[게이오기주쿠대학]] 입학 후 신문 견습기자로 취직하면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고, 대학 중퇴 후에는 '''신문사를 창간'''해(!) 보호무역론을 옹호했다. 견습기자 시절 알던 선배의 인연으로 [[통계청]]에 근무하기도 했었지만 곧 퇴직했다. 이때 [[오자키 유키오]]를 처음 만났다. 이후 두 사람은 거의 같이 붙어다니게 된다. 신문사, [[정당]], 잡지사 등등 같은 회사에 입사와 퇴사 시기가 비슷하다. 그리고 오자키가 [[오쿠마 시게노부]] [[내각]]의 문부대신으로 입각하고 얼마 안 있어 공화연설로 사임하자 임시로 문부대신을 맡기도 했다. === 총리 시절 ===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external/www.weblio.jp/souri29.jpg|width=240]]}}}|| || 29대 총리 취임 후 || 민정당의 [[와카쓰키 레이지로]] [[총리]]가 모아지지 않는 [[내각]] 의견에 빡쳐서 사임하자 입헌정우회에게로 다시 정권이 돌아왔고, 드디어 후임 [[총리]]로 결정되었다. 의원들과 원로들이 당시 슬슬 [[폭주]]해가던 [[군부]]를 잡을 요량으로 이누카이를 선출한 것인데, 결과적으론 [[악수]]가 되어버렸다. 취임한 지 한 달도 안 된 시점(21일째)에서 [[이봉창]] 의사가 [[쇼와 덴노]]를 암살하려다 실패하게 된다(사쿠라다몬 의거). 이로 인해 사임하려 했으나 덴노의 반려와 [[사이온지 긴모치]]의 중재로 유임했다.[* 만약 이렇게 됐으면 그야말로 한 달도 안되는 역대 최단 임기 내각이 되었을 것이다. 이봉창 의사의 의거는 1월 8일에 있었고, 이누카이는 이 의거 당일인 1월 8일에 사임을 주청했으나 덴노가 다음 날 반려했다. 진짜 일본사 최단 재임 총리는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 총리이다. 그러나 명줄로는 최장수(= 102세) 총리였다. 두 번째로 장수(= 101세)한 총리는 [[2019년]] 타계한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 2월 20일에 벌어진 제18대 총선에서는 301:146으로 민정당을 크게 따돌리며 거대 여당이 되었다. 이에 힘입은 이누카이는 원로의원들의 바람대로 [[군부]]를 혹독하게 지배하려 들었고, 외교 면에서도 '''개인적으로는''' 온건주의 노선을 지향하려 노력했다. 물론 정우회는 민정당에 비해서 전반적으로 참전여론이 강했다. 하지만 이누카이 개인은 [[국제연맹]]등의 여론이 좋지 않음을 인지하고 [[만주국]] 설립을 막고 일본과 [[중화민국]]이 모두 합의하는 선에서 만주에 자치정부를 두어 양국이 함께 관리하고 일본은 경제권만을 취하는 방식의 합의를 보려는 주장을 했다고. 여하간 이 시점은 일본이 전쟁에 휩쓸리냐 마냐를 결정하는 마지막 분기가 되었고, 결국 헌정 최후의 보루였던 이누카이의 죽음과 함께 일본은 그대로 [[파시즘]]의 나락으로 들어가고 만다. === 만주사변과 암살 === [[만주사변]]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이누카이 내각은 당시 [[국제연맹]] 주도의 리튼 조사단에서 내놓은 합의안, 즉 만주를 중국의 영토로 인정하되 일본에 의해 조종되는 지방정부를 성립시키고 일본의 제국주의적 권익을 보장하는 방안으로 출구를 찾으려고 했다. 그러나 당시 폭주하던 군부는 정우회 내의 실력자인 모리 쓰토무[* 모리 가쿠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졌다.]와 결탁하여 당내 분열을 조장하면서 정국을 혼란에 빠뜨렸다. ||<tablealign=right>{{{#!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ay_15_Incident.jpg|width=400]]}}}|| || 이누카이의 사망을 알리는 신문 기사 || 그 결과는 [[5.15 사건]]이었으니, 우유부단한 총리에게 정권을 맡겨둘 수 없다고 판단한 젊은 [[해군]] [[장교]](와 육군 [[사관생도]])들에 의해 [[암살]]당하고 말았다(총을 쏜 이는 구로이와 이사무). 당시 해군 군인들은 수상 관저의 정문과 후문으로 나눠 들어왔는데, 정문으로 들어온 장교가 먼저 총리를 발견하고 권총을 쐈지만 불발이었다. 식사 직전이었던 총리는 "기다려, 총은 언제든지 쏠 수 있네. 말로 하면 알아듣네!"라고 하면서 응접실로 이들을 안내했다. 하지만 후문으로 들어온 군인들이 응접실에서 총리를 발견하자마자 "문답무용, 발사!"라고 명령을 내렸고, 이번엔 불행하게도 불발이 아니어서 그대로 [[유언]]이 되어버렸다. 이후 주모자 11명은 [[재판(법률)|재판]]에 회부되었으나 전국적인 [[구명]] 운동과 35만 명의 서명으로 [[사면]]되었다. 이누카이 쓰요시는 살해 당일 '''[[찰리 채플린]]'''을 만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를 살해한 장교들은 찰리 채플린 역시 죽이려 했으나 찰리 채플린은 살아 남았다. [[5.15 사건]] 문서의 여담 참조 == 여담 == 아들 이누카이 다케루는 [[소설가]]였다가 그가 총리가 되기 직전에 정계에 입문해 [[태평양 전쟁]] 이후 전후 의회에서 [[일본민주당(1947년)]] 총재와 [[요시다 시게루]] 내각의 법무대신을 지냈다[* 다만 자유당과의 합당 추진과정에서 탈당파들이 발생하고 요시다 수상이 강화협상 이후 전범들의 정치활동 금지를 전면 해제하면서 실세했다. 법무대신은 소수당이나마 연립내각의 총재가 받기엔 그렇게 실권있는 자리는 아니었다고.]. 전후 일본민주당(1947)이 정우회와는 대립각을 세우던 일본 민정당의 후예격이라는걸 생각하면 흥미로운 일이고[* 근데 그렇게 따지면 또 일본 민정당은 일본 정우회에서 와카자키 레이지로 등의 탈당파들이 외부의 호헌회와 연합하여 세운 정당이다. ], 과연 민주당은 다케루 시기 [[자유당(일본, 1950년)|자유당]]에 합당되고 만다.[* 다만 합당에 동의하지 않은 잔류파들이 [[1955년]] 총선에서 승리했고, 이들이 자유당과 [[자유민주당(일본)|자유민주당]]을 결성하며 [[55년 체제]]가 이루어졌다.] 이 사건 때문에 아들 다케루가 채플린을 만나지 않았다면? 이란 가정이 떡밥거리처럼 다뤄진다고 한다. 부자가 둘다 끔살…/ 혹은 운 좋게 쓰요시가 살아난다든가 여러 가정이 가능하다. 손녀(다케루의 장녀) 이누카이 미치코(犬養道子)는 일본 가톨릭계의 유명 인물로 여러 종교서적을 저술한 평론가로 유명하다. 다른 손녀 안도 카즈는 [[안도 사쿠라]]의 어머니다. 즉 이누카이는 안도 사쿠라에게 외증조할아버지가 된다. > "[[일본인]]은 남의 노복이 되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 까닭에 노동자에 적합하지 않다. 때문에 하늘은 [[조선인]]과 같은 순종적인 인민을 만들어 이웃끼리 각자 역할을 다하게 했다. 조선인은 정신은 퇴락했으나 신체는 강건하다." 위의 글은 그가 1896년에 쓴 글이다. 일본 정계에서 그나마 입헌, 민주주의의 대표주자로 유명했던 그조차도 이런 시각을 가졌던 것을 보면, 당시 일본 정계와 지식인층이 한반도 민중들에 어떠한 관점을 보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Hearts of Iron 시리즈]]의 모드 [[카이저라이히]]에서는 [[5.15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 게임 시작시인 1936년까지 총리직을 유지하게 된다. 그러나 같은 해 5월 15일 좌익적인 해군 장교들이 가타야마 센을 암살하는 [[백색테러]]의 복수로 그를 암살하며 4년 늦게 5.15 사건이 터지고 흔들리던 일본의 민주주의는 기로에 놓이게 된다. [[분류:일본 제국 총리]][[분류:일본 제국 내무대신]][[분류:일본 문부과학대신]] [[분류:일본 제국 외무대신]][[분류:제1대 일본 중의원 의원]] [[분류:기자 출신 정치인]][[분류:1855년 출생]] [[분류:1932년 사망]] [[분류:키타구(오카야마시) 출신 인물]] [[분류:자유주의자]] [[분류:암살된 인물]] [[분류:총기에 죽은 인물]][[분류:테러 피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