柚谷康広. [[전국시대(일본)|전국시대]]의 인물로 생몰년도 미상. 쓰시마 도주 소 요시시게(宗義調)의 가신이다. [[조선]]에서는 [[타치바나]] 야스히로(橘康廣)라고 기록되어 있다.[* 성(姓)과 씨(氏)의 차이가 그때까지도 남아있었던 일본에서는 자기 원래 성 외에 소위 본성이라 하는 [[미나모토]](源)·[[타이라]](平)·[[후지와라]](藤原)·타치바나(橘) 가운데 어느 하나를 사용하는 경우가 잦았고, 일본의 본성·씨·묘자 등의 차이를 몰랐던 당대 조선에서는 일본 인명이 이 본성을 사용한 이름으로 알려졌었다. 그래서 조선 측 기록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원가강(源家康),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평수길(平秀吉)로 적혀있다(정작 히데요시의 관백 자리는 후지와라 가문, 정확히는 후지와라에서도 종가로 대우받는 [[코노에]] 가문의 양자가 되어 얻어낸 자리였지만). 히데요시는 덴노로부터 받아낸 도요토미라는 성씨를 미나모토·타이라·후지와라·타치바나와 동급의 본성으로 격상하려 했지만, [[오사카 전투|단 2대만에]]…….] 1586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서신을 가지고 조선에 일본국왕사(日本國王使)로 파견되어 [[조선 통신사]]를 요구했으며, 이 당시의 나이는 50세가 넘어 용모가 크고 수염과 머리털은 반백이었다. 또한 조선의 관·역마다 반드시 가장 좋은 방에 거처하면서 행동이 거만하고 보통 때의 일본 사신과 아주 달라, 보는 사람이 괴상하게 여겼다고 한다. [[상주시|상주]] 목사 송응형(宋應泂)[* [[율곡 이이]]를 탄핵하다가 역관광당한 송응개(宋應漑)의 동생이다. 송응형도 형처럼 이이를 탄핵하다가 이이와 친했던 같은 동인 김우옹(金宇顒)의 팀킬(사실 김우옹의 당색은 옅은 편이었지만)을 받고 파직당한 뒤 상주 목사로 나가 있었다. 임진왜란 초기에 황주 목사로 있다가 병으로 사직 후 곧 사망했다.]이 베푼 연회에서 기생의 가무가 시작되자 송응형에게 '자신은 전쟁 속에 살면서 수염과 머리털이 희어졌는데, 당신은 기생 속에서 아무 걱정없이 지냈는데도 머리털이 희게 된 이유가 뭐냐'고 비꼬았다. [[안동시|안동]]에서는 백성들을 동원해 창을 잡고 길가에 늘어선 것을 보자 '너희들이 가진 창의 자루가 너무 짧다'고 디스했다. 한양에서 예조 판서가 연 연회장에 [[후추]]를 흩어놓자 기생·악공들이 서로 다투어 줍는 소동이 일어났는데, 이를 보더니 '너희 나라는 곧 망하겠구나. 기강이 허물어져서 망하지 않기를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깠다. 일본의 쓰시마 도주는 조선으로 따지면 부사나 목사 급인데, 도주도 아니고 그 가신이 상주 목사는 물론 예조 판서 앞에서도 조롱으로 일관했으니, 괴상하게 여길 만도 하다.[* 하지만 배경이야 어쨌건 일본국왕사 명목으로 파견된 이상 조선에서도 얘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특사'로 보아야지 '쓰시마 섬의 [[아전]]'으로 볼 순 없는 노릇이다. 현대식으로 이야기하면 어떤 나라가 지방직 하급 공무원을 깜짝 발탁해서 외교사절로 임명했더라도 그 임명과 파견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게 아닌 한 상대국에서는 그 인물을 '파견국의 외교사절'로 대우해야지 '듣보잡 하급 공무원'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물론 현대라면 그 전에 상대국이 '이놈들이 우릴 무시하냐'며 [[아그레망]]을 거부할 가능성을 계산해둬야 하겠지만). 그리고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이던 조선과 달리 봉건제로 굴러가던 당시 일본에서는 그래도 '조선에 익숙한' 쓰시마의 인물을 보내는 편이 더 적절한 인사라 볼 여지도 있다.] 그런데 [[소 요시토시]] 항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선하고 틀어져서 좋을 거 하나도 없는 쓰시마''' 출신의 야스히로가 조선에서 대놓고 어그로를 끈 게 이상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쩌면 야스히로는 [[가치부전|고의로 깽판을 쳐서 조선에게 일본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걸 어필하려 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포장(?)을 하자면 송응형에게는 '조선은 전쟁 경험이 없어서 대비가 시원찮구나('''그러니 이제 전쟁 대비를 하는 게 좋을 것이다''')'는 암시를 준 것이고, 안동에서는 병졸들의 무장 상태에 대한 지적을 한 것이며, 예조 판서에게는 '('''대규모 침공이 있을 것이니''') 기강을 정비하라'고 경고했다고 볼 여지도 있다. 아무튼 조선에서는 히데요시의 서신에 답변만 하고 수로를 몰라 사신을 보내지 않는다 전했는데, 이 사실을 히데요시에게 알렸다가 분노한 히데요시에게 일가족이 몰살당했다고 한다. [[분류:센고쿠 시대/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