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건국훈장 애국장]][[분류:문경시 출신 인물]][[분류:풍산 류씨]][[분류:1890년 출생]][[분류:1922년 사망]] || 성명 ||유성우(柳晟佑) || || 이명 ||유병의(柳秉義)·유성우(柳性佑)[br]이성중(李性中)·이병의(李秉義)·류성중(柳性仲) || || 본관 ||[[류(성씨)|풍산 류씨]][* 25세손 '''우(佑)''' 묵(默) 훈(勳) 항렬.] || || 생몰 ||[[1890년]] [[1월 14일]] ~ [[1922년]] [[11월 26일]] || || [[출생지]] ||경상도 상주군 산남면[br](현 [[경상북도]] [[문경시]] [[산양면]] 존도리)[* 산양면 일원에 [[류(성씨)|풍산 류씨]]가 산재해 있다.] || ||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유성우는 1890년 1월 14일 경상도 상주군 산남면(현 경상북도 문경시 산양면 존도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경상북도 일원의 [[3.1 운동]]에 참가하여 그해 7월까지 활동하던 중 일본 경찰의 추격을 받자 곧바로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상하이에서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 임시의정원 경북대의원(慶北代議員) 등으로 활약하였으며 군자금 조달의 지령을 받고 국내로 잠입하였다. 그리하여 1920년 음력 3월 16일 심야에, [[http://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do?goTocode=20001&mngNo=9194|이병한]](李炳漢)·[[유시언]]과 함께 모조 권총을 소지하고 문경군 산북면 서중리 장수학(張守學)의 집에 침입하여 상해 임시정부에 자금을 대지 않으면 살해하겠다고 협박하였고, 마침내 그로부터 2,100원을 수합하여 임시정부에 송금하였다. 또한 그해 음력 10월 [[http://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do?goTocode=20001&mngNo=42635|이민식]](李敏軾)·[[장응규]]·[[안종운]] 등이 주도·조직한 주비단(籌備團)의 임시정부 공채모집에 협조하여 공채증서를 윤용구(尹用求)에게 매각하고자 하였으나 본인의 거부로 실패하였다. 이로 인하여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21년 7월 11일 대구지검 안동지청에서 대구지방법원 공판에 회부되었으며[[http://theme.archives.go.kr/next/indy/viewIndyDetail.do?archiveId=0001166012&evntId=&evntdowngbn=N&indpnId=0000143820&actionType=det&flag=4&search_region=|#]], 그해 10월 6일 대구지검에서의 예심에서 공판에 재차 회부되었다. 또 그해 11월 29일 1심에서 징역 10년형을 언도받았다.[[http://theme.archives.go.kr/next/indy/viewIndyDetail.do?archiveId=0001165601&evntId=&evntdowngbn=N&indpnId=0000138851&actionType=det&flag=4&search_region=|#]] 한편, 1922년 7월 2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8년형(미결 구류 40일 통산)을 언도받아[[http://theme.archives.go.kr/next/indy/viewIndyDetail.do?archiveId=0001164897&evntId=&evntdowngbn=N&indpnId=0000132791&actionType=det&flag=4&search_region=|#]] 공소하여 1922년 8월 2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다이쇼]] 8년(1919) 제령 제7호 위반 및 강도 혐의로 원심 판결이 취소되어 다소 감형된 징역 5년형을 언도받고[[http://theme.archives.go.kr/next/indy/viewIndyDetail.do?archiveId=0001351698&evntId=0034984886&evntdowngbn=Y&indpnId=0000016371&actionType=det&flag=1&search_region=|#]] 그 직후 또 상고하였으나 그해 10월 2일 고등법원 형사부에서 상고 기각[[http://theme.archives.go.kr/next/indy/viewIndyDetail.do?archiveId=0001351890&evntId=0034981924&evntdowngbn=Y&indpnId=0000013574&actionType=det&flag=1&search_region=|#]],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단식투쟁을 계속하다가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1977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이 추서되었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