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원도심(부산).png]] [include(틀:부산광역시의 지역 구분)] [목차] == 개요 == || [[파일:KakaoTalk_20180101_165350378.jpg|width=350]] || [[파일:KakaoTalk_20180101_165349533.jpg|width=350]] || || [[동구(부산)|동구]] [[중앙대로(부산)|중앙대로]] 옆으로 뻗어진 건물들 || [[중구(부산)|중구]] [[중앙동(부산)|중앙동]]의 업무시설들 || [[부산광역시]]의 옛 중심지였던 [[중구(부산)|중구]]와 [[영도구]], [[동구(부산)|동구]]와 [[서구(부산)|서구]] 등 [[부산광역시/역사|역사]]적으로 부산부였던 지역을 통틀어 부를 때 사용되는 단어. [[부산광역시청]]의 소재지였던 만큼 과거 부산에서 가장 번화한 중심지 역할을 수행했던 지역이다. 그래서 이름도 '''원'''도심인 것. 옛 구(舊) 자를 써서 구도심이라 부르기도 하나, '몰락한 과거의 도심'이라는 부정적 뉘앙스가 강해서 원도심에 비해 잘 사용되진 않는다.[* 다만 몰락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오늘날 제1의 상권인 [[서면]]을 비롯해 [[해운대구|해운대]], [[부산대]], [[대연동]], [[덕천역|덕천]], [[하단역|하단]], [[사상역|사상]] 등 새로운 상권들이 치고 올라왔지만 원도심(정확히는 [[남포동(부산)|남포동]]-[[광복동]] 일대)은 여전히 서면에 이어 부산 제2의 상권을 유지하는 중이며, 서면과 유동인구 및 방문객 수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 역사 == [[파일:external/file2.instiz.net/172922246ededaf0db573b37d5897e49.jpg|width=500]] 지금의 [[롯데백화점]] 광복점 위치에 있던 --삭막한-- 구 [[부산광역시청]]의 모습.[* 때문에 이 교차로의 명칭을 옛시청교차로라고 지정하였다. 교통정보 안내방송에 옛시청이라고 하면 십중팔구 이곳 남포동을 일컫는다.] 현대적 도시로서의 부산이 처음 번성했던[* 근현대 이전, [[삼국시대]] 때부터 부산 지역의 중심지는 쭉 지금의 [[동래구]] 일대였다. 동래는 정체된 상태로 존재하다가 남쪽에서 시작한 부산 시가지의 확장으로 비로소 부산의 변두리로 편입되는 과정을 거쳤다.] [[부산항]] 인근 지역에 해당한다. 이 지역은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왜관#s-2|왜관]]을 중심으로 한 일본인 집단 거류지였는데,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일본인들이 본격적으로 산을 없애고[* 영선산, 용미산] 원도심 해안가를 모두 매립하였다. 또한 일본인들이 많이 살던 데다가 항구가 있어 일본과의 교통이 편리한 이곳이 부산의 중심지로 거듭난 것이었다. [[부관연락선]]이 닿던 곳도 이쪽이었고, [[부산역전 대화재]] 이전의 부산역도 현재보다 이쪽으로 더 붙어 있었으며[* 지금의 [[중앙역(부산)|중앙역]] 인근. 현재의 [[부산역]]은 그 당시 [[초량역(경부선)|초량역]]이었다.] 무엇보다 [[부산부]]청이 여기 있었기 때문에[* 지금 [[롯데타운타워]] 공사 중인 곳이다.] 그야말로 명실공히 부산의 중심이라 할 만했지만, 역시 일본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다 [[부산잔교역]]을 통해 공출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했고, 특히 [[서울역|경성역]]이 아닌 이쪽 방면을 (도쿄 방면이라) 상행이라 불렀던 점이 조선인들의 반감을 사 당시엔 이쪽 동네에 대한 인식이 좋지만은 않았다. 그러다 1945년 해방이 이루어지고, 일본인들이 축출당하면서 용두산[[신사(신토)|신사]]는 헐렸고, 동네 이름들도 해방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광복', '충무'로 바뀌었지만 곧바로 몰락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원도심권이 밀려나게 된 시발점은 옛 [[동래]] 지역권의 발전에 있었는데, 특히 현 부산 최대 도심인 [[서면]] 지역의 발전이 원도심에 치명상을 입힌 것으로 회자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산시청과 부산지방법원 등의 공공기관 이전, 문현금융단지 조성으로 한국은행과 금융기관의 이전, 부산신항 개장으로 항만기관의 이전이 큰 타격을 줬으며 [[부산국제영화제]]는 협소한 남포동에서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해 [[센텀시티]]로 이전[* 이후 남포동 상인들의 반발로 프로그렘의 일부는 남포동으로 다시 이전했다.]을 하는 바람에 원도심은 그야말로 쇠퇴기가 찾아오고 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런 쇠퇴기가 2010년대 이후 주춤해졌다는 것인데, [[광복동|광복로]]의 가로 재정비 사업과 함께 구 부산시청 자리에 [[롯데백화점]] 광복점 등이 개장하면서 관광상권으로 다시 유동인구가 늘어나 어느정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며 2010년대 기준으로 서면에 이은 부산 제2의 상권에 해당한다. 문제는 [[젠트리피케이션]]도 함께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지만. == 범위 == 실생활에서는 말 그대로 도심이었던 지역만을 칭하는 경우가 많아 좁게는 [[남포동(부산)|남포동]]을 중심으로 [[광복동]], [[충무동(부산)|충무동]], [[부평동(부산)|부평동]], [[중앙동(부산)|중앙동]], [[동광동]] 정도를 묶어 부르는 데 쓰이고, 넓게 잡아도 [[보수동]], [[토성동]], [[남부민동]], 송도([[암남동]]) 정도의 선을 벗어나지 않으며, 드물게 옛 [[부산전차]] 종점과 [[구덕운동장|부산운동장]]이 있었던 [[대신동]]까지 이 범위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이 선을 따르면 맨 위 지도의 영역보다 좁아져, 동구는 사실상 제외되고 중구와 서구 일부만을 부르는 명칭이 되는데, 행정적으로만 재생 필요 지역이라는 의미로 '원도심'이라는 단어 안에 동구-영도-사하까지 묶어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면 적당하다. 다만 아무리 넓게 잡아 동구까지 묶어도 [[좌천동]]이나 [[범일동]]까지를 구도심으로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신 이 곳에는 부산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된 산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부산광역시]]의 2번 항목에 나와있다.] 좀 늦게 부산부에 편입되고 90년대 초반에 서구에서 분구된 [[사하구]] 지역의 경우 아예 [[강서구(부산)|강서구]]와 묶어 별도로 [[서부산]]으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이 때는 [[서구(부산)|서구]]도 은근슬쩍 서부산에 끼기도 한다. --[[동가식서가숙]]-- === 중심지 === || [[파일:KakaoTalk_20180101_165350894.jpg|width=350]] || [[파일:KakaoTalk_20180101_165352984.jpg|width=350]] || || [[광복로(부산)|광복로]]의 모습 || 부평깡통시장의 인파 || 흔히 [[남포동(부산)|남포동]]이라 불리는 번화가 지역인 [[광복로(부산)|광복로]]와 [[비프광장로|BIFF거리]], [[롯데백화점]] 광복점, [[자갈치시장]], [[부평깡통시장]]과 [[보수동 책방골목]] 등 다수의 상업시설이 밀집해 있다. 주로 부산 토박이가 [[원도심]] 또는 남포동 가자고 말하면 십중팔구 중구를 칭한다. [[부산역]]은 행정구역상 [[동구(부산)|동구]]에 위치해 있어 이 경우에는 보통 포함하지 않는다. == 통합 논의 == 부산시에서는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급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서구, 중구, 동구, 영도구를 하나의 [[구(행정구역)|구]]로 통합하여 통합 [[자치구]]로 출범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찬성 여론이 우세하다. 한국지방정부학회가 의뢰한 [[http://m.bseconomy.com/news/articleView.html?idxno=25085|여론조사]]에 따르면 서구-동구-영도구에선 찬성 여론이 60~67%대로 압도적이나, 중구에서는 반대가 55%다. 이쪽은 오래된 역사와 전통이 있는 구를 통합한다는 것 때문에 강한 반대 여론이 있는듯. 인구 4만 2천여명에 웬만한 행정동 면적만한 중구에 [[남포동(부산)|부산 제2]][[광복동|의 번화가]] 및 상권이 밀집해 있으니 그럴만도 하다. 2017년 하반기에 통합 반대 [[현수막]]을 걸어놓고 [[시위]]까지 했다. [[학교]]의 경우는 서구, 중구랑 동구는 [[학군]]이 서로 갈리는데[* 서구와 중구는 서부교육지원청 소속이고 동구는 무려 남부교육지원청 소속이다. 이는 부산에 동부교육지원청이 별도로 없기 때문이다.--사실 동부는 해운대교육지원청이다--] 네 개의 구가 통합이 되면 [[학군]] 개편을 다시 해야 하는 등 행정적인 절차가 복잡해진다.[* 물론 [[평강천]]을 경계로 1학군과 3학군이 갈리는 강서구, 그리고 바다와 접하냐 안접하냐에 따라 4학군과 5학군이 갈리는 기장군처럼 중구와 동구를 경계로 하여 그대로 둘 수도 있다. 물론 명지신도시 지역의 인구가 많아질 경우 원도심 전체를 남부교육지원청에 두는 걸로 조정해버릴 수도 있는데, 남부지원청은 동구와 남구만 들어가서 면적이 가장 좁기 때문이다.] 결국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선거구/대한민국/목록|선거구]]가 [[서구·동구]]와 [[중구·영도구]]로 통합되었다. --허나 4개의 구가 통합이 되면 [[선거구]]를 다시 조정해야 한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통합을 추진하던 [[서병수]] 시장이 낙선하고 통합 반대파인 [[오거돈]] 시장이 당선되었다. 또한 4개구 [[구청장]] 모두 통합반대파가 당선되어 4개구 통합은 전면 무산되었다. 원도심 중에 유일하게 [[자유한국당]] 소속인 [[공한수]] [[구청장]]마저 통합반대파에 속한다. 고령화가 심각하여 서구,중구,동구의 교육기관이 가장 큰 영향을 받고있다. 서구는 충무초등학교, 알로이시오중학교, 알로이시오전자기계고등학교 폐교, 중구는 삼육초등학교 이전, 남일초등학교, 동광초등학교, 남성여자중학교 폐교, 동구는 중앙초등학교, 좌성초등학교, 좌천초등학교, 금성중학교가 폐교했다. 이 외에 부산고등학교와 경남고등학교도 센텀시티로 이전하려고 했으나 주민과 동문들의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 여담 == 원도심 지역 일대에 낙후된 건물이 굉장히 많다. 지금은 재개발로 신축 건물이 많아졌지만 10년전만 하더라도 평균 40년된 건물이 수두룩 했다. 부산 최초의 주상복합건물 부산데파트가 [[중앙동(부산)|중앙동6가]]에 있으며 1969년에 개장했다. 부산 최초의 아파트인 청풍장, 소화장이 [[남포동(부산)|남포동]]에 있으며 1941년에 준공되었다. 부산 최초의 민간호텔인 반도호텔이 [[중앙동(부산)|중앙동4가]]에 있었으며 1954년에 개관, 1994년에 폐업했다. 부산 최초의 제과점인 백구당이 [[중앙동(부산)|중앙동4가]]에 있으며 1959년에 개장했다. 부산 최초의 백화점인 미나카이 백화점이 [[중앙동(부산)|중앙동7가]]에 있었다. 현 롯데백화점 광복점 부지다. 부산 최초의 영화관인 행좌가 [[남포동(부산)|남포동]]에 있었으며 1903년에 개장했다. 부산 최초의 유치원인 부산유치원이 [[동광동]]에 있었다. 부산 최초의 근대학교인 봉래초등학교가 [[영주동(부산)|영주동]]에 있으며 1896년에 개교했다. 부산 최초의 근대병원인 제생병원이 [[동광동]]에 있었으며 1877년에 개원했다. 부산 최초의 교회인 [[초량교회]]의 전신 영선현교회가 [[영주동(부산)|영주동]]에서 시작했었으며 1892년에 설립했다. [[부산MBC]]가 [[중앙동(부산)|중앙동6가]]에 있었으며 현재는 [[민락동(부산)|민락동]]으로 이전했다. [[광복동]] 한복판에 [[동주여자고등학교]]와 대각사가 있다. 향토백화점인 미화당과 유나백화점이 있었으나 1990년대 후반 부도로 없어졌다. 미화당 신관 옥상과 용두산공원을 연결하는 사랑의다리가 있었으며 지금은 없어졌다. 향토서점인 문우당서점과 [[남포문고]]가 있었으나 현재는 규모를 대폭 축소해 남포문고는 남포동비프광장 인근, 문우당서점은 중앙동으로 이전했다. 범일동과 함께 영화관이 밀집한 곳이였다. 많은 향토영화관이 있었으나 경영난과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생겨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하거나 인수되어 지금은 향토영화관이 없다. 여담으로 부산국제영화제의 시초는 바로 이 곳 남포동이다. 중앙동은 1980년대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어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인기가 있다. 대표적인 영화는 범죄와의 전쟁. 원도심을 주무대로 만든 드라마 [[피아노(드라마)|피아노]]가 있다. 2000년대 초반, 영화와 드라마촬영은 모두 서울과 수도권에서 이루어졌으며 부산에서의 촬영은 희박할 정도로 없을 정도다보니 당시 드라마 피아노와 영화 친구가 촬영했을 때 구경온 인파가 굉장히 많았다고 한다. 동광동과 중앙동의 동 경계지점은 옛 부산항의 해안선을 따라 나누어져 있으며 부산데파트~백산기념관 구간은 고저차가 크게 나지 않으나 백산기념관~부원아파트 구간은 고저차가 매우 심하다. 이후 영주교차로 일대에서 같은 평지가 된다. 부원아파트 일대 고저차가 매우 심한 이유는 과거 영선산이 있었기 때문. 영선산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의해 없어진 산이다. 동광동에는 부산인쇄업의 시초이자 원조인 동광동인쇄골목이 있다. 서구청은 복개된 [[보수천]] 중 하류지점인 검정다리~서구청 구간으로 서울의 청계천 처럼 복원공사를 계획하고 있었으나 무산됐다. 유사한 시기에 복원계획이 잡힌 [[초량천]]은 복원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원도심 지역에 있는 초등학교 중 몇몇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영주동 봉래초등학교는 1896년 개교, 대청동 구.남일초등학교[* 현 광일초등학교]는 1912년 개교, 동광동 구.동광초등학교[* 현 광일초등학교]는 1921년에 개교를 했다. 1960년대~1970년대 당시 서구 충무동에 고속,시외버스터미널이 있었다. 1970년대 이후 범일동으로 이전을 하였으며 1980년대 중반 온천동[* 이후 노포동으로 이전]과 괘법동으로 각각 이전을 했다. [[분류:부산광역시]][[분류:대한민국의 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