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평안북도의 시군)] {{{+1 雲山郡 / Unsan County}}} ||<table align=right><-2> {{{+2 '''운산군'''}}} [br] 雲山郡 / Unsan County || || 국가 || [[북한]] || || 광복 당시 면적 || 819.67㎢ || || 광역시도 || [[평안북도]] || || 광복 당시 행정구역 || 1읍 4면 || || 시간대 || UTC+9 || ||<-3><:> [include(틀:지도, 장소=북진로동자구, 높이=250px, 너비=100%)] || [목차] == 개요 == 운산군(雲山郡)은 [[평안북도]] 동부에 위치하며, 동쪽으로 [[향산군]]과 [[구장군]], 남쪽으로 [[태천군]], 서쪽으로 [[동창군]]과 [[영변군]], 북쪽으로 [[자강도]] [[송원군]]과 접해있는 군이다. == 역사 == [[고구려]] 시대에는 운양군(雲陽郡)이라 하였으며, 용호리에 있는 용호동무덤이 당시의 지역 발전을 말해준다. [[고려]] 시대에는 운중군(雲中郡), 운주(雲州)가 되었으며 [[조선]] [[이방원|태종]] 때 운산군(雲山郡)이라는 지명을 갖게 되었다. 산세가 매우 험준하고 빼곡히 밀림이 우거져있는 모습이 구름과 같다고 하여 그러한 이름을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오래 전부터 [[금(원소)|금]] 산지로 알려질 정도로 세계적인 규모의 운산 금광이 존재하는데, [[https://m.chosun.com/svc/article.html?sname=news&contid=2010033102255|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무려 동양 최대 금광이었다 흠좀무...전세계 2위.]]1896년 [[미국인]] 모스가 운영하는 [[뉴욕]] 소재의 동양광업개발주식회사가 금광 채굴권을 따낸 이후 [[일제강점기]]까지 대규모 채굴~~수탈~~이 이어졌다. 운산금광 채굴권을 넘겨준 사람은 [[명성황후]]가 아니라 [[고종황제|고종]]이다. [[조선왕조실록]]과 [[호러스 뉴턴 알렌]]의 기록에 보면 운산금광 채굴권은 [[을미사변|명성황후가 살해당하기]] 3달 전인 1895년 7월 15일에 허가를 했다가 바로 취소를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명성황후는 운산금광 채굴권을 허락한 후 바로 취소하고 [[일본인]]들에 의해 살해 당했으므로, 명성황후는 결국 금광 채굴권을 넘겨 주진 않았다. 명성황후 사후 운산금광 채굴권은 [[조선]]이 가지고 있다가 명성황후 사후 다음해인 1896년 4월 17일에 [[미국인]] 모스에게 채굴권을 허가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운산금광 채굴권을 넘겨준 사람은 명성황후가 아니라 고종인 것이다. [[한국사]]를 공부하다 보면 나오는데 비슷한 이름의 [[평안남도]] [[은산군]]과 헷갈리지 말자. 재미있는 게, 은산에도 금광이 있는데~~북한 지하자원의 위엄...~~ 조선 말기 은산의 금광 채굴권은 [[영국인]]이 가져갔다. 평안북도 운산군 주위는 세계에서 손끕히는 금광지대로 운산금광뿐 아니라 [[평안북도]] [[창성군]]에는 운산금광 못지 않을 정도로 대규모인 대유동금광, 그리고 이 두 월드클래스 금광보다는 작지만 큰 규모의 여러 금광들이 존재한다. 대유동 금광의 채굴권 역시 조선 말기 [[프랑스]]에 넘어갔다가~~전국토를 아주 다 헤쳐먹는다~~ [[일제강점기]]에 다시 일본이 회수해서 개발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조선일보]] 창업주 [[방응모]] 역시 평안북도 [[삭주군]]에 위치한 교동금광을 개발해 조선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되어 조선일보를 인수하면서 일제강점기 권력의 중심부로 진출했다. [[북한]]의 금광들은 오랫동안 많이 캐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금맥이 살아있는 상태로 보수적으로 잡은 조사에서도 북한은 세계 6위에서 10위 규모로 [[금(원소)|금]] 매장량이 아직도 풍부하다. 일제강점기의 낮은 기술 수준으로 매장량을 파악하고 캐다 중단된 상태로 현재 기술로 다시 조사하면 매장량이 더 늘어날 확률이 높다. 다만 막대한 전력이 필요한 금 채굴 특성상, [[평양]] 시내마저도 전력 사정이 좋지 못한 북한에서 채굴 작업 자체가 오랫동안 중단된 상태다. [[8.15 광복]] 이후 [[38선]]이 그어지면서 [[북한]]의 영역이 되었다. 1952년에 북한이 행정구역 개편을 하면서 운산군의 북동쪽 지역을 북진군으로 분리하여 신설하였으나 1954년에 도로 합쳤다. 현재의 운산읍은 옛 [[북진군]] 지역이며, 옛 운산읍은 현재의 구읍리 지역이다. == 지리 == [[구룡강]]이 > 자 모양으로 흘러간다. 대략적으로 구룡강 상류 수계는 옛 [[북진군]] 지역, 조양강·룡흥강 수계는 옛 운산군 지역에 해당한다. [[철도]]는 [[운산선]]이 있으며 옛 북진군 지역에만 지나간다. 연 평균 강수량 1,400mm로, 북부 지방에서는 손꼽힐 만큼 강수량이 많다. 이름값답게 구름이 많은 듯 하다. 아울러 [[구한말]]에 설치된 운산수력발전소는 우리나라 최초의 [[수력발전소]]이기도 한데, 500kW급으로 당시에는 세계적으로도 최첨단 대용량 발전소였는데 역시 오로지 운산 금광 채굴용으로 만들어진 것이다.[[http://blog.khnp.co.kr/blog/archives/11575|#]] 구글 맵스에서는 운산으로 치면 안나오고 북진로동자구라고 쳐야지 나온다. 기후는 한반도 북부에 위치한 곳답게 겨울이 매우 추우며, 비공식적으로 [[1916년]] 12월 26일 관측된 '''-37.6 °C'''의 기록이 남아있다. ==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 == [include(틀:평안북도의 하위행정구역)] [[파일:운산군3.png|width=800]] * '''운산면'''(雲山面) * 관할 동 : __읍내(邑內)__, 계림(桂林), 송현(松峴), 용연(龍淵), 용포(龍浦), 용흥(龍興), 입석상(立石上), 입석하(立石下), 제인상(諸仁上), 제인하(諸仁下), 조양(朝陽), 화옹(化翁) * 군청 및 면소재지는 읍내동이다. 운산군의 읍면 중 가장 남쪽에 위치해 있었다. 북한에서 구읍리라고 불리는 지역이다. * '''북진읍'''(北鎭邑) * 관할 동 : __진(鎭)__, 교(橋), 대암(大巖), 삼산(三山), 어자(於自), 월양(月陽), 월은(月隱), 초리(草里), 흥대(興臺) * [[노다지]]로 유명한 운산금광이 있다. 금광업으로 흥해서 읍까지 된 동네. '초리지'라는 저수지가 있으며, 동림산(1,165m) 남쪽에는 [[연개소문]]의 무덤이라 전해지는 고분이 있다. 북한 행정구역상 한때 존재했던 [[북진군]] 소재지. 그리고 삼산동에 운산선 삼산역이 있었다. * '''동신면'''(東新面) * 관할 동 : __이(利)__, 가(加), 마장(馬場), 성지(聖旨), 용호(龍湖), 이답(泥踏), 좌(佐) * 용호동에 고구려고분이 있다. * '''성면'''(城面) * 관할 동 : __초하(草下)__, 고성상(古城上), 고성하(古城下), 남산상(南山上), 남산하(南山下), 연봉상(延峰上), 연봉하(延峰下), 응봉(鷹峰), 초상(草上) * '''위연면'''(委延面) * 관할 동 : __답하(畓下)__, 답상(畓上) 상원(上院), 엄상(嚴上), 엄하(嚴下), 용두(龍頭), 우간(牛間), 우상(牛上), 우중(牛中), 우하(牛下), 풍상(豊上), 풍중(豊中), 풍하(豊下) * 온천이 있으며, 북한 행정구역상 운산군 소재지. == 출신 인물 == * [[이태영]] -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 * [[리영희]] - 한국의 언론인, 학자 * [[김계관]] - 북한 외무성 제1부상 == 기타 == [[한국전쟁]] 초기 북진과정에서 [[중공군]]과 [[미군]]이 최초로 접전하여 치열하게 전투를 벌인 곳 중 하나이다. 여기서 미군 제1기병사단 제8기병연대가 중공군과 격렬하게 싸웠고 패퇴한 전장으로, 연대의 사상자가 절반 이상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미군 유해가 대략 1천 495구 쯤 있다고 추정된다고 한다. [[분류:평안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