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일:external/www.ibuybook.co.kr/1157715614Ri2.jpg|width=100%]] || [목차] == 소개 == * 일본판 제목: 一杯のかけそば(한 대접의 [[메밀]]온면) * 한국판 제목: [[우동 한그릇]] [[일본]]의 작가 [[구리 료헤이]] 원작의 단편 소설.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이야기로 알려졌으며, 원래는 구리 료헤이가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구연하던 이야기라고 한다. 국내에서 과거 [[보물섬]]에 [[만화]]로도 나온 적이 있다.[* 문제집에 부록 형식으로 수록된 적도 있는데, 이 버전은 첫 번째로 [[소바]]를 시키고 계산하고 나가는 장면에 '''"아이 재수없어"'''(...)라는 괴언이 딱딱한 폰트로 작게 적혀 있다.] 배경은 [[홋카이도]] [[삿포로시]]다. == 등장인물 == * 북해정 주인 부부 북해정의 주인 부부로, 주인인 사장은 겉으론 무뚝뚝해 보여도 속으로는 정이 깊은 사람이며, 사장의 부인은 인자하고 자상한 성격이다. 늘 [[소바]] 1그릇만 시키는 세 모자를 위해 남 모르게 반 그릇 분량을 더 넣어주고, 가격을 내리며, 지정석까지 남겨주는 등 여러모로 친절한 사람들이다. 세 모자가 찾아오지 않는 동안 가게를 크게 확장하고 인테리어도 화려하게 바꿨지만, 그들이 매 해 앉았던 그 자리만은 바꾸지 않고 '예약석'이라는 팻말을 올려둔 채 그대로 놔둔다. * 세 모자 매년 섣달 그믐 밤이면 손님들이 다 나갔을 시간에 찾아와 소바를 1그릇만 시켜 셋이 나눠먹는 사람들로, 주인이 이들을 위해 소바를 몰래 반 그릇분을 넣어주며 작중에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후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사연이 드러난다. 원래 평범한 가정이었다. 그런데 [[택배기사]]인 남편이 운반도중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사람들이 8명이나 부상 당하자 배상액을 갚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해야 했으며, 온갖 고생을 하며 돈을 벌다보니 어머니의 몸이 아픈 적이 있었고 이 때문에 형은 중학교에 들어서자 신문, 우유배달을 하며 살림에 보탰고 동생은 집안일을 담당하였다. 다행히 2그릇을 시킬 때 비로소 돈을 모두 갚았다고 한다. 이후에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수십 년이 흘러 두 아들이 장성하여 어머니와 함께 북해정으로 다시 찾아와 '인생 최고의 사치'인 소바 3그릇을 주문하고, 마침내 오랫동안 올라가 있던 '예약석' 팻말이 치워지게 된다. 이 무렵 형은 [[의사]]가 되었고, 동생은 처음엔 소바 가게를 열 생각이었지만 동경 지부의 은행원으로 일을 한다고 언급된다. * 나미코 만화판 오리지널 캐릭터. 북해정에 일하는 직원이다. == 스토리 == 1972년부터 매년 북해정이라는 한 음식점에, 섣달 그믐달 밤에 한 [[어머니]]와 두 [[아들]]이 찾아와 [[소바]] 1그릇을 시켜 먹는다. 그리고 그 다음 해에도 찾아와 소바 1그릇을 시켜 셋이서 나누어 먹는다. 해마다 찾아오는 [[가족]]이 안쓰러워서 사장(겸 주방장)의 부인이 "한 그릇은 서비스로 하자"고 말한다. 하지만 사장은 "그런 거 없다"고 하면서도, [[면류|면]]을 삶을 때 면 한 그릇 반 양을 넣어준다. 두 그릇 이상을 삶으면 티가 나서 가족들이 부담스러워 할까 봐. 그러던 어느 해에 소바 2그릇을 시키면서[* 주인은 마찬가지로 우동을 1인분당 한 그릇 반 양으로 넣어 줬다. 3인분을 준 셈.] 세 모자의 사정이 드러났다. 이미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일으킨 사고로 8명씩이나 되는 사람들이 부상을 입었던 것.[* 물론 [[보험]]을 들어두긴 했지만, 그 보험금만으로는 배상액이 모자랐기 때문에 매달 한 사람당 5만 엔(한화 약 50만 원)씩을 더 주어야 했다.] 세 모자는 고생고생하며 돈을 갚았고, 돈을 다 갚은 날 소바 두 그릇을 시켜서 먹은 것. 이때 동생은 나중에 일본에서 제일가는 소바 가게 주인이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결국 자라서 은행원이 되었다. 그리고 다음 해부터 세 모자는 찾아오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가게를 새롭게 꾸밀 때도, 그때 세 모자가 앉았던 테이블만 바꾸지 않고 놔두었다. 어느 날 섣달 그믐날, 주인 부부는 이번에도 예약석에 손님이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날 밤에는 청년이 된 아들들과 어머니가 다시 찾아오게 된다. 그리고 가장 호화로운 음식인 소바 3그릇을 시켰다. 잠시 멍하니 있었던 사장은 '당신이 그토록 기다리던 손님이 왔는데 주문 안받고 뭐하냐'는 손님의 충고에 정신을 차리고 세 모자의 주문을 받아들인다. == [[일본]]에서의 평판 == 이야기가 처음 알려진 것은 1988년 한 [[라디오]] 방송에 소개되면서였고, 이듬해 2월 공명당의 [[오오쿠보 나오히코]] 의원이 중의원 예산위원회 회의장에서 이 이야기를 낭독한 것을 계기로 일대 붐이 일게 된다. 명확한 교훈이랄 건 없으나 찢어지게 가난한 세 모자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 결국 성공하게 되는 감동적인 이야기로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이 이야기가 한창 일본 사회에서 붐을 일으킨 1989년에 이에 대한 반발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가 아니라 완전한 허구 및 순수 창작이 아니냐는 의문이 조금씩 제기되기 시작했다. 일단 작중의 시대 배경인 1970년대 초반의 사회상을 고려해도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다. 전직 만담가였던 일본의 원로 방송인 [[카미오카 류타로]]는 가게 문을 닫기 직전이라면 아마 팔다 남은 면이 있었을 테니 만약 가게 주인이 세 모자의 사정을 알았다면 3인분을 내 주었어야 아귀가 맞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으며, 우동 한 그릇 붐에 종지부를 찍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989년 5월 19일 [[후지 테레비|후지 TV]]의 예능 '와랏테 이이토모'에서 MC [[타모리]]가 우동 한 그릇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 당시는 150엔만 있으면 인스턴트 소바 3개는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눈물의 [[파시즘]]" 등 작품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발언을 한 일이다. 실제로 토시코시소바를 가게에서 먹는 경우도 물론 있지만, 보통은 일년의 마지막을 돌아보며 집에서 단란히 먹는 경우가 더 많기도 하다. 게다가 작중에서 소바 한 그릇의 가격으로 언급되는 150엔은 1970년대 초 당시의 일본 물가를 고려하면 너무 비싼 금액이었는데, 타모리의 발언은 바로 이 점을 지적한 것. 그 돈으로 츠유와 건조면을 사서 집에 두고 먹었으면 적어도 3일은 소바로 때울 수 있다(...) 아울러 타모리의 비판을 전후로 작가를 둘러싼 각종 추문들이 하나씩 폭로되기 시작했다. [[시가현]]의 한 소바집 주인이 지역 언론에 폭로한 일로, 구리 료헤이가 이 소바집에 세 들어 사는 동안 소아과 의사를 사칭해 마을 주민들에게서 약값 명목을 돈을 받아 챙기는가 하면, [[자동차]]를 빌린다는 명목으로 소바집 주인에게 10만 엔을 빌려가 그대로 자취를 감추는 등 사기 행각을 저질렀다고 한다. 결국 우동 한 그릇 붐은 불과 5개월여 만에 급격히 사그러들었으며, 작가와 작품을 옹호하는 일각에서는 타모리가 유치한 비난 발언으로 감동적인 이야기를 폄하했다며 탐탁찮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지만, 말 그대로 극히 일부의 의견이었다. 그나마도 작가의 각종 사기 행각과 [[학력위조]]와 불륜 등 각종 추문들이 폭로된 이후에는 이런 시선들도 사실상 묻혔다. 한국에서는 이런 뒷사정이 잘 알려지지 않아 아직도 감동적인 동화로 인식되어 있고 청소년 추천 도서에도 자주 거론되지만, 일본에서는 전술된 일련의 추문들로 인해 내용과는 상관 없이 [[불쏘시개]] 신세가 되었다. 시사 만화가 [[주완수]]가 일본인 아내 '켄짱(별명)'과 이 책 이야기를 하다가 아내의 "그 책, 일본에선 아무도 안 봐요. 작가가 그걸 [[영화]]로 만든다고 여기저기서 돈만 받는 [[사기죄|사기]]를 저질렀거든요"[* 다만, [[영화]] 자체는 베테랑 감독이 손을 대서 그럭저럭 괜찮게 나온 편이다. 작가의 행각들 때문에 덩달아 무시당하고 있는 게 문제지만.]라는 말에 놀라 [[인터넷]]을 찾아봤지만 한국 쪽에서는 관련된 정보를 도통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 사이트들을 여기저기 찾아봤더니 일본에서는 아주 [[인간 말종]] 취급을 받고 있었다고. 결국 작가는 [[학력위조]]와 영화화 판권에 관한 사기죄로 2014년까지 수감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떻게 보자면 일본에서는 실체가 드러나서 제명되는 와중에 한국에서는 만화나 위인전의 주인공으로서 추앙받던 [[노구치 히데요]]와 비슷한 부류. == 얽힌 이야기들 == 한국에서는 "[[우동]]"을 먹은 것으로 나와 있는데, 실제로 일본 사람들이 연말에 먹는 건 우동이 아니라 '토시코시소바(年越しそば)'[* 직역하자면 해넘기기 메밀온면.]라는 메밀국수다. 참고로 토시코시소바에 해당하는 단어가 우리나라에는 없고, 그나마 잘 알려진 요리 중 따뜻한 국물과 함께 먹는 일본식 면요리가 우동이기 때문에 이렇게 번역했을 가능성이 높다.[* 소바라고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차가운 국물에 찍어먹거나 말아먹는 자루소바를 생각하기 때문.] 면이면 다 상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본디 굵고 뚝뚝 끊어지는 우동 면이 아니라 가늘고 긴 메밀온면을 포기하지 않고 가늘고 길게 가는 삶의 내러티브로 삼은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스즈키 나오키]]가 홈페이지와 어느 잡지에 이러한 이야기를 기고한 적이 있다.] 과거 [[뽀뽀뽀]]에서는 우동 대신 [[떡국]]으로 번안해서 내보낸 적도 있었다. [[새해]]랑 관련된 음식이라고 하면 우리나라는 떡국이 먼저 떠오르고, 일본 문화 개방 이전이기도 해서 그렇게 번안한 것으로 보인다. [[대만]]에도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2006년 3월에 있었던 일로, 어느 가난한 가족의 어머니가 [[암]]에 걸려 입원 중이었을 때 다섯 아이가 어머니를 간병하느라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자 이를 딱하게 여긴 병원의 [[간호사]]가 아이들에게 완탄면을 사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다섯 아이 중 셋이 면만 건져 먹고 완탄을 남겨서 이상하게 여겨 물어보니, 엄마가 이걸 먹고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어머니에게 주려고 남겼다는 것이다. 이에 감동한 간호사가 아이들의 사연을 소개했고, 이것이 순식간에 대만 전역에 알려지게 되면서 여기저기서 이 가족을 돕게 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어머니는 1개월 후인 동년 4월 투병 끝에 아이들을 남겨둔 채 [[사망|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났으며, 당시 대만 총통인 [[천수이볜]]이 직접 애도를 표했다고 한다. 한국의 [[좋은생각]] 잡지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고아로 보이는 삼남매가 동생 생일이라서 중국집에 왔는데 큰누나가 동생을 챙기느라 자신은 먹지 않는 걸 보고 여주인이 기지를 발휘해서 아이들 부모의 지인인척 해서[* 아이들 대화로 대충 이름을 파악.] 아이들이 자존심 안 상하도록 선심을 베풀었다는 이야기다. 감동스러운 이야기를 엮은 만화책 '''으악! 너무너무 슬프다!'''에서도 이 이야기가 그려졌다. [[이어령]]의 저서 《축소지향의 일본인 그 이후》 에서 이 이야기를 분석해 놓았으니 관심 있는 위키러들은 참고하자. [[김어준의 뉴스공장]]의 금요일 코너 까칠한 미식가에서 [[황교익]]은 우동 한 그릇에는 일본의 [[태평양 전쟁]] 패전 이후의 경제적 어려움과 그 극복의 서사가 담겨있다고 한다. 일본이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버블 경제]] 붕괴로 인해 중산층이 무너지면서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이 소설이 소개되어 일본 내에 큰 반향을 가져 왔다고 한다. 일본인들에게는 그 당시 현실과 대비하여 격하게 공감할 여지가 있지만, 소설의 배경 당시에 우리나라는 광복을 겪고 있었을 것이므로 우리 한국인들이 공감하여 눈물이 나거나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mh0ANNXyQdM?t=1h21m50s|#]] 여담으로 면 자체의 가격은 딱히 비싸지 않아서, 일본의 소바집에 가서 면의 양을 1.5배, 혹은 2배로 시키면 기본 가격에서 50~100엔만 더 내면 된다. 물론 머릿수만큼 시키는 게 예의지만, 사정도 있고 한가한 시간엔 딱히 주인이 손해보는 것도 아니니, 여의치 않으면 이렇게라도 시켜서 이왕 온 거 배불리 먹일 수 있었는데 그렇지 않은 건 의문. 물론 이 시절엔 식권 자판기 같은 게 없었고, 직접 입으로 말해야 하니 부담스러울 수 있었던 것은 감안해야 한다. 애초에 지금의 시대상과 완전히 다른 때였기도 하고. [[분류:일본 소설]][[분류:삿포로시를 배경으로 한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