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910년 출생]][[분류:1992년 사망]][[분류:네덜란드의 축구선수]][[분류:네덜란드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 참가 선수]] [[파일:Joop van Nellen.jpg]] || 이름 || 요하너스 코르넬리스 "요프" 판넬런[br](Johannes Cornelis "Joop" van Nellen) || || 생년월일 || [[1910년]] [[3월 15일]] || || 사망년월일 || [[1992년]] [[11월 14일]] || || 국적 || [[파일:네덜란드 국기.svg|width=28]] [[네덜란드]] || || 출신지 || [[델프트]] || || 포지션 || 레프트 아웃사이드 포워드 || || 신체조건 || 불명 || || 등번호 || -[*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 || || 소속팀 || '''DHC (1926-1938)''' || || 국가대표 || 27경기 / 7골 (1928-1937) || [목차] == 생애[* 출처: 위키피디아, 11v11] == === 선수 생활 === ==== 클럽 ==== 판넬런은 고향 델프트를 연고로 하는 DHC(Delfia Hollandia Combinatie)에서 모든 커리어를 보낸 [[원 클럽 플레이어]]이다. 그는 1922년부터 DHC의 유스로 있었고 1926년부터 1군에서 뛰었다. 1932년에 팀이 1부 리그 승격을 이루었다. ====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 판넬런은 1928년, 18살의 나이에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산 시로]] 원정 경기에서 [[레오 할러]], [[베프 바크하위스]]와 더불어 국가대표팀에 데뷔했다. 그 당시에도 별 볼일 없던 DHC에 소속되어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과였다. 하지만 판넬런은 1929년 3월, [[스위스 축구 국가대표팀|스위스]]와 치른 자신의 2번째 [[A매치]]에서 다리가 [[골절|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었고 이 때문에 1년간 대표팀에서 강제 휴식을 갖게 되었다. 판넬런은 9년의 대표팀 생활에서 총 27경기에 출전했으며 7골을 넣었다. 그는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이탈리아 월드컵]]에서도 주전 레프트 아웃사이드 포워드로 출전했지만 네덜란드가 [[스위스 축구 국가대표팀|스위스]]에 패하며 단 한 경기만에 월드컵 여정이 끝나고 말았다. === 은퇴 후 === 은퇴 후에는 축구 코치로 활동했고 친정팀 DHC의 이사회에서도 있었다. == 플레이 스타일 & 평가 == 빠르고 좋은 슈팅 능력을 가진 아웃사이드 포워드. 항상 불만 없이 그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는 성실한 선수였다. 지금은 아마추어 클럽이 된 DHC의 첫 국가대표 발탁 선수, 그것도 월드컵까지 뛸 정도로 대표팀의 레귤러 멤버였으니 당연히 DHC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