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닌텐도 주요 인물)] ---- ||<-2><table bordercolor=#de0000><table align=right><table width=420><bgcolor=#de0000> {{{#ffffff '''{{{+1 요코이 군페이}}} [br] 横井 軍平 | Yokoi Gunpei'''}}} || ||<-2><bgcolor=#fff>{{{#!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ww.westatic.com/biyo001.png|width=100%]]}}} || ||<bgcolor=#de0000> {{{#ffffff '''출생'''}}} ||[[1941년]] [[9월 10일]][br][[일본 제국]] [[교토부]] [[교토시]]|| ||<bgcolor=#de0000> {{{#ffffff '''사망'''}}} ||[[1997년]] [[10월 4일]] (향년 56세)[br][[일본]] [[이시카와현]] [[코마츠시]] || ||<bgcolor=#de0000> {{{#ffffff '''국적'''}}} ||[[일본|[[파일:일본 국기.svg|width=26]]]] [[일본]] || ||<bgcolor=#de0000> {{{#ffffff '''직업'''}}} ||[[게임 디자이너]] || ||<bgcolor=#de0000> {{{#ffffff '''소속'''}}} ||[[닌텐도]] ^^(1965년~1996년)^^ [br] 주식회사 코토 ^^(1996년~1997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게임회사 [[닌텐도]]에 재직했던 [[게임 개발자]]. 그는 닌텐도의 도약기를 이끈 일등공신이자 휴대용 게임기와 [[가상현실|VR 게이밍]]의 아버지로 평가받는다. == 상세 == [[도시샤대학]] 공대의 성적 불량 졸업생 요코이 군페이는 대학 졸업 후 취직자리를 찾지 못하다 고향의 작은 회사였던 [[닌텐도]]에 공장 설비보수 및 점검역으로 입사한다. 요코이가 일과 시간 중간중간에 취미 삼아 만든 장난감을 눈여겨 본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의 지시로 새로 설립된 개발팀 '''닌텐도 R&D1'''의 리더가 된다.[* 개발정보부 1팀. 2003년, 4대 사장인 [[이와타 사토루]]가 취임한 뒤에 [[우에무라 마사유키]]를 중심으로 하는 R&D2와 함께 해체되었다. 두 그룹의 사원들은 [[미야모토 시게루]]를 중심으로 하는 개발정보본부(구 R&D4)와 기획개발본부(신설팀)로 인사 발령이 났다.] 이후 그는 울트라 핸드, 광선총([[재퍼]]) 등 어린이용 완구를 개발하며 부도 위기였던 닌텐도를 살려내고 [[게임&워치]]를 개발, 4340만 대라는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리며 닌텐도를 반석 위에 올렸다. 그리고 이때 게임&워치용 [[동키콩(게임)|동키콩]]을 개발하면서 오늘날 컨트롤러의 표준이 되는 [[십자키]]를 고안해내게 된다. 회사가 [[패미컴]]을 발매하면서 본격적으로 비디오 게임 사업에 매진하기 시작한 뒤로는 [[광신화 파르테나의 거울]], [[메트로이드]], [[파이어 엠블렘]] 등의 게임들을 프로듀싱했지만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 게임 개발의 본질'이라는 취지를 갖고 있었던 그는 점차적으로 성능이 높아져 가는 비디오 게임 산업에 회의를 느끼고, 휴대용 게임기인 [[게임보이]]의 개발을 시작했다. 개발 초기에는 액정 스크린 문제로 난항을 겪으며 자살까지 생각했을 정도로 고생했다고 한다. 게임보이는 1989년에 발매되어 패미컴을 뛰어넘는 인기를 누렸다. 1990년대 초에는 [[VR]] 기술에 감명받고 은퇴하기 직전 세계 최초로 상용화된 VR 게임기인 [[버추얼 보이]]의 개발을 추진했다. 버추얼 보이에 대한 그의 집념은 대단했는데, 게임기의 액정으로 정식으로 상용화된지 얼마 안된 [[LED]]를 사용해야 한다고 고집했고, 게임기의 명칭도 혁신적인 기기에 걸맞아야 한다면서 라이벌 기업인 [[세가 게임즈]]에서 특허 등록한 '[[버추어 파이터 시리즈|버추어]]'라는 이름을 로열티까지 내서 사용했다고 한다. [[게임보이 포켓]]의 개발을 마지막으로 퇴사.[* [[버추얼 보이]]의 실패를 책임지고 퇴사했다는 설은 본인과 닌텐도 모두 부인했다. [[https://www.google.com/amp/s/kotaku.com/game-boy-creator-explains-why-he-left-nintendo-1825818754/amp|출처]]] 애시당초 커진 회사를 감당하지 못해 독립하고 싶어했으며 이후에 주식회사 코토를 설립했고, [[반다이]]의 휴대용 게임기 [[원더스완]] 개발에 어드바이저로 참여했으며, 원더스완 소프트 군페이(GUNPEY)의 감수를 맡는 등 원더스완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그러나, 그 결실을 보기도 앞서 1997년 10월 4일, 향년 56세로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처음에는 가벼운 추돌 사고였으나, 차에서 내려 앞 좌석 운전자에게 가다가 뒤에서 오던 차에 치이는 2차 사고를 당했고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사망하였다. == 고사한 기술의 수평적 사고 == > '''우수한 기술이 우수한 게임을 탄생시키는 것은 아니다. 첨단 기술은 오히려 개발과 생산에 비용을 발생시켜 아이디어를 경직시킬 뿐더러 고가의 게임이 되어버린다. 기존의 기술을 다른 방향으로 활용하면 전혀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낼 수 있다.''' — 요코이 군페이 [[https://www.google.co.kr/amp/s/www.techspot.com/amp/news/61318-console-gaming-now-fascinating-1997-interview-nintendo-legendary.html|요코이 군페이의 1997년 인터뷰 기록]] 즉, 첨단 기술과 화려한 스펙으로 무장하는 것 보다는 '즐길 거리'라는 게임의 본질에 충실할 수 있고 소비자들에게 검증이 완료된 기술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의 두 대표작인 '[[게임 & 워치]]'와 '[[게임보이]]'를 보면 '게임 & 워치'는 [[전자계산기]]의 CPU와 액정을 응용한 것임을 알 수 있고, 그 후속작인 '게임보이'도 이미 검증된 CPU인 [[인텔 8080]]의 개량판[* 1974년에 나온 것이니 게임보이 출시년도인 1989년 기준으로 '''15년 전 물건'''이다.]과 흑백 액정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그의 철학과 정면 대비되어 처참하게 실패한 기기가 '버추얼 보이'였다. 하지만 요코이의 철학은 그가 닌텐도를 떠난 뒤에도 줄곧 닌텐도의 방향성을 이끌고 있다. 은행의 [[현금 자동 입출금기]] 등에서 자주 사용되는 [[터치 스크린]]을 게임기에 사용하여 라이트 유저들에게 어필한 [[닌텐도 DS]], 모션 센서를 적극 활용하여 비디오 게임 사상 가장 대중적인 콘솔기기로 시대를 풍미한 [[Wii]], 버추얼 보이의 3D 아이디어를 계승한 [[닌텐도 3DS]], [[피규어]]에 [[DLC]]를 연동시킨 [[아미보]], [[증강현실]]을 적용한 [[포켓몬 GO]], [[골판지]]를 이용한 [[닌텐도 라보]] 등이 그 예이다. == 어록 == > '''[[게임 디자이너]]는 기술에 대해 능통해야 할 필요가 없다. 만약에라도 그러하다면, 디자이너들은 무언가를 시도조차 하기 전에 불가능하다고 말할 것이고 그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기획자와 개발자 간 구상의 출발점이 완전히 다름을 시사하고 있다. 기획자는 '창의성'을, 개발자는 '실현성'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이는 [[대한민국 게임계의 문제/게임 내부의 문제#s-2.2.6|한국을 포함해]] 규모와 국적을 가리지 않고 발생하는 [[딜레마]]이다.] >[[https://www.nintendo.com/super-nes-classic/interview-super-metroid/|출처]] [[분류:1941년 출생]][[분류:1997년 사망]][[분류:닌텐도/인물]][[분류:교토시 출신 인물]][[분류:자동차 사고로 죽은 인물]][[분류:도시샤대학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