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external/av.watch.impress.co.jp/wds04.jpg]] [목차] == 이력 == 米林宏昌(よねばやし ひろまさ) 일본의 [[애니메이터]]. 1973년 7월 10일 출생. ([age(1973-07-10)]세) [[이시카와현]] [[이시카와]]군 노노이치 정 (現 노노이치 시) 출신. 애칭은 마로(麻呂) [[가나자와미술공예대학]]에서 상업 디자인과를 다니다 중퇴하고, 1996년 [[스튜디오 지브리]] 입사. 이례적으로 3년 만에 일찍 동화맨에서 원화맨으로 승격했다. 처음으로 원화를 그린 작품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아버지가 음식을 먹는 장면과 [[가오나시]]가 목욕탕 유야에 들어오는 장면. 작화감독이었던 [[안도 마사시]]에게 수정을 당했다. 이후 [[미야자키 고로]]가 감독한 [[게드전기]]에서는 작화감독 보조. 단편 영화 《空想の空とぶ機械達》에서는 작화감독. [[메이와 아기고양이버스]]에서는 연출도 경험했다. 특히, [[벼랑 위의 포뇨]]에서 담당한 원화 장면은 [[미야자키 하야오]]도 거의 고치지 않고 그대로 통과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는다. [*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가 그린 그림을 보고 "[[모에]]~"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전에는 일 때문에 잘 했다고 칭찬받은 기억은 별로 없고, 어느 날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스튜디오 건물의 다른 창문은 냅두고 자신이 앉는 자리의 창문만 닫는 그를 보고 미야자키가 화를 내며 "고향으로 돌아 가!"라고 혼난 경험도 있다고 한다.[* 자신만 생각하는 인성을 가진 사람과 일하기 싫다는 것.] [[스튜디오 지브리]]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 인재 발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10년작 [[마루 밑 아리에티]]의 감독으로 전격 발탁. 스튜디오 지브리에서는 최연소 감독 데뷔를 달성했다. 이 때 [[스즈키 토시오]]는 지브리에서는 가장 뛰어난 애니메이터라고 그의 그림 실력은 인정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딱히 감독을 맡길 마땅한) "사람이 없어서"." "[[감]]으로." 라고 딱 잘라 말했다. 미야자키는 인터뷰에서 "애초에 마로는 감독이나 연출을 목표로 한 사람이 아니라서, 마로에게 감독을 맡길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고 본심을 밝혔다. 하야오가 평하길 "성격은 성실하고 착한 놈"이라면서 그런 인덕이 있으니까, 지브리 내에서도 "자, 마로가 감독으로 발탁됐다면 어쩔 수 없네. 도와줘야 되겠네." 라는 분위기가 있다면서, 모난 놈이었으면 주변 동료들도 혼자서 알아서 해봐라는 식으로 나오면 감독을 못 한다고 말했다. [[마루 밑 아리에티]]는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아무래도 스튜디오 지브리라는 브랜드 네임, 이름값으로 밥상에 숟가락을 얹은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일단 각본이 미야자키 하야오. 요네바야시 본인의 인터뷰에 의하면 매일 같은 공간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감시'''당하면서 일을 해야 했다고 한다. [[스즈키 토시오]]도 미야자키 하야오는 말로는 자신이 간섭하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막상 제작에 들어가면 '손도 대고 발도 들이대고'해서, [[추억의 마니]]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도 이 작품처럼 두 소녀의 섬세한 심리표현이 중요한 작품이라면 미야자키 하야오라도 작품에 참견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라고 밝혔다. 그리고 다른 이유로는 평소에 요네바야시가 미소녀를 그리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여하튼 본인도 그것을 마음에 담고 있었는지, [[바람이 분다]]가 제작되고 있는 중에 [[스즈키 토시오]]를 찾아가 '[[마루 밑 아리에티]]에서는 못 다한 아쉬움이 있다'며 다음 작품의 감독을 맡겨 달라고 청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두 번째 감독작인 [[추억의 마니]]는 기존의 지브리 스타일을 계승하면서도 여러 실험적인 도전을 한 탈(脫)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이었지만, 흥행에서나 비평에서나 그저 그런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제88회 미국 아카데미상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에 노미네이트된다. 스즈키 토시오는 두 거장보다 절반의 짧은 제작 기간에 작품을 완성한 점을 칭찬했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타카하타 이사오]]도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난 후 호평을 했다. 두 거장이 사라진 스튜디오 지브리의 현실에서 과연 다음 감독 작품을 선보일 수 있을련지? ~~결국 다음 작품 전에 지브리가 해체됐다(...)~~ [[추억의 마니]] 홍보를 위해 전국 극장을 돌아다니다 돌아와보니 지브리 제작 스텝들은 사라지고 없었고, 그도 [[http://www.oricon.co.jp/news/2049837/full/|2014년 연말 쯤에 지브리를 퇴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퇴사 후 2015년 4월 같은 지브리 출신으로 프로듀서였던 [[니시무라 요시아키]]와 함께 [[스튜디오 포녹]]을 설립했으며, 첫 번째로 2017년 7월에 개봉한 [[메리와 마녀의 꽃]]에서 평은 나쁘지 않았으며, 그럭저럭한 흥행을 하였다. 감독으로서 [[메리와 마녀의 꽃]]까지의 실력은... 미야자키 하야오에에서 각본 능력을 뺀 정도로 연출과 그림 자체는 정말 미야자키 하야오를 빼다박아서 지브리란 이름값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정도지만 말 그대로 하야오의 클론이나 각본능력이 빠져버린 상태로 극 초반의 묘사로 힘을 꽉 잡지만 중반부 이후로는 맥빠진 시나리오와 연출을 보여주는 것이 고질병이다. 당위성이 부족한 등장인물의 행동이나 사건이라던지 매끄럽지 못한 시나리오의 연결성 그리고 다소 부족한 복선과 마무리 등 정말 그림의 분위기만 타고 시나리오는 어떠한 흐름도 못타서 결말에서 일말의 감동조차 느끼기 어렵게 해버리는 단점이 심하다.~~사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연출, 작화, 각본까지 다 해먹는 괴물이어서 아무나 함부로 하긴 힘든 먼치킨이라~~ 그러나 그나 스탭들이나 이러한 각본의 문제를 못느끼는 것인지 [[메리와 마녀의 꽃]]에서도 본인이 각본까지 계속 다하는 중. 단점을 커버하기 위한 타 각본가와의 협업이 보이지 않아보인다. [[파일:요네바야시 콘티2.jpg]] 의외로 콘티는 미야자키 급으로 끝장나게 잘 그린다. 각본만 좀 어떻게 했으면 좋았을 감독. == 기타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하는 [[가오나시]]의 모델이라고 한다. 자신이 그린 가오나시의 그림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보고선 "마로(요네바야시)와 똑같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한다. [[안노 히데아키]] 말로는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이 부려 먹을 (자기 대신 그림을 그려줄 수 있는) 사람에게만 가르쳐준다고 했는데, 요네바야시의 인터뷰(2015)를 들어 보면,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꾸중을 들으면서도 비행기를 날리는 법, 부유감(浮遊感)를 낼려면 어떻게 하는 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가장 영향을 받은 사람은 미야자키 하야오라고 밝혔다. == 작품 리스트 == [[https://www18.atwiki.jp/sakuga/?cmd=word&word=%E7%B1%B3%E6%9E%97%E5%AE%8F%E6%98%8C&type=&pageid=1217|참가 작품 리스트 일본 작화위키]] 참조 ||<rowbgcolor=#001b33> '''{{{#white 연도}}}''' || '''{{{#white 제목}}}''' || '''{{{#white 감독}}}''' || '''{{{#white 각본}}}''' || || 2010 || [[마루 밑 아리에티]] || O || || || 2014 || [[추억의 마니]] || O || O || || 2017 || [[메리와 마녀의 꽃]] || O || O || || 2018 || [[작은 영웅: 게와 달걀과 투명인간]][* 옴니버스 단편] || O || O || [[분류:애니메이터/ㅇ]][[분류:1973년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