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align=center><-5><:>'''[[육상자위대]]의 역대 [[육상막료장]]'''|| ||16대 [[무라이 스미오]]||→||17대 '''와타나베 게이타로'''||→||18대 [[나카무라 모리오]]|| ||<-5><:>'''[[자위대]]의 역대 [[통합막료회의의장]]'''|| ||14대 [[무라이 스미오]]||→||15대 '''와타나베 게이타로'''||→||16대 [[모리 시게히로]]|| [[파일:external/www.geocities.co.jp/18watanabe.jpg]] 渡部敬太郎 (わたべ けいたろう) [[1927년]] [[1월 15일]] ~ [[1997년]] [[11월 26일]] [목차] == 개요 == [[일본]]의 [[군인]], [[자위관]]. 17대 [[육상막료장]]과 15대 [[통합막료회의의장]]을 지냈다. == 생애 == [[1927년]]에 [[도쿄]]에서 태어났고 [[일본육군사관학교]] 60기로 재학 중에 1945년 [[일본]]의 패전을 맞았다.[* 1945년 6월에 58기가 졸업했고 59기는 폐교되면서 대충 졸업한 걸로 퉁쳤다. 60기는 [[문부과학성]] 소속의 학교로 옮기든가 하라고 했고 졸업은 못 했다.] 덕분에 최종 계급이 육군'''[[병장]]'''이다. [[일본육군사관학교]]의 [[사관생도]]는 [[일본해군병학교]]나 [[일본육군항공사관학교]]와 달리 [[상병]] 정도로 취급받았기 때문이다. [[1954년]]에 [[육상자위대]]에 입대했고 [[소련]]에서 [[국방무관|방위주재관]]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10[[사단장]]과 [[북부방면대]] 총감 등을 거쳤다. 북부방면대 총감 시절에는 대민홍보 차원에서 화력 시범을 민간인을 초청하여 벌이기도 했다. [[1983년]]에 [[무라이 스미오]]에 이어 육상막료장이 되었다. 무라이 스미오는 통막장으로 옮겼는데 [[1984년]]에 무라이가 통막장에서 퇴임하면서 그대로 자리를 이어 받아 통막장을 지낸 뒤 [[1986년]]에 퇴임했다. 육막장 후임자는 [[나카무라 모리오]]였고 통막장 후임자는 [[모리 시게히로]]였다. 아들인 와타나베 나오키는 문학평론가로 활동한다. [[분류:일본의 자위관]] [[분류:일본 제국의 군인]] [[분류:1927년 출생]] [[분류:1997년 사망]] [[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분류:도쿄도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