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table align=right> {{{+2 옹진읍}}} [br] 甕津邑 / Ongjin-eup || || 국가 및 광역시도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22]] [[대한민국]] [[황해도]]^^([[이북5도|명목상]])^^[br][[파일:북한 국기.svg|width=26]] [[북한]] [[황해남도]] || || 소속 군 || [[옹진군(황해남도)|옹진군]] || || 법정리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22]] 11리^^([[이북5도|명목상]])^^ [br][[파일:북한 국기.svg|width=26]] 없음 || || 시간대 || UTC + 9 || ||<-2> [include(틀:지도, 장소=황해남도 옹진군, 높이=224px, 너비=100%)] || [목차] == 개요 == [[황해도]](북한:황해남도) [[옹진군(황해남도)|옹진군]]의 소재지. 북한 지역의 읍 중 가장 먼저 만들어진 문서다. 1950년 당시 법정리는 군청 및 읍소재지인 온천(溫泉)리를 비롯해 개평(開坪), 구계(龜溪), 냉정(冷井), 노호(蘆湖), 단천(丹川), 당현(堂峴), 도원(桃源), 송정(松亭), 수대(秀垈), 양암(陽巖) 등 11개리가 있었다. == 연혁 == 조선시대에는 [[해주시|해주목]] 관할이었고 [[1906년]] 월경지 정리 때 교정면, 가천면과 함께 해주군에서 옹진군으로 편입된 곳이다. 원래 마산면(馬山面)으로 불렸으나, 온천도시 겸 광업도시로써 점차 발전하면서 1938년 옹진읍으로 승격되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삼팔선]]이 설정되면서 북쪽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한민국의 주권이 미치는 도시가 되었다. 1953년 [[군사분계선|휴전선]]의 설정과 동시에 그 이북으로 편입되어 지금까지도 쭉 북한의 영토로 남아있다. 1949년 [[한국전쟁]] 직전 인구 32,965명으로 북한에게 점령당하지만 않았어도 무난하게 시 승격을 노릴 수 있었던 동네다. == 교통 == 철도교통으로는 해주와 옹진을 잇는 [[해옹선]]이 있으며, [[냉정역]]과 종착역인 [[옹진역]]이 옹진읍 관할이었다. == 기타 == 옹진은 분단 이전부터 전국적으로 유명한 온천도시였으며, 지금도 읍사무소 소재지인 온천리에는 15세기 중엽부터 쭉 영업해 온 옹진온천이 있다. 이는 한반도에서 가장 뜨거운 온천으로 수온은 100~104℃ 정도다. 1925년 기사에 따르면 "읍내의 하수와 하천에서는 항상 증기가 증발"되었다고 하며,[[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502230020920800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5-02-23&officeId=00020&pageNo=8&printNo=1640&publishType=00020|#]] 이런 뜨거운 온도를 이용한 난방으로 하여금 북한 치하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 지역 경제를 책임졌던 옹진금광이 수대리에 있었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옹진군(황해남도), version=r92)] [[분류:북한의 행정구역]][[분류:황해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