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oshimanagisa.jpg]] 大島渚 Oshima Nagisa ([[1932년]] [[3월 31일]] ~ [[2013년]] [[1월 15일]]) >[[태평양 전쟁]] 중에는, [[히로히토 |덴노]] 폐하를 위해 죽으라고 배웠다. 그런데 전후에는 이런 가치관이 180도 뒤집어졌다. [[높으신 분]]이 말하는 것은 전혀 신용할 수 없다. 신용한다면 엉망진창이 된다. 국가라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우리들은 속은 것이다. 이런 생각이 오시마 씨한테는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국가가 그럴듯한 말을 하면 그런 것은 다 수상하다, 국민을 홀리려고 지껄인다. 오시마 씨의 영화는 이런 생각을 고발하기 위한 영화였다. >----- >- 저널리스트 타하라 소이치로 [[일본]]의 [[영화 감독]]. 쇼치쿠 뉴웨이브([[누벨바그]])라는 일본 영화사에 중요한 흐름을 이끌었던 감독이다. [[오카야마]]현 [[타마노시]] 출신. [[1950년]], [[교토대학]] [[법학부]]에 입학, 다음해 학생운동으로 제적. [[쇼치쿠]] 입사 5년째인 27살 때 만든 청춘 잔혹 이야기는 자유분방한 일본 젊은이들의 실태를 다룬 작품으로 "일본 영화계의 최전방, [[누벨바그]]의 기수"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쇼치쿠와 불화를 일으킨 후, [[ATG]]라는 제작사를 차려 일본 인디 영화에 큰 전환점을 마련했다. 대표작은 《[[감각의 제국]]》[* 1930년대 실제로 일어났던 '아베 사다 사건'을 다룬 영화. [[퀸시 존스]]가 이 영화를 보고 노래 〈사랑의 싸움(Ai no Corrida)〉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교사형]]이나 [[한국전쟁]]을 다룬 《윤복이의 일기》, 《일본의 밤과 안개》가 유명하다. 그 후로 뭔가 흑막이 있어보이면, '''[[안개]]''' 운운하는 게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마츠모토 세이초]]의 저서 [[일본의 검은 안개]]도 영향을 주었다.] 주로 [[섹슈얼리티|성]]과 [[정치]]를 화두로 담았으며, 대표작인 《감각의 제국》은 [[실제 연기|그 과격한 묘사 때문에]] 꽤 논란이 되기도 했다. 《감각의 제국》 이후 해외에서 상당히 주목을 받아 《열정의 제국》은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피아니스트 [[사카모토 류이치]]의 대표곡으로 유명한 <[[전장의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 Mr.Lawrence)> 역시 오시마 감독의 대표작. 이 영화에 사카모토와 더불어 [[데이비드 보위]], [[톰 콘티]], [[기타노 다케시]] 등이 출연. 빠방한 출연진이다. 감각의 제국을 기점으로 작품 세계가 달라지는 감독인데, 전반적으로 감각의 제국 이전 작품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대중적으로는 후기작이 잘 알려졌지만, 아무래도 전기랑 달리 독기가 빠졌다는 평가가 대세. 실제로 영화사 해산 이후 경색되어가는 일본 영화 제작 환경에 실망했는지, 후기엔 해외 합작으로 활동하는 과작 감독이 되버린다. 맥스 내 사랑은 아예 프랑스에서 만들었을 정도. 12년만에 [[쇼치쿠]]랑 만든 《[[고하토]]》 이후 반신 불수에 언어 장애까지 겹쳐 영화를 만들 수 없는 상태였고, 13여 년간 투병생활 끝에 2013년 [[1월 15일]]에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시]]의 병원에서 [[폐렴]]으로 별세했다. 향년 81세. 정치적인 입장은 [[좌익]]으로, '우리들은 피해자([[일본의 피해자 행세]])가 아니다. 가해자다. 가해자, 범죄자의 입장에서 왜 이런 짓을 저질렀는가.' 하는 질문을 추구했다. 그 원인에는 [[빈곤]], 가난이 있었다는 시대적 병리가 있었다는 해석을 내리고 있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도 어릴 적에 태평양 전쟁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다. 장남은 경영학자이며, 차남은 영화 감독이라고 한다. === 작품 일람 === * 내일의 태양(明日の太陽) (1959) * 사랑과 희망의 거리(愛と希望の街) (1959) * 청춘잔혹이야기(青春残酷物語) (1960) * 태양의 묘지(太陽の墓場) (1960) * 일본의 밤과 안개(日本の夜と霧) (1960)[* [[안보투쟁]]을 다룬 작품. 일본 좌익 운동에 비판적 시각으로 의문을 던졌다. 영화는 개봉된 지 사흘만에 회사의 일방적인 판단으로 상영 중지가 됐다. 오시마는 맹렬히 항의하고 회사를 그만두고 다음해 독립 프로덕션을 창립한다.] * 사육 (1961) * 아마쿠사 시로우 토키사다(天草四郎時貞) (1962) * 작은 모험 여행(小さな冒険旅行) (1963) * 나의 벨렛(私のベレット) (1964) * 윤복이의 일기(ユンボギの日記) (1965) - 이윤복의 [[저 하늘에도 슬픔이]]를 가지고 만든 다큐멘터리 사진 영화. [[크리스 마르케]]의 [[활주로]]랑 비슷하다. 오시마는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러 당시 내한했다고 하며, 이때 찍은 사진들로 만들었다고 한다. * 열락(悦楽) (1965) * 백주의 살인마(白昼の通り魔) (1966) * 닌자 무예장(忍者武芸帳) (1967) * 동반자살 일본의 여름(無理心中日本の夏) (1967) * 일본춘가고(日本春歌考) (1967) * 교사형(絞死刑) (1968) * 돌아온 술주정뱅이(帰って来たヨッパライ) (1967)[* 같은 타이틀의 노래 음반이 500만 장이 팔린 히트송의 포크 그룹을 주연으로 발탁해서 [[망명]] 한국인을 소재로 일본인의 정체성을 묻는 작품인데 일주일만에 상영중지됐다.] * 소년(少年) (1969) * 신주쿠 도둑 일기(新宿泥棒日記) (1969) * 도쿄전쟁전후비사(東京戦争戦後秘話) (1970) * 의식(儀式) (1971) * 그 여름날의 누이(夏の妹) (1972) * [[감각의 제국]](愛のコリーダ) (1976) * 열정의 제국(愛の亡霊) (1978) * [[전장의 크리스마스]](戦場のメリークリスマス) (1983) * 내 사랑 맥스(マックス、モン・アムール) (1987) - 침팬지와 수간 (...)하는 [[샬롯 램플링]] 등장하는 풍자 영화나, 범작 평가를 받고 묻혔다. * [[고하토]](御法度) (1999) - 감독의 유작. [[분류:일본 영화 감독/ㅇ]][[분류:1932년 출생]][[분류:타마노시 출신 인물]] [[분류:교토대학 출신]][[분류:2013년 사망]][[분류:자수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