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한국 광복군/군인]][[분류:선천군 출신 인물]][[분류:1924년 출생]][[분류:건국훈장 애족장]] ||||<table align=right><bgcolor=white><:>[[파일:오성규.jpg|width=300px]] || || 성명 ||오성규(吳成奎) || || 생몰 ||[[1924년]] [[8월 21일]] ~ || || [[출생지]] ||[[평안북도]] [[선천군]] || || 서훈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 생애 == 오성규는 1924년 8월 21일 평안북도 선천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선천군의 신성(信聖) 중학교를 졸업한 후 중국으로 건너가 만주 봉천성에 소재한 동광중학(東光中學)에서 재학하면서 이영순(李英淳), 조승희(趙昇熙) 등과 함께 비밀조직망을 형성하고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던 중 일제에게 조직망이 노출되자 동지들과 함께 일군 점령의 만주지역을 탈출하여 북평을 경유, 안휘성 부양의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하였다. 이후 광복군 제3지대 1구대 1분대에 소속되어 1945년 5월 한국광복군과 미군의 협정에 따라 국내에 진공하여 일본군을 교란하는 특수공작을 수행할 목적으로 김영일(金永逸)·이창도(李昌道)·김하진(金夏鎭) 등과 함께 [[OSS]]훈련을 받았지만 [[8.15 광복]]으로 무산되었다. 광복 후 교민 보호와 선무 공작을 위해 조직된 한국광복군 군사특파단의 상해지구 특파단원으로 활동했으며, 이후에는 일본으로 이주하여 도쿄 네리마구에 정착했다. 2019년 2월 7일,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이 오성규의 자택을 방문하여 3.1절 및 2.8 독립선언 100주년 기념식의 초청장을 전달했다. 오성규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일본과 한국이 갈등을 빛는 것에 대해 "억지로 화해를 할 필요는 없어. 그렇다고 청년들에게 일본과 싸우라고 해서도 안 돼. 시간이 흐르면 한일 관계가 더 나아지겠지. 하지만 요즘 친구들이 역사를 잊는 일은 없어야지."라고 밝혔다.[[https://www.yna.co.kr/view/AKR201902071433000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