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보아르네 가문]][[분류:보나파르트 가문]][[분류:홀란트 왕비]][[분류:파리 출신 인물]][[분류:1783년 출생]][[분류:1837년 사망]] ||<-2><table align=center><tablewidth=500> [[파일:1280px-Hortense_de_Beauharnais.jpg|width=100%]] || || '''이름''' ||오르탕스 외제니 세실 드보아르네[* [[외래어 표기법]]상 [[영어]]를 제외한 [[로망스어군|로망스어]]와 [[게르만어]]권 인명의 전치사나 관사는, 발음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은 채 뒤 요소와 붙여 적는다.][br](Hortense Eugénie Cécile de Beauharnais)|| || '''출생''' ||[[1783년]] [[4월 10일]][br][[프랑스 왕국]] [[파리(프랑스)|파리]]|| || '''사망''' ||[[1837년]] [[10월 5일]] (54세)[br][[스위스]] 투르가우 아르넨베르그|| || '''배우자''' ||[[루이 보나파르트|루이 1세]] ,,(1802년 결혼 / 1810년 이혼),,|| || '''자녀''' ||나폴레옹 샤를, 루이 2세, [[나폴레옹 3세]], 샤를|| || '''아버지''' ||알렉상드르 드보아르네|| || '''어머니''' ||[[조제핀 드 보아르네|조제핀]]|| || '''형제''' ||[[외젠 드 보아르네|외젠]]|| [목차] == 소개 == [[프랑스 제1제국]]의 황후 조제핀 드 보아르네가 전 남편인 [[프랑스]]의 장군 알렉상드르 드 보아르네와의 사이에서 낳은 1남1녀 중 둘째인 딸이다. 즉, 조제핀과 재혼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의붓딸이기도 하다. 의붓아버지인 나폴레옹과의 관계는 좋았지만, 나폴레옹 이외의 보나파르트 가문 사람들이 어머니 조제핀을 무척 싫어해서 오르탕스 역시 보나파르트 가문 사람들을 싫어했다. 그러나 친자가 없던 나폴레옹은 의붓딸을 자기 동생 [[루이 보나파르트]]와 결혼시켜 그 사이에서 태어나는 의붓손자 겸 친조카를 후계자로 삼을 생각을 했다. 조제핀 역시 남편의 후계자를 낳지 못하는 상태에서 시가 식구들과 사이도 안 좋아서 황후로서의 위치가 불안정했기 때문에, 자기 딸이 시동생과 결혼하여 나폴레옹의 후계자가 될 아이를 낳는 것에 찬성했다. 그래서 1802년에 억지로 의붓삼촌인 [[루이 보나파르트]]와 결혼하고,[* 사실 신부인 오르탕스 뿐 아니라 신랑인 루이도 이 결혼을 마지못해 했고, 나폴레옹을 제외한 대부분의 보나파르트 가문 사람들이 이 결혼에 반대했다.] 나중에 루이가 [[홀란트 왕국]]의 왕이 되자 오르탕스 또한 왕비가 되었다. 그러나 사이가 안 좋은 사람들끼리 정략결혼을 했으니 결혼생활이 행복할 리 없었다. 더구나 나폴레옹 반대파가 나폴레옹의 권위를 실추시키기 위해, 나폴레옹이 의붓딸 오르탕스와 불륜관계이며 오르탕스가 임신한 첫 아이가 나폴레옹의 아이라고 소문을 냈다. 루이는 그 소문을 듣고 무척 자존심 상해 하며 분노했기 때문에 원래도 나빴던 부부관계가 더욱 나빠졌다. 결국 1810년에 오르탕스와 루이는 이혼하였다. 셋째 아들인 [[나폴레옹 3세]]는 이혼 전에 루이와의 사이에 낳은 아들이다. 부부 사이가 워낙 나쁘다보니 당대에도 [[루이 보나파르트|루이]]의 친자가 아니라 외도로 낳은 혼외자라는 소문이 자자했으나, 오늘날 역사학계에서는 악의적인 소문에 불과하다고 간주하고 있다. 2010년대 들어 [[나폴레옹 3세]] 및 친족 남성들의 Y염색체 DNA 연구가 이뤄지면서 혼외자 설이 다시 제기되기도 하였으나, DNA 시료가 불충분해 분석의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학계에서는 이러한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폴레옹 3세#s-6|해당 항목]]을 참고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