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957년 출생]][[분류:프로레슬링 선수]][[분류:나가사키시 출신 인물]][[분류:일본의 정치인]][[분류:자유민주당(일본) 국회의원]][[분류:운동선수 출신 정치인]] '''大仁田厚''' [youtube(LGUA3npuJJw)] || '''링네임''' || '''오니타 아츠시''' [br] 그레이트 니타 || || '''생년월일''' || [[1957년]] [[10월 25일]] ([age(1957-10-25)]세) || || '''신장''' || 181cm || || '''체중''' || 100kg || || '''출생지''' || [[일본]] [[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 || || '''피니시 무브''' || 썬더 파이어 파워밤 || || '''별명''' || '''사도(邪道) [br] 눈물의 카리스마''' || || '''입장곡''' || [[https://www.youtube.com/watch?v=LytqWGzWPZw|Wild Thing]] || [목차] == 개요 == '''일본 레슬링계를 뒤흔든 선구자이자 반란자''' 일본의 [[프로레슬러]], [[정치인]], [[연예인]]. 일본 프로레슬링 주류에 맞서 [[인디]] 프로레슬링과 [[데스매치]] 붐을 이끌어 낸 이단아. 이른바 '''전류폭파 데스매치'''를 고안해 냄으로써 세계적으로도 데스매치에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일본 참의원]]에 당선되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고 [[2017년]]에 '''일곱번째''' 은퇴를 선언한 시점에서는 팬들의 애증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2018년 10월, 1년도 되지 않아 또 복귀한다. == 커리어 == [[나가사키]] 출신. 오니타의 회고에 따르면 본래 유복한 집안 출신이었으나 집안 사정으로 인하여 궁핍하게 자랐다. 이후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입단하며 프로레슬링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 [[전일본 프로레슬링]] 활동 시절 === 1972년 [[전일본 프로레슬링]]이 성립된 시점에서 최초의 입문생 중 하나. 창립자인 [[자이언트 바바]]의 심부름꾼으로 오랫동안 활동하기도 했다. 이후 [[푸에르토리코]], [[멕시코]], [[미국]] 등에서 활동한 뒤 전일본으로 복귀하여 주니어 헤비급의 대표 간판 스타로 활약했다. 하지만 오니타의 고백에 따르면 당시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맹활약하던 초대 [[타이거 마스크(프로레슬러)|타이거 마스크]]의 활약에 열등감을 느꼈다고 한다. 결국 1985년 무릎 부상으로 인해 27세라는 젊은 나이로 첫 번째 은퇴를 맞게 된다. 이렇게 오니타는 전일본을 떠났지만 [[자이언트 바바]]에게 전해받은 프로레슬러로서의 자세와 인간적인 교류는 이후로도 줄곧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말한다. === FMW 활동 시절 === 이후 1988년에 프로레슬러로 복귀하여 활동하던 가운데 인디 단체인 '''프론티어 마셜아츠 레슬링(Frontier Martial-Arts Wrestling; FMW)'''를 창설한다. FMW의 두 축 중 하나는 당시 일본에서 인기를 끌던 [[이종격투기]]였지만, FMW의 또다른 축이자 오니타의 이름을 널리 떨치게 한 계기는 '''[[데스매치]]'''의 본격적인 도입이었다. 그중에서도 FMW와 오니타의 결정적인 상징이 된 것은 '''가시철선 전류폭파 데스매치'''. 링 로프 대신 전류가 흐르는 가시철선을 설치하고, 거기에 더해 플라스틱 폭탄들을 걸어놓는 데스매치는 첫 선을 보였을 때 '''"알았으니 이제 그만둬!"'''라는 관객들의 절규를 낳을 정도로 큰 파급력을 낳았다. [[UWF]] 등 당시 일본에서 인기를 끌던 [[종합격투기]] 지향의 프로레슬링과는 정반대 방향을 향해 치닫는 이러한 데스매치는 많은 매니아들을 낳았으며, FMW와 오니타는 [[신일본 프로레슬링]] 등 메이저 프로레슬링 단체를 위협할 정도로 큰 화제를 낳는다. [[http://wmania.net/column/3616202|전류폭파 데스매치의 탄생 비화를 다룬 기사]] 전성기에는 [[가와사키 구장]]에서 6만명에 가까운 관객 등을 동원하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 1995년 2번째 은퇴 선언을 했지만 1996년 복귀.[* 관계자들의 말이 엇갈리는 부분. 오니타 측에서는 회사 측의 복귀 요청에 응했다고 주장하지만, FMW 측에서는 새로운 단체의 에이스인 [[하야부사(프로레슬러)|하야부사]]에 대한 질투 등으로 인하여 당시 최대 주주였던 오니타가 억지로 복귀햇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로스터 내부 불화로 인하여 1998년 결국 FMW에서 방출되어 프리랜서로 전직하게 된다. 그리고 3년 뒤 FMW는 여러 사고들로 인하여 결국 문을 닫고 만다. === 프리랜서 시기 === ==== 신일본 프로레슬링 참전 ==== 프리랜서가 된 오니타가 눈을 돌린 곳은 바로 일본 최대의 메이저 프로레슬링 단체인 [[신일본 프로레슬링]]. [[투혼삼총사]]가 맹활약하고 종합격투기 기조의 '''이노키즘'''이 꿈틀거리던 와중에 오니타는 당시엔 이미 은퇴한 상태이던 현장감독 [[초슈 리키]]에게 막무가내로 도전을 걸었다. 이후 사사키 켄스케, [[쵸노 마사히로]], [[그레이트 무타]] 등과의 승부를 펼친 끝에 초슈 리키와 승부를 펼치기에 이른다. 당시 메이저이자 정통 프로레슬링을 자부하던 신일본 프로레슬링 팬들에게 있어 "데스매치나 일삼는" 오니타 아츠시는 그야말로 눈엣가시이자 사도(邪道) 그 자체. 오니타가 출전할 때는 각종 쓰레기와 오물들이 날아들기 일쑤였으며, 오니타는 희대의 '''[[악역]] [[언더독]]'''으로서 유례가 없는 족적을 남긴다.[* 이 당시 경기장 입장하면서 입고 있는 가죽자켓과 입에 꼬나문 담배가 정말 어마어마한 카리스마를 보여줬었다.] 쵸슈에게 패배한 이후 오니타는 신일본에 더이상은 출전하지 않았다. ==== 정치인 커리어 ==== 신일본 커리어 뒤 오니타가 눈을 새로이 돌린 곳은 다름아닌 정치권. 2001년 일본 [[자유민주당(일본)|자민당]] 소속 [[일본 참의원]]으로 당선되어 2007년까지 국회의원직을 맡았다. 하지만 결국 불미스러운 사건들로 인하여 그리 성공적인 과정을 밟지는 못했다. ==== 이후 ==== 참의원 임기가 끝난 이후 나가사키 지사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 프로레슬링에서도 여러 단체를 만들고 은퇴와 번복을 반복하는 등 팬들의 신망을 점점 잃었다. 결국 2017년 10월 31일에 7번째로 은퇴를 한 상태. 2018년 1월엔 또 갑자기 [[사가현]] 칸자키 시 시장 선거에 출마하기로 선언했다고. 그러나 4월 15일 개표 결과 낙선했다. 그래도 4년 뒤 재출마 의사를 밝혔다.[[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wwe&no=1434869&page=1&search_pos=-1424776&s_type=search_all&s_keyword=%EC%98%A4%EB%8B%88%ED%83%80|낙선 후 인터뷰]] 조용히 지내나 싶었는데 뜬금없이 레슬러 복귀를 선언했다. 은퇴한지 1년도 지나지 않아서 복귀한다는 것에 팬들은 다들 어이없어 하는 상황. 본인 말로는 '봉사'레슬러로 복귀한다고 하는데 은퇴투어에 돈을 쓴 팬들은 죄다 뒷통수를 맞게 되었다.[[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wwe&no=1509125&exception_mode=recommend&page=1|복귀 트윗]]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wwe&no=1509462&page=1|복귀 심정 인터뷰]] [[2019년]] 초에 양쪽 무릎에 인공관절 수술을 했다. 그리고 그후에 살만해지니 바로 가시철선 데스매치로 복귀 선언(...) 역시나 은퇴의 아이콘. == 은퇴의 아이콘 == 문서 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은퇴를 꽤나 많이 한 편이다. 문제는 이러한 은퇴 행보가 지나칠 정도로 잦아서 문제인 사람. 첫 은퇴야 부상에 의한 은퇴였다지만 이후에는 거의 돈 벌이용 복귀와 은퇴 투어를 다닌다고 봐야할 정도로 반응이 안좋은 사람이다. 특히 2018년 복귀 선언의 경우 1년 전 은퇴 때 노모와 동생까지 불러서 링 위에서 감동의 은퇴식까지 열어놓고, 복귀하는 거라 반응이 최악이다. 물론 다른 프로레슬러들 중에서도 은퇴를 번복하기 다시 선수로 복귀한 경우가 존재한다. 릭 플레어[* WWE 은퇴 이후 전 부인들에게 지급해야 할 위자료 때문에 복귀], 테리 펑크[* 부상으로 처음 은퇴한 뒤 이후 복귀해 활동하다가 다시 은퇴했지만 노년의 나이에 ECW로 복귀해 하드코어의 전설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오니타와 비슷한 모습], 저스틴 크레더블[* 이쪽도 은퇴 투어라고 해놓고, 거창하게 홍보해놓고, 몇 달만에 다시 복귀했다.] 등의 인물이 있지만 오니타처럼 속이 뻔히 보이는 은퇴 복귀의 경우는 없기에 오니타가 괜히 욕 먹는게 아니다. 이런 비슷한 인물이 [[종합격투기]]에도 있는데 전 [[UFC]]의 챔피언이자 레전드였던 [[BJ 펜]]. 그러고 보면 막장스런 성격에 적이 많고 매번 은퇴한다고 눈물쇼 했다가 귀신같이 복귀하는걸 밥먹듯이 하는게 똑같다.(...) == 기타 == * [[크리스 제리코]]가 자서전인 <라이언스 테일>에서 그를 깠다. 레슬링 실력도 실력이지만 무엇보다도 FMW 활동 당시 제리코와 다른 사람들을 함부로 대했기 때문에 오니타에 대해서 치를 떠는 것이다.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wwe&no=762147|링크]] * 한국 미디어에도 출연한 적이 있다. [[비정상회담]]에서 [[오오기 히토시]]가 은퇴의 아이콘으로 소개하였다. [[http://voda.donga.com/view/3/all/39/1065922/1|링크]] * [[이왕표]]의 데뷔 상대이다. 데뷔전이다 보니 결과는 당연히 오니타 아츠시가 승리하였다. * 2020년 5월 경, 자신은 한국 음식과 같은 문화를 좋아하지만 위안부는 강제 동원이 아니라며 지속적인 한국의 배상 요구는 그릇된 것이라는 트윗을 썼다. [[https://twitter.com/onitafire123/status/1266647760805048321|링크]] 또한 2020년 6월 24일. 일본의 군함도 유네스코 등재를 하지 말아달라는 한국의 요구를 비판했다. [[https://news.yahoo.co.jp/articles/87c11b964730d27654945b313fa368201a7faed1|#]] == 둘러보기 == ||<bgcolor=#000000><table width=100%><table align=center><-5> {{{#white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s-3.1|{{{#white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MVP (최우수 선수상)}}}]]'''}}} || || [[마에다 아키라]] [br] (1989) || → || [[오니타 아츠시]] [br] (1990) || → || [[점보 츠루타]] [br] (1991) || ||||||||||<table width=100%><table align=center><:><#000000>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width=200]] {{{#FFFFFF '''레슬링 옵저버 선정 최고의 선역'''}}}|| ||<width=25%><:><#fff>{{{#000000 [[스팅(프로레슬러)|스팅]][br](1992)}}} || {{{+1 → }}} ||<width=25%><:><#FFFFA1> '''{{{#000000 오니타 아츠시[br](1993, 1994)}}}''' || {{{+1 → }}} ||<width=25%><:><#fff>{{{#000000 페로 아과요[br](1995)}}} || ||||||||||<:><#000000>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width=200]] {{{#FFFFFF '''레슬링 옵저버 선정 가장 카리스마 있는 선수'''}}}|| ||<width=25%><:><#fff>{{{#000000 [[릭 플레어]][br](1993)}}} || {{{+1 → }}} ||<width=25%><:><#FFFFA1> '''{{{#000000 오니타 아츠시[br](1994)}}}''' || {{{+1 → }}} ||<width=25%><:><#fff>{{{#000000 [[숀 마이클스]][br](199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