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진(통일왕조) 군주)] ||||||<table align=right><bgcolor=#000> '''{{{#ece5b6 진(秦)나라 34대 국군[br]제7대 왕 {{{+1 진왕 자영[br]秦王 子嬰}}}}}}''' |||||||||| ||||<bgcolor=#000> '''[[성씨|{{{#ece5b6 성}}}]]''' |||| 영(嬴) || ||||<bgcolor=#000> '''[[본관|{{{#ece5b6 씨}}}]]''' |||| 조(趙) || ||||<bgcolor=#000> '''[[휘|{{{#ece5b6 휘}}}]]''' |||| 자영(子嬰) || ||||<bgcolor=#000> '''[[고향|{{{#ece5b6 출생지}}}]]''' |||| 진나라 함양 || ||||<bgcolor=#000> '''{{{#ece5b6 사망 장소}}}''' |||| 진나라 함양 || ||||<bgcolor=#000> '''{{{#ece5b6 아버지}}}''' |||| [[시황제|영정]](嬴政) 혹은 [[영성교]](嬴成蛟) || ||<bgcolor=#000> '''{{{#ece5b6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242년]][* 중국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이 경우는 진시황의 아들이거나 조카일 가능성이 매우 농후해진다.] ~ [[기원전 206년]] 1월 || ||<bgcolor=#000> '''{{{#ece5b6 재위 기간}}}''' || 음력 || [[기원전 207년]] [[10월 1일]] ~ [[기원전 207년]] [[11월 17일]] || [목차] [clearfix] == 개요 == 중국 [[진(통일왕조)|진(秦)나라]]의 마지막 군주이자, 마지막 왕. 왕호로는 항왕(降王),[* 항복한 왕이란 뜻으로 사기 고조본기(史記 高祖本紀)의 기록.] 진나라 황제 칭호를 포기하긴 했지만 후대인들이 삼세황제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 출신 == 사실 영자영은 기록상에 그 출생이 확실하지 않다. 《[[사기(역사책)|사기]]》 <[[시황제|진시황]] 본기>(秦始皇本紀)에 따르면 [[이세황제|호해]](胡亥)의 [[형]]의 아들(즉 진 시황의 손자)이 되며, <[[이사(전국시대)|이사]] 열전>(李斯列傳)에서는 진시황의 동생, 《사기》 <육국연표>(六國年表)에는 자영은 호해의 '형'이라는 기록과 [[동진]](東晉)의 학자 [[서광#s-7]](徐廣)은 진시황의 조카[* 진 시황의 동생 [[영성교]](嬴成蟜)의 아들.]라는 설을 주장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흔히 소설 《[[초한지]]》의 영향으로 자살한 진 시황의 아들인 [[부소]] [[황태자]]의 아들로 알려져 있지만, 부소의 아들이라는 명백한 기록은 없다.[[http://blog.daum.net/shanghaicrab/16153156|#]] 확실한 것은 사기의 내용을 따르면 자영에게 함께 [[조고]](趙高)를 죽일 모의를 꾸밀 수 있는 장성한 아들들이 있었다는 점에서 진시황의 손자는 아닐 확률이 높다. 진 시황은 50세에 죽었고, 자영이 조고를 죽인 것은 그로부터 3년 후이기에, 아무리 일찍 자식을 낳았다고 해도 손자에게 장성한 아들이 있는 건 어렵다. 그렇다고 호해의 형이라기에는 호해가 즉위하자마자 모든 형들을 죽였다는 기록과 실제 유골들이 있어 배다른 형이라는 설도 그다지 신빙성은 없다. 대체로 견제 안 당할 정도의 진나라의 방계 황족이라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 생애 == [[이세황제|이세황제 호해]]가 [[몽염]]을 처형하려고 했을 때, 자영은 과거 [[조유목왕|조왕(趙王)]]이 [[이목]]을 처형하고, [[조(전국시대)|조나라]]가 망한 [[고사]]를 들어서 반대했으나 호해는 듣지 않았다. === 왕위에 오르다 === [[진승·오광의 난]]을 계기로 [[고제(전한)|유방]]과 [[항우]] 등 반진 [[반란]]이 곳곳에서 터져나와 해결이 불가능해질 무렵, [[승상]] [[조고]]가 [[쿠데타]]를 일으켜 이세황제 호해는 [[자살]]하고 만다. 조고가 본래 생각했던 것은 [[고제(전한)|유방]]에게 진나라를 팔아먹는 것이었지만 조고가 못미더웠던 유방이 무시하고 계속 밀고들어왔기에 대신 인망이 두터운 자영을 옹립시키려고 했다.[* 고조본기와 [[한서]]에서 나오는 이야기로, 이사 열전에선 지진에 지레 겁을 먹어서(...)라는 더 찌질한 일화로 나온다.] 헌데 자영은 즉위식 당일에 병이라고 칭하고 결석하여 거듭해서 사자의 설득을 거부했다. 화가 치밀어 오른 조고는 스스로 자영의 집으로 찾아와 침소에 들어와서 설득을 하려 했는데, 자영은 자신의 아들과 심복 부하들을 [[매복]]시켜 두고 있었다. 자영은 역적 조고를 살해하고, 그 일족도 모두 제거한 뒤에야 왕이 되었다. 그러나 이때 천하는 이미 각지의 [[군벌]]이 차지하고 있어 진나라의 영토는 함곡관 서쪽으로 축소된 상태였으므로 스스로 [[황제]]의 칭호를 버리고 진왕(秦王)으로 낮추었다. 다만 자영이 스스로 진왕을 자처했는지, 후의 역사가들이 낮추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후대의 군주인 [[모용성]]이 그랬던 것처럼 영자영도 스스로 지위를 낮추고 형식상으로만 진왕의 직위를 유지하면서 실제로는 황제의 권한을 행사했을 수도 있다.] === 진나라의 멸망 === 하지만, 이미 진나라는 [[간신]] 조고를 죽인 정도로는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어 버린 상태였다. 이미 유방의 군대는 함양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고, 자영은 장수들에게 몇 차례 맞서 싸우도록 했지만 자영의 자질이 엄청나게 뛰어났던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옆에 제대로 된 보좌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에 장량의 계략 등에 농락당하면서 속수무책으로 패배하고 만다. 결국 자영은 [[장례식]]을 상징하는 [[백마]]가 끄는 흰 [[마차]], 흰 소복을 입고 목에는 [[전국옥새]]를 걸고서 유방에게 항복하게 되는데 즉위한 지 45일 만이었다. 중국을 통일하고 처음으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던 진시황 영정의 후예가 집에서 갈굼받던 촌동네 백수 건달이었던 유방에게 항복을 한 것이었다. 유방은 항복을 받아들이고 자영과 그 일족의 안전을 보장했지만, 뒤늦게 함양에 입성한 [[항우]]는 진시황이 각국을 멸망시킨 죄 등을 물어서 진왕 자영과 일족을 처형시켰으며 자영의 죽음으로 진나라 황족의 대는 완전히 멸족당한다. 이런 자비없는 대처로 인해 민심은 항우에서 유방으로 넘어가게 된다. 특히 전국시대 진나라 영역이던 관중 및 서천 지역은 유방을 지지하게 되었는데, 진나라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던 옛 진나라 사람들이 자신의 왕을 죽이고 수백 년간 이어진 진나라를 결딴낸 자를 따르고 싶을 리가 만무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수많은 진나라 포로들을 생매장시킨 [[신안대학살]]을 저질렀으니 그 포로들의 동향이고 가족이었을 진나라 사람들은 유방의 든든한 후방 보급처가 되어주었고 이때부터 항우는 내리막길로 치닫기 시작한다.[* 장한 군에는 진나라 병사뿐만 아니라 반란 진압 후 고향으로 돌려보내 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참전한 구육국 출신 노무자들도 상당히 있었다.] == 대중매체에서 == 보통 [[초한지]]의 영향으로 진시황의 장남 부소의 아들로 등장한다. 나라를 망쳐오던 간신 조고를 죽이는 데는 성공하지만 이미 진나라는 망한 거나 다름 없는 상태였으므로 어쩔 수 없이 항복하는 비운의 왕으로 등장하며, 항우가 자신에게 항복하지 않고 유방에게 항복한 것에 대한 질투심, 진나라에 대한 증오 등 감정적인 이유로 자영을 죽였다고 묘사하는 경우가 대부분. 영화 초한지 : 영웅의 부활(2013)에서는 유방에게 항복 후 항우가 와서 자신을 죽일 것을 다 예상을 하였다. 그래서 유방을 호적이 기록된 기록실로 데려가서 유방의 족보를 보여준다. 그의 의도는 유방으로 하여금 항우를 대항하게 만들게 하려고, 아무런 욕심이 없던 유방에게 황제가 되고자하는 욕망을 심어주기 위함이었다. 그 이후 항우에게 심하게 고문을 당한 후 요참형을 당하고 사망. 그런데 위에 언급되었듯이 자영은 장성한 아들이 둘이나 있었으니 왕이 되었을 때 최소한 중년에 가까웠을 텐데 이 영화에서는 너무 어리게 나온다. 초한전기에서는 [[조고]]의 의심을 피하고자 일부러 정신 병자 연기를 하는 인물로 등장했다. 호해가 자영을 불러 왕위를 물려주고자 했으나, 자영은 끝까지 바보연기를 했다. 조고는 치밀하고 간교한 인물이었지만, 자영의 바보 연기에 완전히 속아넘어가 방심을 하였고, 이 틈을 노려 자영은 조고를 처단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진을 부흥시키기에는 때가 늦었고, 결국 진나라의 멸망을 막지 못했다. 유방에게 투항하고 유방이 떠난 뒤 항우가 함양에 입성하자 딸에게 작별을 고한 후 항우에게 자결을 권유받아 자결한다.[* 자영의 딸은 이후 궁을 떠나고 어느 헛간에서 쓰러졌다가 우미인에게 발견된다.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우미인과 친해졌다가 항우의 권유로 [[영포]]의 아내가 돼버렸지만, 이후 영포를 떠나 항우를 암살하려다 실패한다. 자신을 죽일 기회를 준 항우를 죽이진 못하고 대담을 나누는데, 이때 나눈 대담이 자영에게 항우가 물은 질문인 '진시황은 어떤 인물이며 자신(항우)는 어떤 인물인가'였다. 자영과 자영의 딸 모두 진시황은 영웅이며, 항우에 대해선 후에 평가를 받을 것이란 말을 남긴다. 이후 항우는 그녀를 그냥 보내줌으로서 극중에서 퇴장한다.] == 둘러보기(계보) == ||||||||||<tablealign=center><#000000><:>'''[[진(통일왕조)|{{{#ffffff 진의 역대 군주}}}]]'''|| ||<:><width=30%> 2대 [[영호해|이세황제]] 영호해 ||<:> {{{+1 ←}}} ||<:><width=30%> '''진왕 영자영''' ||<:> {{{+1 →}}} ||<:><width=30%> 진나라 멸망 || [각주] [[분류:초한쟁패기/인물]][[분류:진(秦)나라의 군주]][[분류:기원전 206년 사망]][[분류:망국의 군주]][[분류:폐위된 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