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우리나라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 현재 전해지는 버전은 [[삼국유사]]에 실려있는 것이다.[* 삼국유사를 쓴 [[일연]]은 [[수이전]]이라는 신라 말 혹은 고려 초의 책에 쓴 책을 보고 인용해 쓴 것이다. 수이전은 설화 모음집 같은 책으로 일연 때([[고려시대]])는 남아있었지만 지금은 세월이 흐르면서 없어졌다.] 무대가 되는 곳은 [[경상북도]] [[포항시]] [[호미곶]](영일만) 일대이며, [[호미곶]]에 가면 연오(延烏)와 세오(細烏) 부부의 동상이 있다. == 내용 == >第八阿逹羅王即位四年丁酉東海濵有延烏郎細烏女夫婦而居. 一日延烏歸海採藻忽有一巖負歸日本. 國人見之曰 “此非常人也”, 乃立爲王. >([[신라]]의) 8대 [[아달라 이사금|아달라왕]] 4년 정유(157)[* 실제로는 [[아달라 이사금]]이 아니라 한 갑자 빠른 [[파사 이사금]] 시절(97년)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연오랑]]과 동일인물로 보이는 [[천일창]]이 신라왕의 형으로 나오기 때문. 특히 [[일본서기]]에서 [[천일창]]의 등장시점이 기원전 27년, [[이주갑인상]]을 고려했을 때 기원후 93년이라는 점도 작용한다.]에 [[연오랑]], [[세오녀]] 부부가 [[동해]]안에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연오가 해초를 따다가 바위가 움직이더니 그를 실은 채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갔고, 일본인들은 비범한 사람이라며 왕으로 삼았다. > >細烏恠夫不來歸尋之見夫脫鞋亦上其巖, 巖亦負歸如前. 其國人驚訝奏献於王, 夫婦相㑹立爲貴妃. >세오는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기다 남편이 벗어놓은 [[신발]]을 보고 바위 위에 올랐다. 그러자 그 바위는 또다시 움직여 세오를 일본으로 데려갔고 세오는 연오와 다시 만나 왕비가 되었다. > >是時新羅日月無光. 日者奏云 “日月之精降在我國, 今去日本故致斯怪.” 王遣使來二人, 延烏曰 “我到此國天使然也. 仐何歸乎. 雖然朕之妃有所織細綃, 以此祭天可矣.” 仍賜其綃. 使人來奏, 依其言而祭之然後日月如舊. 藏其綃於御庫爲國寳, 名其庫爲貴妃庫. 祭天所名迎日縣又都祈野. >한편, 그 때 신라에서는 [[태양과 달|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 신라 아달라왕이 점술가를 불러 까닭을 점치게 하자 점술가는 우리나라의 해와 달의 정기를 품은 이들이 일본으로 갔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이에 신라 왕이 사람을 보내어 연오와 세오에게 돌아오도록 촉구했으나 두 사람은 돌아올 수 없다 하고 대신 세오가 직접 짠 [[비단]]을 보내었다. 왕이 그 비단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자 비로소 해와 달이 빛을 되찾았다. 그 비단을 국보로 보관한 창고를 귀비고(貴妃庫), 비단으로 제사를 지내던 곳은 훗날 도기야(都祈野) 혹은 영일현(迎日縣)이라 불렸다. >---- > '''[[삼국유사]] 기이(紀異) 제1, 연오랑 세오녀(延烏郞 細烏女) [[http://db.history.go.kr/item/level.do?itemId=sy&levelId=sy_001r_0020_0240_0010&types=r|#]][[http://db.history.go.kr/item/level.do?itemId=sy&levelId=sy_001r_0020_0240_0020&types=r|#]]''' == 상세 == 연오랑과 세오녀에서 랑(郞)과 녀(女)는 [[성별]]을 나타내기 위해 붙었으니 정확히는 '연오'와 '세오'라고 해야 바르며, 실제로 원문에서도 그렇게 부르고 있다. 6차 교육과정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서도 이 설화가 '연오와 세오'라는 제목으로 올라가 있다. 또한 이 두 사람의 이름에 들어가는 오는 [[까마귀]] 오(烏)로 [[삼족오]]로 대표되는 '[[태양]]'을 상징하는 암시적인 글자이며, 그들이 [[일본]]에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은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된다고 한다. [[아달라 이사금]] 항목에 나오듯이 당시 [[신라]] 조정에서는 여러 가지 혼란이 있었다. 정치적으로도 문제가 많이 있었고, 각종 [[천재지변]]도 있었다.[* 설화에서 해가 빛을 잃었다고 하며 언급되는 [[일식]]도 아달라왕 때 실제로 있었다.] 결국 아달라 이사금 사후에는 [[박혁거세]]계 박씨의 왕위 계승이 끝나고 [[석탈해]]의 후손인 석씨에게 왕권이 넘어가는데, 이와 연관지어 권력 투쟁에서 패한 신라 귀족이 해와 달의 [[정기]]로 상징되는 귀중한 무언가를 갖고 일본으로 망명을 한 일이 이 설화의 배경이 되지 않았나 추정하는 견해도 있다. --[[삼종의 신기]]?--[[일본서기]]에 따르면 [[스이닌 덴노]] 3년 3월 신라 왕자 [[천일창]](千日槍)이 8가지 보물을 가지고 [[대한해협]]을 건너 도래하여 다지마국에 정착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를 연오랑 설화와 연관짓는 의견도 있다. 물론 시기상으로는 천일창이 100여 년 정도 빠르지만 [[삼국사기]] 초반부와 [[일본서기]] 연대 기록은 신뢰도가 다소 떨어지는 터라[* 일본서기의 연대 오류는 확실한 정설이고([[이주갑인상]] 문서 참조) 삼국사기 초반부의 연대 오류는 학계에서 대체로 인정하나 오류가 없거나 거의 없다고 보는 학자도 일부 있다.] 시대차가 좀 나도 동시대 인물일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세오녀가 길쌈한 베를 보내었다는 것과 이후에 길쌈의 신이 된다는 것에서 일본에 길쌈기술이 전해진 것으로 이해하기도 하고,[* 길쌈 관련 기록은 이것 말고도 [[추석]] 명절이 최초로 언급된 [[유리 이사금]] 기록 등 신라 초기부터 여러 번 나온다.] 연오랑은 이에 대응하여 제련기술이 전해진 것으로 본다. [[역사스페셜]]에서는 심지어 '연오랑 세오녀 일본의 신(神)이 되었나?' 편에서 연오랑과 세오녀가 [[스사노오]]의 모티브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관련기사 [[http://www.kyongbuk.co.kr/main/news/news_content.php?id=451347&news_area=130&news_divide=13008&news_local=&effect=4/|링크]]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신화학은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일단 한낱 [[어부]] 부부가 일본에서 왕과 왕비가 되었다는데 부른다고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았을 것 같기는 하다... 다짜고짜 딴 나라에서 갑툭튀해서 온 어부 부부를 갖다가 일본 사람들이 왕으로 삼았다는 언급 때문에, 실은 이 둘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왕조에 편입된 신분 높은 사람들이지 않냐는 추측도 있다. --하긴 현실적으로 그냥 어부들이었음 왕까지 삼아줄 리는...-- 그 외에 특기할 만한 것으로는 [[한국사]]에선 일월성신신화라는 것이 있다. 한국사에서 메이저한 일월신화는 연오랑 세오녀가 유일하다. [[해님달님]]은 전래동화다.[* 물론 햇님달님도 오랜 세월 전승되면서 원형을 잃고 너프(?)되어 전래동화 급으로 전락한 것이지, 거의 모든 인류문명에서 [[태양신]]은 절대적인 신으로 숭배되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매우 신화적인 원형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원문에서는 연오랑이 타고 간 바위에 대해서 忽有一巖負歸日本[* 어느 날, 연오가 바다에 가서 미역을 따고 있는데, 갑자기 어느 바위 하나가 그를 싣고 일본으로 데려갔다.]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이 負歸이다. 연오랑은 본인이 가고 싶다고 원해서 자의적으로 바위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 아니라, 일본에서 찾아온 바위가 그를 태우고 일본으로 간 것이기 때문이다.[* 負는 이 행동의 주체가 연오랑이 아니라 바위라는 것을 의미하고, 歸는 바위가 원래 일본에 있다가 이 때 연오랑 근처로 찾아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는 세오녀가 건너올 때에도 巖亦負歸如前[* 바위는 그녀 또한 업고서 일본으로 갔다.]이라고 해서, 負歸를 사용하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천일창과 비교해보면 급한 쪽이 정반대로 묘사된 것이다. [[천랑열전]]의 [[연오랑]]이 여기서 이름을 따왔다. 그런데 연오랑은 위 이야기도 그렇지만 전형적인 신라계 이름인데 [[고구려]]인 이름으로 썼다. [[포항시]]의 지명이자 옛 이름인 연일(延日), 영일(迎日), 오천(烏川) 등은 모두 이 설화에서 유래된 이름들이다. 고대 이후에는 [[고려]] 말 [[공민왕]] 당시 영일현 감무로 부임한 이인부라는 사람이 이곳에 일월지사적비를 세우고 주민들은 봄, 가을 혹은 중양절에 천제단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고 전한다. 16세기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의 영일 고적(古跡) 조에는 영일현에서 동쪽으로 10리 떨어진 도기야에 있는 연못[* 이 연못을 일월지라고 한다.]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유적들은 안타깝게도 일제강점기 때 멸실되었다고 한다. 근래에는 포항시에서 이곳을 중건하고 일월사당을 새로 건립하여, 매년 10월 열리는 일월문화제에서 주민들이 다시 제사를 올린다고 한다. [[분류:설화]][[분류:한국 설화]][[분류:한국 신화]][[분류:신라의 문화]][[분류:신라의 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