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우주왕복선)]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00px-Space_Shuttle_Enterprise_in_launch_configuration.jpg]] [목차] == 개요 == [[NASA]] 우주개발의 자존심 [[우주왕복선]]의 프로토타입. 개조 비용을 비롯한 이런저런 [[어른의 사정]]으로 실제 우주 임무를 수행하지는 못했으나, 활공 시험(Approach and Landing Test, '''ALT''')을 통해 다른 우주왕복선들 못지 않은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 기종이다. 이 엔터프라이즈의 비행을 통해 '''우주개발의 새 시대가 열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사진이|그러나 이 우주선이...]]~~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00px-Star_Trek_cast_and_Space_Shuttle_Enterprise.jpg]] [[스타 트렉]]의 주연배우들과 [[진 로덴베리]]를 초청한 역사적인 취역식. 원래 [[엔터프라이즈]]는 후에 정식 [[우주왕복선]]으로 개조할 염두를 두고, 궤도선 재식번호를 OV-101로 하였으나 후에 OV-099인 [[챌린저호]]를 개조하는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되어 개조는 하지 않았고, 1986년 [[챌린저호]]가 폭발한 이후, 다시 이 우주선을 개조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또 다시 비용 문제로 다른 셔틀의 여분의 부품을 이용해 엔데버호를 제작하기로 결정이 난다 == 상세 == 원래 미국의 최고령 현역 군함 [[컨스티튜션]]의 이름으로도 쓰이는 그 컨스티튜션이라는 이름을 쓰려 했으나, '''전미의 [[트레키]]들이 NASA와 [[백악관]]에 40만 장에 이르는 투서를 날려대서 이름을 바꿔버렸다.''' 어쨌든 미국 SF의 자존심인 [[스타 트렉]]의 스타쉽이자 [[엔터프라이즈(항공모함)|2차대전의 역사 그 자체]]인 이름을 최초의 우주왕복선에 붙이는 [[결과는 좋았다]]. ALT는 간단히 말해, '''[[크고 아름다운]] [[보잉 747]]의 [[등짝]]에 실려 이륙한 뒤 홀로 활공하여 지상 활주로에 착륙하는 실험'''이다.[* 생각보다 중요한 실험이다. 우주왕복선은 대기권 진입 후, 자체 동력은 일체 없이 글라이더처럼 활공하는데, 이게 일반 항공기보다도 빠른 속도로 아무런 동력 없이 목적지까지 가야 하는 것이다.] 1977년 2월 15일부터 10월 26일까지 진행되었으며 이중 8월 12일에는 첫번째 자유비행을 하는데 성공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40px-Space_Shuttle_Approach_and_Landing_Tests_crews_-_cropped.jpg]] [[테스트 파일럿]] 4인 : 좌측부터 [[C. 고든 풀러튼]], [[프레드 헤이즈]], [[조 엥글]], [[리처드 트룰리]]. 공교롭게도 이 네 우주비행사들은 미국의 우주개발사에서 크고 작은 설움을 겪었던 이들이다. 풀러튼과 트룰리는 페이퍼 플랜으로 끝난 [[미합중국 공군]]의 [[MOL]] 프로그램에서 전속되었고, [[조 엥글]]은 고정익기 X-15로 우주에 갔다온 경력도 있는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였으나 [[해리슨 슈미트]]에게 [[아폴로 17호]] 달 착륙선 조종사 자리를 빼앗기며 달에 갈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회를 잃은 [[지못미]] 그 자체이며, [[프레드 헤이즈]]는 [[아폴로 13호]]의 그 인물이자 취소 크리를 맞은 아폴로 19호의 사령관으로 내정되어 있었던 인물. 헤이즈-풀러튼, 엥글-트룰리 조로 나뉘어 테스트를 진행했는데, 이들 중 엥글과 트룰리 그룹은 '''STS-2'''의 승무원이 된다. 비록 [[제미니 계획]]의 전설적인 레전드인 [[존 영]]이 사령관으로 내정된 STS-1만큼은 아니지만 이들 역시 굉장한 임무를 수행했던 셈. 헤이즈의 팀은 당초 셔틀 프로그램이 일찍 시작되었다면 실행에 옮겨졌을 STS-2 '''[[스카이랩]]''' 미션[* 스카이랩이 방치되는 동안 고도를 잃고 있음은 이전부터 NASA에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스카이랩을 좀 더 오래 써먹자는 엔지니어들의 주장으로 스카이랩에서 부스터를 쏴서 고고도로 복귀시킨다는 플랜. 하지만 셔틀의 개발이 지체되며 1979년에 스카이랩은 끝내 재돌입하고 말았다.]이었으나, 셔틀 개발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지연되는 와중에 스카이랩이 결국 고도를 유지하지 못한 채 1979년 대기권에 재돌입하였고, 헤이즈는 이에 서운함을 표하며 NASA를 나와 [[그루먼]]으로 이직했다. 하지만 풀러튼은 이후 STS-3 파일럿, STS-51-F 사령관으로 활약했고, 엥글과 트룰리도 모두 STS-2와 향후의 미션에서 한 번씩 사령관을 하며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냈다. 이후 엔터프라이즈는 정식으로 우주 미션에 투입될 후보로 검토되었으나, 함께 테스트용으로 제작되었던 OV-099 챌린저의 개조 비용이 더 싸게 먹힌다는 것이 밝혀지며 프로토타입으로만 남게 되었다. 하지만 실험용으로는 여전히 매우 좋고 부담도 적은 기체였기 때문에 [[STS-51-L]] 챌린저 폭발사고 전까지 기획되던 '''반덴버그 공군기지''' 셔틀 발사대 공사[* 위의 사진에서 [[케이프 커내버럴]]과 다른 위화감이 느껴졌다면 제대로 본 것이다. 저 사진이 반덴버그 공군기지의 셔틀 발사대 제작 중 찍힌 것이다. 하지만 챌린저 참사로 반덴버그 발사 우주왕복선 미션은 완전히 백지화되었고 셔틀 발사대로 계획 및 제작된 SLC-6은 현재 [[ULA]]가 매입해서 [[델타 4 헤비]] 로켓을 발사하는 데 쓰고 있다. ULA의 이동식 격납고 옆의 'USAF'라 적힌 건물이 그 증거다. ]라든지 [[디스커버리]], [[아틀란티스]] 등 후속 셔틀 개발을 위한 여러 실험에 쓰였다. 이런저런 투어도 가지며 우주개발을 선도하는 신대륙의 기상(...)을 널리 떨쳤다. 실험이 끝난 후에는 오랫동안 [[스미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 별관 우드바-하지 센터에 전시되었으나 2011년에 [[디스커버리 우주왕복선|디스커버리]]가 퇴역하면서 스미소니언에 들어오고 엔터프라이즈는 2012년 4월 뉴욕 항에 정박중인 퇴역항모 인트리피드 항공우주박물관으로 이동 전시되고 있다. 이때 보잉 747에 실려 뉴욕을 날아다녔던 것이 마지막 비행 기록으로 남아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353&aid=0000009554|#]] 이 시험기를 운반했던 보잉 747 비행기는 세 개의 마운트로 시험기와 체결되는데, 이 마운트에 그 유명한 "ATTACH ORBITER HERE NOTE: BLACK SIDE DOWN"(왕복선을 여기 부착하시오. 주의: 검정색 면이 아래를 향하도록 부착할 것)이란 개그가 적혀 있다.[* [[https://i.stack.imgur.com/vaPH0.jpg|이미지]].]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엔터프라이즈, version=204, paragraph=4)] [[분류:나무위키 천문학 프로젝트]][[분류:우주왕복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