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에스토니아의 역사)] [목차] == 덴마크령 에스토니아 공국 == [[1219년]] 덴마크가 발트해 무역을 장악하기 위해 오늘날의 에스토니아 북부를 정복하고 [[탈린]]을 건설하며 세운 공국이다. 1343년 [[에스토니아인]]들이 대규모로 봉기하자 영토를 포기하고 영유권을 [[1346년]] [[튜튼 기사단]]에게 매각하면서 붕괴되었다. [[파일:18EA0F6D-D8CB-42EF-9C79-3E0C65E68629.png]] === 상세 === 발트 해 연안은 중세 초부터 바이킹들의 약탈과 무역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중동에서 수입된 물산이 종종 흑해에서 하천 수운을 이용하여 북해로 운반되었다. 바이킹의 기독교화 이후 덴마크 왕국은 한시적인 약탈과 교역을 넘어 에스토니아에 섬과 해안지대에 십자군 운동과 기독교 전파를 명분으로 원정군을 보내고 요새를 건설하기 시작했으며, 1218년 교황으로부터 [[리보니아 검의 형제기사단]]을 원조하라는 명을 받고 이를 이행하면서 그 대가로 에스토니아 일대의 지배권을 인정받았다. [[발데마르 2세]]가 이끄는 덴마크 왕국 군대는 에스토니아 북부 해안 지대의 추디-에스티인들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후 1219년 에스토니아 공국을 건설하였다. 발데마르 2세의 에스토니아 원정 도중 흰 삽자가 그려진 붉은 깃발이 하늘에서 내려와 승전했다는 구전 전승이 전해지는데 이는 오늘날 덴마크 국기 단네브로의 기원이 되었다. 리보니아 검의 형제기사단은 [[타르투|유리예프]]를 포함한 에스토니아 중부와 남부를 정복하고, 덴마크령 에스토니아 공국은 에스토니아 북부를 자치했다. 새로 덴마크의 식민 항구 도시 [[탈린|레발]]이 건설되었다. 리보니아 검의 형제기사단과 이를 흡수한 튜튼기사단은 종종 영토 문제로 에스토니아 공국과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명목상 덴마크령 에스토니아 공국이었지만 공국은 실질적으로 독일인들의 나라나 다름 없었는데 공국 내 봉신 중 80%는 [[독일인]], 18%만 [[덴마크인]]이고 [[에스토니아인|에스토니아계]]는 2%에 불과했다고 한다. 레발의 주교들은 종종 이웃 [[리보니아]]에는 현지인들이 봉신이 되는 경우가 없는데 에스토니아 공국에서는 덴마크 왕이 에스토니아인을 봉신으로 임명했다면서 십자군의 권위가 무너졌다고 불평하는 경우가 많았다. 1332년 덴마크의 크리스토페르 2세가 서거한 이후 에스토니아 공국에서는 덴마크계 봉신들과 독일계 봉신들이 계속 내전을 벌였고, 1343년 하리아라는 에스토니아인의 지도 하에 에스토니아 농노들이 봉기하였다. 소수의 덴마크인으로 공국 내 에스토니아인들과 독일인들을 통제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덴마크 왕국은 결국 1346년 영유권을 [[튜튼 기사단]]에게 매각하였고, 이후 튜튼 기사단은 독일계 봉신들을 흡수하고 에스토니아인 농민 봉기를 진압한 이후 이 지역을 영토에 편입시켰다. == 스웨덴령 에스토니아 공국 == [[파일:Sw_BalticProv_en.png]] [[1561년]] [[스웨덴]] 왕국이 탈린을 포함한 에스토니아 북부 일대를 점령한 후 건설되었으며, [[대북방전쟁]] 과정에서 [[1721년]] 러시아 제국에 점령되기 전까지 유지되었다. 독일 리보니아 식민시절과 다르게 스웨덴은 현지 에스토니아인들에게 나름 선정을 베풀었기 때문에 에스토니아인들에게는 이 시기가 "Vana hea Rootsi aeg" 이른바 "행복했던 스웨덴 시절"이라고 칭해졌다 한다. [[분류:에스토니아의 역사]][[분류:덴마크의 역사]][[분류:스웨덴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