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width=100%><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c5a77c><tablebgcolor=#ffffff,#191919>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1D439B 0%, #1A2842 20%, #1A2842 80%, #1D439B)" {{{#ffffff '''에릭 칸토나의 역임 직책'''}}}}}} || || {{{#!folding ▼ ||<-5><tablealign=center><tablewidth=100%><bgcolor=#002c77> '''{{{#ffffff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주장}}}''' || ||<width=30%> [[장피에르 파팽]] [br] (1992~1993) || {{{+1 →}}} ||<width=30%><bgcolor=#ffffff,#191919> '''{{{#002c77 에릭 칸토나}}}''' [br] '''{{{#002c77 (1993~1995)}}}''' || {{{+1 →}}} ||<width=30%> [[디디에 데샹]] [br] (1995~2000) || ---- ||<-5><tablealign=center><tablewidth=100%><bgcolor=#da020e> '''{{{#ffff0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역대 주장}}}''' || ||<width=30%> [[스티브 브루스]][br](1992~1996) || {{{+1 →}}} ||<width=30%><bgcolor=#ffffff,#191919> '''{{{#000000,#e5e5e5 에릭 칸토나}}}'''[br]'''{{{#000000,#e5e5e5 (1996~1997)}}}''' || {{{+1 →}}} ||<width=30%> [[로이 킨]][br](1997~2005) || }}}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1D439B 0%, #1A2842 20%, #1A2842 80%, #1D439B)" {{{#ffffff '''에릭 칸토나의 수상 이력'''}}}}}} || || {{{#!folding ▼ ||<-4><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e5e5e5><tablebgcolor=#ffffff,#191919><height=40> {{{#333333,#cccccc '''둘러보기 틀 모음'''}}} || ||<-4><bgcolor=#f0f0f0,#191919> {{{#333333,#cccccc '''개인 수상'''}}} || ||<width=25%> [[틀:PFA 올해의 선수(1990년대)|[[파일:PFA_UK_logo.png|height=55]]]][br]{{{#!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3px 3px; border-radius: 2px; background: #000000; font-size: 0.9em" [[틀:PFA 올해의 선수(1990년대)|{{{#c18e33 '''1993-94 PFA 올해의 선수''' }}}]]}}} ||<width=25%> [[옹즈도르|[[파일:옹즈도르.png|height=55]]]][br]{{{#!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3px 3px; border-radius: 2px; background: #000000; font-size: 0.9em" [[옹즈도르|{{{#ffd700 '''옹즈도르 1996'''}}}]]}}} ||<width=25%> ||<width=25%> || ||<-4><bgcolor=#f0f0f0,#191919> {{{#333333,#cccccc '''베스트팀'''}}} || || [[ESM 올해의 팀|[[파일:European_Sports_Media_logo.png|height=55 ]]]][br]{{{#!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3px 3px; border-radius: 2px; background: #1868d6; font-size: 0.9em" [[틀:1995-96 ESM 올해의 팀|{{{#ffffff '''1995-96 ESM 올해의 팀'''}}}]]}}} || || || || ---- ||<-3><bgcolor=#ffce00><color=#373a3c> '''{{{#white,#191919 1993 Ballond'or}}}''' || || 수상 [br] [[로베르토 바조]] || 2위 [br] [[데니스 베르캄프]] || 3위 [br] '''에릭 칸토나''' || ---- [include(틀:1993-94 PFA 올해의 팀)] }}} || ||<-3><tablealign=right><tablewidth=400><tablebordercolor=#aaaaaa><tablebgcolor=#ffffff,#191919>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rgba(50%, 50%, 50%, 30%) 0%, transparent)" {{{+1 {{{#000000,#e5e5e5 ''' 프랑스의 前 축구선수 '''}}}}}}}}}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7a433c395e6cfffb0c1b0dd3fcd74526.jpg|width=100%]]}}} || ||<-2><height=40><colbgcolor=#eeeeee,#191919> {{{#000000,#e5e5e5 ''' 이름 ''' }}} || {{{+1 '''에리크 캉토나'''}}}[br]'''Éric Cantona''' || ||<-2><height=40> {{{#000000,#e5e5e5 ''' 본명''' }}} ||에리크 다니엘 피에르 캉토나 [br] Éric Daniel Pierre Cantona || ||<-2><height=40> {{{#000000,#e5e5e5 ''' 출생 ''' }}} ||[[1966년]] [[5월 24일]] ([age(1966-05-24)]세)[br]{{{-1 [[프랑스]] 부슈뒤론주 [[마르세유]]}}} || ||<-2><height=40> {{{#000000,#e5e5e5 ''' 국적 ''' }}} ||[[프랑스]] [[프랑스|[[파일:프랑스 국기.svg|width=28]]]] || ||<-2><height=40> {{{#000000,#e5e5e5 ''' 신체 ''' }}} ||188cm, 88kg || ||<-2><height=40> {{{#000000,#e5e5e5 ''' 직업 ''' }}} ||축구선수 ([[공격수]][* [[세컨드 스트라이커]]] / ^^은퇴^^)[br]축구경영인 || ||<|2><width=15%><height=40> {{{#000000,#e5e5e5 ''' 소속 ''' }}} ||<width=15%><height=40><colbgcolor=#eeeeee,#191919> {{{#000000,#e5e5e5 ''' 선수 ''' }}} ||<width=70%>[[AJ 오세르]] (1983~1988) [br]→ {{{-1 FC 마르티그 (1985~1986 / 임대)}}} [br]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1988~1991) [br]→ {{{-1 [[FC 지롱댕 드 보르도]] (1989 / 임대)}}} [br]→ {{{-1 [[몽펠리에 HSC]] (1989~1990 / 임대)}}} [br]→ {{{-1 [[님 올랭피크]] (1991 / 임대)}}} [br] [[리즈 유나이티드 FC]] (1992) [br]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92~1997)''' || ||<height=40> {{{#000000,#e5e5e5 ''' 스태프 ''' }}} ||[[뉴욕 코스모스]] (2011~2012 / ^^단장^^) || ||<-2><height=40> {{{#000000,#e5e5e5 ''' 국가대표 ''' }}} ||45경기 20골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프랑스]] / 1987~1995)^^ || [목차] [clearfix] == 개요 == [youtube(hJbALBhBjaE)] 프랑스 국적의 前 축구선수. 현역 시절 주 포지션은 [[공격수]]. [[발롱도르]] 3위, [[PFA 올해의 선수]], [[FWA 올해의 선수]], [[프리미어리그]] 도움왕 2회를 차지할 정도로 당대 EPL을 대표하는 선수이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7번|맨유 7번]]의 계승자였다. 당시까지 [[영불관계|서로 으르렁대던 사이였던 잉글랜드-프랑스 사이]]에서[* 대체 어느 정도이길래 그러느냐고 물어보실 위키러들을 위해 대답해보자면 영국인 왈; "프랑스란 환상적인 땅이 아쉬운점은 그 땅에 프랑스인이 산다는 것"이라고 하는 농담이 나올 정도.], '영국인이 사랑한 프랑스인'이라는 칭호까지 받았던 불세출의 플레이어.[* 이는 후에 [[다비드 지놀라]], [[티에리 앙리]]가 계승한다. [[아르센 벵거|감독도 있다.]]] 맨유 팬들은 그를 일컬어 '[[올드 트래포드]]의 왕'이라고까지 한다.[* 이후 올드 트래포드의 왕 칭호를 얻은 선수는 [[뤼트 판니스텔로이]]와 [[웨인 루니]]로 이어진다.] 그 정도로 깊은 인상을 남긴 선수.[* 에릭 칸토나 역시 현재까지 [[맨유]]와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에 끊임없는 지지를 보내고 있다. [[프랑스]] 출신이지만, [[영국]]에서 주로 활약해서 그런 듯.] == 선수 경력 == 프랑스 [[마르세유]] 출신. [[사르데냐]], [[이탈리아]], [[스페인]] [[카탈루냐]] 혈통이다.[* 정확히는 부모님이 카탈루냐계 사르데냐인으로서 마르세유로 이민을 간 경우에 해당한다. 심지어 부모님은 카탈루냐 분리독립을 지지하는 편이었다고.] === [[AJ 오세르]] === 어렸을 때부터 축구에 특출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으며, 나이 17세에 [[AJ 오세르]][* [[정조국]]이 뛰었었던 팀.]의 주전 멤버로 선발되는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다. 팬들은 17세의 소년이 필드에서 보여주는 뛰어난 플레이에 열광했고 또 엄청난 기대감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지금도 "칸토나"하면 떠오르는 [[다혈질]] 성격은 이 때 부터, 이미 파릇파릇했다. 당시 팀의 주장이 정말 사소한 부탁으로 라커룸에 놓고 온 자신의 가방을 좀 가져다 달라고 하자, 어린 칸토나는 "니가 뭔데 나한테 명령질이야?"라며 주먹을 날렸다. === [[올랭피크 마르세유]] === 오세르와의 계약이 만료되자 이적 시장에 나온 탈유망주급 선수를 잡기 위해 프랑스 굴지의 클럽 [[올랭피크 마르세유]]가 나섰고 마침내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데 성공하지만... 베르나르 타피 당시 마르세유 회장은 훗날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헤어진 후 나는 내가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라며 땅을 쳤다(…) 아니나 다를까, 실력이야 두 말할 나위 없으나 누구도 종잡을 수 없는 성깔머리가 시도 때도 없이 뛰쳐나와 주셨기에 그야말로 골치덩어리 그 자체였다. 그 성질머리로 인해 당시 자신을 호출하지 않은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게 서슴없이 육두문자를 날려주는 바람에 1년 대표팀 경기 출장 정지라는 중징계를 먹는다거나, 경기 중 판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유니폼 벗어 던지고 뛰쳐나가 '''3일간 행방불명'''되는 등 [[마리오 발로텔리|지금의 어느 애송이]]도 깝치지 못할 정도의 망나니짓을 일상다반사로 해댔으니... 누구도 그를 겉잡을 수 없었기에 팀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이리저리 임대나 다니는 신세로 전락하는 것은 필연이었다. 결국 쫓겨나듯이 팔려간 님 올림피크 에서도 판정에 빡친 나머지 '''심판에게 장렬한 축구공 어택'''(…)을 날려버린 사건으로 프랑스 축협은 거의 그를 매장시킬 분위기까지 치달았고, 칸토나 역시 '''축구 더러워서 못해먹겠다'''라며 은퇴를 결심한다.[* 이 과정을 보면 더 쩌는 게, 축협 측에서 먼저 "1개월 출장정지"를 먹이자 칸토나는 "'''X나 고맙습니다. [[얼간이]]들아.'''"라는 감사인사(…)로 응수했고, 축협은 다시 "3개월 출장정지"라는 거의 [[캐삭빵]] 수준의 어택을 날려준 것이다.] === [[리즈 유나이티드 FC]] === 그 탁월한 재능이 [[불]]같은 성격 때문에 피지도 못할 것이 안타까워 [[미셸 플라티니]]가 직접 나서서 에릭 칸토나에게 프랑스를 떠나 [[잉글랜드]]에 진출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조언을 해준다. 그래도 축구에 대한 열정은 남아있던 것인지 칸토나는 선뜻 잉글랜드 행 비행기에 올랐고, 축구 종가에서의 그의 첫 도착지는 [[리즈 유나이티드 FC|리즈 유나이티드]]였다. 그래도 실력은 어디 가지 않았기에, 리즈 유나이티드에서도 칸토나는 A급 이상의 활약을 선보여서 팀의 1부 리그 우승에 큰 도움을 주었고, 리버풀과의 커뮤니티 실드에서는 해트트릭을 질러주는 등 그 재능을 잉글랜드에 알렸다. 그리고 리즈 유나이티드는 진짜로 [[리즈 시절]]을 맞이했다. 칸토나의 이적 후 첫 시즌이었던 1991-92 시즌 리즈 유나이티드는 1부 리그에서 우승을 했던 것.[* 플라티니는 최초 [[리버풀 FC]]에 칸토나를 받아달라 요청했으나 리버풀 측에서는 폭탄 끌어안기 싫다며 거절, 또다른 팀인 셰필드 웬즈데이는 "땡기면 오라"라는 입장이었으나 "입단테스트 후 결정"이라는 조건을 내밀었기에 겨우 웬즈데이 정도의 팀이 자신에게 그런 요구를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거부했다고 포포투와의 인터뷰에서 밝힌바 있다. 리버풀로서는 땅을 치고 후회할만하다.] 허나 또 그 놈의 [[다혈질|성미]]가 문제가 되어 [[하워드 윌킨슨]] 당시 감독과 대판 싸우게 되었고, "이 놈을 어떻게 제거하나?" 하고 골치를 썩이던 하워드 윌킨슨 감독은 [[알렉스 퍼거슨]]과의 전화 통화로 칸토나를 "120만 파운드"라는 헐값에 팔아넘긴다. 이때 리즈 유나이티드의 팬들은 뛰어난 선수였던 칸토나를 파는 것에 반대하는 분위기였다.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 [[파일:eric-cantona.jpg]] [[파일:0b0f299df1697f4e70668d6f56a14d2a6ba5790633d483da1a9b7811d1ee7b57f0b08dafe187cc6fcef950b29913d2b4e4d60206d2ddea208e5ba707fe7193cbbda7901990675a77e2da7256cbc8936e444789b5b78a85811cc6b8dc688b321f.png]] 지난 시즌 리즈에게 리그 1위를 넘겨준 맨유는 [[칸토나]]의 합류와 동시에 리그 1위 자리를 빼앗았고, 그다음 시즌에는 FA컵까지 동시에 재패하는 시즌 더블을 기록함과 동시에 칸토나는 팀 내 최다골을 기록해 주었다. 그러한 활약이 너무도 뛰어났기에 1994년 [[PFA 올해의 선수]] 수상은 당연히 칸토나의 몫이었다. 신기하게도 당시까지 별다른 기행은 없었고, 이는 지금도 확연히 드러나는 퍼거슨 감독의 선수 장악력이 아주 제대로 먹혔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거기에 1993년에는 [[발롱도르]] 3위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파일:attachment/칸토나K.gif]] 뭐 아주 없던 건 아니고... 가끔 이런 짓도 했다. 사실, 저렇게 백태클을 걸어대면 칸토나가 아니어도 누구든지 빡치는 것이 당연하니 대놓고 복수한 것이지만...[* 걸려 넘어진 선수는 당시 노리치의 헤니 슐츠][* 참조하자면 지금의 룰 대로라면 백태클을 건 선수는 최소 옐로카드~공격상황의 치명적 정도에 따라 레드카드를 받지만, '보복행위'에 해당하는 칸토나의 발차기는 다이렉트 레드에 향후 징계까지도 가능한 수위다.] '''하지만, 이후 칸토나는 그 동안의 폭력 사건을 잊게 할 정도의 초대형 사고를 터뜨린다.''' ==== 쿵푸 킥 사건 ==== 1995년 1월,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경기에서 상대선수에게 주먹감자를 날리며 레드카드를 받았다. 그리하여 벤치로 향하던 중, 자신을 대놓고 야유하는 상대팀 서포터 매슈 시먼스(당시 20세)를 향하여... [[파일:external/www.whoateallthepies.tv/Eric_Cantona_kung-fu_kick.jpg|width=600]] '''곧바로 [[날아차기]] 한 방을 먹였다.''' 이것이 지금도 간간이 회자되는 '''쿵푸 킥''' 사건이었다. 칸토나는 9개월 출장 정지라는 중징계를 먹었다. 이 사건 직후의 기자회견에서 "갈매기가 고깃배를 따라오는 이유는 어부들이 정어리를 바다에 버릴 것을 알기 때문이다"라는 황당한 [[개드립]]을 쳐서 기자들도 당황했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도 있다는 요지 혹은 가십거리를 찾아다니는 기자들에 대한 조롱으로 볼 수 있겠지만 그런 멘트를 저런 자리에서 말했다는 것이 칸토나 답다고 볼 수 있다. 너무나도 심각한 사건이었기에 여론은 "9개월로는 부족하다. 아예 축구를 못하게 막아버려라"라는 지경까지 치닫았는데, [[알렉스 퍼거슨]]이 직접 나서서 칸토나를 두둔해주었다. 사실 이 때는 퍼거슨도 칸토나를 포기하려고 했으나, 아내 캐시의 만류로 생각을 바꾸어 그를 남기기로 했던 것이다. [[멘탈]]이 글러먹었거나, 팀 전술에 도움이 되지 않는 선수를 가차없이 내치는 퍼거슨 감독이 직접 총대를 메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이자, 은퇴를 시사하던 칸토나도 무언가를 느꼈는지, 9개월의 공백기 동안 [[인터 밀란]]이 적극적으로 칸토나를 영입하려 애썼으나 이 때 칸토나는 그 유명한 '''"나는 맨체스터에 뼈를 묻겠다"'''라는 한 마디만을 남겨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정말로 맨유에서 은퇴를 했다. 칸토나에게 쿵푸 킥을 맞은 시먼스도 문제가 있는데, 2007년 포포투 지가 축구사 유명한 사건의 중심 인물들을 취재하면서 그를 취재했을 때 그도 평생 축구 경기장 출입 금지 처벌을 받았다고 한다. 왜 출입 금지 처분을 받았냐 하면, 칸토나에게 "Fu*k off back to France, you French motherfu*ker" 라고 욕을 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다른 면에서도 문제가 좀 많은 인물이었다고 한다. 12년이 지난 당시에도 칸토나에 대해 안 좋게 평하기도 했다. 칸토나는 그 후 인터뷰에서 쿵푸 킥 사건은 나의 커리어에서 가장 즐거운 순간이었다고 자평하면서 축구장에 있어서는 안 될 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걷어찬 것이라고 밝히며 여전한 멘탈을 자랑했다... 하지만 기자가 다른 선수들에게도 그런식으로 행동하라고 추천하겠냐고 물어봤을때는 손사래를 쳤다.[[http://www.telegraph.co.uk/sport/football/teams/manchester-united/8361054/Eric-Cantona-kung-fu-kick-on-hooligan-was-like-a-dream-for-some-fans.html|#]] 시먼스는 이 당시에 자신을 걷어찬 칸토나에게 맞대응을 하려다 되려 칸토나에게 주먹질로 추가 폭행을 당했다. [[파일:external/i1.manchestereveningnews.co.uk/C_71_article_1420239_image_list_image_list_item_0_image.jpg]] 2011년에 촬영된 시먼스. 아직도 버릇을 못 고쳤는지 자신의 아들이 뛰는 축구팀의 감독에게 아들을 기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난입해서 고래고래 쌍욕을 하다 연행까지 당했고 불구속 기소되었다. 그래서 그 건으로 재판에 출석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속사정과는 별개로 쿵푸 킥이라는 대응이 최악 중 최악이었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심지어 퍼거슨은 십년이 더 넘은 뒤에도, 정확히는 감독 은퇴 뒤에도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이 일이 언급되자 한숨을 푹 쉬고 등을 뒤로 젖혔다. 강철 같은 퍼거슨의 멘탈을 으깨버리다 못해 [[트라우마]]를 주는 위업을 달성한 셈이다.[* 물론, 그 일에 있어서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는 좋게 하는 칸토나도 다른 선수들에게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으로 보아, 그 역시도 이 일에 대해서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 같다.] ==== 이후의 경력 ==== 칸토나가 빠진 94-95 시즌의 9개월동안 맨유는 결국 리그 우승을 [[블랙번 로버스]]에게 빼앗기고, FA컵 우승은 에버튼에게 빼앗기는 등 한끗발 약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칸토나가 복귀하자마자 다시금 시즌 더블을 기록한다.[* 공교롭게도, 에릭 칸토나가 부재했던 이 시즌이 블랙번 로버스의 마지막 우승이었다. 당시 블랙번의 핵심 선수는 그 유명한 [[앨런 시어러]]와 크리스 서튼이었다.] FA컵 결승전에서의 결승골을 기록했다. 1996-97시즌에는 팀의 주장이 되었는데, 비영국인으로서 맨유에서 처음 주장이 되었다. 이 시즌에도 칸토나와 맨유는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 은퇴 === > '''나는 팬들이 나의 이름을 연호하는 노랫소리가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내일 그 소리가 멈출까 봐 두려웠다.''' 그런데 1997년 5월 11일. 칸토나는 느닷없이 은퇴를 선언한다. 당시 그의 나이는 '''31세.''' 결코 많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은퇴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박수칠 때 떠나라|정상에서 멈추고 싶다]]'''라는 이유였다. 그렇다고 거창한 기자회견이나 은퇴식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구단 홈페이지에 깨작 글귀만을 남겨놨을 뿐이었다. 결코 깎아내릴 수 없었던 올드 트래포드의 왕이 무대에서 내려가던 순간이었다. 트로피야 들어올릴 만큼은 들어봤으니 별 미련도 없었던 듯하다.[* 다만, 2년만 더 뛰었으면 그 유명한 [[트레블]]의 일원이 되어 [[빅 이어]]도 들어봤을 것이라는게 팬들이 아쉬워하는 점. 근데 재밌게도 [[캄 노우의 기적(1999년)|캄 노우의 기적]]에서 챔스 우승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선수가 [[테디 셰링엄]]으로 교체선수로 들어와 동점골을 넣음과 역전골까지 어시스트했는데 칸토나의 대체자로 영입된게 셰링엄이었다.] === [[비치사커]] === 축구에서 은퇴한 1997년 이후에는 비치사커에 입문하여 프랑스 대표팀의 감독 겸 주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선수로는 2005년까지 플레이하여 [[FIFA 비치사커 월드컵]] 첫 대회에서 프랑스를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이후에도 2011년까지 감독으로 팀을 이끌었다. == 은퇴 이후 == 은퇴한 후 20년이 넘게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도 칸토나는 맨유 역대 최고의 선수이자 최고의 주장 반열에 들고 있으며, 그 짧지 않은 커리어 속에서도 빛을 발한 건 맨유에서의 5년 남짓한 시간이었음에도 그는 너무도 당연하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로 손꼽히고 있다. 2006년 당시 [[감독]]으로도, [[코치]]로도 아닌 '''"[[선수]]"로서 복귀를 바라는''' 클럽 역대 최고의 선수를 뽑는 투표(유나이티드 매거진 실시)에서 보란듯이 1위에 뽑히는 기염을 토하는 것을 보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이 에릭 칸토나라는 선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여실히 드러나는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2011년 유나이티드 매거진에 게재된 역대 최고 선수 투표에서도 [[라이언 긱스]]에 이은 2위에 올랐다.[* 일반적으로 맨유의 역사를 대표하는 선수로 인식되는 [[바비 찰튼]](동 투표에서 4위)이나 라이언 긱스가 맨유에 평생을 바친 플레이어임을 고려하면 그와 함께 거론되는 칸토나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짧지만 얼마나 강한 임팩트를 남겼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심지어 호날두는 팀의 리더도, 본인의 전성기도 아니었다.) 한편 맨유 역대 최고의 주장은 최장기간 재임한 [[브라이언 롭슨]] 쪽을 좀 더 쳐주는 듯.] 게다가 단순히 실력과 성깔(…)만 있는게 아니고 나름의 축구관이 확고한 선수였으며 그만의 카리스마가 있었다. 때문에 천하의 퍼거슨 감독도 칸토나가 자기 식으로 훈련하면서 행동하는 것을 어느 정도 묵인해주었고 둘이서 축구에 관해 토론을 할 정도였다. 어쨌든 둘은 서로를 아주 높이 평가해서 서로를 높이 띄워주는 인터뷰를 많이 한다. 칸토나 왈, "퍼거슨은 일종의 천재."[* 퍼거슨이 아팠던 당시 인터뷰에서는 "지금은 퍼기 타임, 언젠가 꼭 일어나실 거라 믿는다."라며 쾌유를 빌기도 하였다.] 한편, 에릭 칸토나는 현역 은퇴 이후 여러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으며, 더 이상 축구계에서 일을 하지 않고 있다가 미국 [[NASL]] [[뉴욕 코스모스]]의 단장직에 취임하여 2012년까지 축구행정가로 활동하였고, 지금은 다시 축구계에서 손을 떼고 있다. == 플레이 스타일 == [youtube(AlAtowG1tF4)] [youtube(dRgBKPQw3JU)] 처음 보는 사람들은, 척 보기에 둔중한 몸집과 떡대로 인해 [[헤더#s-4|타겟형 스트라이커]]가 아닌가 하는 생각들을 많이 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칸토나는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테크니션이었고 그 플레이스타일은 오히려 [[세컨드 스트라이커]]에 가까웠다. 붉은 유니폼을 입고 찍은 스탯이 182경기 82골 66어시였음을 생각해보면 득점은 물론이고 어시스트까지 완벽했다는 뜻이다. 전통적인 최전방 공격수와 플레이메이커 포지션에서의 플레이를 모두 소화할 수 있었던 선수였다. 물론 명성에 비해, 또 비슷한 클래스(라 여겨지는)의 선수들에 비해 부족한 스탯[* 물론 객관적으로 볼 때, 당시 기준으로는 더더욱 괴수같은 스탯 임은 사실이다.]임은 사실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발롱도르 3위를 할 정도였던 이유는 그의 해결사 능력 덕분이다. 리즈 유나이티드 첫 시즌에 리즈를 17년 만에 리그 우승시킨 것과[* EPL까지 통틀어 마지막 리그 우승] 맨유에서의 5시즌 중 4시즌을 우승시킨 것이 그 증거. 그 중 두번이 더블이요, '''[[UEFA 챔피언스 리그|챔피언스리그]] 4강'''도 올려보냈다. 챔스 4강 한번이 왜 중요한 것이냐면 당시 EPL은 [[헤이젤 참사]]로 받은 징계의 여파가 사라지지 않은 상태로 출범해서 모든 EPL 팀들의 유럽대항전 성적이 낮았다. 그런 맨유가, 즉 [[EPL]]이 챔스에서 재기하는데의 큰 역할을 한 것. 당시 긱스를 제외한 퍼기의 아이들이 모두 불완전한 상태인 걸 감안하면 더욱 대단하다. 경기력에서도 해결사 기질이 빛을 발했다. 대표적인 것이 복귀전인 리버풀전 득점과 FA컵 리버풀전 득점 등 더비나 빅매치에서의 중요한 골을 넣었다. 당시 맨유팬들은 결승골이나 역전골이 터지면 누군지 구태여 묻지도 않았다고 한다. "당연히 칸토나일 테니까."라고 믿었기 때문에. 지금의 [[웨인 루니]]와 비슷하다면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EPL 출범과 동시에 호흡을 맞춘 [[라이언 긱스]]와 이때부터 완벽한 짝짜꿍을 선보였으며, 긱스가 왼쪽을 초토화시킨 후 칸토나에게 어떻게든 공을 넘겨주면 칸토나는 다시 최전방을 초토화시키고 골을 때려넣었다. 그 외의 능력으론 패싱력도 뛰어났고 그만큼 패스도 즐겼다.[* 때문에 상술된 기록처럼 어시스트가 어마어마하다.] [[칩슛]]을 장난아니게 잘 찼다. 그의 인생골이자 EPL 역대 최고의 골 중 하나로 사각지대로 빨려들어가는 유명한 칩샷골이 있다. == 기록 == === 대회 기록 === *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1988~1991) * [[리그 1|디비지옹 1]][* 리그 1 출범 이전 명칭]: 1988-89, 1990-91 * [[몽펠리에 HSC]] (1989~1990) * [[쿠프 드 프랑스]]: 1989-90 * [[리즈 유나이티드 FC]] (1992) * [[프리미어 리그|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프리미어 리그 출범 이전 명칭]: 1991-92 * [[FA 커뮤니티 실드|채리티 실드]]: 1992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92~1997) * [[프리미어 리그]]: 1992-93, 1993-94, 1995-96, 1996-97 * [[FA컵(잉글랜드)|FA컵]]: 1993-94, 1995-96 * [[FA 커뮤니티 실드|채리티 실드]]: 1993, 1994, 1996 *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 [[UEFA U-21 챔피언십]]: 1988 * 프랑스 비치사커 국가대표팀 * 유로 비치사커 리그: 2004 * FIFA 비치사커 월드컵: 2005[* 둘 다 선수 겸 감독으로 이루었다.] === 개인 수상 === * [[발롱도르]] 3위: 1993 * [[리그 1|디비지옹 1]] 올해의 신인: 1987 * [[PFA 올해의 선수]]: 1993-94 * [[PFA 올해의 팀]]: 1993-94 * [[FWA 올해의 선수]]: 1995-96 *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 1996년 3월 * [[프리미어 리그]] 도움왕: 1992-93, 1996-97 * 프리미어 리그 10주년 베스트 XI (1992~2002) * 프리미어 리그 10주년 최우수 외국인 선수 (1992~2002) * PFA 세기의 팀 (1907~2007) * BBC 이달의 골: 1994년 2월, 1996년 12월 * 맷 버스비 올해의 선수: 1993-94, 1995-96 * [[옹즈도르]]: 1996 * [[옹즈 드 옹즈]]: 1996 * ESM 올해의 팀: 1995-96 * [[FIFA 100]]: 2004 *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 2002 * 풋볼 리그 레전드 100인 * 골든풋: 2012 * UEFA 회장상: 2019 == 기타 == * 골을 넣은 뒤, 기뻐서 방방 뛰는 여타 플레이어들과는 달리 칸토나의 골 세레모니는 그야말로 특별했다. 옷깃을 칼같이 잡아 세운 뒤 무표정한 얼굴로 관중들을 한번 슥 훓어보는데[* [[에릭 칸토나#s-4|네번째 항목]]에 기술된 [[https://youtu.be/dRgBKPQw3JU?t=295|두번째 동영상 마지막 장면 참조.]] 매번 그랬던 건 아니고 FA 컵 결승골을 리버풀 상대로 성공시켰을 때나 중요한 경기에서 극적인 골을 성공시켰을 때는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그냥 기뻐날뛰는 세레모니를 했다.] 칸토나의 그 작렬하는 카리스마와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켜 '칸토나=옷깃'이라는 공식마저 성립되었다. 그리고 그 세레머니에 감명을 받은 [[박건하]]선수도 골을 넣은 후에는 옷깃 세레머니를 했다. [youtube(UBODWlCdZW4, start=71s)] [[1996년]] [[나이키]]의 CF 중 하나인 Good vs. Evil 에서는 슛을 차기 전 옷깃을 세운 후 불꽃슛을 날리는데, 당시 해외축구 방송이 드물어 잘 모르는 사람도 많았지만 저 CF로 그의 폭풍간지만큼은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다. * 소싯적은 물론이요 나이를 먹고서도 여전한 다혈질적인 성격이, [[맨유]]에서는 [[군기반장|팀 전체를 규합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EPL 출범 때 이미 데뷔하여 EPL 짬밥은 칸토나와 동급이었던 [[라이언 긱스|긱스]]야 그렇다 치더라도, 당시 갓 유스에서 올라왔던 "퍼기의 아이들"이 함부로 기어오르지 못한 것은 그야말로 칸토나의 [[카리스마]]가 지대했다는 분석이다. [[데이비드 베컴]], [[폴 스콜스]], [[게리 네빌]] 등이 멋모르고 나대지 못하도록 했다고. 또다른 개차반으로 유명한 [[로이 킨]]도 칸토나에겐 찍소리 못했다 하니.[* 다만, 로이 킨의 자서전에 쓰인 [[스티브 브루스]]의 15,000 파운드짜리 수표와 관련 된 일화에서는 어떠한 결과가 나올 지 모른 채 내기에 참여한 스콜스와 [[니키 버트]]의 용기를 칭찬했다. 그리고 본인이 내기에서 승리해 받은 12,000파운드 짜리 수표를 집에서 두 장으로 나눠 스콜스와 버트의 이름을 적고 그 둘에게 준 것으로 보아 강한 성격만큼이나 선수들에게 감동을 주는 법 또한 잘 알고 있던 선수였던 걸로 보인다. 한 팬이 기억하기로는 칸토나와 로이 킨 모두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유명하지만 로이 킨은 단순하게 다혈질스러운 성격이었다면 칸토나는 다혈질 적이지만 사람의 심리 상태또한 잘 파악하고 잘 이용할 줄 아는 영리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 불같은 성질로 유명한 칸토나지만 팬들에게는 매우 친절했다. 솔샤르가 말하길 후배들한테 팬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조언을 한 게 칸토나였다고 한다. 요약하면 "팬들과 직접 만날 기회가 있다면 이걸 명심해라. 대부분의 팬들은 앞으로 평생 너희와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직접 마주 볼 일은 없을거다. 아마 본다고 해봐야 30초 정도가 고작이겠지. 그 30초동안 너희가 그 사람들에게 평생 남을 인상을 심어주는거다. 매번 우리를 응원해주러 와주는 그 고마운 사람들에게 말이다. 그냥 우리가 가볍게 웃으며 싸인해 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잊지못할 추억이 될 수 있다. 그게 싫다고 그냥 평생 개새끼로 남고 싶으면 그 판단은 네 몫이다." 라는 말인데 솔샤르는 크게 감명받았다고 한다.[[https://www.mirror.co.uk/sport/football/news/lesson-eric-cantona-taught-ole-21031007|#]] * 은퇴 후에도 계속 축구계에 몸담고 있었는데, 각종 미디어의 인터뷰는 물론이요 각종 광고, 축구 영화에도 출연했다. * 배우로써 경력도 은근 있는 편이다. [[1995년]] 프랑스 영화 Happiness Is in the Field로 데뷔해 작은 역들을 맡다가 [[2009년]] 좌파 영화로 유명한 [[켄 로치]] 감독의 영화 <[[에릭을 찾아서]]>의 타이틀 롤을 맡았다. 이 영화는 그 해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해 상당히 괜찮은 코메디 영화라는 평을 들었다. 덕택에 에릭 칸토나는 그 힘들다는 칸 영화제 레드 카펫도 밟았다. 이후로도 프랑스 영화나 영국 영화에 소소하게 출연하고 있는 중. [[2015년]] 하반기에는 [[디즈니]]-[[픽사]]의 장편 애니메이션 [[굿 다이노]]의 프랑스어 더빙판에서 포레스트 우드부시 역의 목소리를 맡기도 했다. 이외 얀 곤잘레스의 유 앤 더 나잇에도 출연하는등 프랑스 영화 출연 비율이 높은 편. 리암 갤러거--맨시티 서포터--의 once라는 노래의 뮤직비디오에 주연 배우로 등장하였다. * 상기한 바와 같이 2010년 재창설한 뉴욕 코스모스에서 초기 단장직을 맡았다.[* 참고로 이 팀의 명예 회장은 구 코스모스의 스타 플레이어였던 [[펠레]]. 구단 관계자들을 축구계의 전설들로 하나하나 채워가며 팀 리빌딩을 시도했으나, 칸토나에게도 실질적인 권한은 주어지지 않아 코스모스가 첫 경기를 치르기도 전에 클럽을 떠났다. ] [[2011년]] 프리시즌 기간에 [[폴 스콜스]]의 은퇴 기념을 위해 마련된 맨유 vs 뉴욕 코스모스 간의 친선전 때 10여 년 만에 올드 트래포드를 방문했다. 참고로 스콜스 은퇴 경기에 칸토나가 초청된 것은 원래 스콜스가 칸토나를 잘 따랐던 것도 있지만, 남에게 주목받기 싫어하는 스콜스가 '칸토나가 오면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될 테니 나는 [[아웃 오브 안중]]이 되겠지.'라는 노림수를 편 것이었다고 직접 인터뷰에서 밝혔다. * [[2012년]] 프랑스 대선에 출마한다는 기사가 떴다. * 박지성과 함께 퍼거슨의 헤어드라이어를 맞지 않은 유이한 선수였다.[* https://soccerline.kr/board/15702251?searchWindow=&searchType=0&searchText=&categoryDepth01=1&page=1] 칸토나는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으며, 그 철학에서 어긋나는 순간 바로 그 성질머리가 튀어나오는 사람이라, 퍼거슨이 헤어드라이어를 시전했다면 칸토나는 점점 비뚤어져 둘의 관계는 나빠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 맨시티가 44년 만의 우승을 확정지은 순간에 칸토나의 쿵푸 킥이 그의 거실에 있던 커피 테이블에 작렬했고, 아들은 그걸 보며 아버지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http://www.goal.com/en-gb/news/2896/premier-league/2012/07/23/3259643/cantona-kung-fu-kicked-coffee-table-after-manchester-city?|#]] * 전성기를 EPL 에서 보내서 그런지는 몰라도 EPL 뿐만 아니라 잉글랜드 축구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유로 2016]] 때는 공공연하게 "유로에서 나는 잉글랜드를 응원한다. 축구인으로서는 나에게 잉글랜드의 피가 흐른다." 고 인터뷰에서 얘기했으며 [[https://www.theguardian.com/football/2016/may/24/eric-cantona-mourinho-manchester-united-guardiola|#]] 잉글랜드가 아이슬랜드에게 패배했을때는 완전 빡돌아서 내가 감독하면 저딴 일은 절대 없을거다 라고 하며 자기 잉글랜드 국대 감독 시켜달라는 비디오를 올리기도 했다. [[http://www.dailymail.co.uk/sport/football/article-3669901/Manchester-United-icon-Eric-Cantona-makes-pitch-England-boss-pledges-never-lose-against-small-frozen-island.html|#]] * 은퇴 이후에도 종종 맨유 지지 발언을 하며 맨유 라이벌들을 조롱하는 발언을 하는데 [[루이스 엔리케]]가 휴식을 위해 [[FC 바르셀로나|바르셀로나]] 코치직에서 나간다고 하자 "쉬고 싶으면 [[아스날 FC|아스날]] 코치 하면 되는거 아니냐? 거긴 딱 쉬긴 좋다" 라는 발언으로 거너 들을 벙찌게 만들었다. [[http://www.goal.com/en/news/8/main/2017/03/07/33399982/perfect-destination-for-tired-luis-enrique-cantona-has|#]] * 취미가 시 쓰기와 읽기라고 한다. 실제로 축구황제 [[펠레]]에 대한 평가를 '어두운 방을 밝게 밝힐 수 있는 예술가. 1970 월드컵 결승전에서 펠레로부터 카를로스 알베르토에게로 이어진 패스는 랭보의 시와 같았다.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보는 이들에게 영원함을 느끼게 한다.'로 했을 정도로 시적인 표현을 즐긴다. * 맨체스터 테러가 났을 때 유명인사 중 제일 먼저 영상 메시지를 보낸 사람 중 하나이다. 진심으로 슬퍼하며 유가족들에게 조의를 표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평소에 불같은 성격인 칸토나의 부드러운 면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영상.[[https://www.facebook.com/Channel4News/videos/eric-cantona-tribute-to-manchester-terror-victims/10154868019776939/|#]] * 진보적 성향이 강하다. [[http://www.footballi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99200|금융 문제와 관련해서 빈부격차와 불공정을 비판한 것도 있고]] 좌파영화 감독인 [[켄 로치]]의 영화에도 꾸준히 출연하고 있다. * [[똥군기]]로 인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경기가 끝날 때마다 담배를 물고 [[라이언 긱스]]를 상습적으로 폭행했다는 사실은 유명하며, 라커룸에서도 후배 선수들에게 군기를 과시했다는 증언도 많이 나왔다. 똥군기가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은 2000년대 후반에서야 생겨났고, 칸토나에 수시로 당했었던 [[라이언 긱스]]는 자신이 고참 선수가 되면서 권력이 생기자 라커룸에서의 똥군기를 없애 놓았다. * 2018-2019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 2차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맨유]]가 [[파리 생제르망 FC|PSG]]를 상대로 승리하고 8강에 진출하자 [[알렉스 퍼거슨]]과 [[올레 군나르 솔샤르]]와 함께 7일 승리를 기념하는 사진을 찍었다. [[파일:323367_319205_3244.png]] * 2018-2019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 2차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맨유]]가 [[파리 생제르망 FC|PSG]]를 꺾은 후 8강에 진출한 이후 [[네이마르 주니오르|네이마르]]가 경기장으로 내려가 주심을 비난하는 등 화를 참지 못하고 난동을 부리자 맨유 라커룸으로 가던 칸토나는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하며 비판했다. 칸토나의 행동을 본 네이마르의 아버지는 화가 났고, 양 측은 한동안 신경전을 벌였다. 그는 경기 후 자신의 SNS에 네이마르의 사진을 게재한 뒤 “바비큐처럼, 너는 햇빛이 내리비치는 봄이 와야 나오지”라고 조롱했다. 이는 네이마르가 겨울에 자주 부상을 당하고 봄에 돌아오는 것을 바비큐 파티가 많은 봄에 빗대어 비꼰 것이다. * [[https://soccerline.kr/board/15702251?searchWindow=&searchType=0&searchText=%ED%8C%94%EB%B6%88%EC%B6%9C&categoryDepth01=1&page=0|퍼거슨을 팔불출로 만든 남자]] * [[리암 갤러거]]의 노래 Once 뮤비에 왕의 역할로 등장한다. [[https://youtu.be/MDhiQfekdxo|링크]] 참고로 리암은 열렬한 [[맨시티]] 팬이다. [youtube(tuLAn9adQpI, start=92s)] * [[피파 21]] 트레일러에 등장하며 신규 아이콘 출시가 확정되었다. [[파일:골닷컴 선정 시대별 공격수 5인.jpg]] * 골닷컴에서 시대별 최고의 공격수 5인을 선정했는데, 1990년대 공격수들 중 5위에 이름을 올렸다. [각주] [[분류:1966년 출생]][[분류:프랑스의 축구선수]][[분류:AJ 오세르/은퇴, 이적]][[분류: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은퇴, 이적]][[분류:FC 지롱댕 드 보르도/은퇴, 이적]][[분류:몽펠리에 HSC/은퇴, 이적]][[분류:님 올랭피크/은퇴, 이적]][[분류:리즈 유나이티드 FC/은퇴, 이적]][[분류: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은퇴, 이적]][[분류:UEFA 유로 1992 참가 선수]][[분류:축구행정가]][[분류:축구경영인]][[분류:프랑스 남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