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독일 국방군/원수)] ||||<tablealign=right><tablebordercolor=#666><tablewidth=330> [[파일:csm_969x_751fbda8c4.jpg|width=100%]] |||| ||<#666> {{{#FFF 이름}}} ||<(> '''Job Wilhelm Georg Erdmann Erwin von Witzleben'''[br]욥 빌헬름 게오르크 에르트만 에르빈 폰 비츨레벤[* [[외래어 표기법]]대로는 '폰비츨레벤'이 된다. 외래어 표기법상 [[로망스어군|로망어]]와 [[게르만어]]권 인명의 전치사 및 관사는 발음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고 뒤 요소와 붙여 적는다.] || ||<#666> {{{#FFF 출생}}} ||<(> [[1881년]] [[12월 4일]][br]{{{-1 [[프로이센 왕국]] [[슐레지엔]]주 [[브레슬라우]]}}} || ||<#666> {{{#FFF 사망}}} ||<(> [[1944년]] [[8월 8일]][br]{{{-1 [[나치 독일]] [[베를린]] 플뢰트첸지 교도소}}} || ||<#666> {{{#FFF 복무}}} ||<(> [[독일 국방군]] || ||<#666> {{{#FFF 최종 계급}}} ||<(> [[원수(계급)|원수]](Generalfeldmarschall) || ||<#666> {{{#FFF 주요 참전}}} ||<(> • [[제1차 세계 대전]] [[베르됭 전투]] [[상파뉴 전투]] • [[제2차 세계 대전]] [[프랑스 침공]] [[히틀러 암살 미수사건]] || ||<#666> {{{#FFF 주요 서훈}}} ||<(>[[철십자 훈장|기사십자 철십자 훈장]] || [[파일:erwinnfon.jpg|height=350]] [[파일:d8fde95695a00df903c1d738385a1065.jpg|height=350]] ▲ 원수, 상급대장 시절의 비츨레벤 [[파일:786px-Bundesarchiv_Bild_146II-728,_Berlin,_Olympiade,_Hitler,_v__Witzleben,_Dietrich.jpg|width=510]] ▲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왼쪽이 [[아돌프 히틀러]], 가운데가 보병대장 시절의 비츨레벤, 오른쪽이 [[슈츠슈타펠|SS]] 최상급집단지도자였던 [[요제프 디트리히]]다. [목차] == 개요 == 독일의 육군 장교이자, 제2차 세계 대전의 독일군 사령관으로, [[히틀러 암살 미수사건]]의 공모자이다. 1940년에 원수(Generalfeldmarschall)가 되었다. == 생애 == 1881년 [[프로이센 왕국]] [[슐레지엔]]주의 [[브레슬라우]][* 현 폴란드 [[브로츠와프]].]에서 태어났다. 부친 게오르크 폰 비츨레벤은 프로이센 왕국군대의 대위였다. 그리고 1901년 [[독일 제국군]]에 입대하고 1차대전에서 [[베르됭 전투]], 상파뉴 전투를 겪으며 큰 부상을 입게되고, 1급과 2급 [[철십자 훈장]]을 수여받게 된다. 그뒤 독일 참모 훈련을 마치고 121사단으로 보내진다. [[전간기]] 동안인 1923년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그는 소령으로 진급하고, 1929년엔 중령으로 진급한다. 2차대전이 발발하자 비츨레벤은 상급대장으로 진급하여 서부 전선의 1군을 맡았다. [[프랑스 침공]] 당시 C집단군에 소속되어 [[마지노선]]을 돌파하는 임무를 수행하였고 3일만에 프랑스의 몇 사단들을 항복시키는 전공을 기록하였다. 이때의 공로로 비츨레벤은 기사십자 철십자 훈장을 수여받았다. 프랑스 침공의 대승으로 히틀러는 원수 진급 대잔치[* 독일 국방군 대부분의 원수들이 이때 진급한다.][* 영국의 군사학자 존 키건 경은 이를 두고 히틀러의 노골적인 나폴레옹 흉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하였다.]를 치루는데 이때 비츨레벤도 원수로 진급한다. 이후 1941년,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의 후임으로 서부전선사령관으로 취임하였으나 1년만에 건강상의 이유로 사직하였는데 [[바르바로사 작전]]의 개시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피력하였다는 이유로 해임당하였다는 견해도 있다. 이후 비츨레벤은 퇴역군인으로써 지내는 듯 했지만... [[히틀러 암살 미수사건]]에 포섭되어 쿠데타의 성공 이후 [[독일 국방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되는 계획에 동의하였다. 얼굴마담 역할이었기 때문에 비츨레벤이 크게 기여한 것은 없었고 암살이 실패로 돌아가자 국방군에 체포되어 [[롤란트 프라이슬러 |군사재판에 회부]]된다. [youtube(SKOCmBXrVY8)] ▲ 영상의 첫번째 인물이 비츨레벤이다. 체포 당시 인사사령부에서 군에서 추방되었기 때문에 민간인 신분이었으며 군복이 아닌 평복을 입고 있다. ~~그러지 않았더라도 군복을 입을 수 있지는 않았겠지만.~~ 이 재판을 맡은 판사는 바로 그 유명한 [[롤란트 프라이슬러]]이다. 군사재판에서 당연히 사형이 언도되었다. 원래 [[파울 요제프 괴벨스]]는 녹화된 재판 내용을 공개하려고 했었으나 비츨레벤이 끝까지 [[나치식 경례]]를 하였다는 점과 마지막에 했던 멘트 때문에 비공개로 결정하였다. > "지금은 우리를 처형시키지만, 3개월 후면 너희들이 성난 독일 국민들 손에 거리를 산 채로 끌려다니게 될 것이다." > ------ > ''1944년 8월 18일 군사재판에서''[* 이 말은 영화 [[작전명 발키리]] 마지막 장면에 나온다.] 비츨레벤은 재판이 끝나고 당일 교수형되었다. [[분류:독일제국군/군인]] [[분류:독일 국방군 원수]] [[분류:제1차 세계 대전/군인]] [[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 [[분류:1881년 출생]] [[분류:1944년 사망]] [[분류:교수형된 인물]] [[분류:반나치주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