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구 관련 인물(MLB)]] ||<table width=100%><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df4601><tablebgcolor=#df4601> '''{{{#ffffff 에디 머레이의 수상 이력}}}''' || ||<bgcolor=#fff,#19191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table align=center>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 ||<bgcolor=#d15809> '''[[1983년 월드 시리즈|{{{#ffffff 1983}}}]]''' || ---- [include(틀:볼티모어 오리올스 영구결번)] ---- ||<-2><bgcolor=#082574>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파일:MLB_logo.png|width=auto&height=20]]]]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white 명예의 전당}}}]] {{{#white 헌액자}}}''' || ||<-2> [[파일:external/baseballhall.org/Murray%20Eddie%20Plaque_NBL_0.png|width=250]] || ||<-2> '''[[http://baseballhall.org/hof/Murray-Eddie|에디 머레이]]''' || || 헌액 연도 || [[2003년]] || || 헌액 방식 || 기자단(BBWAA) 투표 || || 투표 결과 || 85.3% (1회) || ---- ||<-5><table align=center><tablewidth=100%><bgcolor=#ed174b> [[아메리칸 리그|[[파일:Logo_of_AL_Alt.png|width=auto&height=20]]]] '''{{{#ffffff 1977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신인왕}}}''' || ||<width=30%> [[마크 피드리치]] [br]([[디트로이트 타이거스]]) || → ||<width=30%> '''에디 머레이[br]([[볼티모어 오리올스]])''' || → ||<width=30%> 루 휘태커[br]([[디트로이트 타이거스]]) || ---- ||<-5><table align=center><tablewidth=100%><bgcolor=#ed174b> [[아메리칸 리그|[[파일:Logo_of_AL_Alt.png|width=auto&height=20]]]] '''{{{#ffffff 1983 ~ 1984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1루수 실버 슬러거}}}''' || ||<width=30%> 시슬 쿠퍼[br]([[밀워키 브루어스]]) || → ||<width=30%> '''에디 머레이[br]([[볼티모어 오리올스]])''' || → ||<width=30%> [[돈 매팅리]][br]([[뉴욕 양키스]]) || ---- ||<-5><table align=center><tablewidth=100%><bgcolor=#004785> [[내셔널 리그|[[파일:external/oi67.tinypic.com/mkfx5j.png|width=20]]]] '''{{{#ffffff 1990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1루수 부문 실버 슬러거}}}''' || ||<width=30%> 윌 클락[br]([[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 ||<width=30%> '''에디 머레이[br]([[로스앤젤레스 다저스]])''' || → ||<width=30%> 윌 클락[br]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 ||<-5><table align=center><tablewidth=100%><bgcolor=#ed174b> [[아메리칸 리그|[[파일:Logo_of_AL_Alt.png|width=auto&height=20]]]] '''{{{#ffffff 1982 ~ 1984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1루수 골드 글러브}}}''' || ||<width=30%> 마이크 스콰이어스[br]([[시카고 화이트삭스]]) || → ||<width=30%> '''에디 머레이[br]([[볼티모어 오리올스]])''' || → ||<width=30%> [[돈 매팅리]][br]([[뉴욕 양키스]]) || }}} || ---- ||<-2><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91919><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df4601>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ddie Murray.jpg|width=100%]]}}} || ||<-2><colbgcolor=#df4601> '''{{{#ccac00 볼티모어 오리올스 No.33}}}''' || ||<-2><bgcolor=#000000> '''{{{#ffffff 에디 클라렌스 머레이 [br] (Eddie Clarence Murray)}}}''' || || '''{{{#ffffff 생년월일}}}''' || [[1956년]] [[2월 24일]] ([age(1956-02-24)]세) || || '''{{{#ffffff 국적}}}''' || [[파일:미국 국기.svg|width=30]] [[미국]] || || '''{{{#ffffff 출신지}}}''' || [[캘리포니아|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 || '''{{{#ffffff 포지션}}}''' || [[1루수]], [[지명타자]] || || '''{{{#ffffff 투타}}}''' || [[우투양타]] || || '''{{{#ffffff 프로 입단}}}''' || 1973년 드래프트 3라운드 전체 63번 ([[볼티모어 오리올스|BAL]]) || || '''{{{#ffffff 소속 구단}}}''' || '''[[볼티모어 오리올스]] (1977~1988)''' [br]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1989~1991) [br] [[뉴욕 메츠]] (1992~1993) [br]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1994~1996) [br] [[볼티모어 오리올스]] (1996) [br] [[애너하임 에인절스]] (1997) [br]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1997) || || '''{{{#ffffff 수상}}}''' || '''8회 올스타 선정 (1978, 1981~1986, 1991)''' [br] '''AL 신인왕 (1977)''' [br] '''월드시리즈 우승 (1983)''' [br] '''3회 실버슬러거 (1983, 1984, 1990)''' [br] '''3회 골드글러브 (1982~1984)''' || [목차] == 개요 ==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1루수이자 지명타자. 메이저리그에서 [[미키 맨틀]] 다음가는 [[스위치 히터]]로 평가받고 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대표하는 스타로 화려한 시즌은 많지 않지만 매번 꾸준한 활약으로 메이저리그에서 단 6명뿐인 '''500홈런 3,000안타'''를 달성한 타자다[* 이 6명 중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라파엘 팔메이로]]는 확실한 약쟁이이고, [[행크 애런]]과 [[윌리 메이스]]의 경우 암페타민 의혹이 있다. --암페타민의 경우 의사 처방이 있으면 일정량 복용은 가능하지만, 실제로 얼마나 복용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기에 의혹이 남은 것.-- 애런과 메이스의 시대에는 암페타민이 금지약물이 아니었으니까 의사 처방이 있었냐 복용량이 얼마였냐 같은 건 의미없는 논쟁이다. 다만 그들이 사전적 의미 그대로의 청정 타자였는지를 장담할 수 없을 뿐. 따라서 위의 6명 중 약물 의혹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타자는 에디 머레이와 [[알버트 푸홀스]]뿐이다.]. 스위치 히터로 이 기록을 달성한 선수는 그가 유일하다. 그래서 별명도 '''꾸준한 에디(Steady Eddie)'''. 통산 성적은 21시즌 동안 타율 0.287, 출루율 .359, 장타율 .476, OPS .836, 순장타율 .189, BB/K 0.88개, wRC+ 127, 504 홈런, 3255안타, 1917 타점을 기록했다. == 선수 생활 == 12남매의 8번째로 태어나서 어린 시절 리틀야구 코치인 클리퍼드 프릴로(Clifford Prelow)의 지도 아래 야구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일찌감치 프로 세계에 뛰어들어 1973년 드래프트에서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3라운드 지명을 받고 프로에 입문했다. 4년의 마이너 생활을 거친 후, 1977년 드디어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 오를 수 있었다. 신인 시절 160경기에 나와 0.283 27홈런 88타점이라는 수준급의 성적을 기록하면서 1977년 아메리칸리그 신인왕에 올랐다. 그 뒤로 볼티모어 시절 정말 꾸준한 활약을 펼치면서 팀의 주축으로 활약했다.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볼티모어는 강호로서 군림하는데, 그 때의 주역 중 한 사람으로 활약했다. 40홈런을 넘기는 화려한 시즌은 없었지만, 늘 25홈런 이상을 쳐 주는 타자로서 활약했다. 볼티모어에서 활약하면서 [[1983년 월드 시리즈|1983년 볼티모어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기여해서 우승 반지도 얻었다. 볼티모어 시절 꾸준한 활약을 펼친 후, 1988년 시즌 후 고향팀인 [[LA 다저스]]로 트레이드되었다. 여기서도 괜찮은 활약을 펼치면서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다가 1992년 [[뉴욕 메츠]]와 2년 계약을 맺었다. 또, 여기서도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면서 마지막으로 시즌 100타점을 기록했다. 다만 당시의 메츠는 워낙 약체여서 그의 활약이 별 도움을 주지 못했다. 노장이지만 꾸준했던 그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영입했고, 클리블랜드의 전성기 살인타선의 한 축으로 1995년 월드시리즈도 경험했다.[* 95년 월드시리즈 3차전에서는 연장 11회에 끝내기안타를 때렸다.] 1995년 6월 30일 클리블랜드에서 통산 3,000안타를 달성한 후, 친정팀인 볼티모어로 건너가서 마침내 1996년 9월 6일 500홈런 고지까지 달성했다.[* 딱 1년 전인 1995년 9월 6일은 그의 막역한 친구인 [[칼 립켄 주니어]]가 [[루 게릭]]의 연속경기출장 기록을 깬 날이다.] 그 뒤 다시 고향인 캘리포니아로 가서 한 시즌 선수 생활을 보낸 후, 은퇴했다. 은퇴 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LA 다저스]]에서 타격 코치 생활을 했다. 2003년 85.3%의 득표율로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첫 투표로 입성했다. 그의 등번호인 33번은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영구결번이다. ==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 * [[명예의 전당 통계|블랙잉크]], [[명예의 전당 통계|그레이잉크]], [[명예의 전당 통계|명예의 전당 모니터]], [[명예의 전당 통계|명예의 전당 스탠다드]] || ||블랙잉크||그레이잉크||HOF 모니터||HOF 스탠다드|| || 에디 머레이 || 11 || 181 || 154 || 56 || ||HOF 입성자 평균|| 27 || 144 || 100 || 50 || * [[명예의 전당 통계|JAWS]] - First Base (15th) || ||career WAR||7yr-peak WAR||JAWS|| || 에디 머레이 || 68.3 || 39.0 || 53.6 || ||1루수 HOF 입성자 평균|| 66.4 || 42.7 || 54.6 || == 스타일 == 한시즌에 40홈런을 가볍게 넘기는 장거리포 타자는 아니었다. 21시즌을 뛰면서 홈런왕과 타점왕 기록이 딱 1번. 그나마 이를 달성한 1981시즌에는 홈런왕치곤 꽤나 적은 22홈런(그것도 현재까지 [[MLB]] 최후의 30홈런 미만 홈런왕이다.)을 쳤는데 이 해는 시즌 도중 벌어진 선수협회 파업 때문에 시즌을 전후기로 나누어 열어야 할 정도로 리그가 엉망으로 진행되던 해였다. 파업으로 시즌이 엉망진창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그 해 [[아메리칸 리그]]에서 무려 공동 홈런왕이 에디 머레이를 포함해 '''4명(!!)'''이 나왔을 지경. 한 마디로 리그 전체를 압도하는 타자는 아니었다. 이를 증명하듯이 명예의 전당 입성의 지표 중 하나인 블랙잉크[* 그 타자가 얼마나 해당 부분에서 1위를 많이 했는지 보여주는 지표]는 명예의 전당 평균인 27에 미치지 못하는 11에 불과하다. 리그 MVP 투표에서도 겨우 2번만 2위를 한 것이 전부다. 선수 시절 30홈런을 넘긴 시즌도 다섯 번이고, 통산 500홈런 달성자 가운데 한시즌 최다홈런이 33개로 가장 낮다. 역대 메이저리그에서 500홈런을 달성한 27명 중 유일하게 '한 시즌 40홈런' 을 기록한 적이 없는 타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말 꾸준한 타자다. 이는 블랙잉크와는 반대로 HOF 평균을 가뿐히 넘어가는 그레이잉크만 봐도 잘 드러난다. 데뷔 후 단 여섯 시즌을 빼고 나머지 15시즌 동안은 모두 20홈런을 넘겼다. 한 시즌에 삼진을 100개 이상 당한 것이 신인 시절인 1977년이 전부. 나이 들어 쇠퇴하기 전까지는 준수한 선구안을 바탕으로 삼진과 비슷한 볼넷을 얻어 출루율이 상당한 타자였다. 언제나 150안타 이상은 기대할 수 있는 타자였고, 매년 30개 안밖의 2루타도 생산했던 타자였다. 그리고 이런 시즌이 거의 매년이었다. 그의 별명인 '''Steady Eddie'''처럼 화려하지는 않아도 늘 팀을 위해 제 몫을 다하는 타입이었음에 분명하다. 아울러 1루수로서 수비력도 나쁘지 않은 편이라서 젊은 시절에는 세 차례 골드글러브도 수상했다. 무엇보다 그는 스위치타자였다. 스위치타자 중에서 가장 으뜸인 선수가 최고의 파워를 자랑한 [[뉴욕 양키스]]의 [[미키 맨틀]]이라고 할 때, 가장 꾸준하고 정교했던 선수는 바로 에디 머레이였다. 미키 맨틀과 함께 스위치타자의 주요 공격 지표에 상위에 랭크되어 있는데, 특히 타점 부분에서는 스위치타자 통산 1위다.[* 스위치히터를 고려하지 않고, 그냥 메이저리그 전체 타자로 적용해도 그는 통산 타점 9위의 성적을 가지고 있다. 1,900타점을 넘는 대기록이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홈런 부분에서는 스위치타자 역대 2위. 한 경기에서 좌우타석에서 동시에 홈런을 친 기록이 11번으로 역대 2위. 아울러 희생플라이 부분에서 128개로 역시 역대 1위다.[* 흥미롭게도 2위는 절친 [[칼 립켄 주니어]]로 127개, 1개 차이이다. --우린 친하니까 기록도 하루차이로 만들고, 희생플라이도 하나차이로 만들어야 돼--] 19번의 만루홈런을 쳐서 역대 4위이며, 만루 찬스에서는 통산 타율 0.399, 통산 장타율 0.739, 통산 타점 298개다. 찬스에서는 정말 강했다는 소리. 따라서 그는 한 시대를 휩쓴 타자는 아니었지만 그가 뛴 시대에서 가장 꾸준한 타자였다고 평할 수 있다. 특히 스위치타자로서의 업적은 가장 빼어났다고 해도 좋다. [[분류:미국의 야구 선수]][[분류:1956년 출생]][[분류:캘리포니아 주 출신 인물]][[분류:내야수]][[분류:지명타자]][[분류:우투양타]][[분류:볼티모어 오리올스/은퇴, 이적]][[분류: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은퇴, 이적]][[분류:뉴욕 메츠/은퇴, 이적]][[분류: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은퇴, 이적]][[분류: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은퇴, 이적]][[분류: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