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external/gyeongju.museum.go.kr/pic_20111021154015_0_177.jpg]] ||<-2><tablealign=right><tablewidth=360><tablebgcolor=#315288><tablebordercolor=#315288><bgcolor=#fff> [[파일:정부상징.svg|width=28]] '''[[대한민국의 보물|{{{#f39100 대한민국 보물 제2010호}}}]]''' || ||<-2> {{{#fff {{{+1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br]{{{-1 慶州 人面文 圓瓦當}}}}}} || ||<-2>{{{#!wiki style="margin: -10px"; margin-top: -5px; margin-bottom: 16px" [include(틀:지도, 장소=국립경주박물관, 너비=100%, 높이=100%)]}}}|| ||<width=80> '''{{{#fff 소재지}}}''' ||<bgcolor=#fff> [[경상북도]] [[경주시]] || || '''{{{#fff 분류}}}''' ||<bgcolor=#fff> 유물 / 생활공예 / 토도자공예 || || '''{{{#fff 수량/면적}}}''' ||<bgcolor=#fff> 1점 || || '''{{{#fff 지정연도}}}''' ||<bgcolor=#fff> 2018년 11월 27일 || || '''{{{#fff 제작시기}}}''' ||<bgcolor=#fff> [[신라]] || [목차] == 소개 == '''신라의 미소'''로 유명한 [[신라]] 시대의 [[기와]] 유물이다. 한자로 인면문 수막새라고도 한다. 수막새는 목조건물의 [[처마]] 끝에 있는 무늬기와로, 본래는 신라시대 영묘사의 한 건물에 기와로서 부착되었던 것이다. [[경상북도]] [[경주시]] 탑정동 영묘사지에서 출토되었다. 본래 [[일제강점기]]에 경주 야마구치 의원에 근무하던 일본인 다나카 도시노부(田中敏信, 1905~1993)가 [[골동품]] 가게에서 가치를 알아보고 고가로 구입해 일본으로 반출했으나 광복 이후 여러 차례 설득 끝에 1972년 10월 국립경주박물관에 아무 보상 없이 기증해서 돌아온 환수 문화재의 모범적 사례이다. 예전부터 유명했지만 오랫동안 [[대한민국의 국보|국보]]나 [[대한민국의 보물|보물]]로 지정된 것도 아니었는데, 인상적인 푸근한 미소 덕분에 일반의 인지도는 대단히 높은 유물이다. 결국 2018년 11월 [[대한민국의 보물]]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10491123|제2010호로 지정되었다.]] 단순한 조형이지만 미소 지을 때의 눈과 주름의 모양을 잘 잡아내었다.--[[연서복체|( ͡° ͜ʖ ͡°)]]-- 둥근 수막새는 [[연꽃]] 무늬로 장식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건 특이하게 사람 표정을 넣었다. 아래쪽이 파손됐는데, 동그란 기와 형태가 멀쩡했으면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망가져서 유명해진 것들|이렇게 유명해지지는]] 않았을 듯하다.[* [[고대 그리스]]의 [[조각]] 밀로의 비너스가 두 팔이 떨어져 나가서 더 눈에 띄는 것과 마찬가지다.] 장식기와에 인면문을 새기는 기법은 의외로 신라에서 나름대로 성행하던 기법일 수도 있다. 그 예로 [[황룡사]]에서 발굴된 치미에는 작은 인면문이 여러개 새겨져있다. == 사용례 == * 경주 시내 곳곳에서 보이고 [[경주빵]] 상자나 [[경주시 시내버스]] 그룹인 [[새천년미소]] 등 이 유물을 따 온 이미지가 굉장히 많다. 진품은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 [[LG]]의 로고가 이 수막새에서 따왔다고 한다. >LG의 로고는 ‘Lucky’와 ‘Goldstar’의 앞 글자를 결합해 만들었다.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이 과거 ‘럭키’의 발음을 따 락히(樂喜) 화학공업사를 만들었고, 이후 금성사를 설립하면서 두 기업의 사명을 합해 ‘럭키금성’으로 이어졌다. LG 역시 세계화 추세에 맞춰 1995년 현재의 로고를 제작했다. L과 G를 결합한 이 로고 또한 L&M[* 미국의 CI 전문 회사로 [[삼성그룹]]의 CI도 이곳에서 제작했다.]에서 제작했는데, 당시 디자인 콘셉트는 ‘미래의 얼굴’이었다고 한다. '''L&M사의 디자이너는 ‘신라의 미소’로 잘 알려져 있는 신라시대 유물인 얼굴무늬 수막새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로고 문양을 보면 웃는 얼굴이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 >{{{#!wiki style="text-align:right" '''[[조선일보]]. [[http://danmee.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2/19/2014021902821.html|밀리미터까지 계산하는 로고에 담긴 비밀]]'''}}} == 바깥 고리 == * [[https://ko.wikipedia.org/wiki/경주_얼굴무늬_수막새|한국어 위키백과: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790417&cid=49234&categoryId=49234|문화원형백과: 인면문원와당(얼굴무늬수막새)]]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2007270909001|경향신문 기사: 하마터면 영영 잃어버릴 뻔했던 '신라의 미소'..얼굴무늬 수막새의 조각가가 있다?]] == 보물 제2010호 == *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2,20100000,37&pageNo=5_1_1_0|문화재청 홈페이지: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 (慶州 人面文 圓瓦當)]]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는 ‘신라의 미소’라고 널리 소개된 신라시대 원와당(圓瓦當)으로, 일제시기 경주 사정리(沙正里, 현 사정동)에서 출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수막새는 1934년 일본인 다나카 도시노부(田中敏信)가 골동상점에서 구입하여 당시부터 고고학술 자료를 통해 존재가 알려졌으며, 이후 일본으로 반출되었으나 1972년 10월 국내에 반환되었다. > >일반적인 와당 조성방법처럼 틀(瓦范)에 찍어 일률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고, 와범으로 먼저 형태를 잡은 후 손으로 직접 빚어 얼굴의 세부 형상을 만들고 도구를 써서 마무리한 작품이다. 자연스럽고 정교한 솜씨로 보아 숙련된 장인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실제 사용한 흔적도 있다. 오른쪽 하단 일부가 결실되었으나 이마와 두 눈, 오뚝한 코, 잔잔한 미소와 두 뺨의 턱 선이 조화를 이루며 신라인들의 염원과 이상향을 구현한 듯한 높은 예술적 경지를 보여준다. > >지금까지 유일하게 알려진 손으로 빚은 얼굴무늬 수막새이자 신라인의 소박하면서도 인간적인 면모를 담아낸 작품으로서, 당시 우수한 와당 기술이 집약된 대표작이다. [[분류:신라의 공예]][[분류:대한민국의 보물]][[분류:국립경주박물관 소장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