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거창군 출신 인물]][[분류:1865년 출생]][[분류:1923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족장]] || 성명 ||어명철(魚命喆) || || 생몰 ||[[1865년]] [[12월 27일]] ~ [[1923년]] [[10월 6일]] || || [[출생지]]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석강리 || || 사망지 ||[[경상남도]] [[거창군]] || ||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어명철은 1865년 12월 27일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석강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20일 김병직(金秉直), [[어명준]]이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다 체포되자 분노하여 거창읍 장날인 3월 22일에 독립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심했다. 그는 [[오문현(독립운동가)|오문현]]·신병희(愼炳禧)·어명우(魚命佑)·이병홍(李秉洪)·[[김호(1864)|김호]] 등과 함께 대표로 뽑혀 밤을 새워가며 주민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는 책임을 맡았다. 그러나 밖으로 정보가 누설되어 일제헌병대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고 있던 중 1919년 3월 22일 거창읍 가조·가북면의 3,000여 만세시위대에게 구출되어 군중과 합세, 거창읍으로 행진하여 그 선봉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를 주도하다가 헌병대에게 체포되었다. 이 일로 재판에 회부된 그는 1919년 7월 31일 부산지방법원 거창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고문의 여독에 시달리다 1923년 10월 6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어명철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