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bgcolor=#abe8ab><tablebordercolor=#abe8ab><tablebgcolor=#fff,#191919><tablewidth=500><tablealign=right> '''{{{#000 {{{+1 양수경[br]梁秀敬}}}}}}'''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가수양수경.jpg|width=100%]]}}} || ||<|2><colbgcolor=#abe8ab> '''출생''' ||[[1965년]] [[10월 17일]] ([age(1965-10-17)]세)[* [[1967년]]생이라 알려졌으나, [[1986년]] 신인무대에서 1965년생이라고 했다.] || ||[[전라남도]] [[순천시]][* [[http://star.mt.co.kr/stview.php?no=2017022123332433054&outlink=1&ref=https%3A%2F%2Fsearch.naver.com|#]]][* 아버지 직업 특성상 성장기는 경기도 연천, 서울시 노원구 일대에서 보내기도 하였다.]|| || '''학력''' ||경기연천초등학교 {{{-1 (졸업)}}}[br]상계제일중학교 {{{-1 (졸업)}}}[br][[국립국악고등학교]] {{{-1 (졸업)}}}[br][[서울예술대학교]] {{{-1 (영화과 / 학사)}}} || || '''신체''' ||160cm, 49kg || || '''취미''' ||[[요리]], [[낙서]]|| || '''특기''' ||고전무용|| || '''데뷔''' ||[[1988년]] 1집 '떠나는 마음' || || '''가족''' ||전 [[배우자]] 변두섭[* 1998~2013년, 당시 [[러시아]] 유전 사업을 계속 진행시키면서 그 동안 잠시 중단했던 가수 매니지먼트 사업을 다시 시작하던 중이었는데 2013년 6월 4일에 갑작스럽게 자살하였다.], 아들[* 2003년생] || || '''소속사''' ||오스카이엔티 || || '''SNS''' ||[[https://www.instagram.com/yangsookyung.official/|[[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width=25]]]] [[https://www.youtube.com/channel/UC8iaADTcKZczjwLMbagMOSA|[[파일:유튜브 아이콘.svg|width=25]]]] ||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가수.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 왕성하게 활동했다. 80년대엔 가요 경연대회 출신 가수들이 맹활약을 했는데 양수경도 그쪽 출신답게 빼어난 가창력이 돋보였고, 여기에 청순함과 섹시함을 겸비한 미녀 가수로도 유명했다. [[전영록]], [[박강성]], [[김범룡]] 등 많은 남자 [[싱어송라이터|싱어송라이터들]]에게서 받은 곡이 꽤 되는데, 본인이 직접 찾아가서 받은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박강성의 경우는 데뷔 예정곡이었다고... == 활동 == === 전성기 === 공식적인 데뷔는 [[1984년]]으로 '내 님은 예쁜 새'[[https://www.youtube.com/watch?v=n84zOK-IudI|#]]를 타이틀곡으로 하는 음반[[https://music.bugs.co.kr/album/126074?wl_ref=S_tr_01_04|#]]을 고3 나이에 발표했지만 제대로 된 활동은 하지 못했다. 이후 1986년 [[KBS]]가 주최한 '신인무대'로 활동 기반을 마련한 뒤[[https://www.youtube.com/watch?v=J8YO4dwykdE|#]] 1988년 실질적인 1집을 발매하며 가수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되었다. 본인 스스로도 1988년을 데뷔년도로 생각하고 있다.[[https://youtu.be/6PowJxtii1Y?t=875|#]] [[1988년]] 1집《떠나는 마음》이 대박을 치며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여성가수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대표 히트곡으로는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 '그대는', '외면', '바라볼 수 없는 그대', '사랑은 차가운 유혹', '이별의 끝은 어디 있나요' 등이 있다. 국내에서도 가요톱텐 5주 이상 1위 등 상당한 인기를 구가했고, 1991년부터는 해외에 진출하여 [[일본]] [[NHK]] 아시아 5대 스타상, ABU(아태 방송연맹)가요제 인기 가수상 등 해외에서도 꽤 많은 수상 경력을 가질 정도로 선전했다. 예컨대 1991년 4월 소련의 가요행사인《백야 록 축제》에 한국 대표로 참가해서 30분간 공연을 했으며,[[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40400209231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91-04-04&officeId=00020&pageNo=31&printNo=21434&publishType=00020|#]] 1994년 6월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94 백야축제》에서〈혼자만의 슬픔〉을 불러 대상을 차지했다. 백야축제에서 최초로 상을 받은 한국인이었다.[[https://news.joins.com/article/2897757|#]] === 은퇴 === [[1998년]] [[1월]] 데뷔 때부터 함께한 자신의 매니저이자 소속사 대표인 7살 연상 [[예당컴퍼니]]의 변대윤([[본명]] : 변두섭) [[회장]]과 [[결혼]]하였다.[* 당시 두 사람의 결혼은 숱한 화제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기획사의 사모님으로서 남편 뒷바라지와 결혼 5년 만에 얻은 아들을 키우며 평범한 주부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며 가끔씩 조용히 취미삼아 음반 활동을 하는 듯 보인다. 2001년에 자신이 직접 기획 제작한 동요 음반을 발매했고, 2004년에는 드라마 OST 앨범에 참여하기도 했다.[* 당시 그녀는 탤런트 [[채시라]]가 주연을 맡았던 드라마 ‘애정의 조건’의 주제곡 ‘후애’를 불렀고, 이 곡은 시청자들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얻었다.] 덕분에 그녀의 컴백설이 잠시 돌기도 했지만, 그녀는 이 앨범이 남편 회사에서 제작되는 인연으로 녹음 작업에만 참여했을 뿐, 활동을 재개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현재 아들과 함께 [[하와이]]에서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수로서의 커리어로만 본다면 그냥 왕년에 꽤 잘 나가던 8090세대 여가수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의외로 놀라운 인맥들을 자랑한다. 1994년 당시 [[해태 타이거즈]] 선수였던 [[이종범]], [[선동열]]과 함께 투 앤 원([[Two&One]])이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해 음반 활동을 하기도 했다. 해태 구단 측에서 연봉을 줄 돈이 없기 때문에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 앨범 만들면 보너스 내주기 딱 좋다며 단장이 아이디어를 낸 결과물인데 막상 앨범자체는 100장도 안팔릴정도로 쪽박차서 재고만 쌓였고 팬들에게 기념품으로 증정되는 신세가 되었다. 그래도 이종범과 친분이 생겼고, 선동열과도 아는사이는 되었다고는 하지만. === 복귀 === 남편의 발인을 치르고 나서 변 대표의 동생과 함께 예당의 경영에 직접 나서기로 했다고 선언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9&aid=0002969460|#]] 절친으로 알려졌던 가수 [[이선희]]도 남편이 자살하였는데 친구인 양수경의 남편도 자살하여 서로 많은 위로를 받았다는 후문이 있다. 가수 활동을 중단한지 20년[* 사실 마지막으로 활동했던 8집 앨범이 1996년에 나왔기 때문에 20년만의 컴백이라 보는게 맞다. 이유는 원래 9집을 내고 활동하려 했으나 모종의 사정으로, 앨범 발매가 전격 취소되었고 양수경은 지인들에게만 홍보용으로 찍은 앨범을 몇 장 선물했다고 하며, 앨범 활동 역시 백지화시켰다. 후에 여러 OST에 9집의 수록곡 일부를 삽입해 다시 부르기도 하였다. 음원은 어찌어찌해서 전곡을 공개하게 되었다.] 만인 2016년 7월 부로 [[KBS2]] [[불후의 명곡]]에서 전설로 출연하여 지상파 방송에 모습을 드러냈다. 2부작으로 특별 편성할 정도로 대단했는데, 50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은 [[아가씨]]들이나 소화할 법한 포니테일과 이브닝 드레스 조합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동안과 아름다움을 과시했다. 아무래도 20년 만의 무대여서인지 1부 시작하면서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를 부르다 반가운 마음에 눈물을 흘리는 한 관객과 눈을 마주치고서 감정이 북받쳐 잠시 울컥한 모습을 보여줬다. 첫 번째로 경연에 오른 알리의 경우 남편이 경영하던 소속사 출신으로 오랫동안 몸담았던 연예인이라 서로 잘 아는 사이로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는지, 무대에서 서로 눈을 마주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등 여러모로 감격스러워 했다. 다음 달인 8월에는 [[KBS1]] [[콘서트 7080]]에서 그녀의 단독 컴백쇼를 이례적인 1시간 풀타임 형식으로 편성하여 방영하여 화제가 되었다. 2017년 2월 21일 [[불타는 청춘]]에 새친구로 출연했다. 이제까지 이혼 경력이 있거나 미혼인 기존 출연진과는 달리 사별 후 출연한 첫 케이스. [[파일:yangsookyung.jpg|width=450]] '''27년 만'''의 단독 콘서트 포스터. 저때가 52세였다. 2017년 9월, 27년만의 단독 콘서트를 열면서 컴백을 선언했다. 2018년 9월 16, 23일에 [[복면가왕]] 85차 경연에서 [[뭘 좋아할지 몰라 다 준비했어 과일바구니]]라는 가명으로 오랜만에 브라운관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 여담 == *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과 두터운 친분을 가지고 있다. 이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 계기는 [[1994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개최된 '백야축제'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에 양수경은 [[대한민국]] 대표로 참가해 '혼자만의 슬픔'이라는 곡으로 대상을 수상했다. 이 때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 부시장이었던 [[블라디미르 푸틴]]과 친분을 쌓았고, [[2001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방한 때 [[청와대]] 만찬에 초대받아 화제가 된 바 있다. 거기에 2007년 남편이 경영하는 [[예당컴퍼니]]에서 [[러시아]] 유전 사업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뒀는데, 성공의 계기가 바로 양수경이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직접 부탁하여 물밑으로 도움을 받은 것이었다. 그리고 2008년 4월 진행하던 유전 사업에서 경제성이 있는 대규모 석유 매장량을 확인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주식의 상한가로 대박 수익을 올리게 되었다. [* 당시에 1달 사이 평가 수익률 300%가 올라, 34억원의 차액을 벌어들였다고 한다.] * 2009년 여동생인 양미경이 자살하였는데, [[대장금]]에서 '한 상궁' 역으로 나오는 등 많은 드라마에 출연한 동명이인 탤런트 [[양미경]]이 자살한 것으로 기사 오보가 나버린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 1993년 [[해태 타이거즈]]가 [[1993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으나, 우승 보너스를 못 주는 상황에 이르자 음반을 만들기로 했는데 이때 그녀는 [[선동열]], [[이종범]]과 함께 '[[Two&One]]'이라는 이름으로 앨범 녹음을 했다. 하지만 100장도 못 팔렸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음반 판매가 시원찮았고 김응용 감독이 선동열과 이종범이 부상당할 때마다 코치에게 둘에게 나이트 자리를 알아오라고 농담을 할 정도로 웃음거리가 되었다. 이 당시 양수경은 선동열을 상대로 몰래카메라를 시도, 선동열이 매운 김밥을 먹게 만들기도 했다. * [[불타는 청춘]]에 고정 출연 중이지만 2018년 12월 4일 방송분에서 친동생의 죽음과 남편의 갑작스런 사별로 인해 10년째 공황장애를 겪었다고 고백했다.([[http://en.seoul.co.kr/news/newsView.php?id=20181205500041|‘불타는 청춘’ 양수경, 친동생+남편 사망 “스스로 목숨 끊어..잔인”]]) 자살한 사람의 유가족은 극심한 심리적 고통에 시달리며 이후 그 유가족이 다시 자살할 확률은 일반인보다 비교가 안되게 높다.([[http://news1.kr/articles/?3490093|유가족 아픔 나누며 치유해야]]) * 가수로서 화려한 전성기를 보냈으나, 긴 공백기와 남편의 사업실패로 인해 생활고를 겪었음을 밝혔다. 사망한 남편의 채무를 일부 떠안았기 때문에 [[http://m.munhwa.com/mnews/view.html?no=2017041201033512053001|자신의 명의로 된 재산이 0원이었던 적도 있었고]] 연예계 복귀도 녹록치 않았다고. [[불타는 청춘]]으로 어느 정도 재기에 성공한 현재는 [[https://entertain.v.daum.net/v/20180704061606439?f=m|김치사업을 하고싶다는]] 꿈이 생겼음을 밝혔다. * 정말 의외의 팬이 있는데, 다름 아닌 전설적인 스레시 메탈 밴드 [[메가데스(밴드)|메가데스]]의 전성기를 함께 한 레전드 기타리스트 [[마티 프리드먼]]. 마티 프리드먼은 메가데스 탈퇴 후 일본에 거주할 정도로 일본 문화에 익숙한데, 그 당시 일본 가요계에 진출한 양수경의 노래를 접한 듯하다. == 앨범 == === 정규 앨범 === * 1집 《바라 볼 수 없는 그대》([[1988년]]) * 2집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1989년]]) * 3집 《당신은 어디 있나요》([[1990년]]) * 4집 《Asian Dream》([[1991년]]) * 5집 《한 번 더 생각해 봐요》([[1992년]]) * 6집 《잊어야 할 때》([[1993년]]) * 7집 《혼자만의 슬픔》([[1994년]]) * 8집 《Blue Wedding》([[1996년]]) * 9집 《후애》(後愛) ([[1999년]]) === 미니 앨범 === * 《양수경 미니앨범》 ([[2016년]]) === 베스트 앨범 === * 《양수경 골든》 * 《양수경 Best》 * 《양수경 카페음악 1, 2, 3》 === 참여 앨범 === * 《[[애정의 조건(드라마)|애정의 조건]] OST》 * 《[[소문난 칠공주]] OST》 * 《소금인형 OST》 * 《플래티넘 시리즈》 [[분류:1965년 출생]][[분류:한국 여가수/ㅇ]][[분류:1988년 데뷔]][[분류:순천시 출신 인물]][[분류:국립국악고등학교 출신]][[분류:서울예술대학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