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상위 문서, top1=야인시대/비판)] [include(틀:야인시대)] [목차] == 개요 == >"뭐, 원래 배우들 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쉽고도 빠르게 전달되거든. 모든 게 영락없는 진실처럼 들리고 말이야. '''그래서 대중의 인기는 정말 무서운 거야.'''" - 야인시대 64화, 문영철 무리한 [[김두한]] 미화, 무비판적인 [[자서전]] 내용 수용, 드라마의 친 [[우익]]적인 성향 등으로 인해 [[드라마]] 내 [[왜곡]]되거나 말도 안 되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주의할 것은, [[김두한]]의 노변야화 방송이나 자서전, 혹은 [[야인시대]] 소설판이나 다른 김두한을 다룬 [[김두한/창작물|미디어들]]과 [[야인시대]] 내용이 다르다는 이유로 [[고증오류]]라고 이야기하는 예가 있는데, 그 점은 조심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소재들 역시도 고증오류가 한 두가지가 아니며, 김두한이나 김두한 주변 사람이 직접 이야기한 바가 있는 내용 역시 사실이 아니거나 과장되거나 미화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니 신뢰할 만한 자료로 교차검증하지 않고서는 주먹들이 직접 한 말이든 야인시대나 다른 미디어들이든 사실로 받아들이기 곤란하다. 다만 설명에 앞서 [[드라마]]의 친 [[우익]] 성향을 명확히 정의할 필요가 있는데, [[야인시대]]는 어디까지나 해방 이후 [[백색테러]]와 [[정치깡패]]를 미화해서 친 우익적인 것이지, '''[[이승만]]이나 [[박정희]] 정권을 우호적으로 그려서 친 우익 드라마는 아니라는 점이다.'''[* 이승만의 인품에 대해 다소 미화로 볼 수 있는 부분은 있지만,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엔 지나치게 고집이 센 꼰대로 전략하고 측근들에게 휘둘리는 전형적인 무능한 군주로 묘사된다. 박정희 정권 역시 드라마 기준으로 우익 정치투사였던 김두한을 빨갱이라며 잔혹하게 고문하는 묘사가 있다.][* 하지만, 어째선지 박정희가 김두한에게 다시는 정치에 손을 뻗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땅을 주고 사업을 하도록 도와줬다는 사실과 무관한 나레이션이 흘러내린다. 김두한은 동료 의원들과 끝까지 박정희 정권에게 반항하는 인물이었기에 '''박정희를 통해 땅을 받은 적도, 사업을 한 적도 없다.''' 각본가 이환경이 현재는 무산된 인간 박정희라는 드라마를 계획한 적이 있다는 점을 토대로 김두한 입장에서 박정희를 어느 정도 우호적으로 그리고 싶어했나는 의혹을 제기할 수 있다.] 애초에 김두한 자체가 [[극우]] 활동을 했던 것도 몇 년 정도고 [[자유당]] 탈당 이후로는 대부분 기간을 [[야당]] 인사로 지내다보니 자연히 이승만과 박정희가 김두한에 우호적인 [[포지션]]으로 그려질 리는 없기 때문이다. == 역사적 관점의 왜곡 == >'''이 이야기는, 암울했던 민족의 수난기와 격동기의 역사를 살다가 갔던 영원한 야인, 김두한의 삶을 극화한 것이다. 본 드라마에 소개되는 사건과 인물은 본인의 회고록과 취대록, 자료수집 등, 대부분 실화에 그 근거를 두었다.''' > >'''그러나 드라마의 완만한 진행을 위하여, 시대와 역사적 상황을 운영하는 인물 일부분에서는 픽션을 가감했으며 실존 인물의 개인적 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상당부분의 생존인물에 대해서는 가명을 사용하였음도 아울러 밝혀둔다.''' > ---- > [[야인시대]] 1화 첫 부분 [[나레이션(야인시대)|나레이션]]. [[친일]] 변명, 상인들한테 가한 횡포 실드, [[백색테러]] 정당화, [[김두한]]의 범죄 왜곡, 마지막회에서 나온 김두한에 대한 평가 등, 온통 김두한 행적 미화로 가득 찼다. 가장 심각한 악영향은 현재 [[유튜브]]로 야인시대를 보는 사람들은 1부야 지나치게 [[판타지]]성이 강하니 코웃음치며 넘어간다 쳐도, 진짜 2부처럼 김두한이 [[김좌진]]의 유지를 이어 아버지의 복수를 하고 [[공산당]]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폭력을 쓴 걸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으로[* 2010년대 후반기에 들어서 야인시대 붐이 다시 일어난 건 김두한이 [[우익]] 진영 백색 테러리스트로서 좌익 진영의 배우 [[심영(배우)|심영]]을 습격한 [[중앙극장 습격 사건|에피소드]]가 인터넷에서 유행을 탔기 때문인데, 그에 따라 유튜브 등으로 다시 보는 시청자들 관심도 [[6.25 전쟁]] 직전 좌, 우익이 대립하던 시절의 김두한에게 쏠려 있다.] 위와 같은 왜곡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김두한이 잘못한 일까지도 모조리 정당화시키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 일제강점기 === ==== 항일 주먹 김두한? ==== 이 드라마에서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은 [[애국심]]이 투철하고 [[일본인]]에게서 [[조선]] [[상인]]을 보호해줬으며 부하들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조선총독부]]에게 협력한 것으로 묘사된다. 그나마 안재모가 연기한 김두한은 총독부에 협력한 일을 자아비판하기도 했으나, 김영철이 연기한 중년 김두한은 일제와 맞서 싸운 행위로 포장하였다. 하지만 [[김두한]]이 [[미군]]에게 한 증언을 보면 실체가 다르다. 또한 당시 [[조선]] [[조직폭력배|주먹패]]들이 [[일본]] [[야쿠자]]와 싸운 것도 어디까지나 폭력조직간 이권 싸움이었고, 합의되자 더 이상 싸우는 경우가 없었다. 오히려 이들 행동은 '''[[일제강점기|일본 식민지 통치시대]]의 먹고 살기 힘든 조선 상인들을 착취한 것에 불과하다.''' [[조선총독부]]에 내는 세금도 감안하면 세금을 두 번 내는 셈이니 정당성은 없다. 더욱 가관인 점은 김두한 패거리가 '힘없는 조선 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함'이란 의미를 부여하는데 싸움질하며 상인들 [[가게]]나 물건들을 깨부수는 장면이 여럿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사과하거나 보상하는 장면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심지어 종로 이정목 털보 패거리는 자신들의 영역이라는 종로회관에서 정진영을 구타하면서 테이블에 놓은 술과 안주들을 모조리 박살내버렸건만, 업체 측에 사과조차 하지 않고 2차 술을 마시러 나가기까지 했다. 만약 정말 상인들을 생각하였다면 아무리 상대가 먼저 시비를 걸어왔다 해도 장터에서의 싸움은 최대한 피하거나 좀 더 넓은 장소에서 싸워야 할텐데 꼭 가게 앞에서 싸운다. 이런 행위는 상인들에게 상당한 민폐다. 가게 깨부수는 것도 그렇지만 오던 손님까지 내쫓는 행위이니 말이다. 극중 김두한 일당에게 호감을 보이는 [[재래시장]] 상인들의 모습은 사실상 '''[[스톡홀름 증후군]]'''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다. 심지어 [[마루오까(야인시대)|마루오까]]가 김두한 졸개들에게 세금을 왜 걷냐고 까자 한 상인이 '''"저 사람들은 아무 잘못 없고 우리가 좋아서 주는거니 그러지 마라"'''며 실드를 치기도 한다. 김두한 이전에 [[구마적(야인시대)|구마적]] 패가 세금을 걷어 갈 땐 한숨을 푹푹 쉬며 이거 어쩌나 하고 탄식만 하던 것과는 정 반대의 반응. 게다가 "거리의 독립군" 미화도 묘사가 어정쩡 해서 김두한 패거리들이 도대체 왜 싸우는지에 대한 정당성을 제대로 부여하지 못하였다. [[충무로|혼마찌]]가 [[종로(서울)|종로]]에 진출하는 순간 [[조선]] [[상인]]들이 끝장이라고 하지만, 일본 상인들이 조선 상권을 잡아먹는다는 내용도 자세한 횡포 묘사없이 단 몇 마디 언급으로 퉁쳐버린다. 오히려 같은 조선인인 구마적 패거리들이 세금 걷겠다며 상인들에게 횡포를 부리는 장면이 더 자세하게 묘사되었다. 그렇다고 혼마찌 세력이 조선인들 상대로 횡포를 부리거나, 주도적으로 온갖 악행을 저리는 것도 아니다. [[종로(서울)|종로]]에 진출한 [[나미꼬]]나 [[시바루]] 일행만 해도 일반적인 악역과 거리가 멀다. 이들은 말 그대로 [[장사]]를 한 것 뿐이고 심지어 나미꼬는 시대의 한계를 벗어나 주도적으로 뭔가 이뤄내려난 명석한 여성이며 이들의 지적(왜 일본인은 여기서 장사를 하면 안 되는가?)은 시대상으로 당연한 것이었다. 또한 시바루는 가장 신사적이며 정의로운 주먹 중 하나다. 게다가 하야시는 무력이나 뒷배를 이용해 종로의 상권을 빼앗거나 헐값에 강탈하기는 커녕, 수많은 자금을 조선 상인들에게 지불하고 정당하게 상권을 사들였다.(김두한이 없는 틈을 노리긴 했지만)[* 하야시는 종로 가게를 사들이며 '''돈을 아끼지 말아라'''라는 말을 분명히 한다. 가치가 있으니 시세보다 더 주고라도 가게를 사겠다는 것이지 절대로 무력이나 권력을 이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 맞서는 김두한의 논리는 단지 '조선의 심장인 종로에 일본인은 들어올 수 없다'였다. 그 외에도 작중에서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이 [[한국 독립운동|독립운동]]을 하려고 [[만주]]로 가려다 좌절되어 [[조폭]]이 되는 걸로 나오는데, 정말 독립운동이 하고 싶었다면 조폭 두목이 된 이후 부하들을 이끌고 국내에서 과격 독립운동 단체를 조직할 수도 있었으나, 실제 김두한은 그런 행적 자체가 보이질 않는다.[* 작 중에서도 이래저래 조선 상인들을 보호한다는 핑계만 나올 뿐,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하는 장면은 안 나온다.] 아래 서술되는 [[부민관 폭탄의거 사건]] 등의 국내 독립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도 '아 나도 저렇게 해야 하는데'라는 탄식은 해도, 행동은 하지 않는다. 딱 하나 비슷하게 한 거라고 해봐야 [[친일]] [[연극]]에서 [[뱀]]을 풀어서 방해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나름대로 독립운동을 하려면 할 수 있는 힘과 충성심을 가진 조직을 갖고 있음에도 하는 것이 이런 장난질에 가까운 행위라는 점에서 '''과연 김두한이 독립군 운운할만한 자격이 되는가''' 라는 의구심이 든다.[* 해방 이후 이념전쟁에서 [[우미관]] 패가 총격전, 폭탄테러 등, 극도로 위험한 김두한의 명령을 곧이 곧대로 수행하던 점에서 김두한이 '힘이 없어서 독립운동을 못한 것'이 아니라 '할 의사가 없어서 안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좌익]]계를 [[테러]]하는데는 그렇게 열성적으로 총질 폭탄질을 하던 세력이 '독립군'을 자칭하면서도 일제를 상대로는 뱀이나 푸는 장난질을 하는데 그친다는 건 아무리 봐도 말이 안 된다.] 바로 이 부분이 [[야인시대]]가 [[조폭미화물]]이라고 불리는 이유 중 가장 큰 점이며, 영화 [[장군의 아들]]과는 주먹패의 본질 자체가 많이 다른 특징을 보인다. 야인시대는 [[건달]]들이 거리의 [[독립군]]이며 [[상인]]을 보호하고 그 명목으로 [[세금]]을 걷는다라는 [[조직폭력배|주먹패]]의 활동에 대해 정당성을 상당히 부여한다. [[장군의 아들]]과 비교해볼 때 장군의 아들 같은 경우는 그저 본인들의 생활을 위해 [[주먹]]을 쓰고 [[상인]]들에게 [[세금]]을 걷는 [[조직폭력배|주먹패]]들을 묘사했다. 장군의 아들 2부 초반에는 상인들이 세금 문제로 인해 원성이 자자하다는 묘사를 했으며, 3부에서는 종로 주먹패 몇몇이 강제로 [[삥]]을 뜯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또 그들은 자신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한다는 표방을 하지 않고 그들에게 [[적]]이 되는 존재는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대립하여 싸우는 식으로 표현하였다. 즉, [[야인시대]]와 장군의 아들의 주먹패는 판이하게 그 본질이 다르다는 것이다. 실제 장군의 아들 [[원작]] [[소설]]에서도 '이들은 그냥 [[야쿠자]]였다'는 [[작가]]의 말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당시 [[김두한]]이 자기 친구 [[정진룡]]을 죽였을 당시 미군에게 한 증언이다. >나의 오랜 친구 정…김두한의 이야기는 한국에 대한 일제 강점기까지 되돌아간다.…김의 제일 친한 친구는 [[정진룡]]인데 '''__그는 그 들이 일본인에게 고용되어 경방단(Police Assistance Association)을 조직 운영하기 전까지는 그와 더울 일본 정부당국과 마찰을 빚고 있었다. 경방단에 가입한 후 김과 정은 일본인을 위한 합법적인 테러리스트 겸 정보제공자가 되었다. 종전과 더불어 실업자가 되면서 모든 지위를 상실한 것__'''을 알게 되었을 때 큰 고려 없이 청년들로 모아서 정치 정당의 돌격대로 고용되었다. 유일한 문제는 정은 [[남로당]]을 위해서 일하는 조선전위대를 택했고, 김은 우익주의자 [[장덕수]]의 정당에 고용되었다. 그때부터 김은 "나에 오랜친구 정"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정에게는 불행하게도 김은 한국 전체의 싸움 왕이었다. 처음에 김은 서울의 거리에서 정과 정의 부하 두 명을 때렸다. 다음에 정이 김에게 권총을 겨누었으며 김 역시 정에게 권총을 겨누고 정의 권총을 떨어뜨린 후 정의 무릎에 총을 쏘았다. 1947년 4월 우익 한국인들이 그들 국가의 미래의 국부로 간주하였던 [[이승만]]의 귀국을 열렬히 기다리고 있는 동안, 좌익도 나름대로 그들의 계획을 수행하고 있었다. 정진용과 그의 무리들은 이승만을 사기꾼이고 자기중심적인 정치인이라고 비방하는 팜프렛을 배포하기 위해서 동원되었다. 4월 20일, 김두한은 이 시점이 그의 오랜 친구를 다시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할 좋은 기회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는 부하들을 보내서 반 이승만 유인물을 배포하는 사람들을 잡아오게 했다. 김의 부하는 극장과 서울의 시장거리를 배회하면서 정과 그의 부하를 잡아들였다. 김과 그의 부하들은 그들이 그들의 과거의 잘못을 인식하기를 희망하면서 이들을 폭행하기 시작했다. 폭행을 길고 단단한 일본 단풍나무로 만든 몽둥이로 행해졌다. 정은 [[박헌영]] 부재 시 남로당의 대표였던 [[허헌]]에게서 명령을 받았다고 했고 그는 공산주의 지도자들의 모든 명령에 복종한다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이승만을 역적이라고 말했다. 이 순간에 김이 이성을 잃고 정의 가슴을 찼다. 그는 그의 오랜 친구에게 철회를 요구햇지만 정은 거절했다. 김은 또 한방을 더 때렸고 그것으로 인해 정은 체내 출혈이 시작되었고 곧바로 죽었다... >---- >History of the Counter Interlligence Corps, pp.92-94, 김봉진, 미군정기 김두한의 '백색테러'와 대한민주청년동맹, 대구사학 97, 2009, 56쪽에서 에서 재인용. 사실은 "[[일본인]]을 위한 합법적인 [[테러리스트]] 겸 정보제공자"를 하다가 종전 때문에 "[[실업자]]"가 된 테러리스트다. 오히려 김두한 자신은 그 탓에 "모든 지위를 상실"했다고 한다. ==== [[부민관 폭탄의거 사건|부민관 폭탄의거]] 왜곡 ==== 이 드라마에선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이 [[부민관 폭탄의거 사건|부민관 폭탄의거]]에 간접적으로 관련된 것으로 묘사되었다. 정확히는 몇몇 [[노동자]]들이 [[다이너마이트]]를 달라고 하자, 김두한은 마치 안전 불감증에 걸린 것처럼 그냥 폭탄을 주었고, 그게 부민관 의거에 사용된 것으로 묘사되었다.(물론 김두한은 그 폭탄이 의거에 쓰인 것은 몰랐다.) 의거를 주도했던 조문기는 그걸 보고 매우 분노하였다. >몇 년 전 드라마 《[[야인시대]]》에서는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이 [[폭탄]]을 건네주는 것으로 나와. '''유 동지가 얼마나 고생하며 구한 폭탄인데 말이지.''' >---- >1945년 ‘부민관 폭파’ 주역 조문기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0120017|링크]] 심지어는 제작진이 미리 고증을 위해 조문기를 찾았는데, 그런데도 [[고증 오류]]를 낸 것은 고의로 볼 수밖에 없다. >야인시대 담당 PD가 드라마와 관련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싶다며 조문기를 찾아온다. 조문기도 그를 꼭 만나고 싶던 참이었다. [[김두한]]을 항일애국지사로 부각시키는 것이 가당치도 않았고, 역사를 온통 거짓 투성이로 왜곡하는 것이 언짢기도 했지만 [[부민관 폭탄의거 사건|부민관 폭파사건]]에 관련해 크게 걱정되는 일이 있었다. > > [[이환경]]씨가 쓴 소설 ‘[[야인시대]]’에서 [[부민관 폭탄의거 사건|부민관 거사]]에 사용한 [[폭탄|폭약]]은 김두한이 건네준 것이고 그것이 발각되어 김두한이 모진 [[고문]]을 당하고 고생하다 [[감옥]]에서 [[8.15 광복]]을 맞는다는 내용이다. 그 소설가 [[이환경]]씨가 곧 드라마 작가이고,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기에 그렇잖아도 걱정하던 차였다. > > 조문기는 담당 PD에게 부민관 거사를 그런 내용으로 왜곡하지 말라고 호통을 쳤건만, 드라마는 소설 원작 그대로 방영되었다. 연구소에서 그 담당 PD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를 했더니 그 PD는 “그냥 드라마는 드라마로 봐주세요.”라고 하더란다. >---- [[야인시대]]라는 드라마는 첫화부터 마지막회까지 [[김두한]]에 관한 스토리뿐만 아니라 그 시대에 있었던 여러 사건들 ([[나석주]]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탄 투척부터)을 종합 선물세트처럼 모두 보여주고 싶어하는 느낌이 상당히 든다. 단지 김두한 뿐만 아니라 그 시대에 있었던 굵직한 사건들을 모두 담고 싶어하는 경향이 보여서 ('그랬다~' 로 시작되는 내레이션은 덤.) 가끔 보면 이게 [[드라마]]인지 [[역사스페셜]]인지 구분이 안 갈때가 있다. 아무튼 그런 시대적 여러 사건들을 드라마에서 보여주려면 김두한과 엮을 수 밖에 없는데, 그러다보니 무리수를 둔 것이 상당히 많다. 장르 자체는 [[드라마]]인데 만약 부민관 사건을 따로 구성해서 보여주면 [[다큐멘터리]]가 될수밖에 없고 드라마 전개의 특성상 그 사건을 김두한의 스토리와 연계시켜 보여주다보니 그런 [[역사 왜곡]]마저도 서슴치 않게 하는것이다. 야인시대를 보면 그런 내용들이 상당히 많다. 초반 2화때 김두한과 나석주가 엮이는것도 그렇고 대부분의 역사적 굵직한 사건들이 사실 알고보면 김두한과 관련이 실제로 전혀 없는 내용인 것들이 많다. 원만한 드라마 진행을 위해 픽션을 넣는다고는 하지만 이게 [[역사 왜곡]]이 되어서 시청자들로 하여금 잘못된 정보를 심어주게 되니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https://www.minjok.or.kr/archives/64326|링크]] === 광복 이후 === ==== [[김두한]] ==== [[김두한]]은 자기 옛날 친구였던 [[정진룡]]과 그 일행들을 불법 납치고문하는데, 그 과정에서 정진룡을 죽이게 된다. [[김두한]]이 [[미군]]에게 한 말을 따르면 "정진룡과 그의 무리들은 [[이승만]]을 [[사기꾼]]이고 자기중심적인 [[정치인]]이라고 비방하는 팜플렛을 배포하기 위해서 동원되었다. 4월 20일, 김두한은 이 시점이 그의 오랜 친구를 다시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할 좋은 기회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는 부하들을 보내서 반 이승만 유인물을 배포하는 사람들을 잡아오게 했다. 김의 부하는 극장과 [[서울]]의 시장 거리를 배회하면서 정과 그의 부하를 잡아들였다. 김과 그의 부하들은 그들이 그들의 과거의 잘못을 인식하기를 희망하면서 이들을 폭행하기 시작했다. 폭행은 길고 단단한 일본 단풍나무로 만든 몽둥이로 행해졌다. 정은 [[박헌영]] 부재 시 [[남로당]]의 대표였던 [[허헌]]에게서 명령을 받았다고 했고 그는 [[공산주의]] 지도자들의 모든 명령에 복종한다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이승만을 [[역적]]이라고 말했다. 이 순간에 김이 이성을 잃고 정의 가슴을 찼다. 그는 그의 오랜 친구에게 철회를 요구했지만 정은 거절했다. 김은 또 한 방을 더 때렸고 그것으로 인해 정은 체내 출혈이 시작되었고 곧바로 죽었다." 고 한다.[* US Army lnteligence Center, History of the Counter Intelligence Corps, XXX: CIC During the Occupation in Korea(March 1959), p.92-94, 김봉진, 같은책, 22, 56에서 재인용.] 그런데 이 내용이 드라마에선 [[정진영(야인시대)|정진영]] 측이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 측을 공격하려다가 반격을 당해 [[납치]]를 당했고, 김두한이 살려주려 했는데 김두한을 죽이려하니 김두한이 쏴죽인 것으로 왜곡을 해놓았다. ==== [[이승만]] ==== [[6.25 전쟁]] 때 [[이승만(야인시대)|이승만]]이 갑자기 나는 [[서울특별시|서울]]에서 죽겠다며 도망치던 [[열차]]를 돌렸다가 [[곽영주(야인시대)|곽영주]]가 애원복걸해 그만둔다거나, [[인천상륙작전]] 이후 국방장관 [[신성모]]에게 "[[낙동강 방어선|낙동강 전선]]이 무너졌다면, 난 자결을 선택했을 것이네"라고 말한다던가, 각종 비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으며, 장기집권을 한 것에 대해서도 이승만의 잘못보다는 [[곽영주(야인시대)|곽영주]]와 [[자유당]]이 이승만을 감싸고 돌면서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하게 정보를 차단하는 모습으로 각색되어 나타나 있다고 하여 이게 왜곡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은 실제 역사적 사실과도 상당히 부합한다. 실제 역사상으로 [[6.25 전쟁]] 때 [[이승만]]은 26일에 측근들의 피난 권유를 거부하고 27일 새벽에도 피난 권유를 받았으나 거부하다가 몇시간 뒤 북한군이 청량리까지 왔다는 거짓보고를 받고서야 어쩔 수 없이 피난을 떠났다. 가는 도중에도 대구까지 갔다가 이승만이 [[서울]]로 돌아가야한다고 고집하여 다시 기차를 갈아타고 상행하던 중 대전역에서 다른 각료들의 만류로 내려서 대전에 임시수도를 세웠다. 그리고 이승만은 피난 전 전쟁 발발 초기 2 ~ 3일간 육군본부를 방문하여 상황을 살피고, 주한 미대사 무초를 만나서 필요한 무기의 지원을 요청하고, [[더글라스 맥아더|맥아더]]에게도 전화를 걸고, 피난을 떠나기 직전인 27일 새벽까지도 주미대사 [[장면]]에게 전화를 걸어 미대통령을 만나라고 지시하는 등[* 측근들이 경무대로 와서 북한군이 청량리까지 왔다는 거짓보고를 하는게 이승만이 장면과 통화를 하고 1시간 정도 뒤다.] 분주하게 대응했으나 드라마 상에선 이런 것들이 전혀 등장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가만히 있다가 피난가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이게 고증오류나 왜곡이라면 왜곡이다. 그리고 당시 자유당이 이승만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던 것도 역사적으로 사실이며, 예를들면 3.15 부정선거 같은 경우도 당시 국무회의록을 보면 이승만은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승만은 확실히 사람 보는 눈이 없었다. 드라마 상에서 [[이승만(야인시대)|이승만]]은 [[8.15 광복|해방]] 당시만 해도 검소함과 인자함을 중시하였으나,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에는 전형적인 [[꼰대]]의 모습을 보이고, [[6.25 전쟁]] 당시 [[국민방위군 사건]], [[거창 양민 학살사건]] 등으로 여론이 나빠지자 이미지 관리를 할 생각은 하긴 커녕, 오히려 [[자유당]]에 가까운 [[제2대 국회의원]]들을 끌어모아 [[발췌 개헌|대통령 직선제로 개헌]]할 생각이나 하고 있는 모습으로 나온다. 그리고 간신배([[이기붕(야인시대)|이기붕]], [[곽영주(야인시대)|곽영주]])들의 아첨만 듣는, 전형적인 전근대 시대의 [[암군]]으로 묘사되는 걸 보면 딱히 미화라고 보기도 힘들다. ==== [[백색테러]] 정당화 ==== [[김두한]], [[이화룡]]의 경우 [[광복]] 이후 건국 수립 전까지 [[좌익]]들에게 [[백색테러]]를 저지른 것이 무조건 정당하다는 것 마냥 각색한 점이 광복 이후의 [[역사 왜곡]] 중 가장 큰 문제점으로 볼 수 있다. 드라마는 [[미군정]]이 정치를 잘 못했고, 이에 [[공산당]]이 날뛰었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 [[우익]]들이 백색테러를 일으키는 식으로 묘사했다. 또한 당시에는 [[사상]]과 [[이념]]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는 사람도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다르다는 이유로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것을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 본인이 [[애국]]이라고 말하는 태도는 정당화 될 수 없을 것이다.[* 당장 [[김두한]] 본인도 스스로 [[공산주의]]가 뭔지 잘 모르겠다 했으며 이후 [[반공|반공 주의]]로 전향한 뒤 [[테러]]를 저지르면서도 그들 중에서도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따랐던 피해자가 있었을 거라고 독백했지만 그만두지 않았다.] 비록 '[[공산당]]의 만행 때문에 [[김좌진]]은 공산당을 혐오했고 그 때문에 공산주의자가 김좌진을 암살했다'라는 [[염동진(야인시대)|염동진]]의 설명이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마찬가지로 잘 한 것 없는 극우세력은 [[흑백논리]]로 미화하고 있다. [[김좌진]] 문서에 나오지만, 애당초 김좌진이 암살된 것은 그의 만행에 대한 보복이었다는 의견도 있는 판이다. 게다가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 패거리를 봐도 '왜 [[공산당]]이 나쁘냐, 그렇다고 극우 세력은 정당하냐'에 대한 고찰이나 명확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주 언급을 안 한 것은 아닌데, 69회에서 [[최동열]]이 김두한에게 "[[우익]]이 다 잘한 것만은 아니다. 무조건 [[우익]]의 [[방패]]가 되는 것이 아니라 왜 나라가 먼저 이렇게 되었는가 생각해봐라." 하며 설득하는 장면이 있다.] 그저 처음에 김두한의 [[조선청년전위대]] 대장 취임식에 가선 박수 쳐주다가 김두한이 김좌진의 죽음을 알고 반공으로 전향하자 '[[두목]]이 공산당이 나쁘다면 나쁜거고 죽이라고 하면 죽이는거다'라는 지극히 단순하고 설득력이 부족한 이유로 백색테러를 일으킨다. 그리고 이것을 애국이라 하며, 자신들은 '[[독립군]]'이라고 스스로를 세뇌시키다시피 했다. 하지만 이들을 현 시대적인 관점에서 보든 당 시대의 관점에서 보든 결국은 '''백색 테러리스트'''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게 [[김두한]]이나 [[이화룡]]을 [[미화]]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들이 속했던 [[백의사]]나 [[대한청년단]]은 물론 한국 극우 백색테러계의 끝판왕인 [[서북청년회]]도 미화가 되어 나왔다. 특히 서북청년회는 [[대한민국]] [[역사]]에 있어서 다신 나와선 안될 조직이란 점에서 매우 잘못된 [[연출]]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화룡]]이 4. 3 사건 한복판에서 서북청년회에게 학살당한 제주도 도민들을 조직원들과 보면서 안타까운 듯 한탄을 하는 장면은 정말 일품이다. [[드라마]] 상의 창작이긴 하지만, 드라마는 심지어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 패거리가 악질 [[공산당]]도 아닌 중도 좌익([[여운형]])이나 중도 우익([[김규식]])을 협박하고 린치한 행위까지 미화했다. 명백한 악행임에도 불구하고 여운형은 철없는 청년의 행동이라고 덮어두었고, 김규식도 김두한이 [[김좌진|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라며 사건을 덮어버린다. [[김구]]는 이 사건 때문에 김두한에게 한 소리 했으나, 김두한은 이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다.[* 드라마와는 다르게 실제 역사에서는 김구는 베일에 감싸였던 백의사의 진짜 수장으로, 김두한이 정진룡(정진영)을 살해했을때 김좌진의 아들에 걸맞은 애국적 행동이라며 김두한과 대한민청 별동대원들의 반공테러를 옹호한 사람이다. 이 장면도 역사왜곡 및 고증오류에 속하는 장면.] 작가 딴에는 [[국군준비대]] 사건 이후 묘사, [[김무옥(야인시대)|김무옥]] 사망 후 [[최동열]]과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의 대화 장면 등을 통해 나름 균형을 맞추려고 했으나, 워낙 [[백색테러]]를 미화하다보니 결과적으로 균형이 맞지 않았다. ==== 주인공 보정으로 점철 된 반공 드라마 ==== 드라마 [[야인시대]]는 1990년대 근현대사 사극들보다도 더 낡은 [[반공]] 선전극 수준의 역사관을 보여준다. 이는 작가인 [[이환경]]이 본인의 사상과 역사적 상황을 반영해 철저한 반공주의에 입각하여 드라마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먼저 [[제주 4.3 사건]] 해설 중 1947년 3.1 발포사건이 좌익들의 경찰서 습격 때문이라느니, 제주도민 중 8할이 좌익이거나 행정기관장들 대다수가 좌익 인사라는 등 왜곡된 내용 때문에 [[https://m.yna.co.kr/view/AKR20030416000500056|4.3 유관단체들로부터 항의를 받았고,]] [[공산주의자]] 캐릭터들에 대한 묘사는 1부 일본인 악역/라이벌들[* [[하야시(야인시대)|하야시]], [[마루오까(야인시대)|마루오까]]같은 이들은 무사도 정신에 충실한 호인으로 묘사되었고, 메인 빌런인 [[미와 와사부로(야인시대)|미와 경부]]는 '국가에 대한 광신 + 형제를 위한 복수심 + 집요함'이 합쳐져서 악의 화신과도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가장 중요한 건 이들은 2부의 [[공산당]]마냥 별다른 준비도 안 한 김두한에게 속수무책으로 와르르 무너지지도 않았다. 2부에서 그나마 이들과 비슷하게 묘사된건 [[정진영(야인시대)|정진영]]과 [[금강(야인시대)|금강]] 정도뿐이다.]보다도 못하다. 실제 공산주의자인지 의견이 분분한 [[김원봉]] 같은 경우도 남한 적화에 매우 관심이 많은 인사로 등장시켰고, 정진영을 제외한 나머지 캐릭터들은 전형적인 골수 [[빨갱이]]들로 묘사되며, 무능하게 우미관 패거리들에게 당하기만 하다가 대책없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인다. 아예 작중 대사부터가 '나 전형적인 악당이요'라고 보여주는데, 가령 [[신불출(야인시대)|신불출]]은 [[박헌영(야인시대)|박헌영]]에게 김두한을 정진영과 더불어서 철저하게 끌어들여 세뇌를 시키도록 하겠다는 등, 악당이 쓸 법한 표현을 쓴다. [[용산구|용산]] [[파업]] 사건에서 공산당 측은 [[금강(야인시대)|금강]]이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에게 패배했음에도 약속을 어기고 김두한에게 사격을 가하는 쓰레기 짓거리까지 했다. 그나마 공산당측 인물중 [[정진영(야인시대)|정진영]]과 [[금강(야인시대)|금강]]은 이를 반대했으나 막질 못했다. 물론 [[좌우합작]]에서의 [[여운형]]과 [[김규식]], [[진보당(1956년)|진보당]]의 [[조봉암]]은 극렬한 공산주의자로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여운형은 김두한 패거리들에게 납치되어서 린치당한 뒤에도 린치당한 사실을 함구해버린다. 사실을 함구한 이유가 병맛인 것이, 여운형은 [[김두한]]의 행동을 국가를 위한 행동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진보당 사건]]의 경우 성우의 내레이션으로 간략하게만 언급하고 끝났다. [[좌익]] 쪽은 너무나 허망하게 박살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드라마 속 좌익은 말 그대로 털리는 게 일이다. 뭐 하나 제대로 한 것이 없고, [[굴욕]]이란 굴욕은 다 당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심지어 [[훈련]]을 받은 사병 조직인 [[국군준비대]]가, 반나절 사격 훈련 받은 [[조직폭력배|조폭]]들에게 일방적으로 박살나는 장면까지 나온다. 설정 상에서도 무능한 집단이면 모를까, 조역들의 입을 빌려서 [[조선청년전위대|전위대]] 무섭다, 크다 같은 소리나 하고 있으니 문제라고 볼 수 있다. == 고증오류 및 옥의 티 또는 각색된 부분 == === 전반적 === * 실존 인물들과 배우들의 극 중 외모 차이가 좀 있다.[* 여기서는 분장과 신체 문제 위주로 다룬다. 생김새는 세세한 부분 말고 실제와 너무 차이가 나는 경우를 적는다.] 일단 주연인 [[김두한]]과 [[이정재(조직폭력배)|이정재]], [[이성순|시라소니]]부터 그러하다. 실제 김두한은 상당히 체구와 외모가 후덕했으나 극중 [[김영철(배우)|김영철]]은 도리어 보통 중년 남성보다 약간 마른 체형이고 실제 김두한보다 이목구비의 선이 뚜렷하다. [[쌍꺼풀]]이 뚜렷하게 져 눈이 부리부리하게 큰 실제 이정재와 달리 [[김영호(배우)|김영호]]는 눈이 굉장히 가늘다. 또한 [[시라소니(야인시대)|시라소니]] 역의 [[조상구]]는 머리가 길고 [[콧수염]]이 있지만 실제 인물은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약간 머리가 벗겨졌고 수염을 기르지 않았다. 조연들을 보면 [[김영태(야인시대)|김영태]]는 2부로 넘어오면서 콧수염이 났지만, 이는 나이든 것을 표현하는 장치일 뿐, [[김영태|실제 인물]]은 콧수염을 기르지 않았다. 또한 [[김관철(야인시대)|김관철]]이 날렵한 몸매로 나오는데, 실존인물 [[김관철(조직폭력배)|김관철]]은 120kg 가까이 되는 거구였다. 그리고 실제 [[신영균(조직폭력배)|신영균]]은 단신이었지만 극에서는 나름 장신 축에 속하는 [[윤용현]]이 맡았으며, [[유지광]]도 역시 단신인데 여기서는 186cm의 상당한 장신 배우인 [[유태웅]]이 연기했다. [[유진산]]은 극에 처음 등장한 시기인 1945년 말에 이미 [[안경]]을 쓰고 있어야 하지만, 마지막회까지 쓰지 않았다. [[중앙정보부|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은 실제 인물과 상당히 비슷하긴 한데 1970년대 후반 모습과 흡사하며 등장한 시점인 1960년대 중반과는 사뭇 다르다. [[황병관]]은 실제로 60kg 이하 경량급 [[레슬링]] 선수로 사진을 보면 그렇게 덩치가 크거나 둔해보이는 스타일이 아니나, 극에서는 [[레슬러]]에 대한 선입견답게 [[덩치]]가 크고 살집이 있는 인물로 나온다. * 실제보다 일찍 죽은 사람들이 있다. [[김무옥(야인시대)|김무옥]]과 [[김두한의 친할머니]], [[신영균(야인시대)|신영균]]이다. 김무옥은 원래 정부 수립 이후 꽤 지난 뒤에 사망했으나[* 1950년 6.25 전쟁 때 전사했다는 설과 김무옥의 딸이 주장한 천수를 누렸다는 설 두 가지가 있는데, 어느 쪽으로 보나 실제 역사보다는 일찍 죽었다는 것은 변치 않는 사실이다.] 배우 [[이혁재]]의 스케줄 문제로[* 원래 이혁재는 야인시대 1부까지만 출연하기로 되어있었다. 그래서 1부 종영 이후 야인시대 촬영으로 미뤄뒀던 스케줄들을 잡아놓았는데 캐릭터와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고증 문제도 있어 2부에도 출연하면서 일정 조절이 상당히 빠듯했다고. 이 당시 이혁재는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대스타였다.] 1946년 파업 진압 때 사망한 것으로 일찍 하차시켰다. 또한 [[김두한의 친할머니]]는 [[1949년]] 10월 22일에 사망했으나[* 1949년 10월 25일 동아일보 기사.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49102500209202018&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49-10-25&officeId=00020&pageNo=2&printNo=8066&publishType=00020|金佐鎭 將軍(김좌진 장군)의 慈堂 廿二日別世(자당 입이일별세)]]. '자당(慈堂)'은 타인의 어머니를 높여부르는 말이며 '입(廿)'은 '20(二十)'을 한 글자로 쓴 것이다.] 극에서는 김두한이 막 우익 청년활동을 시작하는 [[1946년]] 초에 사망한 것으로 처리했는다. 아무래도 1부에서 이어진 캐릭터들 중 앞으로 이어질 스토리와 별 연관없는 인물들의 원활한 퇴장을 위해 일찍 하차시킨 듯 하다. 신영균은 [[1987년]]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한 기사가 있는 것을 보아 최소 그 이후에 사망했으나, 극에서는 김두한이 오물사건으로 수감 중이던 1966년에 죽은 것으로 나왔다. * 플랜카드나 띠, 종이 등에 쓰인 글씨에서도 오류가 발견된다. [[일제강점기]] ~ [[10월 유신|유신시대]]라는 극 중 배경에 맞게 손으로 직접 글씨를 쓴 경우가 많지만 몇 몇 부분에서는 [[컴퓨터]] [[글꼴]] [[궁서체]]나 HY백송B체가 나온다. 이건 2000년대 이후 [[근현대사]]를 다룬 작품들에서 종종 보이는 오류이다. 그 전에 있던 드라마들은 그런 오류가 덜하거나 없었지만, 한국 근현대사 드라마 중 100부작이 넘어가는 장편으로 방영된 것은 야인시대가 처음이기 때문에 아마도 극에서 필요한 분량을 전부 손으로 쓰기엔 무리가 있어 부분적으로 [[컴퓨터]]를 사용한 듯 하다. 그러나 그 것이 사실성을 떨어뜨리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이 싸울 때 늘 [[정장]]을 입고 싸운다. 실제로 대부분은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거의 편한 활동복을 입고 싸웠다.[* 엄밀히 말하면 김두한의 증언과 다른 부분이라고 보는 게 맞다. 김두한이 노변야화에서 자신이 싸우러 갈 때 어떤 옷을 입고 갔는지에 대해서 꽤 자세히 설명한 부분들이 있다.] 사실 정장이라면 야인시대 조폭들 대부분이 고정적으로 입긴 했다. * [[옥의 티]]에 가깝지만, 극 중 역사적 사건의 [[계절]] 배경이 뒤죽박죽이다. [[나석주]] 의사 폭탄 투척은 실제로는 12월 한겨울인데 드라마상에서는 한여름으로 나오고 반대로 [[부민관 폭탄의거 사건|부민관 의거]]와 [[경성부|경성]]에 [[미군]] [[전투기]]가 날 때는 7월이라고 자막까지 써놓았는데 등장인물들이 [[코트]]를 입고 있다. 또 1월 한겨울에 일어난 [[단성사 저격 사건]]도 여름에 벌어진 걸로 나오며 [[아이스께끼]] 장수까지 보인다. 김두한이 사망한 날인 11월 21일은 늦가을 ~ 초겨울인데 [[가로수]] [[나무]]가 [[낙엽]]이 져 앙상하기는커녕 나뭇잎이 [[단풍]]도 들지 않은 채로 무성하게 달려 있다. 또한 8월 15일 당연히 여름이어야 할 광복절이 극중에서는 눈이 내리고 모두 긴팔에 긴옷, 배우들 입김까지 오류가 있다. 촬영상 스케줄 문제인데 그래도 시청자 입장에선 이질스러울 수밖에 없다. * 관점에 따라 [[옥의 티]]일 수도 있는데 [[일제강점기]] [[경성부|경성]] 거리와 [[8.15 광복|해방]]과 6.25 이후 [[서울]] 거리가 달라진 게 없다. '''단순히 [[세트]]만 같은 것이 아니라 간판도 똑같다. 즉 극 중 서울의 1930년대 ~ 1960년대 모습은 동일하다.''' 일제강점기에서 해방이 되면 [[일식|일본식]] 간판은 대거 사라지고 또 [[한국전쟁]]으로 대부분 건물들이 파괴된 뒤 새로 복구하는 과정에서 한자식 간판도 대부분 [[한글]] [[간판]]으로 바뀐다. 그러나 [[야인시대]]에서는 이런 시대 흐름을 세트에 반영하지 못했다. 물론 시대별로 일일히 맞게 짓는 것이 무리일 수 있으나[* 제작진이 애초에 1920년대 ~ 1970년대라는 긴 시간대를 다루는 특성 상, 세트장내 대로 변에는 고증을 어기더라도 임의로 근현대식 일반 건물 세트를 세웠다고 했다. 참고로 1930년대엔 [[종로(서울)|종로]] 큰 길가에도 [[기와집]]과 [[초가집]]이 있었다는데 그 모습대로 1960년대와 1970년대 서울 시내 풍경을 연출하기엔 무리다.] 적어도 상대적으로 제작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간판]]만은 변화를 주었어야 했다. 그리고 [[일본어]]로 된 [[노면전차|전차]] 정거장 표지판 역시 [[1950년대]]를 다룰 때에도 보이는데 이건 그냥 구석에 치워놓기만 해도 되며 당연히 비용은 한푼도 안 든다. 그러나 그대로 냅둔 것을 보아서는 제작진이 거리의 시대 변화 반영을 태만하게 다뤘다고 볼 수 밖에 없다. * 일제시대인데도 아파트가 보이는 등 잡다한 실수가 보인다. [[https://m.cafe.daum.net/vndvnd/CFhs/195?q=D_skBZZaVmW7U0&|#]], [[http://choonggyuk.com/zb41/zboard.php?id=hwoajae&page=7&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it&desc=asc&no=2101|#]] * 종로 패 중 [[김두한]]에 이어 넘버 2인 종로꼬마 이상욱이 등장하지 않는데, 이것은 유족이 반대했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종로꼬마 이상욱의 사망이 2000년 초였는데, [[야인시대]] 방영 당시 부인을 포함한 그 유족들이 멀쩡히 살아있던 시절이었다.] 그 다음 서열인 망치와 [[김무옥]] 중에서 망치가 등장하지 않는다. 위와 마찬가지 이유로 보여지고 오히려 [[유지광]] 부하로 망치라는 같은 별명을 쓰는 주먹이 등장하는데, 망치라는 별명을 쓰는 주먹이 그만큼 흔하다. 그 다음 위치의 부하주먹인[* [[문영철]]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가 있다. 문영철은 본래 이름이 아니고, 실제로 권투선수로 유명했던 사람이며 [[8.15 광복|해방]] 전이 아닌 해방 후 [[우익]] 활동을 같이 하게 되면서 김두한과 관계를 맺게 되었다는 이야기... '전우치전설' 이라는 블로그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이 당시 여러 신문기사나 잡지들을 인용한 다른 주먹들 이야기와는 좀 다르게 이 사람에 대해서는 그저 그런 썰이 있다더라... 정도만 이야기했다. 참고로 그 썰에 따르면 문영철은 결혼 후 기독교에 귀의하여 기독교계 인사로 우익활동을 했고, 이 때문에 [[6.25]] 때 [[서울특별시|서울]]이 점령된 이후 피난가지 못하고 [[인민군]]에게 [[처형]]당했다고 한다.] [[문영철]]이 좀 더 비중있게 나오는 것은 앞의 두 사람이 빠진 결과로 보인다. 다만 김두한은 자서전이나 노변야화같은 회고에서 종로꼬마 이상욱이라는 사람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당장 장충단 공원에서 [[하야시]]와 싸운 이야기에도 등장한 부하가 자서전에서는 '내 왼팔 오른팔인 [[김무옥]]과 [[문영철]]' 을 데리고 셋이 싸웠다고 되어있으며[* 이 때 김두한이 말한 일본 야쿠자 두목은 하야시도 아닌 와께지마였다.], 노변야화에서는 김무옥과 문영철 등 자신 포함 6인으로 언급되어있다. 그리고 노변야화에서 해방 후 정치깡패질 하는 이야기를 할 때 조 동지, 신 동지 등 성으로 말하는 몇몇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상욱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성으로만 지칭한 사람들 중에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없다.] 당시 김두한 패가 연루된 정진룡 살해사건도 이상욱의 이름은 보이지 않으며, 1980년대 [[경향신문]]에서 신영균과 [[박용직]]의 증언에도 이상욱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정진룡 살해사건이나 김두한의 노변야화 그리고 훗날 [[경향신문]] 신영균, 박용직 [[인터뷰]]에 따르면 [[야인시대]]에 등장한 [[우미관]] 패 중 언급되지 않는 사람은 실존 인물이 아니거나 실존인물로 확인되지 않은 [[김삼수|삼수]]와 [[아구(야인시대)|아구]], [[갈치(야인시대)|갈치]], [[털보(야인시대)|털보]], [[번개(야인시대)|번개]], [[와싱톤|와싱턴]], [[개코(야인시대)|개코]] 정도이다. 오히려 야인시대에 등장하지 않고, 김두한 회고에도 등장하지 않는 이름들 중 김두한의 활동에 여러 번 함께 한 레귤러급 인물들도 여럿 이름이 보이는데 그 이름 중에도 김동회네 이상욱이네 하는 이름은 전혀 없는 것.] 이상욱이 우미관 패 2인자였다는 증거 자체가 있는지 의문이다. 김두한의 증언만 따르자면 문영철과 김무옥은 야인시대에 나온대로 김두한의 왼팔과 오른팔이 맞다. 우미관 패 2인자이자 [[고문]] 격으로 나온 [[김영태]] 정도가 버프가 된 편이다. * '[[서대문형무소역사관|서대문형무소]]'가 [[8.15 광복|해방]] 이후에도 그 이름인 걸로 나온다. 실제로는 해방 직후인 1945년 11월 '서울형무소'로 바뀌고 1961년에 '서울교도소'로 개칭하였다가 다시 1967년에 지금 이름인 '[[서울구치소]]'가 되었다.[* 1987년에 현재 자리인 [[경기도]] [[의왕시]] 포일동으로 이전.] 즉, 해방 후부터 5.16까지는 '서울형무소', 그 뒤에는 '서울교도소'로 나와야한다.[* 김두한이 서울구치소 시절에도 수감된 적이 있지만 그 모습은 나오지 않았다.] 등장인물들이 익숙한 '서대문형무소'로 부른다고 할 수도 있고 실제로도 종종 그렇게 부르기는 했는데 아예 감옥 정문에 대놓고 '西大門刑務所(서대문형무소)'라고 붙여놓은 것이 문제. * [[김영태]]는 실제로는 [[김두한]]보다 2살 어리다. 그리고 김두한 부하들 가운데 [[고등보통학교|고보]] 학력 이상인 사람이 그 밖에 없어서 그랬는지 [[고문]]이자 조직 내 2인자인 것으로 묘사되었는데, 실제로 그 정도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한참 급이 낮은 사람 아니었느냐는 이야기도 있으나 [[중앙극장 습격 사건]]에서 [[수류탄]]으로 가장 연막탄을 터뜨리는 임무를 책임진 것이 김영태라는 신영균의 증언도 있고, 정진룡(정진영의 모티브가 되는 인물) 치사 사건 당시 조선민청 대원들을 기습한 대한민청 별동대를 이끌기도 했다.]. 그리고 김두한이 처음 주먹 세계에 입문했을 때부터 만났으나, 실제로는 김두한이 청년단 활동을 했을 시기인 1943년에서 1944년경에 만났다. * 총격전 시 사용된 [[총기]]에 [[고증오류]]가 있다. 대표적으로는 [[베레타 92]] [[모델]]이 사용된 것이 있다. 해당 모델은 1972년에 공개되고 1985년에 미군 제식 총기로 체택되어 1985년 이후에서야 대중에게 알려진 모델이므로 [[야인시대]] 배경과는 고증이 맞지 않는다. [[6.25 전쟁]]과 [[김동진(야인시대)|김동진]] 습격 장면에 등장하는데 그 당시라면 [[M1911]]을 사용해야 맞다. * 가공인물들이 너무 많다. 이와 반대로, 누락된 인물이 존재하는데, 단적인 예시로 유일한과 김춘삼 정도가 있겠다.[* 사실 김춘삼은 2004년에 사망했으므로, 야인시대가 방영될 당시에는 생존해 있었다. 그리고 유일한은, 이 바닥에서 놀 사람은 아니니 패스.] === 1부 === * '''[[김두한(야인시대)|{{{#2E674E 김두한}}}]] 어머니 박계숙은 [[일본제국 경찰|{{{#2E674E 일본 경찰}}}]]의 고문으로 죽었다.'''[br][br]'''→''' '''거짓말'''이다. 김두한이 어릴 때 어머니와 아들을 두고 가출한 것이다. [[김좌진]]이 가정을 책임지지 못하자 어려워진 형편 때문이었다. 나무위키 [[김두한]] 항목에 자세한 내용이 있다. 아무래도 김두한을 드라마틱한 주인공으로 포장하려고 바꾼 듯하다. 그리고 실제 이름은 김계월이다. * '''{{{#2E674E 1부 메인 악역인 [[미와 와사부로(야인시대)|{{{#2E674E {{{#2E674E 미와 와사부로}}}}}}]]가 어린 김두한을 쫓았으며 젊은 시절 김두한을 늘 괴롭히면서 1945년까지 [[서울종로경찰서|{{{#2E674E 종로경찰서}}}]] 경부로 있다가 [[자살|{{{#2E674E 자살}}}]]하였다.}}}'''[br][br]'''→''' '''역시 거짓말'''이다. 실제 [[미와 와사부로]]는 1884년 생으로 1920년대 이후 승진을 거듭해서 1934년에 [[충청남도]] 경찰부 고등과장이 될 때까지만 [[서울종로경찰서|종로경찰서]]에서 근무했다. 최종 계급은 경시, 이후 [[함경도]] 일대에서 경찰서장 등을 역임하고 [[조선총독부]] 촉탁으로 근무하다 은퇴했다. 즉 '''[[김두한]]이 종로에서 주먹 좀 쓴다며 설치고 다니던 시절에 미와는 50 ~ 60대 나이로 이미 종로경찰서를 떠난 지 한참 지났던 것.''' 다만 현재 확인할 수 있는 마지막 공식자료인 [[매일신보]] 1944년 3월 27일자에 '종로총궐기위원회(鍾路總蹶起委員會)' 특별위원으로 참가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보아 퇴임 이후 [[종로(서울)|종로]]에서 머물면서 이런 저런 활동을 한 듯 하며, 김두한이 그 동네 [[건달]]이었던만큼 1940년대쯤에는 어느 정도 안면을 텄을 가능성은 있다. 그리고 후술할 징용 문제에서 [[깡패]]들이 하도 사고를 쳐 [[조선총독부]] 촉탁이던 미와가 건달들을 징용보내라고 해서 실제로 사이가 안 좋았을 가능성이 크긴 하다. 그래도 어쨌든 계속 고위층이었던 사람[* 엄밀히 말하면 경부는 ''''최''''고위층 직책이라고 할 수는 없는 실무책임자 수준이고, 경시는 경찰서장급이니 고위급이 맞기는 한데, 문제는 김두한이 사법계 쪽이라면 모를까, [[고등경찰과 특별고등경찰|고등계]]에서 촉각을 곤두세워가며 신경을 쓸 급까지는 못 되었다는 것이다.]이 다른 거물급 [[독립운동가]]들 놔두고 깡패 두목 하나에 집착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다만, 어쨌든 '[[독립군]] [[김좌진]] 아들인 조직 두목'이란 점 때문에 다른 건달들보다는 더 눈여겨보고 경계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 '''{{{#2E674E 1929년부터 1957년까지[* 1950년, 6.25 전쟁으로 잠시 대구, 부산 등지로 옮겼다가 서울 수복 후 상경했다.] [[서울종로경찰서|{{{#2E674E 종로경찰서}}}]]였던 곳이 1920년대 초중반에도 [[경찰서|{{{#2E674E 경찰서}}}]]로 나온다.}}}'''[br][br]'''→''' [[부천 판타스틱 스튜디오|야인시대 촬영장]]에서 재현한 경찰서 세트의 모티브는 원래 대한제국 [[평리원]] 건물로 이후 경성복심법원과 경성지방법원이 사용하였다가 1929년 8월부터 [[서울종로경찰서|종로경찰서]]로 사용하였고, 1957년 3월에 신신백화점을 지으면서 헐었다. 1920년대 초중반 종로경찰서는 옛 한성전기회사 사옥[* 이 건물을 모티브로 지은 세트는 해방 이후 대한민청이 사용한 동본원사로 나온다.]으로 1936년 헌 뒤 그 자리에 지금까지 남아있는 장안빌딩을 세웠다. [[4.19 혁명]] 당시인 1960년을 다룰 때에도 이 세트가 종로경찰서로 나오는데 그 때의 실제 자리는 SK 재동주유소다.[* 현재 자리 바로 옆이다.] * '''{{{#2E674E 작 중 대부분의 결투, 특히 1부에서는 거의 90%의 싸움이 [[우미관|{{{#2E674E 우미관}}}]] 앞에서 일어나고 또 군중들이 주위를 둘러싸서 구경한다.}}}'''[br][br]'''→''' 실제로는 그러지 않았다. 그 일대 [[길]]도 [[사람]] 세네 명이 겨우 지나갈만할 정도로 좁았다. 더군다나 [[일제강점기]]에는 해방 이후보다 훨씬 [[폭력]]에 대한 단속이 심했기 때문에 대부분 깊은 [[밤(시간)|밤]]에 으슥한 [[골목]]에서 몰래 싸웠다. * '''{{{#2E674E [[종로|{{{#2E674E 종로}}}]] 최고의 [[건달|{{{#2E674E 주먹}}}]]들의 [[아지트|{{{#2E674E 아지트}}}]]가 [[우미관|{{{#2E674E 우미관}}}]]이다.}}}'''[br][br]'''→'''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우미관]]을 주 무대로 활약한 것은 사실이지만, 드라마처럼 반듯한 [[사무실]]을 두고 그 곳 [[직원]]처럼 행세하진 않았다. * '''{{{#2E674E [[김두한(야인시대)|{{{#2E674E 김두한}}}]]이 [[원영기|{{{#2E674E 원노인}}}]] 사후 거지촌에 잠시 있다가 [[쌍칼(야인시대)|{{{#2E674E 쌍칼}}}]]의 부하가 되었다.}}}'''[br][br]'''→''' 실제로는 [[이문설농탕]][* [[수요미식회]] 설렁탕편에서 김두한이 아르바이트했다고 나온 적이 있다. [[https://tv.naver.com/v/383774|#]]]과 조선극장 등에서 여러 잡일을 했었고 이후 우미관 매점에서 일을 하다 [[구마적]] 부하가 되었다. * '''{{{#2E674E 등장인물들이 자주 가는 [[다방|{{{#2E674E 다방}}}]]이 밀림다방이다.}}}'''[br][br]'''→''' 밀림다방은 [[6.25 전쟁]] 휴전 직후에야 [[서울]] [[종로]]를 비롯한 필동과 [[명동(서울)|명동]] 등에 생겼다. * '''{{{#2E674E 2화에서 [[김두한(야인시대)|{{{#2E674E 김두한}}}]]이 [[원영기|{{{#2E674E 원노인}}}]]과 [[경성부|{{{#2E674E 경성}}}]]으로 귀환했을 때 우미관 앞에 만국기를 걸어 놓은 모습이 나오는데, 그 중에 단풍잎이 있는 [[캐나다|{{{#2E674E 캐나다}}}]] 국기와 [[나이지리아|{{{#2E674E 나이지리아}}}]] 국기가 있다.}}}'''[br][br]'''→''' 현 캐나다 국기는 1965년에 제정한 것이다. 그리고 저 때 나이지리아는 독립국이 아니었다. * '''{{{#2E674E 1925년 ~ 1926년 경[* 1회 시작 배경이 1924년이라 나왔고 2회에서 1년이 지났다고 하며 6.10 만세운동 직전이므로 저렇게 연도를 추론한다.]인 4회에서 [[한용운|{{{#2E674E 만해 한용운}}}]]이 [[YMCA|{{{#2E674E YMCA}}}]]에서 "여러분! [[개성특급시|{{{#2E674E 개성}}}]]에 [[송악산|{{{#2E674E 송악산}}}]]이 있어요! 그 송악산에서 흐르는 물이 [[만월대|{{{#2E674E 만월대}}}]]의 티끌을 씻을 지 몰라도, [[선죽교|{{{#2E674E 선죽교}}}]]에 어려있는 충혈들의 피는 결코 씻을 수 없습니다!" 의 연설을 한다.}}}'''[br][br]'''→''' 실제로는 1921년 12월에 있었던 일이다. 단, 이는 한용운의 [[애국|애국심]] 일화를 보여주기 위한 각색이다. * '''{{{#2E674E 5회에서 [[나석주|{{{#2E674E 나석주}}}]] 의사가 [[동양척식주식회사|{{{#2E674E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2E674E 폭탄}}}]]을 던져 폭파시켰고 이후 조선식산은행 쪽으로 가서 들어가지도 않고 유리창을 깬 뒤 폭탄을 던졌다. 그 때 폭탄은 불발했으며 출동한 경찰들과 시가전을 벌이다 총알이 떨어져 [[일본제국 경찰|{{{#2E674E 일본 경찰}}}]]들의 총에 맞아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순국했다.}}}'''[br][br]'''→''' 오류가 많다. 동양척식주식회사에 던진 폭탄은 실제로는 불발했다. 그리고 순서도 다르다. 동양척식주식회사의 경비 현황을 먼저 탐색한 후에 조선식산은행 실내로 들어가 폭탄을 투척하고[* 이 때 폭탄은 불발했는데 이건 고증을 지켰다.] 그 다음에 다시 동양척식주식회사로 가서 직원들을 쏘고 불발한 폭탄을 던진 것이다. 또한 [[순국]] 과정도 사실과 다르다. 실제론 총알 22발이 남았고 나석주 의사가 체력 한계로 [[전봇대]]에 기대어 가슴에 총을 쏴 [[자살]]을 시도했다. 이후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순국한 것은 사실이다. * '''{{{#2E674E 6회에서 [[김두한(야인시대)|{{{#2E674E 김두한}}}]]이 [[원영기|{{{#2E674E 원노인}}}]]을 만나고 거지촌에서 나와 새 옷을 사 입고 나오는 건물이 [[화신백화점|{{{#2E674E 화신백화점}}}]] 서관이다.}}}'''[br][br]'''→''' 이 건물은 1935년 [[화재]]로 불탄 3층 화신백화점 자리에 1937년에 지은 것이며, 그 때 김두한은 이미 주먹패였다.[*A 극 중 설정.] * '''{{{#2E674E [[김두한의 친할머니|{{{#2E674E 김좌진의 어머니}}}]]와 [[오숙근|{{{#2E674E 본부인}}}]]이 [[만주|{{{#2E674E 만주}}}]]에서 [[경성부|{{{#2E674E 경성}}}]]으로 올 때, [[김성수(1891)|{{{#2E674E 인촌 김성수}}}]]가 손을 써서 그들이 [[고문|{{{#2E674E 고문}}}]]을 당하지 않고 그나마 무사하게 정착했다.}}}'''[br][br]'''→''' 김성수가 도움을 주고 안 주고의 여부는 알 수 없다. 또 애초에 아무리 '1급 [[불령선인]]' [[가족]]이어도 혐의도 없는데 무작정 막 잡아가지는 않았다. * '''{{{#2E674E [[최동열|{{{#2E674E 최동열}}}]]의 집에 [[김좌진(야인시대)|{{{#2E674E 김좌진}}}]]이 가서 애국 헌금을 걷을 때 [[대학생|{{{#2E674E 대학생}}}]]인 [[최동열|{{{#2E674E 최동열}}}]]에게 "[[경성제국대학|{{{#2E674E 경성제대}}}]]에 다닌다지?"라고 한다.}}}'''[br][br]'''→''' 경성제대는 1924년에 세워졌다. 최동열은 이미 [[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중앙일보|시대일보]] 기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김좌진은 1918년 [[만주]]로 [[망명]]한 이후 두 번 다시 살아서 [[조선]]에 들어오지 못했다. 즉, 저 장면은 최소 1918년 이전으로, 김좌진이 경성제대를 언급하는 것이 오류. * '''{{{#2E674E 11화에서 [[구마적(야인시대)|{{{#2E674E 구마적}}}]]이 [[하야시(야인시대)|{{{#2E674E 하야시}}}]]에게 자신의 이름을 고희경이라고 말한다.}}}'''[br][br]'''→''' 실제 이름은 고'''시'''형(또는 고시경)이다. [[김두한]] 회고담 《노변야화》에서 김두한의 발음이 잘 들리지 않은 것이 잘못 전한 것. * '''{{{#2E674E 16화에서 [[수표교|{{{#2E674E 수표교}}}]] [[거지|{{{#2E674E 거지}}}]]들이 구역이 다른 [[숭례문|{{{#2E674E 숭례문}}}]]에 동냥하러 갔다가 그 쪽 [[염천교|{{{#2E674E 염천교}}}]] 거지들에게 걸려 도망간다.}}}'''[br][br]'''→''' 아마 [[서울역]] 근처 염천교로 설정한 것 같은데[* 수표교 [[거지]] 일행 중 한 명이 도망가다 붙잡히는데 그 곳이 [[열차]] 철로 위였다.] 실제 [[일제강점기]] 당시 거지들이 있던 염천교는 [[남산(서울)|남산]]에서 발원해 지금의 방산시장 근처에서 [[청계천]]으로 흘러들던 묵사동천에 있었다. 사족으로 서울역 염천교는 [[인왕산]] 무악재 부근에서 발원한 무악천에 있던 다리에서 이름만 따온 것.[[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5000000/2003/07/005000000200307022234196.html|관련 기사.]] * '''{{{#2E674E 16화에서 거지들이 [[염천교|{{{#2E674E 염천교}}}]]에 구걸하러 갈 때 철로를 지나는 기차[* 철도 건널목 경보기를 잘 보면 경보등에 고장정지표시기가 달려 있다. 이설 전 휘경4 건널목, 현재는 폐쇄된 경원선 초성3 건널목, 학답2 건널목과 동일한 장치다. 그리고 도망가는 장면이 나올 때 '''전차선에 철도 건널목을 지나는 자동차가 등장한다!''']와 23화에서 [[김무옥(야인시대)|{{{#2E674E 김무옥}}}]], [[문영철(야인시대)|{{{#2E674E 문영철}}}]]이 개성 깡패들과 싸우고 간신히 탄 열차[* 소화물차 부분에 철도청 마크가 있다.], 그리고 24화에서 [[구마적(야인시대)|{{{#2E674E 구마적}}}]]이 [[만주|{{{#2E674E 만주}}}]]로 떠나면서 탄 열차[* 잘 들어보면 [[디젤 기관차]] 구동음이 들린다.]와 48화에서 [[마루오까(야인시대)|{{{#2E674E 마루오까}}}]]를 피해 도주한 다나까가 타려던 열차가 전부 '''[[통일호|{{{#2E674E 통일호}}}]]'''다.}}}'''[br][br]'''→''' 통일호가 처음 생긴 것은 1955년, [[8.15 광복]] 이후이다. * '''{{{#2E674E 21화에서 [[김두한(야인시대)|{{{#2E674E 김두한}}}]]이 아버지 [[도박|{{{#2E674E 노름}}}]] [[빚|{{{#2E674E 빚}}}]]으로 팔려 갈 위기에 처한 [[애란|{{{#2E674E 애란}}}]]을 구하려고 [[하야시(야인시대)|{{{#2E674E 하야시}}}]] 집을 찾아가 [[절도|{{{#2E674E 도둑질}}}]]하였다.}}}'''[br][br]'''→''' [[김두한]] 회고에 나온 것으로 사실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실제 [[김두한]] 증언에 따르면, 부하 몇 명과 같이 지나가던 행인들에게 [[술지게미]]를 뿌리고 [[폭행]]해서 [[화폐|돈]]을 갈취했다.[* 김두한 증언에 따른 스토리는 [[장군의 아들]] 1부에 잘 나와있다. 그리고 금액도 장군의 아들에서는 150원인데, 야인시대에서는 무려 5천원. 당시 좋은 직장에 다니던 [[화이트칼라]]들 [[월급]]이 100원이 안될 때인만큼 어느 쪽이 [[사실]]과 가까울지는 뭐(...).] * '''{{{#2E674E 22화에서 [[김두한(야인시대)|{{{#2E674E 김두한}}}]]이 [[구마적(야인시대)|{{{#2E674E 구마적}}}]] 패거리의 눈을 피해 작은 [[절(불교)|{{{#2E674E 암자}}}]]에 숨어있을 때 [[최동열|{{{#2E674E 최동열}}}]]이 [[김동삼|{{{#2E674E 김동삼}}}]] 장군의 옥사를 언급한다.}}}'''[br][br]'''→''' 실제 김동삼 장군은 1937년 4월에, 그러니까 이미 김두한이 극 중에서 [[우미관]]을 차지한 후에 옥사했다. * '''{{{#2E674E 23화에서 [[김두한(야인시대)|{{{#2E674E 김두한}}}]]이 [[구마적(야인시대)|{{{#2E674E 구마적}}}]]과 대결하기 하루 전, [[개성역|{{{#2E674E 개성역}}}]]에서 [[김무옥(야인시대)|{{{#2E674E 김무옥}}}]]과 [[문영철(야인시대)|{{{#2E674E 문영철}}}]]이 [[경성부|{{{#2E674E 경성}}}]]으로 가는 기차표를 끊을 때 뒷 편에 '조선철도 12년 계획수립' 현수막이 있다.}}}'''[br][br]'''→''' 이 때가 1936년[*A 극 중 설정.]인데 조선철도 12년 계획은 1927년부터 시행한 것으로 저 때 굳이 있는 것은 어색하다. 마치 [[청계천]] 복원 사업 [[광고|광고판]]이 2020년대 현재 기준으로 시내 한복판에 붙어있는 느낌이다. * '''{{{#2E674E 24화에서 [[구마적(야인시대)|{{{#2E674E 구마적}}}]]이 [[김두한(야인시대)|{{{#2E674E 김두한}}}]]에게 패한 후 [[만주|{{{#2E674E 만주}}}]]로 떠나 사라졌다.}}}'''[br][br]'''→''' 당시 기록을 보면 1942년까지만 해도 [[김두한]]의 두목으로 있었으며 도리어 김두한 소개로 친일단체 [[시천교]]와 친일 단체 대동일진회 분쟁에 개입하여 대동일진회에 소속했었다.[* 사상에 관한 정보(경찰서장), 경종고비 제1721호 1, 1942.04.07 16쪽, 同年2月19日自宅において被疑者金斗漢の紹介により其親分俗称旧馬賊こと高時亨(京)改め高山勲を知り、前掲両名に対する如き好言を述べて獲得し : 동년 2월 19일 자기 집에서 [[피의자]] 김두한 소개로 그의 두목인 속칭 마적(馬賊), 곧 고시형(또는 고시경. 高時亨, 高時京)을 알게 되어 위 두 사람에게 한 것과 같은 감언으로 획득하였다.] * '''{{{#2E674E 25화 ~ 41화에서 [[김두한(야인시대)|{{{#2E674E 김두한}}}]]과 [[박인애|{{{#2E674E 박인애}}}]]가 풋풋하면서도 가슴 아픈 [[사랑|{{{#2E674E 사랑}}}]]을 한다.}}}'''[br][br]'''→''' [[김두한]]이 노변야화에서 회고한 이야기를 각색한 것. 김두한의 회고에는 그냥 박씨인 [[여성]]으로 나온다. [[드라마]]에 등장시킬 때 [[이름]]이 필요했기 때문에 작가가 임의로 지은 것. 그리고 극 중에서는 전문학교 학생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타자치는 일을 배웠다. 이는 당시 여성으로서 흔하지 않았다.[* 소설판에서는 제대로 나온다. 허나 타자수로 일하기 위해서는 중등교육 이상을 받아야 했으므로 [[중학교]] 내지 [[고등학교]] 이상 학력을 가졌고, 극 중 박인애처럼 [[대학]]에 다니거나 [[대졸]]인 여성도 많이 있었다. 기껏해야 최종 학력이 [[초졸]]이었던 [[조선인]]들이 많은 [[일제강점기]]에는 나름 지식인 축에 들어갔다. 즉 함부로 무시 못할 학력을 가진 여성이라는 것.] 드라마처럼 김두한이 구해주고 사귄 것은 맞지만[* 극 중에서는 [[우미관]] 뒷 골목에서 싸웠지만 김두한의 회고에 따르면, [[돈의문|서대문]]에 있는 동양극장(현재 [[문화일보]] 자리) 뒷 골목에서 싸웠다고 한다.], 김두한의 회고에 따르면, 김두한의 힘 자랑과 그로 인한 실수 때문에 정이 떨어졌고[* 상당히 민망한 이야기를 직접 말한 건데(특히나 김두한 같이 주먹 좀 쓰고, 싸움 좀 한다는 사람이 말하기는 더욱), [[데이트]]를 한다고 [[한강]]에 놀러갔다가 [[역기]] 같은 걸 들고 [[운동]]하는 장정들을 보더니 힘 자랑한답시고 그걸 들려다 못 들어서 망신당하고 빡쳐서 [[장정]]과 [[시비]]가 붙었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보고 박씨 여성이 꽤나 질색팔색을 했다고 한다.] 결정적으로 [[일본군 헌병|헌병대]]와 붙은 사건으로 박씨 여성 집안에서 서둘러 결혼시켜 헤어졌다. 즉 회고를 보면 김두한의 마음이 일방적인 건데 극 중에서는 정말 서로 [[영화]]같은 사랑을 한 것으로 각색한 것. 그러니 33화 ~ 34화에 나온 [[박인애]] 납치 사건 누명으로 감옥에 간 적도 당연히 없다. 그리고 박씨 여성 집안도 [[친일파]]가 아니었으며 오히려 잘 대해 줬다고 '''본인이 증언했다.''' 이를 [[이환경]]이 극적 전개를 위해 왜곡시킨 것. 만약 실제 박씨 여성 집안에서 알았다면 충분히 고소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여담으로 김두한 증언에 따르면 그 여성에게는 여동생이 하나 더 있었는데 첫 [[데이트]]하는 날 자기는 박씨 여성과 짝을 맺었고 [[문영철]]에게 그 여동생을 붙여주려고 했다고 한다. * '''{{{#2E674E 26화에서 [[와싱톤|{{{#2E674E 와싱턴}}}]]이 처음 등장하면서 [[우미관|{{{#2E674E 우미관}}}]] 패에게 자신의 [[명함|{{{#2E674E 명함}}}]]을 주는데 [[전화번호|{{{#2E674E 전화번호}}}]]를 'Tel. 6853. 6854', [[주소|{{{#2E674E 주소}}}]]를 'Kongphyungdong 8. Jongro2jeongmok kyungsungbu'로 적었다.}}}'''[br][br]'''→''' 전부 오류. [[컴퓨터]] [[글꼴]]인 것은 제쳐두더라도 내용 면에서 문제가 많다. 우선 일제강점기 [[전화번호]]는 분국명을 앞에 쓰고 그 다음에 번호를 적었다. 예를 들어 [[광화문]] 분국이 관할하는 [[동아일보]] 전화번호는 '光1900番(광(화문) 1900번)' 이런 식이기에 명함 속 같은 번호가 나올 수 없다. 그리고 [[주소]]도 문제이다. 일제강점기 서울의 '동(洞)'들을 일본식 행정구역인 '정(町)'으로 바꿨기 때문에[* 원래 차별하는 의미에서 일본인 구역만 '정(町)'을 사용했고 조선인 구역은 옛날 그대로 '동(洞)'으로 썼지만 1920년대 이후 동화(同化)를 목표로 하면서 '동'을 전부 '정'으로 바꿨다.] '공평동'이 아닌 '공평정'으로 적어야한다. 또한 '정목(丁目)'을 'jeongmok' 으로 적었는데 'ㅓ'를 'eo'로 쓰는 것 자체가 해방 이후에 생긴데다가 정식으로 자리 잡은 것은 '''1954년 [[한글의 로마자 표기법]]을 제정한 후이다.''' 한국어 발음대로 쓰려면 차라리 'jongmok' 으로 쓰는 게 맞았다. * '''{{{#2E674E 26화에서 [[독립운동가|{{{#2E674E 독립운동가}}}]] [[이재유|{{{#2E674E 이재유}}}]]가 미야케 [[교수|{{{#2E674E 교수}}}]] 집에 숨었다가 [[미와 와사부로(야인시대)|{{{#2E674E 미와}}}]]가 들어닥치기 직전에 학생으로 변장해 탈출하고 미야케는 [[경찰|{{{#2E674E 경찰}}}]]들을 보고 웃으며 [[시치미|{{{#2E674E 시치미}}}]]를 뗀다.}}}'''[br][br]'''→''' 전부 오류. 이재유가 미야케 교수 집에 굴 같은 걸 만들고 숨어있었던 것 자체는 사실이나 탈출 과정이 실제와 다르다. 이재유 은신 도중 미야케 교수가 [[경성제국대학]] 적화공작 사건으로 체포당했고, 고문을 견디며 이재유 신변에 대해 증언거부를 하는 사이에 이재유가 도망가고 나서야(즉, 시간을 벌어주었다.) 저 사건의 전말이 드러난 것.[* 당시 [[사회주의]] 비밀결사들은 주로 일대일 점조직이었는데, 한 사람이 잡혀가면 다른 한 사람이 피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 하루 이상 진술을 거부하다가 그래도 못 참겠으면 진술하는 불문율이 있었다고 한다.] [[드라마]]같이 이재유는 쏙 빠져나가고 증거없는 상태에서 미야케 교수가 미와를 비웃으며 실실 웃는 여유있는 분위기가 절대 아니었다. 그리고 드라마에서는 백발의 늙은 [[교수]]로 나와 미와에게 늙은이 소리를 듣지만 실제로는 미와보다 15살 어린 30대 중반의 젊은 교수였다. * '''{{{#2E674E 36화에서 [[김두한(야인시대)|{{{#2E674E 김두한}}}]]이 [[나미꼬|{{{#2E674E 나미꼬}}}]]를 희롱한 [[일본인|{{{#2E674E 일본인}}}]] [[축구 선수|{{{#2E674E 축구선수}}}]]들과 싸웠다.}}}'''[br][br]'''→''' 이 역시 김두한 회고에서 유래한 것으로 사실관계는 확인할 수 없다. 회고에 따르면 상대는 '''[[평양축구단|평양 출신 조선인 축구부]]'''였다. 싸운 이유도 다르다. 당시 [[조선]]에서 제일 인기있던 [[더비]]인 [[경평전|경성 vs 평양 축구경기]]에서 [[평양직할시|평양]] 팀이 이긴 날 [[경성부|경성]] 팀 팬이었던 [[김두한]]이 [[종로(서울)|종로]] 어느 [[바(술집)|바]]에 술마시러 갔다가 하필 옆 자리에서 축하연을 즐기던 [[평양]] 팀을 보고 시비를 걸어 싸웠다고 한다. 한마디로 '''[[훌리건]]''' 짓. 그리고 평양축구팀은 [[숭실학교|숭실전문학교]], [[대성학교]][* 당시엔 폐교된 상황이었지만 출신 인물들이 꽤 활약을 많이 했었다.] 출신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이 학교 학생들 항일 의식은 남다른 수준이었다.[* 애당초 대성학교 설립자가 [[안창호|도산 안창호]]이다.] * '''{{{#2E674E 37화에서 [[최동열|{{{#2E674E 최동열}}}]]은 [[일본군|{{{#2E674E 일본군}}}]]의 행진을 본 뒤, [[조선총독부|{{{#2E674E 조선총독부}}}]]의 [[우민화|{{{#2E674E 우민화}}}]] 정책을 언급하면서 [[일본|{{{#2E674E 일본}}}]]이 '[[학도병|{{{#2E674E 학도병}}}]]'이라는 명분으로 [[조선|{{{#2E674E 조선}}}]]의 [[학생|{{{#2E674E 학생}}}]]들을 [[총알받이|{{{#2E674E 총알받이}}}]]로 밀어넣으며, [[조선인|{{{#2E674E 조선인}}}]]들이 말이 [[자원|{{{#2E674E 자원}}}]]이지, 실상은 무언의 압력을 받아서 [[군대|{{{#2E674E 군대}}}]]에 입대한다고 [[현실|{{{#2E674E 현실}}}]]을 [[비판|{{{#2E674E 비판}}}]]한다.}}}'''[br][br]'''→''' 물론 조선인 [[지원병]] 제도에서 자발적인 입대보다 관의 종용이 더 많았던게 [[일본 제국|일제]] 기록에도 보인다. 그러나 조선인들을 [[만주]]에 배치한 것은 1941년부터고, 이 때 시점이 [[중일전쟁]]이 막 벌어지던 1930년대 말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묘하게 [[고증]]에 맞지 않는다. 조선인 지원병제도와 [[태평양 전쟁]] 말기에 시행된 학도 특별지원병 제도를 섞은 것으로 보인다. * '''{{{#2E674E 김두한 패 5명과 하야시 패 40명이 [[장충단공원|{{{#2E674E 장충단공원}}}]]에서 싸워 김두한 패가 이겼다.}}}'''[br][br]'''→''' 장충단 결투는 물론 [[하야시]] 존재 자체가 거짓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http://blog.daum.net/new-taoism/41|김두한과 하야시 결투는 사실인가?]] 참조. 하야시를 조선인 [[선우영빈]]으로 아는 경우가 많은데 이 설에 따르면, 선우영빈은 [[야쿠자]]와는 전혀 상관없는 별개 인물이라는 것이다. * '''{{{#2E674E 40화에 등장한 [[신불출(야인시대)|{{{#2E674E 신불출}}}]]의 만담에서 그의 [[창씨개명|{{{#2E674E 창씨개명}}}]]한 이름이 '구로다 규이치(玄田牛一)'로 나온다.}}}'''[br][br]'''→''' 실제로는 '에하라 노하라(江原野原)'라는 이름을 주로 사용했다. 그리고 '구로다 큐이치(玄田牛一)'는 일본 욕설인 '[[칙쇼|칙쇼(畜生)]]'를 파자한 것으로,[* 玄(검을 현)과 田(밭 전)을 합치면 畜(가축 축)이 되고, 牛(소 우)와 一(한 일)을 합치면 生(날 생)자가 된다. 합치면 '''(畜生)'''.] 이를 빗대서 창씨개명을 까는 [[드립]] 차원에서 나온 이름이다. * '''{{{#2E674E 41화의 [[부민관|{{{#2E674E 부민관}}}]] [[뱀|{{{#2E674E 뱀}}}]] 소동 사건 직후 ~ 김두한과 [[황병관|{{{#2E674E 황병관}}}]]과 만난 시간대}}}'''[br][br]'''→''' 묘하게 꼬여있다. 사건 직후 [[정진영(야인시대)|정진영]]이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에게 [[신문]](작중 시점으로 어제자 신문)을 읽어주는데, 오늘을 기해 국민징용령을 실시한다는 언급이 나온다. 그리고 [[최동열]]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정간되었다고 언급하는 장면이 나오며, 김두한 친척들이 [[김두한의 친할머니]]에게 김두한에게 [[창씨개명]]을 하라고 청을 넣다가 퇴짜를 맞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국민징용령은 [[일본]] 본토에서 1939년 7월부터 실시되었으며, 창씨개명은 1940년 2월부터 시작되었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1940년 8월에 정간되었다. 한 회만에 1939년 ~ 1940년으로 시간이 지나간 것일 수도 있겠으나, [[작두(야인시대)|작두]]가 [[황병관(야인시대)|황병관]]을 소개시켜준다는 언급 이후에 저 장면들이 나왔기에, 거의 비슷한 시간대 라고 봐야 한다. 42화 ~ 44화에서 김두한이 [[일본]] [[일본군 헌병|헌병]]에 붙들린 시간대도 묘하다. 분명 [[진주만 공습]] 이전임에도(김두한이 풀려나고 [[설향]]과 관계를 청산하는 장면 이후에 태평양 전쟁 발발 장면이 나온다) 벌써부터 조선인들, 심지어 주먹패마저도 [[징용]]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김두한이 '경성특별지원청년단'을 1943년도에 만들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44회에 1941년 ~ 1943년을 압축시켰다고 봐야 한다. * '''{{{#2E674E 41화에서 [[김두한(야인시대)|{{{#2E674E 김두한}}}]]이 [[황병관(야인시대)|{{{#2E674E 황병관}}}]]을 소개받고 [[술|{{{#2E674E 술}}}]]을 마시다가 [[일본|{{{#2E674E 일본}}}]] [[일본군 헌병|{{{#2E674E 헌병}}}]] 2명에게 죽을 뻔한 황병관을 구해주었다.}}}'''[br][br]'''→''' 이 역시 김두한 회고에서 따온 것이다. 그런데 [[8.15 광복|해방]] 후 [[태릉선수촌]] 선수들 인터뷰를 담은 책에서 황병관이 한 이야기를 보면, 유명한 싸움꾼인 김두한과 [[식당]]에서 [[시비]]가 붙었고[* 책에는 김 모라고 나오는데 그 작가에 의하면 훗날 [[국회의원]]까지 했다고 나오니 확실히 김두한이다.] 그가 발차기한 것을 그대로 잡아서 쓰레기통에 거꾸로 쳐박았으며 나중에 김 모라는 걸 알고 나서는 더 패 줬을 걸 했다는 일화가 나온다. 사실 관계야 전혀 알 도리가 없지만, 여기서 핵심은 실제 자신을 구해 준 사람에 대해서 저렇게 말하지는 못할 거란 점이다. 그래서 김두한 회고 및 그것을 바탕으로 한 극 중 내용이 거짓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당시 상황에서 건달인 김두한이 헌병대 대위를 팼다는 건, 요즘으로 말하면 [[조폭]]이 [[검사(법조인)|검사]]를 반 죽도록 팬 일과 마찬가지다. 그런 대사건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을 리는 없고, 설령 맞은 게 쪽팔려서 외부에는 덮었다고 쳐도, 어떤 일이 있다하더라도 김두한이 살아서 나올 수 있는 일은 절대 아니었다. * '''{{{#2E674E 44화 ~ 45화에서 [[김두한(야인시대)|{{{#2E674E 김두한}}}]]을 처음 본 [[신영균(야인시대)|{{{#2E674E 신영균}}}]]이 애송이라면서 무시한다.}}}'''[br][br]'''→''' 실제 신영균은 김두한보다 불과 1살 많은 1917년 생으로 그런 말할 입장은 아니었다. 물론 초면이니 만큼, [[나이]]를 몰랐을 수도 있다. --[[김영철(배우)|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액면가가 역전된다.]]-- * '''{{{#2E674E 45화 ~ 46화에 등장한, [[징용|{{{#2E674E 징용}}}]]을 피하기 위해 단게 국장과 만나 담판을 짓는다.}}}'''[br][br]'''→''' 전부 거짓이다. 극 중 [[김두한]]이 단게 국장에 대해 증언한 것이 실제 인물과 전혀 맞지 않다. 단게가 65세 ~ 66세 정도인 [[노인]]이라 했지만 실제로는 1899년 생, 그러니까 저 당시 40대 초반에서 중반 넘어가는 나름 젊은 나이였다. 만약 진짜 만났다면 어지간한 노안이 아닌 이상은 저렇게 증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실에서는 이준영이란 사람이 [[조선총독부]] 보안과장 야기와 [[우미관]] 패를 연결시켜 로비를 했고 이에 조선총독부 경무국장 니시히로가 징용에서 벗어나게 봐준 것이다. 단게가 개입한 흔적은 전혀 없다. 하나 더하자면 극에서 단게는 [[순사]]부터 올라간 인물이라 하는데 실제로는 [[도쿄대학]] 졸업에 [[고등문관시험]] 합격자 출신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일본식 관료제가 말단 출신들에게 절대 만만하지 않다. * '''{{{#2E674E [[김두한(야인시대)|{{{#2E674E 김두한}}}]]이 단게를 만나러 갈 때 [[조선총독부|{{{#2E674E 조선총독부}}}]] 건물이 종로경찰서 세트이다.}}}'''[br][br]→ 다만, 촬영할 때는 이미 실제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한 뒤라 어쩔 수 없었던 듯. * '''{{{#2E674E 50화에서 [[미와 와사부로(야인시대)|{{{#2E674E 미와}}}]]가 [[김두한(야인시대)|{{{#2E674E 김두한}}}]]을 완전히 죽이지 못하면서 "[[조선건국동맹|{{{#2E674E 건국동맹}}}]]이나 체포하라고!"라고 한다.}}}'''[br][br]'''→''' '건국동맹' 이란 용어 자체가 '''해방 후에 생겼다.''' 보안을 위해 이름없는 비밀결사로 있다가[* 이는 이름이 있으면 임원 한 명이라도 체포되었을 시에 죄다 드러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원칙이 삼불(三不)이었는데, '말하지 않는다'(不言), '문서로 남기지 않는다'(不文),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不名)였다.] 광복 후 제대로 활동을 할 때 필요해서 지은 이름이 '[[조선건국동맹]]' 이다. * '''{{{#2E674E 50화에서 [[8.15 광복|{{{#2E674E 8.15 광복}}}]] 당일 군중들이 거리에 [[태극기|{{{#2E674E 태극기}}}]]와 [[현수막|{{{#2E674E 플랜카드}}}]]를 들고 [[만세|{{{#2E674E 만세}}}]]를 부른다.}}}'''[br][br]'''→''' 명백한 오류. 실제론 '''별 일 없이''' 넘어갔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서서히 알기 시작했다. 애당초 35년을 일제 지배를 받았는데 일본 항복 소식을 들었다고 곧바로 태극기와 그럴듯한 플랜카드를 만들어 나올 수가 없다. 다만 상술한 오류들과 달리, 시대가 변하고 드라마도 2부로 넘어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치로 여길 수 있다. 자세한 것은 [[8.15 광복]] 참조. === 2부 === ==== 군정기 ==== * '''[[8.15 광복|해방]] 이후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이 [[절(불교)|절]]에 몇 달 있다 돌아올 때, 아직 [[김을동]]은 태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김을동이 태어난 후에 미군이 들어왔다.'''[br][br]'''→''' 김을동은 ''' 1945년 10월 10일 생[* 음력 1945년 9월 5일.]이다. 그러니까 해방 이후 두 달도 채 안지났을 때 태어났다. 그리고 미군은 김을동이 태어나기 한 달 전에 들어왔다. 다만, 극 중 배경은 초가을인데 촬영 당시가 한겨울이라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설정한 듯 하다. *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 패가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자경단]] 일파로 멋대로 칭하고 활동하던 중, [[경성부|경성]]에 있던 [[일본 해군]] 무관부라는 곳을 습격한다.'''[br][br]'''→''' 없었던 일이다. 그리고 [[해군]]이라면서 죄다 [[일본 육군]] 옷을 입었다. *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이 [[박용직]]과 [[김후옥]]을 [[8.15 광복|해방]] 이후 처음 만났다.[* 박용직은 전위대 창단식, 김후옥은 박용직 소개로.] 그리고 박용직이 김후옥보다 서열이 높다.'''[br][br]'''→''' 실제로는 그 이전부터 안면이 있었다.[* [[박용직]] 증언에 따르면, 이전부터 김두한과 형 동생 하던 사이였다고 하니 나름 꽤 가까웠을 듯 하다. 그리고 [[정진룡]]과도 구면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는 김후옥이 나이도 세 살 많고 사회적 지위도 더 높았다. 박용직에게 형님 운운하며 굽히는 건 오류. * '''[[삼수(야인시대)|삼수]]가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의 지시를 받고 [[YMCA]] 회관에서 나오는 [[박용직]]을 자동차에 태우고 [[우미관]]으로 간다.'''[br][br]'''→''' [[YMCA]](현재 주소: 서울 종로구 종로 69)와 [[우미관]](현재 주소: 서울 종로구 종로14길 4)은 [[종로]]를 사이에 두고 대각선으로 마주보고 있으며, 직선거리로 140m 정도로 걸어서 2분(...) 걸린다. * '''시라소니가 김두한을 만나러 우미관에 갔다가 김두한 부하들과 싸우는데, 중간에 우미관과 옆 건물 사이 틈으로 [[타워크레인]](...) 이 보인다.'''[br][br]'''→''' 당연히 저 당시 우리나라에 타워크레인은 없었다. * '''해방 공간에서 활약한 [[조선공산당]] 산하 청년 단체가 '[[조선청년전위대]]'이다.'''[br][br]'''→''' 전위대는 [[김두한]]이 책임자였다가 1945년 말에 우익으로 전향하면서 곧바로 사라졌으므로 [[고증오류]]다. 극 중에서는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이 탈퇴, 해체 선언을 했으나 [[공산당]]측에서 이를 무시하고 새 전위대장에 [[정진영(야인시대)|정진영]]을 임명하여 활동을 계속 한 것으로 나온다. 실제 단체는 '조선민주청년동맹'이다. *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이 [[우익]] 진영에서 활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 [[야쿠자]]들과 [[아편]] 밀매를 시도한다.'''[br][br]'''→''' 실제 있던 일을 각색한 것이다. 중앙신문[* 이 신문에 대한 내용은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53843|링크]] 참조. 참고로 [[https://lod.nl.go.kr/home/index.jsp|국립중앙도서관 - 국가서지LOD 홈페이지]]에 들어가 검색하면 중앙신문을 읽을 수 있다.] 1946년 2월 15일 기사를 보면 [[김두한]]과 부하들, 그리고 [[일본인]] 몇 명이 이 사건으로 재판을 받았는데 무죄 판결로 석방되었다는 내용을 볼 수 있다.[[http://lod.nl.go.kr/home/ir/irdetail.jsp?uri=http://lod.nl.go.kr/resource/CNTS-00065281035|#]] 단, 이 때 [[조병옥]]을 처음 알게 되었다는 것은 드라마의 각색. * '''대한민청 결성 이후 [[중앙극장 습격 사건|심영을 습격]]했다.'''[br][br]'''→''' 실제 심영 습격은 1946년 3월이고, 대한민청 결성은 한 달 뒤인 4월이다. * '''[[신불출(야인시대)|신불출]]이 1946년 [[6.10 만세 운동]] 20주년 기념주간 행사에서 [[태극기]] 4괘를 [[강대국]]으로 묘사하면서 [[신탁통치]]를 찬성하는 [[만담]]을 하다가 극장에서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 패 습격을 받고 납치되어 다리 한 쪽이 부러졌으며 이후 바로 [[월북]]했다.'''[br][br]'''→''' 부분적으로 사실과 다르다. 무사히 공연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에 [[김두한]]과 그 부하들에게 총맞은 것. 총탄은 왼쪽 어깨와 왼쪽 팔 옆구리를 뚫었으며 신불출은 도망가다가 과다출혈로 쓰러졌다. 직후 김두한과 그 부하들이 쫒아가 죽이려고 했으나 주변 목격자들 때문에 겨우 목숨을 구했다. 그리고 저 [[드립]]친 걸로 치안 교란, 연합군 비방 등의 죄로 구속당한 뒤 재판을 받아 1년 징역 살다가 1947년에 출소한 후 [[월북]]했다. *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과 대한민청대원들이 극좌 군대인 [[국군준비대]]를 습격해 해산시켰다.'''[br][br]'''→''' 완전 거짓. 애초에 국군준비대는 극좌도 아니었고 [[김두한]] 쪽에서 해산시킨 것도 아니다. 물론 기본 성향은 좌익 쪽이었는데 [[신탁통치]] 반대노선이었으며 [[일본군|구 일본군]]에 [[만주군]] 출신자까지 있는 등 생각보다 다양한 계열이 구성원으로 존재했다. 그러니까 굳이 따지자면 "반탁 중도파". 또 당시 상황을 보면 [[8.15 광복|해방]] 직후 [[남한]]에는 국군준비대를 비롯, 학병동맹 등 무려 아흔 여섯 무장 단체들이 난립했다. 그러나 [[미군정]]은 이러한 단체들의 움직임을 용인하지 않았으며 1946년에 문제가 있는 단체들을 해체하였다. 이후 '사설군사단체 해체령'을 발포함과 동시에 '남조선 국방경비대 설치법'을 마련하였다. 이에 온건한 군사 단체는 남거나 국방경비대로 흡수되었는데 이런 흐름 속에서 국군준비대 역시 해체했던 것. 다만 1946년 2월, 우익 요인 암살을 위해 [[우미관]] 부근에서 밀회하던 국군준비대원들을 [[서울종로경찰서|종로경찰서]]에서 체포한 것을 보아 국군준비대 중 김두한 패를 노린 대원들이 있었다는 건 추측할 수 있다.[[http://db.history.go.kr/item/level.do?levelId=dh_002_1946_02_16_0070|#]] * '''[[개코(야인시대)|개코]]가 [[파업]] 현장에서 [[성추행]] 누명을 쓰고 [[김두한]]에게 사살당했다.'''[br][br]'''→''' 역시 사실이 아니다. 애초에 개코 자체가 [[이환경]]이 만든 인물이다. 이 [[에피소드]]는 [[김두한]]이 얘기한 일화에서 딴 것이다. 부하들이 대규모 [[민간인]] 학살을 저지른 탓에 책임을 물으려고 부하들을 창고에 가둔 뒤 불을 질렀다는 것.(...) 현실성도 없고 내용도 썩은 이 따위 이야기를 '성추행으로 오인받자 일벌백계'로 바꿔 묘사한 것이며 극 중에서 이 부하들을 한 인물에 투영한 것이다. * '''대한민청 사건 당시 [[정진룡]] 살해 정황.'''[br][br]'''→''' 전체 왜곡됐다. 자세한 것은 [[야인시대/비판/역사왜곡 및 고증오류#s-2.2.1|위에서 언급한 부분]]을 참조. 그리고 [[김천호]]의 죽음도 오류이다. 실제 인물은 이 때 기적적으로 살았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47042500209202008&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47-04-25&officeId=00020&pageNo=2&printNo=7263&publishType=00020|#]] 다만 기사에서 중상이라고 나온 것을 보아 얼마 뒤에 죽었을 가능성도 크다. * '''[[정진룡]] 살해사건으로 재판을 받은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이 법정에서 [[할복]] 소동을 일으켰다.'''[br][br]'''→''' 실화이다. 중앙신문 1948년 2월 13일 기사를 보면 군정재판을 받을 수 없다며 [[깡통]] 조각(...)으로 배를 3번 그었다고 한다. 하지만 [[피]]만 좀 났을 뿐 큰 상처는 아니었다고.(...)[[http://lod.nl.go.kr/home/ir/irdetail.jsp?uri=http://lod.nl.go.kr/resource/CNTS-00065312493|#]] * '''대한민청 사건으로 수감당한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이 [[오키나와]] 형무소로 옮겨가 [[미군]] 병사와 [[킥복싱]]을 했다.'''[br][br]'''→''' 역시 거짓. 당시 신문자료나 청년운동 관계 기록을 보면 [[서대문형무소]]에서 [[이태원동]] 미군 형무소로 옮겼다가 형 확정 이후 다시 대전형무소로 옮긴 뒤 정부 수립 직후인 1948년 9월이나 10월에 가석방된 것으로 보인다.[[https://www.asiae.co.kr/article/2020110306512362702|#]] 간 적도 없는 오키나와에서 [[결투]]를 할 리가 없으니 명백한 거짓. 그리고 킥복싱 등장은 '''1960년대'''다. ===== 심영 습격 사건 관련 ===== *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 패가 중앙극장에서 심영의 공연을 방해한 뒤 연막탄을 터트렸고, [[상하이 조]]가 도망가는 심영을 향해 총을 쐈다.'''[br][br]'''→''' 실제 1946년 3월에 일어난 심영 저격과 4월에 일어난 [[중앙극장 습격 사건]]을 '''합친 것.''' [[심영(배우)|심영]]은 국립극장[* 현재 명동예술극장.]에서 연극 '님' 공연을 '''무사히 마치고''' 귀가하던 길에 [[광통교]]에서 '''김두한이 직접 쏜 총에 맞았다.''' 중앙극장 습격은 심영 저격과 별개로 좌익 세력이 한 중앙극장 [[공산당]] 홍보 영화 상영을 방해한 사건으로 [[야인시대]] 심영 저격 초반부(극장 습격 부분) 에피소드로 들어갔다. 장소가 중앙극장인 점, 연막탄을 터트려 [[영화]] 상영을 방해한 점, [[연막탄]]을 터뜨릴 때 [[수류탄]] 터트린다고 외친 점, 마무리로 [[좌익]] 홍보 영화 필름을 파기하기 위해 영사실을 폭파시켜버린 점 등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김두한이 스스로 [[테러]]했다고 한 사람들 중 [[친일]] 행위를 저지른 것은 심영이 유일하기 때문에, 두 사건을 섞어 극적으로 각색하고 심영을 극단적으로 비참하고 웃기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 '''[[중앙극장 습격 사건|심영 습격 사건]] 당시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이 극장에 들어가기 전 [[문영철(야인시대)|문영철]]과 대화하면서 "도대체 [[심영(야인시대)|심영]]이나 [[문예봉]]이란 배우가 저렇게 인기가 있단 말인가." 라고 말한다.'''[br][br]'''→''' 그 시대에 유명했던 배우들을 마치 처음 알 듯이 말하는 것은 좀 어색하다. 실제 [[심영(배우)|심영]]이나 [[문예봉]]은 습격 사건 때에는 약간 주춤했어도 엄연히 탑스타였던 사람들이었다. 더군다나 김두한은 '''극장(우미관)을 무대로 활약'''했으며 ([[드라마]]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당시 '''최고의 인기배우 중 하나였던 [[김승호]]를 데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정도로 연예계 발이 넓었다.''' [[2010년대]] 중후반으로 비유하면 '''연예계 지인이 많은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치매라도 걸린 듯이 "와, 대단한데? [[송중기]]와 [[아이린(레드벨벳)|아이린]]이 저렇게 인기가 많냐?"'''하는 느낌이다. 단, 이 대사는 64화 타겟으로 등장한 [[심영(야인시대)|심영]][* 단, 심영은 첫 등장이 57화다. 이후 64화까지는 별 비중없는 단역 정도.]과 그 동료 [[문예봉]]같은 배우들 위상을 방영 당시 잘 몰랐던 시청자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넣은 극적 허용이다. 하지만 그럴 거였으면 문영철과 김두한 대사를 서로 바꾸거나 '역시 심영이구만...' 하는 정도로도 충분했다는 점에서 확실한 오류. * '''심영이 고자가 되었다.''' '''[br][br]'''→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는 하복부에 총상을 입었다. 그리고 고자설은 [[제3공화국(드라마)|드라마 제3공화국]]을 집필한 정치인 출신 이영신 작가가 책 《[[비밀결사 백의사]]》에서 처음 언급한 것이다. [[http://bbs.ruliweb.com/hobby/board/300145/read/19395899?cate=1105&orderby=readcount&page=35|#]] * '''[[심영(야인시대)|심영]]이 총 맞은 이후 입원한 병원이 [[인제대학교 백중앙의료원|백병원]]이다.'''[br][br]'''→''' 실제로는 [[김성진(1905)|김성진]] 외과.[[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46031600209202026&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46-03-16&officeId=00020&pageNo=2&printNo=6924&publishType=00020|『高協(고협)』 沈影氏(심영씨) 拳銃怪漢(권총괴한)에게 被襲(피습)]] [[백인제]]의 병원 이름은 당시엔 '백인제 외과의원' 이었고 백병원으로 정식 출범한 것은 1946년 12월이다. 단, 백병원 입원설은 김두한 증언에 따른 것. ==== 정부 수립 이후 ==== ===== 자유당 정권기 ===== ====== 6.25 이전과 6.25 당시 ====== *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이 자신의 사무실에서 [[전화]]로 [[김구]] 선생의 서거 소식을 듣고 슬퍼한다.'''[br][br]'''→''' 실제 김두한은 이 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수감당했다. * '''80화에서 [[이승만(야인시대)|이승만]]이 "나는 주로 [[미국]]에서 살아서 한문은 잘 모른다"는 말을 한다.'''[br][br]'''→''' 실제 [[이승만]]은 [[조선시대]]에 나고 자란 사람으로,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 중 가장 [[한문]]에 능통했다. * '''전쟁이 일어난 다음 날 [[문영철(야인시대)|문영철]] [[생일]]이라고 다같이 놀자고 할 때,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이 "이번에 죽다 살아왔으니 한 번 제대로 놀아보자." 고 한다.'''[br][br]'''→''' 아마 대한민청 사건으로 수감되었다 풀려나온 것을 말하는 듯 하다. 그런데 그 사건과 [[6.25 전쟁|6.25]]는 2년 차이가 있으므로 새삼스레 저런 말을 하는 것은 어색하다. 아마 극 중에서 대한민청 사건과 6.25 발발 사이 회차가 2 ~ 3회 정도라서 시청자 입장에서는 그냥 그러려니 넘어갈 거라 생각한 듯 하다.[* 다만 [[신영균(야인시대)|신영균]] 말에 따르면 작년 문영철 생일 때는 [[한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놀았다고 했다. 이래저래 그냥 설정이 좀 꼬였거나 한 듯.] * '''1950년 6월 27일 새벽,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과 부하들이 사무실에서 방송을 들을 때 나온 [[라디오]]가 [[https://people.ohio.edu/postr/bapix/H500_51.JPG|제니스 트랜스오셔닉 H500]]이다.'''[br][br]'''→''' 실제로는 '''1년 뒤인 1951년에 나온''' [[단파라디오]]다. --그리고 나중에 [[야인시대/합성물|야인시대 세계관]] [[이강식|최강자]]가 된다. 1972년 11월 21일...-- * '''[[한국전쟁]] 개전 직후 [[이승만(야인시대)|이승만]]이 6월 26일 [[국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대국민 담화]]를 녹음하고 6월 27일 새벽에 [[서울]]을 떠나면서 자신의 [[목소리]]가 나오는 [[라디오]]를 듣고 침울해한다.'''[br][br]'''→''' 명백한 오류. 이승만은 6월 27일 피난 이후 도착한 [[대전광역시|대전]]에서 [[서울특별시|서울]]로 담화를 올려보냈다. * '''[[최동열]]이 중앙방송국에 가서 [[녹음]] [[방송]] [[테이프]]가 돌아가는 것을 보고 분노해 방송용 테이프를 뜯어내 방송을 중단시킨다.'''[br][br]'''→''' 실제로는 혼란 속에서 그래도 방송인으로서 사명을 가진 일부 직원들이 방송국에 남아 임시 새벽 방송을 계속 하면서 자연스럽게 끝났다. * '''[[이승만(야인시대)|이승만]]이 [[서울특별시|서울]]을 떠나면서 [[자동차|차]] 안에서 [[이기붕(야인시대)|이기붕]]에게 라디오를 틀라고 할 때 '라지오'라고 한다.'''[br][br]'''→''' '라지오'는 일본식 발음으로, [[구한말]]부터 [[미국]]에서 쭉 살았던 [[이승만]]이 일본식으로 발음할 리가 없다.[* 일제강점기에 이승만이 조선에 있던 기간은 1910년 10월부터 1912년 3월까지 약 1년 5개월 정도에 불과했다.] 즉, 고증에 맞게 한다면 '레이디오'라고 발음해야 한다. *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이 부하들과 함께 피란을 간다.'''[br][br]'''→''' 실제로는 각자 흩어져서 갔다. [[전쟁]]이 터지면 자기 살기도 바쁘니까. * '''김두한 패가 명동 패 도움으로 함께 [[한강]]을 건넜다.'''[br][br]'''→''' 현실에서는 [[김두한]]이 혼자 [[서울특별시|서울]] 함락 직전에 부랴부랴 옛 부하들 도움으로 간신히 [[선박|배]]를 타고 건넜다. * '''인민군 군관이 김두한 집에 들어왔다가 김좌진 사진을 보고 경례를 올리고 갔다'''[br][br]'''→''' 김좌진은 공산주의자들과 다툼 가운데 암살되었고 김좌진이 공산주의 진영에 저지른 테러들도 만만치 않다보니 북한에서 김좌진은 민족 영웅과는 한참 먼 이미지였다. 특히나 저 군관이 만주에서 활동하던 갑산파 출신이었다면 현실에서는 남은 김두한 가족들이 죄다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 '''[[황병관(야인시대)|황병관]]이 1950년 8월에 [[김두한]] 패와 함께 [[노동자]]들 권익을 보호하려다 [[부산광역시|부산]] 깡패 고사이마찌(고영구)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사망 직후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 패가 전투에 참여하는데 전투 이후 김석원이 [[인천상륙작전]]을 언급한다. 생략된 것을 고려하면 8월에 사망한 듯하다.]'''[br][br]'''→''' 실제로는 1952년에 사망했다. 그것도 [[적산가옥]] 문제로 [[시비]]가 붙어 패싸움을 벌이다 죽은 것이다. 그리고 고사이마찌 원래 별명은 마사이찌이고 이름도 고영목이다.[* 그리고 애당초 김두한과 마사이찌는 적대관계가 아니었고 친한 사이였다. 이후에도 가깝게 지내다가 나중에 술자리에서 시비가 붙어서 다퉜다. 결과는 비겼다.] *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이 [[6.25 전쟁]] 중 [[부산광역시|부산]] 항만 [[파업]]을 이끌었다'''[br][br]'''→''' 파업 자체는 사실인데 이끈 게 [[김두한]]이라는 주장은 [[교차검증]]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 있었던 그 유명한 [[4달러]] 에피소드는 김두한이 [[DBS]] [[라디오]] 《노변야화》에서 한 이야기를 기반으로 각색한 것이다. [[http://dbs.donga.com/comm/view.php?r_id=00174&r_serial=01|#]] 당시 김두한은 100원이었던 [[임금]]을 400원으로 바꾸었다고 말했다. 원래는 800원을 불렀다가 400원으로 타결했다고 하니, [[협상]] 개연성상으로는 실제 김두한 발언이 훨씬 낫다. 물론 김두한이 노변야화에서는 허세와 허풍을 잔뜩 섞어서 썰을 푼게 많지만 말이다. 이후 1987년 발간된 홍성유의 소설 《장군의 아들 김두한》에서는 달러로 협상 통화를 바꾸어 놓았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kasp210&logNo=221151015502|##]] *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이 부하들과 [[학도병]]을 데리고 [[영천 전투]] 등에 참전했다.[* 드라마에선 김석원 준장의 수도사단에 배속되었다고 하지만 이 당시 김 준장은 수도사단 동쪽 3사단을 맡았고, 수도사단은 [[송요찬]] 준장이 맡았다.]'''[br][br]'''→''' 이는 김두한 회고에만 나오는 내용이 아니며, 당시 참전한 [[군인]]들 중 [[증언]]하는 사람들이 몇 명 있다.[[https://www.youtube.com/watch?v=XnPKXBXE1GA|#]] 그러나 '''공식적인 기록'''은 현재 확인이 안 된다. 당시에 우익청년단체원 중 일부가 전투에 참여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단지 김두한이 참여했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는 것. * '''[[문영철]]이 [[낙동강]] 전투에서 [[전사]]했다.'''[br][br]'''→''' [[https://www.youtube.com/watch?v=HkSPdLHQPbQ|이 영상]]에 따르면, 서울에 남아서 [[공산당]]에 맞서다 [[남산(서울)|남산]] 부근에서 [[살해]]당했다고 그 부인이 증언했다고 한다. * 88화에서 [[국민방위군]]을 설치하고 장정들에게 입대를 권유하는 [[경찰]]들 차에 붙어있는 권고문에 '...(생략) [[중공]] [[괴뢰|괴뢰군]]이 [[압록강]]을 넘어 지금 [[평양직할시|평양]]을 지나고 있'''습'''니다. (생략)...' 로 적혀있다. [br][br]'''→''' 당시 [[맞춤법]]으로는 [[읍니다|''''읍'''니다']]가 맞다. ====== 6.25 이후 ====== *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 기호가 1번이다.'''[br][br]'''→''' 실제로는 3번이었다.[[https://cafe.daum.net/filmpark/NzK/3491?q=%EA%B9%80%EB%91%90%ED%95%9C&re=1|#]] * '''건중친목회를 운영하는 위치에 섰지만, 똑똑한 [[홍영철(야인시대)|홍영철]]에 [[열등감]]을 느낀 [[김관철(야인시대)|김관철]]을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이 정신 개조하려고 그가 보는 앞에서 허공에 총을 쏘았다.'''[br][br]'''→''' [[김관철(조직폭력배)|김관철]] [[살인미수|살인미수사건]]을 저렇게 묘사했다. 실제론 [[밀가루]]와 [[설탕]] 입찰, 즉, '''이권을 둘러싼 갈등'''이 배경이며 김두한이 열받아서 권총으로 위협사격을 한 사건이다. 참고로 김두한은 대질심문 중에서조차 또 한 차례 김관철을 패버렸다고. 즉, 드라마처럼 계몽(?) 목적은 전혀 없었다. * '''[[자유당]]이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을 영입하려고 했으나 [[독재]]를 싫어하는 김두한이 거절했다. 그러자 김관철 살인미수 사건으로 협박하여 김두한은 할 수 없이 입당했다. 그리고 반독재 활동으로 제명당할 상황에서 탈당했다.'''[br][br]'''→''' 역시 거짓. 현실은 자유당 [[공천]]을 받으려 했으나 실패하자 이에 깽판쳐서 제명당했고(...) 이후 일단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한 다음 다시 들어간 것이다.[* 탈당했다 입당한 것만 놓고 보면 [[새누리당]]에서 공천 못받아서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당선한 이후 다시 입당한 [[유승민]], [[류성걸]] 정도로 비유할 수 있다.] 당시 자유당에 돈보따리 들고 공천시켜달라는 사람들이 즐비한 상태에서 굳이 김두한을 공천시킬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나중에 탈당한 것도 [[이범석]] 및 족청계 세력에 위기감을 느낀 [[이승만]]이 이들을 대거 [[토사구팽]]하였고, 이범석과 가까운 김두한 역시 [[숙청]] 1순위에 들어갔기에 위기감을 느낀 김두한이 스스로 나온 것이다. * '''[[자유당]] 뿐만 아니라 [[민주당(1955년)|민주당]]도 영입하려 했으나 김두한 본인이 거절했다.'''[br][br]'''→''' 실제로는 정반대로 둘 다 '''꺼렸다.''' 상식적으로 [[테러]]로 악명이 높고 나이까지 상당히 어렸으며[* 나이 어린 걸로 태클거는건 좀 아니지 않나 할 텐데 '''[[조선시대]]가 끝난 지 불과 40여 년밖에 안 지났음을 생각해보자.''' 참고로 그 당시 대부분 [[정치인]]들 평균 나이가 어려야 40대, 그리고 대부분 5 ~ 60대였으며 [[이승만|대통령]]은 무려 80대였다. 그런데 [[김두한]]은 겨우 37세에 국회의원이 되었다.], 배운 것도 하나 없는 [[건달]] 출신에 각종 [[범죄]] 및 [[깡패]]들과 엮인 관계가 현재 진행 중인 사람을 환영할 곳은 거의 없다. 단, 야당 의원들과 가깝게 지내기는 했고 10년이 지난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드디어 [[민주당(1955년)|민주당]] 후신이자 제1야당인 [[신민당(1967년)|신민당]] 후보로 출마하였다. * '''[[이기붕(야인시대)|이기붕]]이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이 자신들과 뜻을 달리한다고 아쉬워하면서 [[이승만(야인시대)|이승만]]이 [[행정안전부|내무부]] [[장관]] 직까지 맡기려 했다고 언급한다.'''[br][br]'''→''' 이 역시 김두한의 허풍에서 비롯된 거짓. 아무리 이승만이 망령났다 해도 이런 제의를 했을 가능성은 없다. * '''[[홍영철(야인시대)|홍영철]]은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에게 끝까지 우호적이었고 [[유지광(야인시대)|유지광]]에게 자신들과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으나 거절했다.'''[br][br]'''→''' 실제로는 [[홍영철]]도 [[유지광]]과 함께 반공청년단에 활동했고 군사정권때 수감되었다.[* 유지광 자서전 대명에 언급되었다.][* 같은 감독이 만든 [[무풍지대(드라마)|무풍지대]]는 홍대호로 등장하고 처음부터 [[이정재(조직폭력배)|이정재]]편으로 등장한다. 오히려 이쪽이 더 고증에 잘 맞다.] * '''동대문 패에 10공주파 두목 [[이영숙]]이 소속했다.[* 미국 대사가 타고 다니던 고급 승용차를 김관철이 이끄는 건중친목회가 5만환으로 사려하자 120만환을 제시했던 이영숙이란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사실 관계는 알 수 없으나, 저게 사실이었어도 실제 이영숙은 조폭이 아니었던 것.]'''[br][br]'''→''' 이영숙은 가상인물이다. 원래 [[이환경|같은 작가]]가 썼던 [[무풍지대(드라마)|무풍지대]]에서 주인공 [[유지광]]과 멜로를 위한 창작 캐릭터였는데, 야인시대 2부 후반이 무풍지대를 사실상 베끼면서(...) 같이 딸려온 것. 단, [[야인시대]] 주인공이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이기에 유지광과 러브 스토리는 빠졌다. * '''시라소니 린치 사건 당시에 [[시라소니(야인시대)|시라소니]]가 야외에서 동대문파 습격을 받았다.'''[br][br]'''→''' 실제로는 실내에서 당했다고 한다. * '''동대문파 린치로 심각한 부상을 입고 바로 [[인제대학교 백중앙의료원|백병원]]에 입원한 시라소니에게 [[이석재(야인시대)|이석재]]가 찾아와 쇠절구공이로 다리를 부러뜨리는 등 2차 린치를 가한다.'''[br][br]'''→''' 이석재가 [[인제대학교 백중앙의료원|백병원]]에 들이닥쳐 2차 가해를 시도한 것은 사실이나, 그 전에 시라소니는 종로 5가 반도병원에 입원했다가 옮겼는데 이에 대한 언급이 없다. 또한 실제로는 방심한 틈을 타서 시라소니가 깁스로 이석재 얼굴을 쳤으며 그 소란을 들은 [[간호사]]가 들어오는 바람에 그대로 도망쳤다고 한다. * '''[[사사오입 개헌|이승만의 종신제 집권을 위한 개헌]]을 추진할 때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이 [[장경근]] 의원을 때리고 경무대에 불려가 이승만 면전에다 "[[쑨원|손문(쑨원)]] 선생도 [[장제스|장개석(장제스)]] 선생에게 정권을 물려주었고요" 라고 말한다. '''[br][br]'''→''' 실제로 쑨원은 권력을 물려주기는커녕 장제스를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하지 않았다. 장제스는 쑨원 사후 [[후한민]], [[왕징웨이]], [[랴오중카이]] 등과 경쟁하면서 정권을 쟁취했다. * '''[[사사오입 개헌]] 당시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이 [[자유당]] 계략으로 감금당해 국회에 못갔다.'''[br][br]'''→''' 실제로는 '''멀쩡히 [[대한민국 국회|국회]]에 가서 개헌안 투표를 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411290020920200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4-11-29&officeId=00020&pageNo=2&printNo=9769&publishType=00020|改憲案表決(개헌안 표결) 이 날 議事堂 內外表情(의사당 내외표정)]] 기사 참조. 한편 원작격인 무풍지대에서는 김두한도 표결에 참가하여 반대표를 행사했다. * '''[[김기홍(야인시대)|김기홍]]이 [[자유당]] 몰락을 예견하고 자유당과 관계를 끊자 하지만 [[이정재(야인시대)|이정재]]가 듣지 않아 [[동대문]] 사단을 떠났다.'''[br][br]'''→''' 이 역시 각색으로 진짜 [[이유]]는 알 수 없다.[* 실제 저런 이유로 떠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시기도 실제와 다르다. 극 중에서는 이정재가 자유당에게서 지령받은 제3요인 암살을 [[김동진(야인시대)|김동진]]에게 맡겼으나 배신당한 이후에 김기홍이 떠났지만, 실제로는 그 전이며 저 암살요인 명단에 [[김기홍(조직폭력배)|김기홍]]도 있었다.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0060200329103014&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60-06-02&officeId=00032&pageNo=3&printNo=4363&publishType=00010|要人暗殺陰謀(요인암살음모)했다]][* 기사에 나온 87년은 [[단군기원|단기]] 4287년, [[서력기원|서기]]로 1954년을 말한다. 당시엔 단기가 [[대한민국]] [[기년법|공식 연호]]였다.] * '''[[사사오입 개헌]]안을 부결에서 가결로 바꿔 선포할 때 [[이기붕(야인시대)|이기붕]]이 바로 나간다.'''[br][br]'''→''' 실제로는 [[이기붕]]이 퇴장은 커녕 [[대한민국 국회의장|국회의장]]으로서 이후 회의를 '''본인이 진행했다.'''[* 최순주는 가결 선포 후 바로 내려왔다.] 애초 통과 선포로 회의를 끝낸 게 아니었고 여야 의원들끼리 사사오입 적용에 관해 격렬하게 토론을 했다. 이외의 [[국회의원]]들끼리 다툼 및 방청석 내 소란은 사실이다. * '''이전에는 영락없는 [[문맹|까막눈]]으로 나왔던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이 [[국회의원]]이 된 후 자신의 사무실에서 [[신문]]을 읽는 모습이 나온다.'''[br][br]'''→''' 설정 미스나 [[고증오류]]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아주 틀린 건 아니다. 실제로 [[김두한]]은 [[정치인]] 시절에는 그래도 어느 정도 [[글]]은 깨쳤으며 이후 [[중학교]] 입학자격 [[검정고시]]에 응시해 합격하였다. * '''1955년에 일어난 [[단성사 저격 사건]] 당시 [[권력]]의 뒷배로 수사 도중 담당 검사가 바뀌고 원래 해당 사건 담당이었던 김윤도 검사가 [[분노]]해 한격만 검찰총장에게 바로 [[사표]]를 낸다.'''[br][br]'''→''' 현실에서는 그 후에도 [[검찰]]에 있으면서 다른 사건들을 맡다가 [[지방(지리)|지방]]으로 [[전보]]받자, 그 해 말에 [[사직]]하였다. 그리고 실제로는 한격만이 김윤도보다 먼저 검찰에서 나왔다. 김윤도 검사 [[한자]] [[이름]]도 원래는 '金允燾'인데 극중에서는 '金閏道'로 잘못 나왔다. * '''[[시라소니(야인시대)|시라소니]]와 [[이정재(야인시대)|이정재]]가 직접 맞붙었다.'''[br][br]'''→''' 실제로는 그런 적이 없다. 현실에서 이정재 싸움 실력은 시라소니, 김두한에 비해 한참 떨어지는 편이다. 이 장면은 [[시라소니(야인시대)|시라소니]] 역 [[조상구]]가 [[이정재(야인시대)|이정재]] 역 [[김영호(배우)|김영호]]와 한 번 붙게 해달라고 PD에게 이야기를 해서 넣은 것. * '''[[김희갑|김희갑 구타 사건]]이 [[제3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1956년에 일어났다.'''[br][br]'''→''' 김희갑 구타 사건은 1959년의 일이다. 단, [[야인시대]]에서는 1956년 선거 당시 [[자유당]]과 [[흥인지문|동대문]] 일파 만행을 세세하게 다뤘고 이런 분위기를 확실하게 나타내려고 시간대를 바꾼 듯 하다. *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 투표일 당시 [[이승만(야인시대)|이승만]]이 [[페도라|중절모]]에 [[한복]]을 갖춰 입었다.'''[br][br]'''→''' 실제로는 당일에 [[모자]]를 쓰지 않고, [[양복]]을 입었다.[[http://www.ehistory.go.kr/page/view/photo.jsp?photo_PhotoSrcGBN=BK&photo_PhotoID=2&detl_PhotoDTL=305&gbn=KM|실제 당시 사진]] * '''1956년 7월 27일에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들이 [[1956년 지방선거|지방선거운동]] 탄압을 규탄하며 거리에서 시위할 때 저지하는 [[경찰]] 수십 명을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 혼자서 때려 눕혔다.'''[br][br]'''→''' 실제 시위에서 몸싸움이 있었던 것은 맞다. 그러나 극중 묘사는 김두한이 [[동아방송]] 프로그램 노변야화 76회[* 1970년 1월 20일 방송.]에서 과장한 것을 더 부풀린 것이다. 당시 사건을 다룬 1956년 7월 29일자 [[동아일보]]와 [[경향신문]]에 따르면 지방자치법안 문제로 [[야당]] 의원들이 가두시위를 할 때 사복경관과 무장경관들이 몰려와서 [[김선태(정치인)|김선태]] 의원을 잡아가자 행진을 시작했는데, 그 때 선봉에 서서 경찰들하고 몸싸움했던 인물이 김두한과 [[이철승]]이었다. 그리고 경찰에서 이 시위에 [[야당]] 책임을 묻겠다면서 경찰 14명이 다쳤다는 이유로 김두한 등 5인에게 소환장을 보냈는데 김두한은 이를 무시했다. 그걸 가지고 김두한이 14대 1로 싸웠으며 다시 자기를 소환한 경찰들을 팼다고 과장한 것. 현실적으로 저게 말이 될 수가 없다. 저걸로 소환이 안 될 일이었다면 그 동안 김두한이 경찰로 끌려간 건 더 센 놈이 있어서였겠나? 물론 독재에 맞선 시위에서 일어난 일이었기에 오히려 김두한이 잘했다고 말할 수도 있는 일이긴 하나 무쌍과는 좀 거리가 있는 사건이다. 그리고 김두한 복장도 오류이다. 극 중에서는 [[모자]]에 작업복을 입고 [[워커]]를 신었으나 실제로는 [[반팔]] [[와이셔츠]]에 [[양복]] [[바지]]를 입고 [[구두]]를 신었다.[[http://web.humoruniv.com/board/humor/read.html?table=pds&number=752782|실제 당시 사진]] * '''[[이정재(야인시대)|이정재]]가 [[대한민국 국회|국회]]에서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에게 맞짱뜨자는 사건을 다룰 때 김두한과 이정재가 결투를 벌인다.'''[br][br]'''→''' 실제로는 이정재와 그 패거리가 협박만 늘어놓고 김두한은 꾹 참고 있었다. * '''[[이기붕(야인시대)|이기붕]]이 [[이승만(야인시대)|이승만]]에게 자신은 [[효령대군]] 15대손이라 말했다.'''[br][br]'''→''' 17대손이다. 이승만이 [[양녕대군]] 16대손이라 말한 것은 맞다. * '''[[장충단집회 방해 사건]] 직후 [[충정로 도끼 사건]]이 일어났다.'''[br][br]'''→''' 실제 두 사건은 전혀 관계없다. 시기상으로도 1년 4개월이나 차이난다. 장충단 집회 방해 사건은 1957년 5월, 충정로 도끼 사건은 1958년 9월. * '''[[충정로 도끼 사건]]때 [[정팔]]과 [[맨발의 대장]]도 참여했고 이후 구속당했다.'''[br][br]'''→''' 저 둘은 애당초 피고인이 아니었다. 당시 정팔은 손을 씻고 사업하고 있었고, 맨발의 대장은 저 사건을 다룬 기사에 피고인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삼우회#s-3|삼우회]] 일원이었던 아오마스 심종현이 그 때 명동파 편에서 싸우다가 같이 들어갔는데, 당시 사건을 다룬 기사들을 보면 모두 큰 처벌을 받지는 않았다. *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 때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이 ''''노'''동'''당'''' 후보로 나왔다.'''[br][br]'''→''' 실제로는 '노'''농'''당'이었다. 아마 '[[노동당]]'이 일반적으로 익숙해서 '노농당'을 [[오타|오기]]로 본 모양인데, 당시엔 [[6.25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지나 사회에 [[레드 컴플렉스]]가 극심해서 대놓고 '노동당'을 걸었다가는 아마 [[국가보안법]]으로 철퇴를 맞았을 것이다. * '''[[경찰]]이 [[고려대학교 4.18 학생 시위]] 이전에 첫 발포를 했고 4.18 당시 깡패들이 대낮에 습격했으며, [[김주열]] 시신 발견 후 2차 시위가 벌어진 [[마산]]에 [[최인규]]가 직접 내려와 지켜봤다.'''[br][br]'''→''' [[고대생 습격 사건]]은 [[저녁]]에 일어났다. 그리고 [[최인규]]는 저때 [[마산]]에 가지 않았다. * '''122화에서 [[이기붕(야인시대)|이기붕]] 일가가 단체로 사망하는 장면에서 이기붕 둘째 아들이자 이강석 남동생인 이강욱이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소년으로 나왔다''' → 실제 이강욱은 1940년생이였으며 1960년 사망당시 막 성인이 된지 얼마 안된 21살(만 19세)였다. 물론 작중에서 중요한 역할이 아니여서 그런지 대충 캐스팅했을수도 있다. 일단 이강욱 역은 당시 12~15살 정도였을것으로 보인다. ===== 군사 정권기 ===== * '''[[이화룡(야인시대)|이화룡]]이 [[5.16 군사정변]] 이후에도 잡혀가지 않았다.'''[br][br]'''→''' '''실제로는 잠시나마 잡혀갔다.''' 얼마 안 가 [[국가재건최고회의]] 최고위원 박치옥 [[대령]]이 같은 최고위원이자 이화룡의 [[초등학교|소학교]][* 일제강점기에 초등학교를 불렀던 이름 중 하나. 이화룡과 송찬호는 평양소학교 동창이다.] [[동창]] 송찬호 [[준장]]이 부탁해서 풀어주긴 했는데, 이러한 얘기를 들은 [[차지철]] 대위가 분노해 결국 중앙정보부로 찾아가 당시 [[중앙정보부]]장이던 [[김종필]] 중령에게 자초지종을 말했고 이에 [[김종필]]은 중앙정보부 직할 부대를 동원해 이화룡을 다시 잡아들인다. 자세한 내용은 [[MBC]] 드라마 《[[제3공화국(드라마)|제3공화국]]》 6회에 나온다. * '''[[이정재(야인시대)|이정재]] 및 [[정치깡패]]들이 [[혁명재판]]이 끝난 후 형무소에 나와 거리에서 조리돌림당했다.'''[br][br]'''→''' 실제로는 [[5.16 군사정변]]이 일어난 지 불과 5일 뒤인 1961년 5월 21일에 국토건설단이 있던 [[덕수궁]]에서 출발했다. * '''[[돼지(야인시대)|신정식]]이 [[돼지]]라는 별명답게 살집이 상당하며 1961년 12월 21일에 [[임화수(야인시대)|임화수]], [[곽영주(야인시대)|곽영주]], [[최인규]]와 함께 사형당했다.'''[br][br]'''→''' 실제로는 오히려 일반인들과 비교해도 꽤 마른 편이며 돼지란 별명은 [[성격]] 때문에 붙은 것이다. 또한 실제로는 [[이정재(조직폭력배)|이정재]]와 같은 날인 10월 19일에 사형당했다. * '''[[신정식(1928)|신정식]]에게 [[사형]] [[선고]]를 내릴 때, [[재판장]]이 "신정식, 일명 돼지"라고 한다.'''[br][br]'''→''' 당연한 거지만, 실제로는 그냥 [[본명]]만 불렀다. 단, 돼지의 이름이 극 중에서 거의 안 나왔기 때문에 [[시청자]]들 이해를 돕기 위해 저렇게 대사를 쓴 듯 하다. * '''[[박정희(야인시대)|박정희]]가 [[독립유공자]]들과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을 포함한 유공자와 그 자손들에게 [[대한민국 훈장#s-4|건국훈장]]을 직접 수여하는 것이 1963년 [[3.1절]] 행사때다.'''[br][br]'''→''' 실제로는 그보다 1년 전인 1962년이다. * '''1963년에 애국단을 조직한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이 [[조언]]을 구하기 위해 [[최동열]]을 찾아갈 때 [[한일협정 반대투쟁|한일협정 반대시위]]를 목격한다. 그리고 저 때 최동열이 "(군사정권에서) 정보기관을 만들어 국민의 눈과 귀를 감시할 것이다." 라고 한다.'''[br][br]'''→''' 물론 저 당시도 [[한일기본조약#s-3.1|한일간 물밑 접촉]]이 있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반대시위가 거세지기 시작한 것은 1년 뒤인 1964년이다. 또 [[중앙정보부]]는 그보다 2년 전인 1961년 [[5.16]] 직후에 생겼다. * '''[[국회 오물 투척사건]] 당시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이 [[탑골공원]] 화장실에서 [[똥|오물]]을 펐다.'''[br][br]'''→''' 실제로는 자택 변소에서 펐다. * '''오물 사건 당일, 김두한이 검은 [[양복]]을 입고 [[대한민국 국회|국회]]에서 [[연설]]한다. 그리고 연설 도중 '국무위원들을 피고로 다루겠습니다! 죄를 지은 피고!' 라고 할 때 비장한 분위기 속에서 의원들이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br][br]'''→''' 실제 그 대목에서는 의원들이 '''웃었다.''' 당시 속기록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김두한이 똥물투척 직전에 연설을 늘어놓은 것은 사실이나, 진지하고 폼나는 연설은 아니었다. 도리어 장황한 횡설수설에 가까웠으며 자극적이고 풍자적인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이를 듣던 의원들은 웃음을 터뜨린 것이다. 또한 실제 당일 김두한 양복은 회색이었다. * '''오물 사건 이후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이 [[조사]]받으면서 [[검사]]에게 "우리 [[안동 김씨]] 가문 조부님 되는 분이 [[김옥균]]"이라고 말한다.'''[br][br]'''→''' 물론 같은 가문 [[할아버지]] 뻘 [[친척]]은 맞다. 하지만 둘은 친조손 관계가 아니다. 김옥균과 김두한은 12촌으로 촌수가 꽤 멀다. 그런데 저 말만 보면 자신의 친할아버지라고 오해하게 할 만 하다. 1부 40회에서도 김옥균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 땐 '''일가''', 조부 '''뻘'''이라고 제대로 언급하였다.[* 정확히는 [[고노에]]가 [[나미꼬]]에게 [[김두한]]이 [[김좌진]] 아들이란 얘기를 들은 뒤 김두한이 고균 선생 일가라고 언급한 것과 김두한을 집으로 초청해 이야기나눌 때 김두한에게 김옥균을 "자네에겐 조부 뻘이 되실 걸세"라고 말해준 것.] * '''1966년 12월에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이 석방된 직후 차를 타고 가면서 이찬오 보좌관에게 '[[유진산(야인시대)|유진산]]이 [[신민당(1967년)|신민당]] 총재로 선출되었다.'는 말을 듣는다.'''[br][br]'''→'''실제 [[유진산]]이 신민당수가 된 것은 약 4년 뒤인 1970년이며 애초에 신민당 자체가 1967년에 창당되었다. * '''1967년 초에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이 [[박정희(야인시대)|박정희]]를 만나 앞으로 다시는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했다.'''[br][br]'''→''' 실제로는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 한 번 더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이 [[절(불교)|절]]에서 그 동안의 잘못을 참회하다 [[거리]]에서 쓰러져 죽었다.'''[br][br]'''→''' 사실과 다르다. 그 [[죽음]]에 대해서 말이 많기 때문에 [[논란]]을 피하기 위해 저렇게 설정한 것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1972년 11월 18일에 [[김두한]]이 주먹계 옛 후배였던 [[조일환(1938)|조일환]]을 만나고 헤어지던 중에 '''센트럴 호텔 객실에서''' 고혈압으로 쓰러졌고, 이 때 곧바로 숨을 거둔 것은 아니었으나 신원 미상의 누군가에 의해 [[강북삼성병원|고려병원]]으로 옮겨진 후 '''며칠이 지난 21일'''에 숨을 거두었다. * '''마지막에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 [[장례식|장례]] 행렬 장면을 자세히 보면 멀리 현대에 볼 수 있는 [[아파트]]가 보인다.'''[br][br]'''→''' [[불멸의 크리넥스]]같은 장면이다. 사실 김두한이 사망한 1972년에 [[서울특별시|서울]]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을 가진 [[아파트]]들이 어느 정도 꽤 있긴 했다.[* 일례로 우리가 흔히 아파트 하면 떠올리는 최초의 아파트인 [[마포아파트]]는 1962년도에 건축이 완료되었다.] 하지만 10몇 층이 넘어가는 고층아파트는 아니었다. 즉, 아파트 자체는 나와도 되지만, 그게 고층이면 안 된다. 그런데 극중에선 고층이므로 고증 오류가 맞다. 사실 옥의 티로 봐야 하는 게 맞지만. === 문화예술 관련 고증 === ==== 음악 ==== [[근현대사]] [[시대극]]인만큼, 이따금씩 당시에 유행했던 [[가요]]들이 나온다. 그런데 실제와 연도가 맞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다. * '''4화에서 [[신마적(야인시대)|신마적]]이 [[종로회관]]에서 [[술]] 마시며 울분을 토할 때 [[가수]]가 부르는 [[노래]]가 《사의 찬미》이다.'''[br][br] → 극 중 아직 1926년 6월 10일에 일어난 [[6.10 만세 운동]]이 나오기 전인데, 《[[사의 찬미(노래)|사의 찬미]]》 발매는 그 해 8월이다. 그리고 가사도 훗날에 달라진 버전으로 나왔다. * '''극 중에서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이 [[종로(서울)|종로 2정목]]을 거쳐 [[조선]] [[보스|주먹 황제]]가 되는 시기는 만 18세인 1936년이고 드라마상으로는 24화인데, 그 이전 회차에서 1936년 이후 발매된 노래들이 나온다.''' * 15화에서 아직 [[쌍칼(야인시대)|쌍칼]] 부하였던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이 [[을지로|신마찌]] [[야쿠자]]들로부터 [[조선인]] [[여성]]을 구하고 [[다방]]에서 부하들과 함께 그 [[여성]]에게 돈을 주는 장면에서 나오는 노래는 1940년에 나온 이화자의 《화류춘몽》이다. * 16화에서 [[구마적(야인시대)|구마적]]을 지원하러 온 주먹패들을 구마적이 맞이할 때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가 작곡한 《[[바리에테 관현악단을 위한 모음곡|왈츠 II]]》가 나온다. 이 [[음악]]을 발매한 시기는 1956년이고, 초연은 1988년에 했다. * 19화에서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 패와 [[정진영(야인시대)|정진영]], [[개코(야인시대)|개코]]가 [[다방]]에서 [[커피]] 마실 때 흘러나오는 노래가 역시 1940년에 발매 된 이화자의 《화륜선아 가거라》다. * [[설향]]이 [[정진영(야인시대)|정진영]]에게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이 [[구마적(야인시대)|구마적]]에게 쓴 도전장을 전해줄 때 다방에서 나온 노래가 [[장세정(가수)|장세정]]의 《연락선은 떠난다》이다. 1937년에 출시한 곡이다. * '''25화에서 [[나미꼬]]와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이 처음 만나는 장면[* 24화 마지막과 이어지는데, 그 때는 다른 음악이 나왔다.]과 35화에서 [[박인애]]가 [[결혼]] 직후 [[친구]]와 [[커피]] 마실 때, 그리고 41화에서 박인애 오빠가 김두한에게 박인애 [[편지]]를 전해줄 때 [[카페]]에서 나온 음악이 [[그리스]] 국민 작곡가 테오도라키스가 작곡한 《기차는 8시에 떠나네》이다.'''[br][br] → 이 곡은 애초 [[나치]]에 저항했던 그리스의 한 젊은 [[레지스탕스]]를 기리며 만든 노래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발표하였다. 당연히 [[일제강점기|일제]] 치하 [[조선]]에서 나올 수 없다. * '''32화에서 [[와싱톤|와싱턴]]이 [[담배|담배꽁초]] 버리면서 부르는 노래가 [[백년설]]의 《대지의 항구》이다.'''[br][br] → 4회 차 뒤인 36화에서 [[우미관]]에 영화 《역마차》 간판이 걸려있고 같은 회차에 [[종로회관]]에서 가수가 [[황금심]]의 《외로운 가로등》을 부르는 것을 보아 36화 시간대는 1939년인 듯 한데[* 두 작품 다 1939년에 처음 나왔다.], 《대지의 항구》 발매는 2년 뒤인 1941년이다. * '''52화에서 [[우미관]] 패와 [[명동(서울)|명동]] 패가 술을 마실 때와 68화에서 [[금강(야인시대)|금강]]이 술집에 있을 때 흘러나오는 노래, 그리고 64화 첫 장면에서 [[시라소니(야인시대)|시라소니]]가 [[조선청년전위대|공산당원들]]과 싸운 뒤 걸어가면서 부르는 노래가 [[남인수]]의 《가거라 삼팔선》이다.'''[br][br] → 앞서 말한 시기들은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이 대한민청 사건으로 구속당하기 한참 전으로 최소 1947년 이전이다. 그런데 《가거라 삼팔선》 발매 시기는 1948년이다. 극 중 1948년은 76화 ~ 79화이므로 그 이후에 나와야 맞다. * '''마지막회에서 1966년 말,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이 출소 후 [[자동차|차]] 안에서 [[보좌관]]들과 대화할 때 [[BGM]]이 《[[새마을노래]]》이다.'''[br][br] → 이 노래는 1972년 처음 나왔으며, [[새마을운동]] 자체도 1969년에 관련 법을 제정한 뒤 1971년부터 시행한 것이다. [[고증오류]]이긴 하지만, 이는 한국 사회가 이제 본격적으로 경제개발 시기에 접어들었다는 [[분위기]]를 나타내기 위한 극적 허용이다. ==== 영화 ==== 주먹 시절 김두한 주 무대가 [[영화관]]인 [[우미관]]이니만큼 [[극장]] 내외부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 역시 오류가 많다. * [[일제 강점기]] [[영화관]] 객석은 [[나무]] [[의자]]였지만 극 중에서는 안락한 [[의자]]다. 하지만 당시 내부 촬영이 가능한 [[영화관]]들 중 일제때 모습을 하고 있는 영화관은 없으므로 --[[21세기]]까지 그렇게 배치하면 당연히 망한다-- 어쩔 수 없었다.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2112201012130026002|#]] ===== 간판 ===== * '''극 중 1936년 경인 14회 ~ 17회에[* 15회에서 [[손기정]] 선수 [[1936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 수상을 다루었다.] 《임자없는 나룻배》[* 당시 표기로는 《님자없는 나루배》.] 간판을 걸어놓았다.'''[br][br] → 이 [[영화]]는 1932년에 개봉한 작품으로, 한참 예전 영화를 메인으로 홍보할 리 없으니 오류이며 결정적으로 이 [[영화]]는 [[우미관]]이 아닌 단성사에서 상영했다. 사족으로 [[우미관]]이 철 지난 영화를 틀어준 적이 있긴 했는데, 그건 1959년 화재 후 [[YMCA]] 뒤로 옮겨 재개관 했을 때 이야기다. * '''극 중 1936년에 있었던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과 [[구마적(야인시대)|구마적]] 결투 때 《평원아(平原兒)》 간판을 걸려놓았다.'''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3671|#]]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3712280020910500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37-12-28&officeId=00020&pageNo=5&printNo=5869&publishType=00010|#]] [br][br] → 1937년에 개봉했다. * '''25화 ~ 28화에 [[영화]] 《오몽녀(五夢女)》 현수막과 간판을 걸었다.'''[br][br] → 단성사에서 개봉했다.[* 춘사 [[나운규]] 유작이다.] * '''30화부터 32화까지 《성황당(城隍堂)》, 35화에 《도생록》[* '도생록'은 44회까지 나왔다.], 《군용열차(軍用列車)》를 걸었다.'''[br][br] → [[스카라#s-3|약초극장]][* 해방 이후 ‘수도극장’, ‘스카라’로 바뀌었다가 2005년 철거.]에서 개봉했다.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2112201012130026002|#]] *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이 [[징용#s-4.2.1|징용]]을 피하기 위해 '경성특별지원청년단'을 창단한 44화 ~ 46화에 1941년 개봉한 《반도(半島)의 봄》 [[현수막]]이 보인다.'''[br][br] → 이 영화는 명치좌[* 지금 [[명동(서울)#s-6|명동예술극장]]. 실제 [[심영(배우)|심영]]이 연극 《님》을 공연했던 극장이다.]에서 상영했다. [[http://www.nl.go.kr/newspaper/sub0101.do?dir_q_paperIndex=%E3%85%81&dir_paper=%EB%A7%A4%EC%9D%BC%EC%8B%A0%EB%B3%B4_%E6%AF%8F%E6%97%A5%E7%94%B3%E5%A0%B1|#]] 더군다나 이 《반도의 봄》은 해방 이후 장면에도 더 등장하는데, 특히 53화와 54화에서는 아예 메인 간판이다.(...) 그리고 42화부터 현수막으로 나왔다가 44화부터 47화까지 메인 간판으로 등장하는 《[[선라이즈#s-10|선라이즈]]》는 무려 1927년 영화이다.[* 번안한 제목인 《日出(일출)》로 적었다.] * '''1945년 [[8.15 광복|해방]] 전후를 다룬 50 ~ 51화에 《복지만리(福地萬理)》 현수막을 펼쳐놓았다.'''[br][br] → 《복지만리》는 1941년작이며 보총극장[* 국도극장의 전신이다.]에서 틀었다. [[http://www.nl.go.kr/newspaper/sub0101.do?dir_q_paperIndex=%E3%85%81&dir_paper=%EB%A7%A4%EC%9D%BC%EC%8B%A0%EB%B3%B4_%E6%AF%8F%E6%97%A5%E7%94%B3%E5%A0%B1|#]] 그리고 이 영화는 [[조선인]] [[만주국|만주]] [[이민]] 장려를 위한 '''[[친일]] 영화'''로, 해방 이후에도 걸어놓는 것은 있을 수 없다. * '''56화부터 60화까지 《자유만세(自由萬歲)》 [[간판]]과 [[현수막]]이 보인다.'''[br][br] → 이 영화는 1946년 10월에 개봉한 것으로 같은 해 4월에 있었던 대한민청 결성(60화) 및 3월에 있었던 [[중앙극장 습격 사건|심영 습격 사건]](63 ~ 64화)[* 회차 적은 게 오타 아니다. 원래 대한민청 결성이 [[중앙극장 습격 사건|심영 습격]]보다 이후인데, [[드라마]]에서는 순서를 바꿨다.]보다 이전 회차에 보이는 것은 [[고증오류]]다. 60화부터 보이는 《[[안중근]] 사기(安重根 史記)》는 3월에 개봉했으므로 시기상 적절하다. *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이 1954년 [[국회의원]] 당선 후 [[우미관]] 앞에서 [[종로구]] 구민들에게 감사 인사 [[퍼레이드]]를 하는데, [[우미관]] 간판의 영화가 《성벽(城壁)을 뚫고》이다.'''[br][br] → 이 영화는 1949년작이며, 당연히 저 시기에 걸려 있을 리가 없다. 사족으로 저 당선 인사를 할 때 드라마에서는 [[중절모]]를 썼지만, 실제로는 맨머리였다. == 관련 문서 == * [[김두한/생애]] * [[고증오류]]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야인시대/비판, version=20)]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김두한/창작물, version=20)]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김두한/생애, version=151)]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4달러, version=835)] [[분류:비판]][[분류:고증오류]][[분류:야인시대]][[분류:한국의 역사왜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