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감독)] ||<-2> [[파일:external/static-secure.guim.co.uk/curbishleyglynkirkafp460.jpg]] || || 이름 || 루웰른 찰스 "앨런" 커비시리 [br] (Llewellyn Charles "Alan" Curbishley) || || 생년월일 || [[1957년]] [[11월 8일]] || || 국적 || [[파일:잉글랜드 국기.png|width=28]] [[잉글랜드]] || || 출신지 || 에섹스 주 포레스트 게이트 || || 포지션 || [[미드필더]] || || 소속팀 ||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1974~1979)[br][[버밍엄 시티]] (1979~1983)[br][[아스톤 빌라]] (1983~1984)[br][[찰튼 애슬레틱]] (1984~1987)[br][[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1987~1990)[br] 찰튼 애슬래틱 (1990~1993) || || 지도자 경력 || '''[[찰튼 애슬레틱]] (1991~2006)'''[br][[웨스트햄 유나이티드]] (2006~2008)[br][[풀럼 FC|풀럼]] (2015 / ^^코치^^) || [목차] == 개요 == 영국^^([[잉글랜드]])^^의 전 축구선수 및 축구감독이다. == 일생 == === 선수 시절 === [[파일:external/img.thesun.co.uk/alan_curbishley_wes_130535a.jpg]] 웨스트햄 선수 시절 모습. [[파일:external/www.sporting-heroes.net/13849-zoom.jpg]] 버밍엄 시절 모습. [[파일:external/1ab64bf350551fda635d33fa0a1b74cde89821c14c48f0a0f408857bb1788956.jpg]] 아스톤 빌라 시절 모습. [[파일:enkku393.jpg]] 찰튼 선수시절 모습. 1957년에 에섹스 주 포레스트 게이트에서 런던 항만 노동자의 5남 중 하나로[* 형 빌은 록그룹 'The WHO'의 프로모터였다.] 태어나 웨스트 햄 역 인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17세 때인 1974년에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것을 시작으로 1993년 은퇴 때까지 버밍엄, 찰튼, 브라이튼 등 5개의 팀을 전전하며 평범한 선수생활을 보냈다. 특히 찰튼 시절인 1986년에는 2부 리그에서 준우승하여 팀을 오랜만에 1부 리그로 끌어올리기도 했다. === 감독 시절 === ==== 찰튼 애슬레틱 ==== [[파일:external/i.dailymail.co.uk/article-2303182-00004DDA00000CB2-782_634x395.jpg]] 1991년에 팀 동료인 스티브 그리트와 공동 감독으로 취임할 적의 모습. 1991년에 전임 감독이자 스승인 레니 로렌스가 9년만에 팀을 떠나자 동료인 스티브 그리트와 선수 겸 감독으로 취임, 1993년에는 선수 생활을 청산하고 감독직에 전념하기 시작하여 1995년에는 그리트가 감독직을 사퇴하자 단독으로 팀을 지휘하게 되었다. [[파일:external/3.bp.blogspot.com/Charlton+celebrate.jpg]] 그는 숀 뉴튼, [[스콧 파커]], 폴 콘체스키, 케빈 리스비, 스튜어트 발머, 마크 킨셀라, 스티브 브라운 등의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팀을 재편성하여 점차 전력을 올렸고, 마침내 1997/98 시즌에는 2부 리그에서 4위로 마치고 플옵 결승에서 [[선더랜드 AFC]]를 상대로 4-4 동점을 기록했으나 페널티킥에서 7-6으로 이겨 8년만에 프리미어 리그 승격을 확정지었으나 1998/99 시즌에 선수들의 부상 등 악재로 인해 18위로 아쉽게 강등당했다. [[파일:external/www.squawka.com/1965941-e1463481342179.jpg]] 강등 이후 경질설이 흘러나왔으나 구단은 그를 신뢰했고, 커비실리는 이에 보답하기 위해 팀을 다잡아 1999/2000 시즌에 2부 리그를 씹어먹고 우승하여 또다시 프리미어리그에 승격하였다. 이후 맷 홀랜드, 숀 바틀렛, 요나단 요한슨 등의 깜짝 스타들을 배출하면서 중위권에서 놀았다. 특히 2002~2004년까지가 압권이었는데, 2002/03 시즌에는 초~중반에 6위까지 치고 올라가다 후반부엔 뒷심 부족으로 12위를 찍었으나, 2003/04 시즌에는 아스날이 무패우승으로 리그를 씹어먹던 상황에도 7위를 기록해 꽤 선전한 바 있다. 그리고 그가 물러나기 하루 전인 2006년 5월 7일에는 맨유 원정에 출전하여 찰턴의 레전드급 감독인 지미 시드의 729경기 기록을 경신한 바 있었다. ==== 웨스트햄 시절 ==== [[파일:external/i.telegraph.co.uk/alan_curbishley_dea_791944c.jpg]] 찰턴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떠난 커비실리는 TV에 축구전문가로 잠시 출연하다 2006년 12월에 [[앨런 파듀]]가 팀을 강등권으로 내몬 책임을 지고 쫓겨나 찰튼으로 옮기자 바로 웨스트 햄의 감독이 되었고 얼마 안 가 찰턴은 파듀를 커비쉴리의 후임 감독으로 임명하여[* 이 둘 사이에 당시 수석 코치이던 레스 리드가 잠시 감독을 하다가 얼마 안가 파듀가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서로 감독을 맞바꾼 모양새가 되었다. 앨런 커비실리의 웨스트햄에서의 첫 경기는 12경기 무패로 선두를 달리고 있던 [[맨유]]와의 홈경기였는데 주장 레오 코커의 결승골로 1-0으로 이기는 이변을 연출한다. 그러나 이 승리를 마지막으로 [[레딩 FC]]에 0-6으로 패하는 등 11경기 연속 무승(3무8패)에 빠지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선수단이 도박에 빠져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오고, [[하비에르 마스체라노]]는 리버풀로 떠났다. 29라운드 [[토트넘 핫스퍼]]와의 홈경기에서 최악의 먹튀로 시즌 내내 득점이 하나도 없었던 [[카를로스 테베스]]는 그제서야 프리킥으로 시즌 첫 마수걸이 골을 신고한다. 테베스는 데뷔골에 2개의 어시스트를 추가하였고 종료 직전까지 3-2로 이기면서 팀은 10경기만에 무승에서 탈출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추가시간에 [[베르바토프]]에 동점골을 허용한 후, 종료 직전에는 [[이영표]]의 태클로부터 시작된 역습에 의해 폴 스톨테리의 결승골로 역전을 허용해 3-4로 패배한다. 이날 경기결과로 웨스트햄은 5승 5무 19패에 꼴찌로 추락하여 잔류권인 17위와 10점차로 벌어졌고 [[http://blog.daum.net/hahahallung/11056175|#]], 기적이 일어나야만 잔류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 하지만 웨스트햄에 기적이 일어났다. 남은 9경기에서 7승 2패를 기록하여 기적적으로 강등권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하이라이트는 최종전인데, 이제 웨스트햄은 승점 1점만 추가해도 자력으로 잔류를 확정짓는 상황. 그러나 상대팀은 우승을 확정지은 1위 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고 장소도 원정팀의 무덤이라는 [[올드 트래포드]]. 만일 웨스트햄이 지고 [[위건 애슬레틱]]이 강등 라이벌인 [[셰필드 유나이티드]]에 승리하면 강등되는 상황. 웨스트햄은 시종일관 홈팀인 [[맨유]]에 밀렸지만 전반 종료 직전 터진 [[테베스]]의 천금같은 결승골로 적지에서 [[맨유]]를 1-0으로 이기고 자력으로 프리미어리그 잔류를 확정짓게 된다. 테베스는 이날 결승골을 포함하여 마지막 10경기에서 7골을 득점하여 웨스트햄의 최악의 먹튀에서 강등에서 팀을 구해낸 영웅으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테베스]]는 최종전에서 자신의 골로 격침한 [[맨유]]로 이적하게 된다.] 가까스로 강등을 피한 웨스트햄은 07/08시즌 10위로 안정적으로 중위권에 안착했다. 그러나 다음 시즌에 마그누손 회장이 아이슬란드의 큰 은행인 랜즈방키 소유주 비요르골푸르 구드문드손에게 회장 자리를 넘겼고, 커비쉴리는 첼시의 오른쪽 측면 수비수인 [[파울루 페레이라]]나 [[줄리아누 벨레티]] 중 하나를 영입하길 요구해왔으나 구단 측은 이들의 이적 협상을 성의 있게 진행하지 않고 대신 조지 매카트니와 [[안톤 퍼디난드]]를 선더랜드에 팔아버린 데에 불만을 품고 결국 리그 개막 3주만에 사임하였다. ==== 풀럼 시절 ==== [[파일:external/i.dailymail.co.uk/article-2551890-1AF8BB0000000578-436_634x412.jpg]] 한동안 야인으로 지낸 커비실리는 2013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풀럼의 기술이사로 부임하였다가 2014년에 [[펠릭스 마가트]]가 부임한 뒤 2달만에 물러났다가 2015년 3월 5일에 킷 시몬스 감독에 의해 코치가 되었으나 그해 11월에 시몬스가 경질되자 같이 물러났다. === 감독 스타일 === 그는 강등위기 팀을 중위권에 안착시킬 정도로 나름 탁월한 지도력을 지녔으나, 이보다 가장 빛을 발하는 건 선수 스카우트 능력이다. 예나 지금이나 찰튼은 맨유같은 명문 클럽처럼 스타 선수를 영입할 재정형편이 못 되기 때문에 북유럽이나 아프리카 등지 제3세계 선수들을 영입했고, 당장의 성적보다 미래의 가능성을 바라보는 CEO스런 안목으로 키워냈다. 그 결과 요나단 요한슨이나 클라우스 옌슨, 숀 바틀렛 같은 선수들이 국가대표급 선수로 키워졌고, 폴 콘체스키와 스콧 파커도 2002 한일월드컵 때 잉글랜드 국가대표로 발탁되었다. [각주] [[분류:1957년 출생]][[분류:잉글랜드의 축구선수]][[분류:잉글랜드의 축구감독]][[분류: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은퇴, 이적]][[분류:버밍엄 시티 FC/은퇴, 이적]][[분류:아스톤 빌라 FC/은퇴, 이적]][[분류:찰턴 애슬레틱 FC/은퇴, 이적]][[분류: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은퇴, 이적]][[분류:찰턴 애슬레틱 FC/역대 감독]][[분류: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역대 감독]][[분류:선수 겸 감독/축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