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한 황제)] ||<-2><tablealign=right><tablebordercolor=#a11><tablebgcolor=#a11><tablecolor=#000><colbgcolor=#a11><colcolor=#ece5b6> {{{#ece5b6 '''한 제13대 황제'''}}}[br]{{{+1 {{{#ece5b6 '''哀皇帝 | 애황제'''}}}}}} || ||<-2><bgcolor=#fff><:> [[파일:attachment/hanaeje.jpg|width=300]] || ||<width=50> '''[[묘호|{{{#fff 묘호}}}]]''' ||<bgcolor=#fff><(> 없음 || || '''[[시호|{{{#fff 시호}}}]]''' ||<bgcolor=#fff><(> 효애황제(孝哀皇帝) || || '''[[연호|{{{#fff 연호}}}]]''' ||<bgcolor=#fff><(> 건평(建平, 기원전 6년 ~ 기원전 3년)[br]원수(元壽, 기원전 2년 ~ 기원전 1년) || || '''{{{#fff 출생}}}''' ||<bgcolor=#fff><(> 기원전 27년 || || '''{{{#fff 사망}}}''' ||<bgcolor=#fff><(> [[기원전 1년]] [[8월 13일]][*G 나무위키의 규정에 따라 그레고리력으로 환산한 값이며, 당시의 달력으로는 원수 2년 6월 26일(무오일)이었다.] || ||<|2> '''{{{#fff 재위}}}''' ||<bgcolor=#a11> '''{{{#ece5b6 전한의 황제}}}''' || ||<bgcolor=#fff> 기원전 7년 ~ [[기원전 1년]] [[8월 13일]][*G] || ||<^|1><-2><height=32><:>{{{#!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tablewidth=100%><width=50><tablebgcolor=#fff><tablecolor=#000><colbgcolor=#a11><colcolor=#ece5b6> '''[[성씨|{{{#fff 성}}}]]''' ||<bgcolor=#fff><(> 유(劉) || || '''[[휘|{{{#fff 휘}}}]]''' ||<bgcolor=#fff><(> 흔(欣) || || '''{{{#fff 부모}}}''' ||<bgcolor=#fff><(> 부친 정도왕 유강, 모친 정씨 || || '''{{{#fff 후궁}}}''' ||<bgcolor=#fff><(> [[소의 동씨]] ||}}}}}}}}} || [목차] [clearfix] == 개요 == [[전한]]의 13대 황제. 시호는 효애황제(孝哀皇帝). 애제가 재위한 당시는 조정의 실권은 외척에게 넘어가고, 자신은 [[동현]]이라는 미소년과 [[동성애]]에 빠져 정치를 돌보지 않았다. 동현의 누나 [[소의 동씨]](昭儀 董氏) 또한 애제의 [[후궁]]이었으므로 현실판 [[남매덮밥]]이다. == 생애 == [[원제(전한)|원제]]의 손자이자 [[성제(전한)|성제]]의 조카. 그의 아버지는 유강으로 성제의 이복동생이자 원제의 차남으로 [[효원소의 부씨|소의 부씨]] 소생이었다. 유강은 이복형 성제와 후계자 경쟁을 벌이다 탈락해 정도왕이 된다. 원래 유강은 조비연을 사랑했었는데 반대에 부딪혀 이뤄지지 못했다. 그 후, 유강은 그리움으로 [[상사병]]을 얻었고 장안에서 치료받았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 유흔은 부친이 사망하자 정도왕을 세습했는데 백부 성제가 후사가 없어 후계자로 낙점되었다. 애제의 할머니 소의 부씨는 [[효원황후 왕씨|효원황후]]와 경쟁관계에 있었으나, 손자를 위해 우선 고개를 숙였고, 성제의 총비이자 성제의 무자식의 원인이었던 조비연 자매에게 뇌물을 쓰면서 회유했다. 그러나 애제 집권 후, 소의 부씨와 애제의 어머니 정씨의 친척들이 효원황후의 집안을 밀어내고 권력을 독점한다. 부소의는 제태태후(帝太太后)[* 얼마 뒤에 황태태후(皇太太后)로 고친다. 태황태후에 상당한다.], 정씨는 제태후(帝太后)[* 황태후에 상당한다.]라는 중국사상 유일무이한 칭호를 받기도 하였다. [[왕망]]도 이때는 은거하여 지내다 명성을 얻어 말기에 임용되게 된다. 집권 초기에는 검약을 실천하면서 당시 심각해지던 토지겸병을 비롯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으나, 현실의 벽에 부딪힌 후 실망하고, 미남자 [[동현]]에게 군 고위직인 [[대사마]]직을 내리고 총애하였다.[* 후궁인 소의 동씨의 남동생이다. 애제가 [[남색]]을 했다고 지목되는 원인으로, 후술되는 일화 참조.] 이는 군부와 신료들의 반발을 부르게 된다. 그렇게 재위 7년간 정치를 돌보지 않다가 병사하였다. 이후 정씨와 부씨는 몰락하고, 애제 사후 곧장 효원황후가 옥새를 인수한 후 왕망에게 권력을 주게 된다. 동현은 부부동반 자살하고 옥루에 쌓인 시신마저 파헤쳐지게 된다. 애제의 황후인 [[효애황후 부씨]]와 [[성제(전한)|성제]]의 황후 [[조비연]] 역시 자살했으며 조비연의 여동생이자 성제의 후궁이던 조합덕은 성제 사후 의혹을 받아 자살했다. 일화로, 애제가 동현과 낮잠을 자다 먼저 깨니, 동현이 자신의 소매를 깔고 자고 있었다. 이에 칼을 가져오게 해 소매를 자르고 일어나 동현이 깨지 않게 하였다. 여기서 유래한 말이 '단수'이다. == 둘러보기 == [include(틀:한서)] [include(틀:전한기)] [include(틀:문서 가져옴,title=애제,version=35)] [[분류:한나라의 황제]][[분류:기원전 27년 출생]][[분류:기원전 1년 사망]][[분류:역대제왕묘 배향자]][[분류:양성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