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헬 살라스 라라사발(Ángel Salas Larrazábal : 1906년 10월 1일~1994년 7월 19일)''' [[분류:1906년 출생]][[분류:1994년 사망]] [목차] == 소개 == [[스페인 내전]]에서 국가주의자 편에 서서 17대를 격추시키는 활약을 펼친 [[에이스(전투조종사)|에이스]] 파일럿으로, 내전이 끝나고 곧 발발한 [[2차 대전]]에서는 [[스페인]] 의용 조종사들로 편성된 "푸른 비행단(Escuadrilla Azul)"의 지휘관으로 활동했다. 스페인 역사를 통틀어 격추수 3위에 해당하는 그는 618회 출격하며 비행시간 1,215시간에 49회의 실제 공중전을 경험했다. == 출생과 입대 == 소싯적 아명이 살라스로 불린 그는 [[1906년]] 10월 1일에 스페인 북부 비스카야주의 오르두나(Orduña)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15살이 되던 [[1921년]]에 군사학교에 입학한 그는 장교로 훈련받은 후 갓 스무 살에 되던 [[1926년]]에 [[포병]] 중위로 임관했다가, [[1927년]]에 관측수로 병종을 바꿔 [[공군]]으로 소속을 옮겼고 [[1928년]]에 정찰 훈련을 마쳤다. 그가 군복에 조종사 뱃지를 단 것은 [[1930년]]이었다. 앙헬 살라스가 [[대위]]로 진급하고 [[모로코]]에서 파견 근무하던 [[1936년]]에 스페인 내전이 터졌다. 그는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이끄는 [[팔랑헤]] 군대에 참가할 것을 결심하고 조국으로 돌아갔다. == 내전에서 == 내전 초기에 그는 복엽 날개의 쌍발 [[여객기]]인 [[드 해빌랜드 드래곤 래피드]](De Havilland Dragon Rapide)을 몰았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전투기 조종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상관 에밀리오 몰라(Emilio Mola : 1887~1937) 장군은 여러차례 민간기를 몰고 있는 살라스 대위에게 이 비행기에 [[기관총]]이나 [[폭탄]]을 실을 수 없겠냐고 물어왔다. 그가 몰던 드래곤 래피드는 전투용이 아니라 [[영국]] 노선을 오가던 여객기를 그대로 스페인으로 몰고 가져온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압박은 계속되었고, 결국 그는 동체 옆에 전방을 향해 사격할 수 있는 기관총을 거치하는 개조를 한 다음 오랜 친구인 델 몬테(Del Monte) 대위에게 기총사수와 관측수 임무를 부탁해 동승시켰다. 델 몬테 대위는 관측수 임무를 수행하면서 기관총의 탄약이 떨어지면 재장전해주는 탄약수 역할을 해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중에 폭탄창을 설치해 폭탄을 싣고 난 후에는 폭격수 역할까지 해야만 했다. 여객기를 전투폭격기로 개조한 것은 아마 그후로도 없었을 것이다. 살라스는 곧 구식 복엽전투기인 포커 D.12(Fokker D.XII)로 갈아탔고, 8월 23일에 뉴폴 [[NiD 52]]로 옮겨 탄 후에야 최초의 격추 전과를 기록했다. 어쩌다 보니 졸지에 전투조종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후 잠시 동안은 [[이탈리아]] 조종사들과 함께 피아트 [[CR.32]]를 타고 싸웠는데, 살라스는 이 복엽전투기로 가장 많은 전과를 거두게 된다. [[1937년]]부터 앙헬 살라스는 1개 중대를 휘하에 거느리게 되었고, 그의 중대는 정예부대로 평가받으면서 얼마 후에는 스페인 내전 톱 에이스인 호아킨 가르시아 모라토(Joaquín García Morato : 1904~1939)가 지휘하는 2-G-3 항공단[* Grupo 2G3 : 같은 해 4월에 Escuadra de Caza에서 승격]으로 편입되었다. 6월 말까지 살라스의 개인 격추수는 7대를 헤아렸는데, 9월부터는 상관 모라토 소령 대신 2-G-3의 지휘를 전쟁이 끝날 때까지 맡게 된다. 살라스의 가장 유명한 전투는 [[1938년]] 9월 2일에 당대의 최신예기인 소련제 단엽 전투기 폴리카르포프 [[I-16]]와 [[투폴레프]] SB-2 폭격기 3대를 한 번의 출격에 격추한 사건일 것이다. 앙헬 살라스는 앞에서 소개한 공중전에서 달성한 전과 외에도 지상 공격에서 장갑 차량 16대와 차량 48대를 격파하는 활약을 펼쳤으나, 그가 고백했던 것처럼 대지 공격 임무가 더 위험했는지 자신도 4번이나 추락했었다. [[파일:El_piloto_de_la_Escuadrilla_Azul_Ángel_Salas_Larrazábal_en_la_Estación_del_Norte_de_San_Sebastián_(Guipúzcoa,_España),_en_1943.jpg]] <1943년에 스페인의 기푸스코아(Guipuzcoa)에 있는 성 세바스티안 북역(North Station of Saint Sebastián)에서 시민들의 환영을 받는 아줄 비행단장 앙헬 살라스 라라자발 소령> == 2차 대전 참전 == [[1939년]] 9월에 [[나치]] 독일에 의해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지만, 스페인은 [[히틀러]]의 군사 지원 요청을 거부했다. 그렇게 버티다가 거의 2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1941년]] 7월에야 스페인 의용 전투기 부대를 파견했는데, 이들이 '''에스콰드릴라 아줄''', 이른바 푸른 비행단이었다. 전투기 한대 없이 순전히 조종사로만 이루어진 제1진을 [[러시아]]로 이끌고 가서 지휘한 장교가 바로 앙헬 살라스 라라자발 소령이었다. 스페인을 출발한 이들은 [[1941년]] 7월 24일에 [[프랑스]]를 경유해 독일에 도착했고, [[베를린]] 부근의 베르노이헨(Werneuchen)에서 훈련을 위해 제1전투비행학교(Jagdfliegerrschule 1)에 입교해 기종 전환 교육을 받았다. 메서슈밋 [[Bf 109]]E로 훈련을 마친 비행대원들은 9월 26일에 [[동부전선]]으로 떠났다. 푸른 비행단 대원들은 Bf 109E-4 전투기 12대와 Bf 109E-7 전투기 7대를 지급받고 나서 [[루프트바페]]의 제27전투항공단([[JG 27]])에 편입되었고 살라스 소령은 메서슈밋 전투기를 몰고 [[1942년]] 1월까지 6개월 동안 70회를 출격하면서 단독으로 7대의 소련 공군기를 격추시켜 1급 [[철십자 훈장]]을 수여받았다. 독일 공군은 그가 이끄는 부대를 가리켜 제15스페인 비행중대(15 Spanische Staffel)로 불렀고 10월 2일에 처음 실전에 참가했다. 이들 대부분은 스페인 내전에서 [[소련]] 조종사들과 싸워 본 경험이 있는 베테랑들이었는데, 모두 합해 79대를 격추했다. == 종전 후 == 파견을 마치고 스페인으로 돌아온 그는 독일, [[스위스]], [[포르투갈]], [[프랑스]]를 돌며 [[대사관]] 소속 무관장교를 오랫동안 역임했다. [[1966년]]에 공군 중장으로 진급한 그는 [[1972년]]까지 스페인 공군에서 계속 복무하다가 66세에 예비역으로 물러났다. [[1975년]]에 프란시스코 프랑코 총통이 죽자 스페인 왕국 평의회의 일원이 되었고, [[1991년]]에는 육군 원수 겸 공군 장군(Capitán general)이 되었다. 퇴역한 그는 [[1994년]] 7월 19일에 88세의 나이에 노환으로 사망했다. [[분류:에이스 파일럿]][[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