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셀주크 술탄]] [[분류:1029년 출생]] [[분류:1072년 사망]] [include(틀:역대 셀주크 술탄)] || [[파일:arp arslan.png|width=100%]] || || [[헤라트]]의 왕관을 쓴 알프 아르슬란 || || [[페르시아어]] ||آلپ ارسلان || || [[영어]] ||Alp Arslan || || 재위 ||1064년~1072년 || || 생몰 ||1029년 1월 20일~1072년 12월 15일 || [목차] == 개요 == [[셀주크 제국]]의 제2대 술탄. 본명은 디야 앗 두니야 와 앗 딘 아두드 앗 다울라 아부 슈자 무함마드 알프 아르슬란 이븐 다우드 (ضياء الدنيا و الدين عضد الدولة ابو شجاع محمد آلپ ارسلان ابن داود)이다. 앞의 긴 호칭과 별명인 알프 아르슬란 (영웅적인 사자)을 제하면 아부 슈자 무함마드 이븐 다우드, 즉 슈자 아버지이자 다우드의 아들인 무함마드가 되겠다. 초대 술탄인 토그릴의 동생 다우드 차그리벡의 아들이며 셀주크 왕조의 창시자 셀주크의 증손자이다. == 행적 == === 총독 시절 === 본디 아르슬란은 왕위 계승과는 그다지 가깝지 않은 계승 순위를 가진 인물이였다. 셀주크가 아직 호라산 지역의 총독이던 시절[* 말이 총독이지 사실상 세습에 가깝다.] 그의 숙부인 [[투으를 베이]]가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사망하자 아르슬란의 형제가 제위를 계승했고, 이에 아르슬란은 왕위에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된다. === 계승 전쟁 === 그러나 당연하게도 왕위를 노리는 세력은 아르슬란을 제외하고도 있었는데 그 대표로, 그의 숙부인 [[쿠탈미쉬]]가 있다. 그는 자신이 정당한 계승자라고 주장하며 아르슬란과 사사건건 다퉜으나, 결국 아르슬란이 그를 처리하며 결국 아르슬란이 셀주크의 계승자가된다. === 니잠을 등용하다 === 그 당시 셀주크는 어디까지나 투르크인들이 대다수의 이민족들을 지배하던 상황이였다. 그 결과 서로 끝없이 분쟁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와중 아르슬란은 전쟁과 [[내전]]으로 피폐해진 국가를 위해 [[니잠 알 물크]]라는 현재 이슬람권에서 최고의 인물중 하나로 꼽히는 이를 등용한다. 그리고 그에게 요직을 맡겨 나라를 부강케 해 군대를 양성했고 그 군대로 아르메니아와 조지아 지역을 정복한다. === [[동로마]]와의 분쟁 === 1068년도 즈음 시리아 지역으로 군대를 이끌고가던 도중에 그의 부하 장수가 돌발적으로 군대를 이끌고 이탈해 로마 제국쪽으로 향했고, 그 결과 마침 그곳에서 군대를 이끌고 경계중이던 로마군과 접전을 벌였다. 총 3번의 전투가 벌어졌는데 결국 장수의 군대가 패배하였고 로마는 승리하였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로마의 바실레우스 [[로마누스 4세]]의 명령에 따라 아르메니아로 대군을 파견하였고 아르슬란은 이에 평화적으로 분쟁을 종결시키려 하였으나 로마누스는 멈추지 않았고 결국 로마 역사상 최악의 참패 중 하나인 [[만치케르트 전투]]가 벌어졌다. 아르슬란 입장에서는 동로마 귀족 [[두카스 왕조|두카스 가문]]의 배신이라는 행운도 작용했다. 어찌되었든 아르슬란은 큰 승리를 얻었고, 바실레우스 로마누스를 생포하는 데에 성공한다. 아르슬란은 그에게 우호적으로 대하며 그에게 평화 조약에 서명할 것을 강요하였고, 결국 로마는 아나톨리아와 수많은 장성과 미래의 병사들까지 모조리 죽임당하거나 셀주크에게 빼앗겨버려 사실상 군 관련 기능이 거세되어 버렸다. 그리고 아르슬란은 로마누스를 의외로 곱게 집으로 돌려보내준다. >'''아르슬란''' 만일 우리의 처지가 반대라면 그대는 어찌하겠소, 가령 내가 포로로 잡혔다면? >'''로마누스''' 죽였거나 콘스탄티노폴리스의 거리에서 그대를 조리돌림 했겠지. >'''아르슬란''' 그렇소? 난 그대에게 더 큰 벌을 내릴 생각이요. '''용서할 테니, 풀어주겠소.''' 여기까지 들으면 자비로운 처사라 생각하겠지만, 잘 생각해 보면 알다시피 로마의 황제 자리는 고대 로마 시대든 동로마 시대든 능력과 인기를 동반한다면 누구든 찬탈할 수 있는 자리였다.[* 로마 황제는 어디까지나 '제1시민'이었기 때문에 중국의 황제와는 그 개념이 완전히 동일하지 않다. 황제 혈통이 아니더라도 출중한 능력과 많은 지지를 얻으면 시민들 중 누구라도 황위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이 있었다는 얘기. 실제로도 비천한 가문 출신이거나 非라틴, 非그리스 계열의 속주민이 군대와 시민의 지지 속에 로마 황제에 오른 경우가 셀 수 없이 많다. 자세한 내용은 [[황제]] 문서 참조.] 그리고 보통 폐위된 황제들은 거세당하거나 눈알이 뽑힌 채 일가족이 몰살당하고 거지꼴로 평생을 유폐당한 채 살아야 했다... 그걸 생각하면 아르슬란은 의도적이었을지는 모르지만,[* 당시 로마누스와 배상금까지 협상하여 곱게 돌려보낸 것을 보면, 의도적까지는 아니었을 듯 하다. 아마도 로마누스가 복위하고 약속을 지키면 배상금을 받을 수 있고, 로마누스 혹은 찬탈자가 배상을 거부하면 대의 명분을 얻을 수 있으니, 어느쪽이든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따지고보면 로마누스에게 [[희망고문|무척이나 가혹한 형벌]]을 내린 것이다. --[[베인(다크 나이트 트릴로지)|베인]]-- 실제로 그가 석방된 후 이듬해인 1072년. 로마누스 4세는 권력을 찬탈당하고 눈을 뽑힌 채 동로마에서 쫒겨나 실의 속에서 사망했다. === 사망 === 만지케르트 이후 알프 아르슬란은 아시아의 서쪽 대부분을 정복했다. 조상들의 땅인 투르키스탄[* 튀르크족의 땅이란 뜻으로 오늘날의 중앙아시아 일대]을 정복하던 도중 [[트란스옥시아나|아무다리야 강]] 길목에 자리 잡은 성채를 공략하던 중 거짓 항복을 받고 투항한 성주 유수프 알화레즈미에게[* 거짓 항복이 아니고 진짜 항복인데 유수프를 끔살하라는 명을 내리는 바람에 유수프가 평소에 가지고 다니던 단검으로 발악한 것이다.] 단검으로 피습당했다. 근데 사실 여기서 아르슬란이 엄청난 짓을 저질렀는데 활을 잘 쏜다고 달려드는 유수프를 직접 활로 쏴죽이겠다며 근위병들을 저지한 게 큰 실수였다.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쏜 화살이 유수프를 빗나가고 기회를 잡은 유수프의 역습에 죽었다. 그래서 아들한테 자만심 때문에 죽는다는 유언을 남겼다. 이 상처로 4일 후인 1072년 12월 15일, 43세로 사망했다. 물론 유수프는 근위병들에게 그야말로 끔살당했고 시체도 토막내서 길바닥에 뿌려버렸다. 시신은 메르브로 옮겨져 아버지인 차그리 베그의 곁에 안장되었다. == 기타 == * 게임 [[크루세이더 킹즈 2]] 1066년 시나리오에서 플레이 할 수 있다. 세력자체가 매우 강력하며 인물자체도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 플레이하기가 쉽다. 시작하자마자 동로마와 전쟁 중인데 전쟁의 명분(CB)이 침략이기 때문에 이 전쟁 한 번으로 동로마를 지도에서 지워버릴 수 있다.(..) 설사 멸망시킬 수 없다 해도 가문이 셀주크 가문이라 스페셜 CB가 있어 동로마에게 무제한으로 침략전쟁을 걸 수 있다. * 알프 아르슬란은 현대 [[터키]]의 남자이름으로 가장 선호되는 터키식 이름이라고 한다. * [[투르크메니스탄]]의 [[8월]]의 명칭은 알프 아르슬란이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