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관 항목: [[신라/역대 왕비]] ||<tablealign=center><:><table bordercolor=white><#4A2D5B> '''{{{#FFD700 존호}}}'''||<-2><(><white> '''알영부인(閼英夫人)''' || ||<:><#4A2D5B> '''{{{#FFD700 칭호}}}'''||<-2><(><white> 이성(二聖)|| ||<:><#4A2D5B> '''{{{#FFD700 이름}}}'''||<-2><(><white>알영(閼英) / 아리영(娥利英) / 아영(娥英) || ||<:><#4A2D5B> '''{{{#FFD700 부군}}}'''||<-2><(><white>혁거세 거서간(赫居世 居西干) || ||<:><#4A2D5B> '''{{{#FFD700 왕자}}}'''||<-2><(><white>남해 차차웅(南解 次次雄) || ||<:><#4A2D5B> '''{{{#FFD700 왕녀}}}'''||<-2><(><white>[[아로공주]] || ||<:><#4A2D5B> '''{{{#FFD700 능묘}}}'''||<-2><(><white> 사릉(蛇陵) || ||<:><#4A2D5B> '''{{{#FFD700 생몰연도}}}'''||<-2><(><white>기원전 53 ~ ? || >"'''이제 [[혁거세|천자(天子)]]께선 강림하셨으니, 배필이 될 덕을 지닌 여군(女君)을 찾자!'''" >今'''天子'''已降 宜覓有德'''女君'''配之! >---- >거서간의 강림에 고무된 사람들의 외침. 삼국유사에서 발췌했다. [목차] == 개요 == [[신라]]의 시조 [[혁거세 거서간]]의 부인이자 [[남해 차차웅]]과 [[아로공주]]의 모친이다. == 탄생 설화 == [[삼국사기]]에서는 혁거세 거서간이 태어나던 그 해에 [[용]]([[계룡]])이 알영정 [[우물]]에 나타났고 용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박혁거세]]는 [[알]]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이 부분을 후대에 [[불교]]가 전래된 후 [[석가모니]]가 [[마야부인]]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는 [[설화]]의 영향을 받은 점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지나가던 [[할머니]]가 발견했는데 태어났을 때 아기의 [[입술]]이 [[닭]]의 [[부리]] 모양이었는데[* 이게 편두한 외모를 묘사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편두를 해서 두상을 변화시키면 입 부분이 뾰족하게 튀어나오고 대신 이마는 들어가기 때문.] [[목욕]]을 시키니 부리가 빠졌고 알영정 우물의 [[이름]]을 따서 아이의 이름을 알영으로 지었다고 한다. 이 알영정 우물은 지금은 경주 오릉 숭덕전 구석의 외진 곳에 있는데 커다란 덮개돌 3개로 덮여있고 우물물은 돌 사이로 약간 보인다. 이게 자세히 보지 않으면 우물인지 뭔지 눈에 잘 안 띈다. 알영정이라고 [[한자]]로 쓴 커다란 [[바위]]가 큰 [[연못]](알영지) 옆에 설치되어 있어 자칫 이 연못을 알영정으로 착각하기 쉽다. [[구글]]에 알영정이라고 치면 우물말고 연못의 [[이미지]]가 상당히 많이 나온다. 이후 자라면서 빼어난 용모와 덕행을 갖췄다고 하고 13세가 되었을 때 혁거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알영도 [[왕비]]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남해 차차웅을 비롯한 3남 2녀를 낳았다. 이후 행실이 어질고 보필을 잘해서 당시 사람들은 혁거세와 알영을 두 성인(二聖)이라 불렀다고 한다. 알영부인 탄강 설화는 [[단군신화]]를 [[곰]] 토템 부족과 [[호랑이]] 토템 부족으로 해석하는 것처럼 [[닭]] [[토템]]을 섬기는 부족이 등장했고 외부 이주 세력인 [[박씨]]와 결합했음을 뜻한다고 해석한다. 후대의 문헌 기록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뿐 아니라 신라인들이 직접 남긴 [[울주 천전리 각석]]에도 알영 탄생 설화를 묘사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이 있다. 박혁거세 탄생 설화로 보이는 그림(말과 아이) 왼쪽 아래에 있는 두 용과 알 속에 들어있는 듯한 사람이 그것. 삼국유사에서는 박혁거세가 승하한 직후 알영도 따라 세상을 떠났다고 하며 이들을 합장하려 하니 큰 [[뱀]]이 나타나 방해해서 결국 따로 묻어서 [[오릉]]이 되었다는 설화가 있다. [[분류:신라의 왕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