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유고슬라비아 왕국|세르비아/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 국왕 || || [[페타르 1세]] ||←|| '''알렉산다르 1세''' ||→|| [[페타르 2세]]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Kralj_aleksandar1.jpg]] [[1888년]] [[12월 16일]] ~ [[1934년]] [[10월 9일]](45세) 재위 [[1921년]] [[8월 16일]] ~ [[1934년]] [[10월 9일]] == 개요 ==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군주. == 생애 == [[카라조르제비치 왕조]] 출신이다. 부왕 [[페타르 1세]]가 오브레노비치 왕조에 밀려 망명객이던 시절인 [[1888년]]에 [[몬테네그로 왕국]] [[체티네]]에서 태어났다. 2살 때 몬테네그로 공주이던 모친을 잃고, 아버지에 의해 [[스위스]]와 [[러시아]]에서 교육을 받았다. 본래는 차남이라 왕위를 계승할 가능성이 낮았으나, 형인 조르제가 부왕과 의견 대립이 심한데다 정신질환 때문에 폭력적인 성격이었고 결정적으로 시종을 죽이는 바람에 폐세자당하자[*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람은 [[요시프 브로즈 티토|티토]] 정권이 들어서면서 왕족들을 모두 국외추방시켰을 때 유일하게 유고슬라비아에 남을 수 있었고 천수를 누리다 1972년에 사망했다.], 1909년에 대신 왕위 계승자로 지명되었다. 1910년에는 [[티푸스]]에 걸려 사경을 헤매다가 회복했고, [[1914년]]부터 아버지 [[페타르 1세]]를 대신해 섭정하였다. [[1921년]]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 왕위에 올랐으나, 1928년 크로아티아 농민당 당수 스테판 라디치(Stjepan Radić)가 암살당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것도 대낮에 국회의사당 안에서 다른 의원의 권총에 죽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시작된 정치 혼란과 불안정한 체제를 1929년에 정식으로 [[유고슬라비아 왕국]]을 선포하고 이른바 '1월 6일 체제'라는 [[전제군주제]]로 체제를 바꿈으로써 극복하려 했으나 의회와 갈등이 심했다. 전제군주정이라니 언제적 시대 이야기를 하냐 싶기도 하지만(...) 20세기 초까지 세계 각지에서 [[전제군주정]] 국가는 상당히 많았다. 거의 전제군주정이나 다름없던 [[독재]]국가들도 즐비했고. [[1934년]]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루이 바르투 외무장관(1862 ~ 1934, 한때 프랑스 총리를 역임)과 회담하던 중 [[불가리아]]인 블라도 체르노젬스키[* 1897 ~ 1934. [[마케도니아]]를 불가리아에 합치려던 과격파이자 [[우스타샤]]와 깊은 연관이 있었다. 그는 당시 회담을 하던 프랑스의 루이 바르투 외무장관도 함께 죽였기 때문에 [[프랑스 제3공화국|자국]] 외무장관을 살해한 죄로 분노한 프랑스 군중에게 맞아죽었다. 외국에서 방문한 국왕이 죽는 것으로도 자국 위신에 큰 손상이 오는데, 이상한 외국인이 자기 나라 장관을 죽이기까지 했으니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에게 [[암살]]당한다.[* 이때 알렉산다르 1세는 나름 자국의 권위와 힘을 보이기 위해 자국 해군의 기함인 유일한 구축함 [[두브로프니크급 구축함|두브로브니크 호]]를 타고 갔었다. 물론 왕이 가서 암살되는 바람에 권위는 나발이고 함상에 있는 해군 장교와 수병들이 책임을 물을 것을 두려워해 난리였다고.(결국 유해를 싣고 오게 되었다...) ] 참고로 이때 [[프랑스]] 외무장관과의 만남 필름을 찍다가 암살당한 거라 아직도 암살 당시 필름이 남아 있다. [[유럽]] 군주 가운데 암살당한 최후의 국왕이다. [youtube(6R3dVZdFxxo)] 암살이 촬영된 영상. 58초 쯤에 등장해서 1분 10초 쯤에 국왕 옆에 앉은 인물이 루이 바르투. 그는 총에 맞고 차에서 내려 병원에 옮겨졌지만 1시간 후에 죽었다. == 기타 == 한때 [[러시아 제국]]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차녀인 [[타티아나 니콜라예브나 로마노바]] 공주에게 관심을 보였으나, [[러시아 혁명]]으로 황제 일가가 총살당하면서 무산되었다. 본인은 그 소식을 듣고 꽤 충격받았다는 모양. 본래 타티아나 여대공은 러시아 제국에서 알아주는 미인이라 여기저기에서 혼담이 오곤 했는데, [[제1차 세계 대전]] 당시까지도 이 둘이 서신을 교류했다는 기록으로 볼 때 둘의 혼담은 제법 진척도가 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1922년]] [[루마니아 왕국]]의 공주 마리야와 결혼해서 3명의 아들을 두었고, 알렉산다르 1세가 프랑스에서 살해당한 이후 그의 장남 페타르가 [[페타르 2세]]로 즉위하였다. 여담으로 가슴에 독수리 [[문신]]이 있었으나[[http://www.blic.rs/vesti/reportaza/kralj-aleksandar-imao-tetovazu-velikog-orla/2z3r1v9|#]], 그 사실은 비밀로 유지되었다. [[분류:유고슬라비아 국왕]][[분류:암살된 인물]][[분류:카라조르제비치 가문]][[분류:1888년 출생]][[분류:1934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