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관련 문서, top1=제주국제공항)] [include(틀:폐쇄된 교통시설)] [include(틀:대한민국의 공항)] ||<tablealign=right><-2><tablewidth=450><tablebordercolor=#802224><bgcolor=#802224><:> {{{#FFFFFF '''{{{+2 알뜨르비행장}}}'''[br]'''Altteureu Airfield'''}}}||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93afab5ee55f82ee8effd4a552c8cc1c.jpg|width=100%]]}}}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include(틀:지도,장소=알뜨르 비행장, 너비=100%, 높이=100%)]}}} || ||<-2><bgcolor=#802224><:>{{{#FFFFFF '''공항코드'''}}}|| ||<:><bgcolor=#FFFFFF> [[ICAO]] ||<:><bgcolor=#FFFFFF> '''RKGI''' || ||<:><bgcolor=#FFFFFF> [[IATA]]/[[K-Site]] ||<:><bgcolor=#FFFFFF> '''K-40''' || ||<-2><bgcolor=#802224><:>{{{#FFFFFF '''주소'''}}}|| ||<-2><:><bgcolor=#FFFFFF>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 ||<-2><bgcolor=#802224><:>{{{#FFFFFF '''활주로'''}}}|| ||<:><bgcolor=#FFFFFF> 활주로 ||<:><bgcolor=#FFFFFF> || ||<:><bgcolor=#FFFFFF> 유도로 ||<:><bgcolor=#FFFFFF> || [목차] [clearfix] == 개요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당시 [[전라남도]] [[남제주군]]) 대정읍 상모리일대에 위치한 옛 [[공항|비행장]]. 현지 지명을 따서 모슬포비행장이라고도 불린다. 알뜨르라는 단어는 '아랫쪽'을 뜻하는 [[제주어]] '알'과 '넓은 들판'을 뜻하는 [[제주어]] '드르'가 합쳐진 말이다. 즉, 제주도 아랫쪽에 있는 넓은 들판이라는 뜻이다.[* 제주에는 '드르'라고 표현된 곳이 이 곳 외에도 두 군데 더 있다. 하나는 '우물이 있는 넓은 들판'이라는 의미의 정뜨르이고 또 하나는 '길고 넓은 들판'이라는 의미의 진드르. 벌판 한가운데에 우물(井) 하나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정뜨르 지역에는 [[제주국제공항]]이 지어졌고 들판이 길게 형성됐다는 진드르 지역(조천읍 신촌리)에는 왕복 4차선 도로(일주동로)가 뚫려 있다. 과거 일본군은 정뜨르 비행장을 서부비행장, 진드르 비행장을 동부비행장, 알뜨르 비행장을 남부비행장으로 활용했다고 한다.] [youtube(3rAF7P5jey4)] == 연혁 == 1933년 [[일본 해군]]에 의해 임시활주로 형식으로 최초 조성됐으며 당시 규모는 60,242평이었고 활주로는 1400m x 70m 였다. 1937년 14만7258평을 추가 매입~~수탈~~하여 확장.[* 일본 해군 공문에선 매입이라 표현하고 있으나 고작 100일만에 약 15만평의 거대한 땅을 매입하는건 강제적 수탈이 아니고서는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1차 완공 당시 규모가 약 20만 평에 이를 정도로 넓어졌다. 1937년 [[중일전쟁|상하이 전투(제2차 상하이 사변)]] 당시 일본해군의 95식 육상공격기(G2H1) 6대와 [[96식 육상공격기]](G3M) 6대가 폭격거점으로 사용했다.[* 일본측 자료라 축소됐을 가능성은 높다. 한편 일본측 주장으론 나가사키 오무라비행장(현 [[나가사키 공항]] 중 해상자위대 주둔지 쪽)을 출발한 폭격기들이 나가사키까지 돌아갈 연료가 없으니까 알뜨르 비행장에 착륙하는 식으로 회항기지로 사용했다고 하며 악천후로 몇 대 추락했다고 징징거린다(...)] 즉 중일전쟁 당시 중국으로 향하던 전투기와 폭격기들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한 곳이 바로 이 알뜨르 비행장이다. 덕분에 알뜨르 비행장이 중국이 국가적으로 가장 치를 떠는 '''[[난징 대학살]]의 배후거점'''으로도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1945년부터 일본 해군 901 항공대가 전진기지로 사용했다.[* 901 항공대의 사령부는 45년 5월 15일부터 진해에 주둔.] 1944년 11월 19일 일본 해군 931 항공대[* 함대 컬렉션에 [[B5N|97식 함상공격기]] 유닛으로 나오는 그 931 항공대 맞다(...)] 파견대도 오로쿠비행장(현 [[나하 공항]])에서 이동, 1945년 4월 10일까지 동중국해 대잠작전 거점으로 사용했다. 당시 운영기는 역시 '''[[97식 함상공격기]]'''(...). 일본 해군 제주도분견대가 1944년 5월 15일~1945년 2월 10일 주둔했다가 김해비행장으로 이동, 부산해군항공대로 재편되기도 한다. 확장을 거듭해서 해방 시점엔 약 80만평에 달했으나 땅만 넓다 뿐이지 전쟁 말기의 모자란 자원과 지역 주민 강제 동원이란 비효율적 방식으로 공사[* 덤으로 지하갱도 공사까지 진행됐다.]한데다 나중엔 그 모자라는 자재나 인력도 결전기지 공사에 쓰다보니 완공도 못한 채 패망하게 된다. 한편 대부분 일본측 자료라 100% 확신하긴 어렵지만 [[가미카제]] 기지로 쓰이기 위한 결전기지 공사를 비행장 내부 및 주변에 하긴 했는데 엄밀히 말하면 가미카제 '''"비행기"'''가 아니라 가미카제 '''"선박"''' 기지로 쓰였다. 진짜 가미카제 비행사 육성 기지는 [[김해공항]]같은 육지공항이었다고. 대신 만약 결전작전이 진행되는 최악의 상황이 왔다면 거점기지로 쓰였을 가능성은 높다. 해방 후 [[미군]]이 시설을 인수받은 뒤 다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엔 [[대한민국 국군]]이 사용하게 됐고, 한때는 육군제1훈련소(강병대)로 운영되기도 했다.[* 현재도 인근에 제1훈련소 시절부터 쓴 것으로 추정되는 사격장이 있다.][* 지금도 강병대 교회가 남아서 인근 해병부대와 공군부대 장병들의 종교활동을 당담하고 있다.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마을 입구에는 과거 강병대의 정문이었던 문기둥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이를 현재는 [[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가 예비시설로서 확보하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땅이 농지화되는 등 규모가 축소되고 길이 약 1200m, 폭 250~260m의 착륙대와 주기장 등 일부 시설 잔해, 그리고 유명한 이십여개의 콘크리트 격납고가 현재 남아있다. 격납고들은 한때 농민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창고처럼 사용되었고 지금은 대개 그 안이 비어 있다. 그중 하나에는 평화를 기원하는 조형물로 철근으로 제작한 [[A6M|제로 전투기]]의 모형이 들어가 있다. [[분류:대한민국의 공항]][[분류:나무위키 공항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