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보편 칼리파)] >{{{+1 المستعصم بالله أبو أحمد عبد الله بن المستنصر بالله }}}(알 무스타으심 빌라 아부 아흐마드 압둘라 빈 알 무스탄시르 빌라) [[영어]] Al Mustasim 생몰 1213 ~ 1258년 2월 20일 제위 1242 ~ 1258년 2월 20일 [목차] == 개요 == >''' 사실상 아바스 왕조 최후의 칼리파 ''' 바그다드가 몽골에 의해 함락될 때에 비극적인 죽음[* 말발굽에 밟혀 사망]을 당한 것으로 유명한 [[아바스 왕조]]의 칼리파. == 치세 == 9세기 중반 이후 실권이 없던 [[아바스 왕조]]의 [[칼리파]]는 12세기 말부터 이라크 지역이나마 통치력을 회복하였고, 알 무스타심 대에 이르면 그 절정에 이르렀다. 하지만 1236년부터 이어져 온 [[몽골 제국]]의 위협은 칼리파 국가의 존속에 크나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이미 1238년과 1245년에 몽골 분견대가 [[바그다드]]까지 왔다가 격퇴되기도 하였고, 1241년부터 무스타심은 [[카라코룸]]에 조공을 바치고 있었다.[* 1246년의 [[구유크 칸]], 1251년의 [[몽케 칸]]의 즉위식 때도 사절단을 파견하였다.] == 몽골군의 바그다드 포위 == [[파일:DiezAlbumsFallOfBaghdad.jpg]] >''' 마그레브와 이라크까지 모든 무슬림들이 도우러 올 것이다 '''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1255년, 몽케 칸은 동생 [[훌라구]]에게 서아시아 평정을 명하였고 1256년 가을에 아사신의 항복을 받아낸 몽골군은 한족 출신 장군 곽간의 지휘 하에 1257년 11월에 바그다드를 포위하였다.[* 포위 병력 중에는 다수의 [[조지아]] 출신 기독교도가 있었는데 그들은 이슬람에 대한 적개심이 강하였다.] >그대는 칭기스칸 이래 몽골군이 세상에 어떤 운명을 가져다 줬는지 알 것이다. 영원한 하늘의 은총에 따라 [[호라즘]]의 [[알라 웃 딘 무함마드|샤]]를 비롯한 여러 왕조의 왕들에게 어떤 굴욕이 덮쳤던가? 그러한 힘과 권력을 가진 우리가 이 도시에 들어가는 것을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는가? 대항하기 위해 '''무기를 잡지 않도록 조심하라!''' > >ㅡ 훌라구가 무스타심에게 >이제 겨우 자신의 경력을 시작한, 그리고 열흘 성공을 축하해 축배를 든, 모든 세상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젊은이여! 너는 동쪽에서 마그레브까지 알라의 모든 숭배자들은 국왕이든 거지든 내 조정의 노예이며 내가 그들에게 소집을 명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가? > >ㅡ 무스타심이 훌라구에게 대망의 1258년 1월 11일, 몽골군이 [[티그리스 강]] 양쪽 강변에 진을 치고 도시에 대한 포위망을 완성시켰다. 이에 무스타심은 항전을 결심하고 2만 기병대를 출정시켜 --기병 전투에 이골이 난 몽골군과-- 싸우게 했다. 결과는 대패였고 몽골군 공병들은 수로를 통해 상류로 침투하여 홍수를 내었다. 불어난 물에 아바스 왕조의 기병들은 퇴로가 막혀 무력화 되었다. 1월 29일, 몽골군은 공성전을 시작하였고 2월 5일에 강 건너의 요새가 함락되었다. 칼리파 무스타심은 그제서야 항복 협상을 요구하였으나 --이미 기회를 준-- 훌라구는 거절하고 사절단으로 파견된 도시의 3천 유력인사들을 살해하였다. 2월 10일, 더 버티기 힘들어진 도시는 항복하였다. 훌라구가 그 사실을 믿지 않았는지 그는 3일을 기다린 후 13일에야 시내에 진입하였다. 이후 일주일간 대학살이 일어나며 미처 피신하지 못한 수만 명의 시민들이 죽었고 아비규환 중에 칼리파 역시 살해되었다. === 죽음 === [[파일:HulaguInBagdad.jpg]] 설이 두 가지 있다. 전자는 위의 그림처럼 금은보화가 가득한 방에 감금해서 아사시켰다는 것이고 후자는 양탄자로 감싼 후에 말발굽에 압사시켰다는 것인데 진실은 알 수 없다. --결론은 죽었다는 것이다-- [[분류:아바스 칼리파]] [[분류:망국의 군주]] [[분류:살해된 인물]] [[분류:1213년 출생]] [[분류:1258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