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안중근)] [목차]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파일:external/pic1.dbw.cn/73596_497139.jpg]] [[파일:external/3.bp.blogspot.com/DSC_2578.jpg]] [[http://www.ahnjunggeun.or.kr/|공식 홈페이지]] === 개요 === [[서울특별시]] [[중구(서울)|중구]] [[남산공원]]에 있는 역사기념관. 사단법인 안중근의사숭모회가 관리운영하고 있으며 1970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 순국 60주년을 기념하여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와 국민의 모금으로 설립되었다. 2010년 10월 26일 이전에 있었던 한옥모습의 구관(舊館)을 철거하고 현재의 자리에 신관을 설립하여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101주년을 기념하여 개장하였다. 본래 [[일제강점기]] 때 [[일본 제국|일제]]가 남산에 세웠다는 신사(神社)인 [[조선신궁]](朝鮮神宮)이 있던 자리다. 일제에 의해 무고한 [[한국인]]들이 어쩔 수 없이 신사참배를 했던 굴욕적인 장소로 알려졌다. 1945년 해방 후 [[일본인]]들이 조선신궁을 직접 해체 및 철거한 뒤 남은 빈 터에다 [[일본 제국|일제]]의 잔재와 굴욕을 씻어내기 위해서 지금의 안중근의사기념관을 설립했다고 전해진다. [[파일:external/www.danji12.com/2010071822043127.jpg]] 이전까지는 한옥 모습을 본딴 단층 형태의 전시관이었다. 전시관의 노후와 전시물 포화 등으로 신관 건립안이 추진되었다. 구관이 철거되고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101주년을 기념하는 2010년 10월 26일 지금의 자리에 신관을 개장하여 일반에 공개하였다. 새로 지어진 기념관은 이전의 한옥형태의 단층건물과는 달리 3층 짜리로 된 유비쿼터스 형태로 리모델링된 건물이다. 4개로 구성된 네모형이고 앞면에 '安重根' 이라는 인명이 새겨졌다. 반투명한 간유리라 그런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다. [[파일:external/pimage.design.co.kr/1292042996153.jpg]] 2010년 [[서울특별시]]로부터 건축상 공공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다. 그럼에도 개관식에 건축가가 초청받지 못해 이슈가 된다. 건축계에서는 건축가의 사회대우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건축가는 부부 건축가인 김선현·임영환 씨(디림건축) 전시관 안에는 [[안중근]] 의사의 동상과 안 의사와 동지들이 단지동맹(斷指同盟)을 통해 혈서(血書)로 직접 써낸 '大韓獨立' 이라 쓰여진 대형 태극기가 걸려있다. [[안중근]] 의사에 대한 업적과 유품들, 그리고 안 의사의 어록 및 명언 등을 전시하고 있다. [[파일:안중근동상.jpg]] 전시관 앞에는 [[안중근]] 의사의 동상이 있다. 이 또한 2010년 신관 개장에 맞추어 기존 김경승 조각가 작품[* 1959년 청동으로 제작돼 숭의여고 교정에 세워진 걸 1967년 현 위치로 이전했고, 1973년에 새로 만들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김경승의 친일행적 논란이 퍼진 데다 동상 노후화 때문에 아예 새로 만들어 교체했다.] 대신 새로 만들었다. 저격 이후 태극기를 흔들던(정확히는 흔들려고 꺼내드는?) 모습이다. 트레이드마크인 왼손의 단지를 수줍게(...) 뻗고 계시다. 나름대로 완성도가 높다. 맞은 편에는 서울교육정보연구원이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안 의사가 생전에 했던 어록, 휘호 등이 새겨진 석상들이 있다. 남산공원과 연결되어 있고 2010년을 전후하여 근처까지 서울성벽이 보수되면서 주변을 따라 걷다보면 아름다운 풍광이 가득하다. 근처 동네에 미군 및 그 가족이 다수 거주하고 또한 최근 중국인들을 비롯하여 많은 외국인들이 남산을 찾아오고 있어서 동상 근처에 다수의 외국인들이 앉아서 휴식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유료입장이었으나 현재는 무료입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방명록을 보면 일본인이 특히 많이 찾아오는 듯 하며 의외로 '좋은 공부가 되었다'와 같은 반응이 많다. [* 2019년 유튜버 건들건들팀이 안중근 의사의 M1900 권총을 미국에서 실총을 구해 기증할 의사를 밝혔다.] === 역대 관장 === * 이문욱 (1970~1989) * 김유협 (1990~1994) * 박인각 (1994~1995) * 정병학 (1996~2006) * 김호일 (2008~2011) * 조동성 (2011~2017) * 이영옥 (2017~ ) == [[중국]] [[하얼빈시]] == [[중국]] [[하얼빈시]] 하얼빈역 구내에 있는 기념관. 외교적 민감성 때문에 극비리에 추진되다가 2014년 1월 19일 [[하얼빈역]]에 전격 개관하였다.[[http://www.yonhapnews.co.kr/international/2014/01/19/0601400100AKR20140119068000097.HTML|관련 기사]] 2013년 6월, 한중 정상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에게 하얼빈역에 의거 현장 표지석을 설치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다. 시진핑 주석의 승낙에 따라 표시석이 세워질 예정이었는데, [[일본]] 측에서 안중근에 대한 디스와 더불어 [[중국]] 측이 일본의 [[마루타]] 실험 관련기록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까지 비아냥거리고 만다. '''이에 [[중국]]은 표지석 정도가 아니라 기념관을 짓는 것으로 [[일본]]의 도발에 응답했다.''' --[[대륙의 기상]]-- 기념관은 귀빈용 대합실 일부를 개조하여 마련되었다. 주로 하얼빈시 조선민족예술관의 전시물을 옮겨왔다. 당연히 [[한국 정부]]는 환영의 뜻을 표했고, 뻔뻔하게도 [[일본 정부]]는 유감을 표명하였으나, 중국은 '안중근 의사는 저명한 항일의사로 중국 인민의 존경을 받는다'라고 일축. 일본의 망언이 중국에서 안중근 의사의 인지도만 높여 준 셈인데, 이후에도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안중근 의사는 [[사형]] 판결을 받은 인물이라는 식의 망언을 끊임없이 늘어놓고 있다. 대북 문제와 [[동북공정]] 등 한중 간의 외교적 갈등도 적지 않지만, [[적의 적은 나의 친구|항일투쟁역사에 대한 인식만큼은 같이하고 있음이 확인된 셈]]. 일본의 역사 왜곡과 우경화에 한중 양국이 공조하여 일본을 압박하려는 외교적 포석이라고 볼 수도 있다. 2015년 10월 기준 입장객 수가 20만명을 돌파했으나, 2017년 사드문제 당시 하얼빈역 보수공사로 2019년 3월 30일 재개관 때까지 조선민족예술관 건물로 임시 이전했다. 이 배경엔 [[중일관계]] 회복을 위해 중국이 일본 눈치를[* 대륙 이미지 때문에 흔히 일본이 중국 눈치를 많이 본다고들 아는데 사실 일본은 중국에 끼치는 영향력이 미미한 수준의 일개 섬나라가 결코 아니다. [[G3]]에 들어가는 대국이라 중국도 일본을 절대 경시하지 못한다.] 보는 거 아니냐는 [[http://mnews.jtbc.joins.com/News/Article.aspx?news_id=NB11789888&prog_id=PR10000403&strdate=|분석이 있었다.]] [[분류:안중근]][[분류:1970년 설립]][[분류:중구(서울)]][[분류:중국의 관광지]][[분류:서울특별시의 박물관]][[분류:기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