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이 문서는 당나라의 안동도호부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당시에 존재했던 안동도호부, rd1=안동시/역사)] [include(틀:당 6도호부)] ||[[파일:/pds/200810/28/43/a0008443_4906ffc9b68e0.jpg|width=650]]|| [목차] == 개요 == {{{+1 安東都護府}}} 안동도호부는 당의 6도호부 중 하나이다. 당은 668년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고구려를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고구려의 영토를 9도독부, 42주, 100현으로 나누고, 옛 고구려의 수도인 [[평양성]]에는 안동도호부를 설치하였다.[* 비슷하게 백제를 멸망시킨 후에는 [[웅진도독부]]를 설치했고, 신라 땅에는 [[계림대도독부]]를 두었다. 단 고구려, 백제와 달리 신라는 실제로는 멸망하지 않고 멀쩡히 존재했기 때문에 당나라가 [[이북 5도청]]처럼 명목상으로 지정한 것이다.] 그러나, [[신라]]가 이에 반발해 [[나당전쟁]]이 터졌다.[* 당나라는 평양 이남과 백제 영토를 신라에게 준다고 약속 했으나 그 약속을 어겼다.] 신라와 고구려 유민은 연합하여 당군을 격퇴, 안동도호부는 신라에서 가까운 평양을 떠나 이후 [[요동]]으로 치소를 옮겼다가 758년, [[안록산의 난]]으로 폐지되었다. == 역사 == === 평양에서 요동까지 === 나당 연합군이 고구려를 멸망시키자 당은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하고 초대 도호로 [[설인귀]]를 보냈다. 한편, 신라 내에서는 불만이 계속 표출되고 있었는데, 이전에 당은 취리산에서 [[백제]] 왕족이자 [[웅진도독부]] 소속인 [[부여융]]과 [[신라]] [[문무왕]]이 서로 화맹을 맺게 하였다. 그런데, 이것은 잘 생각해보면 이미 멸망한 백제와 독립국인 신라를 동일시했다고 볼 수 있었다. 또한, 당군과 신라군이 전투 중에 서로 의견이 맞지 않은 점도 있었다. 이러한 불만 속에서 당은 고구려를 기미지배하기 위한 일환으로 안동도호부를 설치한 것은 신라로써는 대단히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당의 팽창이 한반도 전체에 번질 수 있다는 의견이 집중되자 신라는 결국 당과 전쟁을 불사하기로 마음먹었고, [[검모잠]], [[안승]] 등이 이끄는 고구려 부흥군과 손을 잡았다. 670년, 옛 고구려 장수 [[고연무]]와 신라 장수 [[설오유]]가 2만의 군사를 이끌고 [[압록강]]을 넘어 요동을 선제 공격해 [[나당전쟁]]이 시작됐다. 나당 전쟁 과정에서 고구려 부흥군은 내분이 겹쳐 패배했지만 이후 신라는 [[매소성 전투]]와 [[기벌포 전투]]에서 당군을 크게 격파함으로써 당의 세력을 한반도 밖으로 몰아냈다. 676년, 이에 따라 당은 안동도호부를 신라에서 너무 가까운 평양에서 요동 고성으로 이전했다. 이듬해 [[신성]]으로 다시 이전했다가 잠깐 폐지하기도 했다.[* 성력 연간에 폐지되었는데 안동도호부가 다시 부활할 즈음 요동의 고구려 유민은 당의 기미 지배에 해방되었다.] 677년, 당은 [[보장왕]]을 요동주도독 조선왕(遼東州都督 朝鮮王)으로 봉하고 안동도호부로 부임하게 해 남아있는 고구려 유민을 다스리게 하였다. 그러나, 보장왕은 [[말갈]]과 결탁해 독립을 꾀했으나 사전에 발각되었다. 특이하게도 이후 보장왕의 후손이 도호부를 대대로 통치하였다. 696년, [[거란]]족 [[이진충]]이 당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자 당은 이때 요동 지배에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당은 안동도호부가 기존에 있던 목적을 점점 상실하자 698년, 안동도호부를 안동도독부로 격하하였다. 이듬해에 보장왕의 셋째 아들 [[고덕무]]가 안동도독이 되었고, 몇몇 기록을 근거로 고덕무가 이 해에 요동 반도에 [[소고구려]]를 건국했는 주장도 있는데 기록이 미약해 이것이 나라가 맞는지에 대한 비판도 있다. === 도호부로 승격 그리고 폐지 === 안동도호부는 잠시 안동도독부로 격하되었다가 705년, 유주도독과 겸임하는 형태로 안동도호부는 부활했다. 714년, 당은 [[거란]]의 발호를 차단하기 위하여 평주에 이치하였다. 그러다가 안동도호부는 요서 고군성에 이전되었다. 이곳이 안동도호부의 마지막 치소이다. 안동도호부의 실권은 개원 말부터 약해지기 시작하더니 이후 평로 절도사의 통제 하에 있다가 결국 758년, [[안사의 난]]의 계기로 폐지되었다.[* 신당서 지리지에 따르면 "지덕 연간 이후 폐지되었다"라고 서술되있다.] 안동도호부는 668년 설치되어 758년에 이르기까지 91년동안 존속하다가 그 명칭이 역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 부속 관할 == === 도독부(都督府) === 신성주(新城州), 요성주(遼城州), 가물주(哥勿州), 위락주(衛樂州),사리주(舍利州), 거소주(去素州), 월희주(越喜州), 거단주(去旦州), 건안주(建安州) === 주(州) === 남소주(南蘇州), 개모주(蓋牟州), 대나주(大那州), 창암주(倉巖州), 마미주(磨米州), 적리주(積利州), 여산주(黎山州), 연진주(延津州), 목저주(木底州), 안시주(安市州), 제북주(諸北州), 식리주(識利州), 불열주(拂涅州), 배한주(拜漢州) == 연혁 == * 평양(平壤):668년 — 676년 * 요성(遼城):676년 — 677년 * 신성(新城):677년 — 699년 * 유주(幽州):705년 — 714년 * 평주(平州):714년 — 743년 * 요서고성(遼西故城):743년 — 758년 == 역대 도호 목록 == ||<tablewidth=100%> 대수 || 왕호 || 성명 || 재임기간 || 비고 || || 1 || - || [[위철]](魏哲) || 668년 ~ 669년 || || || 2 || - || [[설인귀|설례]](薛禮) || 669년 ~ 670년 || || || 3 || - || [[고간]](高侃) || 670 ~ 676 || || || || - || [[설눌]](薛訥) || 685 ~ 696 || || || || - || [[배현규]](裴玄珪) || 696 ~ ? || || || || - || [[적인걸]](狄仁杰) || 698 || || || || - || [[장인단]](張仁亶) || 698 ~ ? || || || || - || [[고덕무]](高德武) || 699 ~ ? || || || || - || [[당휴경]](唐休璟) || 704 ~ 705 || || || || - || [[배회고]](裵懷古) || 712 || || || || - || [[손검]](孫儉) || 712 || || || || - || [[선사경]](單思敬) || 713 ~ ? || || || || - || [[허흠주]](許欽凑) || 713 ~ ? || || || || - || [[허흠담]](許欽澹) || 713 ~ ? || || || || - || [[장열]](張說) || ? ~ 719 || || || || - || [[설태]](薛泰) || 720 ~ 725 || || || || - || [[영왕]] [[이교]](潁王 李璬) || 727 ~ ? || || || || - || [[장부량]](臧怀亮) || 727 ~ ? || || || || - || [[배민]](裴旻) || 733 ~ ? || || || || - || [[가순]](賈循) || 742 ~ 755 || || || || - || [[마영찰]](馬灵察) || ? ~ 756 || || || || - || [[왕현지]](王玄志) || 756 ~ 758 || || || || - || [[후희일]](侯希逸) || ? ~ 781 || || || || - || [[고연]](高連) || ? || || || || - || [[고진]](高震) || ? ~ 773 || || == 삼국통일전쟁 이후 당이 한국에 세운 기관 목록 == * [[계림도독부]] * 안동도호부 * [[웅진도독부]] [include(틀:문서 가져옴, this=문단, title=한반도의 지도자 목록, version=23)] [[분류:고구려]][[분류:수당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