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사건사고)]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994%EB%85%84_12%EC%9B%94_7%EC%9D%BC_%EC%95%84%ED%98%84%EB%8F%99_%EB%8F%84%EC%8B%9C%EA%B0%80%EC%8A%A4_%ED%8F%AD%EB%B0%9C_%EC%82%AC%EA%B3%A02.jpg|width=500]] [[파일:external/danmee.chosun.com/2013121002985_11.jpg]] [목차] == 개요 == [[1994년]] [[12월 7일]] 오후 2시 50분 경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서 일어난 대형 [[가스]] 폭발 사고. 지금의 [[애오개역]] 4번 출구 방향[* 당시 [[수도권 전철 5호선]]이 개통되기 이전이었다.]에 있던 [[도시가스]] 밸브스테이션에서 공사중 일어난 폭발로 화재가 발생하여 그 주변을 2시간이나 태웠다. == 상세 == 사실 주변 상가와 집은 불에 타고 있어도 주변 피해가 덜 했다. 문제는 가스가 계속 누출되면서 불길이 계속 번진 데 있었다는 것. 그 화재로 [[마포도서관]](아현분관)에서 마포경찰서까지 소방차와 구급차로 막혀버리고 당연히 공덕오거리([[공덕역]])에서 아현삼거리([[아현역]])까지 교통은 통제 되었다. 현장의 맞은편에 위치한 [[대우전자]] 사옥[* 당시에는 [[대우그룹]]의 계열사였으며, 현재도 해당 건물은 존재한다. 하지만 대우전자의 사옥이 아닌 민간기업의 크레딧 센터로 전환되었다.]은 하층부의 [[유리창]]이 몽땅 파손되어 지나가던 보행자를 덮치고[* 다행히 안전유리로 시공 되었던 터라 경미한 창상만 입었을 뿐, 중상은 없었다.], 그 일대 [[가스]]와 [[전기]]가 차단되는 등 많은 불편이 있었다.[* 가스야 당연하지만 전기는 밤 12시 되면 [[단전]]되었다. 당시가 [[12월]]이었던 걸 감안하면, 그 주변에서 야밤에 체온을 지키는 방법은 가족 단위로 껴안고 자거나 [[연탄]]을 피우는 수밖에 없었다. [[기름]] 보일러도 불을 붙일 전기가 없으니 못돌렸다.] [[안전불감증]][* [[위키백과]]에는 [[모닥불]]로 인한 화재로 나오나 당시 뉴스에는 [[담배]]로 인한 화재라고 나오기도 했다. 어쨌든 [[오십보백보]].]으로 빚어진 이 사고는 많은 손실과 인명피해를 남겼다. 이 사고로 사망자가 12명, 부상자 101명 등의 인명피해와 건물 145동(전파 75, 부분파손 70), 동산 431건, 영업손실 47점, 차량손실 92대 등의 물적 피해 및 이재민 210세대 555명 등 엄청난 손실을 초래하였다. 사고 당일 부터 3일간은 야간 전기공급이 끊겼으며 가스공급 재개는 10일이 걸렸다. 당시엔 아현~공덕 일대에는 [[아파트]]가 없었고, [[달동네]] 수준의 인구밀집지역이라 인적, 물적피해가 상당히 컸다. 사고가 발생한 지점은 현재 공덕 자이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한편 [[KBS]]는 오후 5시 25분부터 [[KBS 1TV|1TV]]에서 뉴스속보를 틀고 소식을 전했는데, 당시 방송 주무부처였던 공보처는 '''방송시간 5분 일찍 틀었다'''고 당시 KBS 사장으로부터 사내 징계 경위서 등을 받아냈다.[* 이 조짐은 두 달전 [[충주호 유람선 화재 사건]] 당시 해당 사건을 뒤로 빼고 김영삼 대통령의 성수대교 붕괴사고 담화를 메인으로 틀면서 시작되었다.] 이는 당시 공보처의 방송국 허가장 일부 규정 때문이었는데, 지상파가 정파시간에 긴급속보를 때려야 될 경우에는 사전에 공보처에 얘기를 한 뒤 허락을 받아야 방송을 틀 수 있었다. '방송질서 유지' 명목이었지만 [[만악의 근원]]이 된 이 시책은 이 사고 바로 넉달 뒤에 발생한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사고]]에서도 재현되며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한다는 논란이 일었고, 결국 김대중 정부 들어 이 시책은 없어졌다. 이 사고를 계기로 지하 매설물에 대한 전산화가 시급하여 1995년부터 [[GIS]]가 탄생하는 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한국가스공사]]에게도 큰 사건이라 그 전과 후로 나뉠 정도로 회사 시스템이 많이 바뀌었다.[* 안전을 지침에 따라 이행하는 EHSQ 경영시스템이 생겼으며 안전, 유지 및 보수 인원을 충원하느라 IMF 직전까지 신입사원을 많이 채용하였다.] 사족으로 [[아이큐 점프]]에서 [[달숙이]]를 연재하던 만화가 이재석도 단행본 8권에 수록된 에피소드 표지에서 4컷 만화로 이 사고를 언급했다. 당시 이재석 작가는 [[마포구]] 거주자였기 때문에 사고의 충격이 남달랐을 것이다. 해당 사고 백서는 한국가스공사에서 만들긴 했으나, 내부 보고용이라 [[https://mnews.joins.com/article/3059561#home|현재도 비공개 상태이다.]][* 해당 백서 및 기타 자료에서도 사고 원인을 노숙인들이 피우던 [[http://www.archives.go.kr/next/search/listSubjectDescription.do?id=001925&pageFlag=|모닥불 불씨]] 정도로 추정할 뿐 특정하진 못한다. 사고 발생 지점이 그냥 날아가버렸기 때문이다.] 영화 [[칸트씨의 발표회]] 네거티브가 이 사고로 소실되었다고 한다. 다행히 개봉 프린트가 남아있어서 볼 수 있다. [[분류:1994년 폭발 사고]][[분류:서울특별시의 사건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