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970년대]] [[분류:아폴로 계획]] [[분류:유인 우주 계획]] [include(틀:역대 아폴로 계획)]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00px-Soyuz_19_%28Apollo_Soyuz_Test_Project%29_spacecraft.jpg]]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00px-Apollo-Soyuz_Imagery.jpg]] || || 아폴로에서 찍은 소유즈 || 소유즈에서 찍은 아폴로 || [[영어]] : Apollo–Soyuz Test Project (ASTP) [[러시아어]] : Экспериментальный полёт «Союз» — «Аполлон», Союз 19[* 소유즈의 19번째 미션이었다. 반면 아폴로는 비공식으로 아폴로 18호라는 명칭이 불리지만 이전에 스카이랩에 쓰였던 아폴로 우주선들도 있거니와 무엇보다 팀원 구성과 임무 일정도 다 계획했다가 파토난 아폴로 18호를 배려해야 했던 NASA에서는 그냥 ASTP라고 부른다.] ||||<tablealign=right><#000000> '''{{{#FFD700 Экспериментальный полёт «Союз» — «Аполлон», Союз 19)}}}'''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50px-Apollo-Soyuz_Test_Project_patch.svg.png|width=300]]|| |||| '''소유즈-아폴로 테스트 프로젝트 미션 패치''' || || 이름 ||<(> 소유즈-아폴로 테스트 프로젝트 || || 호출부호 ||<(> Союз(소유즈) || || 발사일 ||<(> [[1975년]] [[7월 15일]][br]12시 20분 [[UTC]][br] [[바이코누르 우주기지]], 카자흐 SSR || || 귀환일 ||<(> [[1975년]] [[7월 21일]][br]10시 50분 [[UTC]] || || 미션 기간 ||<(> 5일 22시간 30분 || || 우주선 ||<(> 소유즈 19호 || || 사령관(CDR) ||<(> [[알렉세이 레오노프]] [*CDR백업 [[https://ru.wikipedia.org/wiki/%D0%A4%D0%B8%D0%BB%D0%B8%D0%BF%D1%87%D0%B5%D0%BD%D0%BA%D0%BE,_%D0%90%D0%BD%D0%B0%D1%82%D0%BE%D0%BB%D0%B8%D0%B9_%D0%92%D0%B0%D1%81%D0%B8%D0%BB%D1%8C%D0%B5%D0%B2%D0%B8%D1%87|아나톨리 필립첸코]]] || || 플라이트 엔지니어(CDR) ||<(> [[https://ru.wikipedia.org/wiki/%D0%9A%D1%83%D0%B1%D0%B0%D1%81%D0%BE%D0%B2,_%D0%92%D0%B0%D0%BB%D0%B5%D1%80%D0%B8%D0%B9_%D0%9D%D0%B8%D0%BA%D0%BE%D0%BB%D0%B0%D0%B5%D0%B2%D0%B8%D1%87|발레리 쿠바쇼프]] [*CDR백업 [[https://ru.wikipedia.org/wiki/%D0%A0%D1%83%D0%BA%D0%B0%D0%B2%D0%B8%D1%88%D0%BD%D0%B8%D0%BA%D0%BE%D0%B2,_%D0%9D%D0%B8%D0%BA%D0%BE%D0%BB%D0%B0%D0%B9_%D0%9D%D0%B8%D0%BA%D0%BE%D0%BB%D0%B0%D0%B5%D0%B2%D0%B8%D1%87|니콜라이 루카비스니코프]]] || ||||<tablealign=right><#000000> '''{{{#FFD700 Apollo-Soyuz Test Project}}}'''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50px-ASTP_patch.png|width=300]]|| |||| '''아폴로-소유즈 테스트 프로젝트 미션 패치''' || || 이름 ||<(> 아폴로-소유스 테스트 프로젝트 || || 호출부호 ||<(> 사령선: CSM-111 || || 발사일 ||<(> [[1975년]] [[7월 15일]][br]19시 50분 [[UTC]][br] [[케네디 우주센터]], 플로리다 LC 39B || || 귀환일 ||<(> [[1975년]] [[7월 24일]][br]21시 18분 [[UTC]] || || 미션 기간 ||<(> 9일 1시간 28분 || || 우주선 ||<(> 아폴로 18호 || || 사령관(CDR) ||<(> [[토머스 스태퍼드]] [*CDR백업 [[앨런 빈]]] || || 사령선 조종사(CDR) ||<(> [[https://en.wikipedia.org/wiki/Vance_D._Brand|밴스 브랜드]] [*CDR백업 [[https://en.wikipedia.org/wiki/Ronald_Evans_(astronaut)|로널드 에반스]]] || || 도킹모듈 조종사(CMP) ||<(> [[디크 슬레이튼]] [*CDR백업 [[잭 루스마]]] || [목차] [clearfix] == 개요 == 비록 과학적인 의미를 따지면 그다지 돋보이는 미션은 아니나, 인류 역사상 최초의 국제 합동 우주 프로젝트이고, [[스푸트니크 쇼크]] 이후로 과열되던 [[미국]]과 [[소련]]의 우주 진출 경쟁이 이 프로젝트를 기점으로 양국의 경쟁 관계가 해소되어 인류 발전을 위한 협력 관계로 바뀌게 된다. 이후 양국의 우주개발 교류는 훗날의 [[미르]]-셔틀 프로젝트와 [[ISS]]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역사상 큰 의의를 갖고 있는 우주 미션이다. 또한 [[아폴로 계획]]의 대미를 장식하는 미션. 하지만 [[소유즈 계획|소유즈]]는 지금까지 여러 번의 [[마개조]]를 통해 [[장수만세]] 현역 우주선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 승무원 == [[파일:attachment/c918bfebf2c3d17a825b807b9cac7179.jpg]] 모형에 올라탄 5인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Portrait_of_ASTP_crews_-_restoration.jpg]] 뒤쪽은 [[토머스 스태퍼드]]([[미국]], 아폴로 사령관), [[알렉세이 레오노프]]([[소련]], 소유즈 사령관) 앞쪽은 [[디크 슬레이튼]](미국, 도킹 모듈 조종사), [[https://en.wikipedia.org/wiki/Vance_D._Brand|밴스 브랜드]](미국, 아폴로 사령선 조종사), [[https://ru.wikipedia.org/wiki/%D0%9A%D1%83%D0%B1%D0%B0%D1%81%D0%BE%D0%B2,_%D0%92%D0%B0%D0%BB%D0%B5%D1%80%D0%B8%D0%B9_%D0%9D%D0%B8%D0%BA%D0%BE%D0%BB%D0%B0%D0%B5%D0%B2%D0%B8%D1%87|발레리 쿠바쇼프]](소련, 소유즈 엔지니어) 스태퍼드는 [[제미니 계획]] 시절부터 활동하였던 베테랑이자 [[아폴로 10호]]의 사령관이었고, 레오노프는 [[보스호드 2호]]에서 '''인류 최초의 [[EVA|우주유영]]'''을 실시했고 그 과정에서 죽다 살았던 인물이다. 브랜드는 아폴로 18호의 사령선 조종사로 달에 갈 예정이었지만 프로그램이 17호를 끝으로 중단되어 새됐던 인물이고, 슬레이튼은 [[머큐리 계획|머큐리 세븐]]의 일원이었으나 미션 직전 심장박동 이상이 발견되며 십수년 넘게 우주비행사 훈련과 팀 구성 등의 업무에 종사하다가 각고의 노력으로 우주비행 자격을 되찾은 인물이다. 한편 상대적으로 신참내기였던 브랜드는 이후 셔틀 프로그램에서 핵심으로 활동했다. 4차례의 테스트 비행 이후 진행된 첫 정규 임무인 STS-5의 사령관을 맡았고, 사상 첫 무선 EVA가 시행된 STS-41-B, 사상 최고령 우주 비행사로 기록을 남긴 1990년 12월의 STS-35에서 사령관을 맡았다.[* 59세의 나이로 세운 이 역사상 최고령 기록은 이후 STS-80의 61세 미션 스페셜리스트 스티브 머즈그레이브가 경신하고, 이후 STS-95의 페이로드 스페셜리스트이자 프렌드십 7호의 레전드인 77세의 [[존 글렌]] 상원의원이 경신한다.] == 배경 == 일단 우주개발사에 있어서는, 1971년 발생한 [[소유즈 11호]]의 사고와 관계가 있다. 게오르기 도브로볼스키(Георгий Добровольский) 사령관과 블라디슬라프 볼코프(Владислав Волков), 빅토르 파체예프(Виктор Пацаев)가 탑승했던 소유즈 11호는 최초의 [[우주정거장]] [[살류트 프로그램|살류트 1호]]에 도킹하고 최초로 승무원이 살류트에 진입한 미션이었는데, 이 미션은 귀환 도중 우주선이 좁다는 안습한 이유로 여압복을 착용하지 않고 평상복만 입고 대기권에 재돌입하다가 갑자기 선체에 균열이 생겨 공기가 빠져나가고 전 승무원이 질식사한 채로 발견되었다. 이에 소련에서는 이들에게 [[소비에트연방영웅]] 추서와 함께 국장을 치르고 [[유리 가가린]]의 옆에 안장하였는데, 이 당시 NASA에서도 조문사절을 보냈고, 우주비행사들의 관을 운구하며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했던 그 [[조문]]사절이 바로 [[아폴로 10호]]의 사령관으로 달에 갔다왔던 [[토머스 스태퍼드]]였다. 또한 소유즈 11호의 이 팀은 원래 정규 팀도 아니었다. 인류 최초의 우주유영을 수행했던 [[알렉세이 레오노프]](Алексе́й Лео́нов)와 발레리 쿠바소프(Вале́рий Куба́сов), 표트르 콜로딘(Петр Колодин)의 팀이 내정되었다가 쿠바쇼프의 결핵 진단[* 그런데 사실 오진이었다.]으로 팀이 통째로 [[나가리]]되며 도브로볼스키의 팀으로 교체되었는데 이 팀이 귀환 도중 변고를 당한 것이었다. 결국 이들은 이후 큰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한편 이 1971년은 [[미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의 관계가 급진전되는등 미국을 위시한 서방권과 공산권 국가들 간의 관계가 개선될 조짐을 보이는 시기였다. 하지만 소련과 미국은 [[베트남 전쟁]] 등에 관련하여 서로 까대는 분위기였고 인류 최초의 우주정거장 살류트 1호와 달로 향하는 우주선 [[아폴로 14호]]에 대해서도 서로를 깎아내리기 바빴다. 사실 소련도 [[중국-소련 국경분쟁|중국과의 관계가 그다지 좋지는 않은 편]]이었는데 미국이 중국과 친하게 지내려는 움직임이 일자 더욱 민감해졌다. 다행히 [[베트남 전쟁|베트남에 파병]]된 [[미군]]의 철수 논의가 시작된 뒤로 어느 정도 원만해지기는 했다만, 어쨌든 '''전통의 라이벌'''인 미/소라서... 그러던 1972년 1월, '''[[헨리 키신저]]'''가 [[NASA]] 국장대행 조지 로를 만나 '''야 소련 과학원에서 예전에 합동 우주개발 드립 친 거 있다며?[* 소련 과학원장 므스티슬라프 켈듸쉬가 NASA의 3대 국장 토머스 페인에게 이런 답을 보냈고 한번 관계자들간 회담도 열렸지만 진전은 없었다.] 소련 우주국장이랑도 잘 얘기해봐ㅋ''' 하였고, 그렇게 키신저의 전폭적인 지지를 통해 NASA는 소련 우주국 [[높으신 분들]]과의 합의에 이르렀고, 급기야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과 알렉세이 코시긴 소련 각료회의 의장이 1972년 5월 비용 지불에 대한 양해각서를 쓰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전까지 양국의 우주개발은 전혀 접점이 없었기 때문에 기술적인 난관이 한 둘이 아니었다. 가장 잘 알려진 문제가 바로 대기 문제. [[아폴로 우주선]]는 순도 100%의 산소로 우주선을 채웠던 것과 달리 [[소유즈]]는 지상에서의 대기처럼 79% 질소, 21% 산소의 구성비로 호흡을 했던 것. 때문에 도킹 과정에서 서로간의 보정이 필요했다. 또한 서로 다른 도킹장치에 대한 문제때문에 상당히 골치아팠는데, 도킹을 위해서는 상호 우주선의 도킹장치를 하나로 통일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었으나, 서로 도킹장치의 변경은 거부하였다. 결국에는 여유가 되는 아폴로쪽에서 소유즈 도킹장치에 맞는 커플러를 제작하고, 이 커플러에 앞에 설명한 대기 문제를 해결하는 장치까지 달아서 도킹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주비행사들 외에 엔지니어들 또한 양국의 표준규격이나 우주선 디자인과 내부 구성 등이 다르다며 혼란을 많이 겪었는데,[* 예를 들면, 미국 쪽은 각종 기술적인 자료가 문서로 체계화되어 있어서 참고하기 편했지만, 소련쪽은 [[그런거 없다|그런거 별로 없고]] 기술자의 경험이 주가 되어서 움직였다.] NASA 관계자는 '아폴로는 다목적으로 만들어서 조종사의 조종 실력이 중요하지만 좀 쓸데없는 버튼과 기능들이 많았던 반면 소유즈는 하나만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서 하나라도 잘못되면 미션 포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았지만 [[우주비행사]]들에게 주어진 부담이 적었다' 같은 평가를 했다. 양 측 모두 일장일단이 있지만 어째 [[공돌이]]들 눈에는 남의 떡이 더 커 보였나보다.. 다만 아폴로가 여지껏 3인의 우주비행사로도 별 문제 없이 미션을 수행해온 것과 달리 이 당시의 소유즈는 3인이 모두 소콜 여압복을 입은채 들어앉기엔 좁다는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못했던지라[* 이 문제는 아예 소유즈 사이즈를 좀 키워서야 해결되었다.] 결국 당초 소유즈 11호의 승무원으로 내정되었던 레오노프-쿠바쇼프-콜로딘 팀에서 콜로딘은 빠져야 했다. 아폴로와 소유즈의 두 사령관은 이 미션 이전에 각각 장군으로 진급[* 레오노프는 [[소장(계급)|소장]](★)이 되었고, 스태퍼드는 [[준장]](★)이 되었으며 이후 [[중장]](★★★)까지 달았다.]하였는데, 이에 따라 사상 초유의 우주 장성급 회담(...)으로도 기록되었다. == 미션 == 소유즈 19호는 협정 세계시 기준 1975년 7월 15일 12시 20분에 [[바이코누르 우주기지]] [[유리 가가린]] 발사대에서 발사되었고, 아폴로는 몇 시간 뒤인 19시 50분에 [[케네디 우주센터]] LC-39 발사대[* 아폴로 우주선을 달로 보냈던 이 발사대도 ASTP 미션을 끝으로 폐쇄되었다. 그리고 1980년대에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이 시작되자 우주비행사 탑승 및 연료 주입, 그리고 대형화물 적재용으로 고정형 타워를 새로 건설한 다음 부활했다. ]에서 발사되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30px-ASTP_handshake_-_cropped.jpg]] 역사적인 악수. 사실 이 순간도 선전용으로 타이밍을 딱 맞추려 했지만 아쉽게도 빗나갔다. 원래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군]]과 [[소련군]] 병사가 처음 악수를 했던 [[엘베강]] [[토르가우]]의 상공에서 만나려 했지만 실제로는 [[암스테르담]] 상공에서 이뤄졌다. 그리고 17일 16시 19분 9초에 아폴로와 소유즈는 역사적인 [[도킹]]을 이뤄낸 뒤 19일 15시 26분 12초를 끝으로 양측은 도킹을 해제했다. 약 이틀 조금 안되는 시간. 사실, 과학적인 성과를 논하자면 이 미션은 별 볼 일 없다. 어쨌든 이 미션은 [[공산권]]과 서방권의 [[냉전]] 분위기를 해빙하는 '''[[데탕트]]'''의 상징이자 양국이 장차 합동 우주개발에 나설 수 있는~~그 날이 언제가 될진 몰랐지만~~[* 실제로 양국간 합동 우주미션은 소련이 해체된 이후에나 다시 이뤄졌다.] 초석이 된다 정도의 정치적인 성격이 짙었을 뿐이다. 실제로 양국 평론가들은 이 미션은 서로에게 중요한 기밀정보들을 누출시킬 수 있다고 도리어 걱정부터 했을 정도. '''그래도 다행히 이 미션 이후로 ~~[[스타 워즈]]~~ 우주 전투 같은 시츄에이션은 발생하지 않았다.'''[* [[폴류스]]니 [[SDI]]니 하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프로젝트가 계속 이어지긴 했지만 다행히 '시도'로만 끝났다.] 미소중력에서의 송사리 부화, 미생물 채집, 균류 번식, 아폴로가 달이 되고 소유즈가 지구가 된 인공 일식 실험 등 생물학, 천문학, 지질학, 대기과학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실험을 했는데, 사실 그것이 꼭 이번 미션이어야만 했던 실험들은 아니라 과학적으로 큰 의미는 없다. 하지만 양측 우주비행사들이 평화적 목적의 우주 개발을 추구한다는 선언문에 서명하고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소련]] [[서기장]]과 [[제럴드 포드]] [[미국 대통령]]이 [[우주비행사]]들과 화상 대화를 하는 등 세계 멸망으로 이어질 대결구도를 타파해보자는 상징성에 초점이 맞춰졌다. 하지만 이 미션은 단순한 선전용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는데, 훗날 [[소련]]이 해체된 뒤 [[소련]] 시절의 물건인 [[미르]]에 [[우주왕복선]]이 도킹하면서 이 시절의 연구는 다시금 크게 중요하게 여겨졌다. 특히 [[에네르기아]]에서 이 미션을 위해 개발한 [[중성]] 도킹(Androgynous Peripheral Assembly System, APAS)의 개념 등은 오늘날에도 쓰이고 있으며, 이 미션을 계기로 소련과 미국의 우주기술자들의 교류가 증진되어 훗날의 [[ISS]]를 탄생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다. 소유즈는 이후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달에 착륙한지 6주년째인 7월 21일에 무사히 지구로 귀환했고, 아폴로는 '''영광의 시대를 마지막으로 돌이켜보며''' 추가적인 실험과 활동을 하고 7월 24일 태평양에 착수했다. 다만 아폴로는 재진입 도중 로켓 산화제인 [[사산화질소]]가 사령선에 흘러들어와서 브랜드가 정신을 잃고 슬레이튼도 구토를 하는등 아폴로 우주비행사들은 [[끔살]]당할 뻔 했고, 결국 [[하와이]]주 [[호놀룰루]]에서 2주간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00px-Apollo-soyuz.jpg]] [[스미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에 전시된 도킹 모형. == 기타 == * 워낙에 상징성 있는 역사적 순간이라 그런지 이것의 이름을 딴 담배 브랜드도 있다. 소유즈 아폴로라는 담배인데 러시아 현지에선 아저씨 담배 취급을 받는지 이걸 피는 젊은이는 코빼기도 안 보이고 어르신들이나 좀 피는 듯하다. --우리로 치면 [[https://namu.wiki/w/%EB%8B%B4%EB%B0%B0/%EA%B5%AD%EB%82%B4%EB%B0%9C%EB%A7%A4%ED%92%88#s-2.5|88 시리즈]]정도라 이건가-- [[https://airandspace.si.edu/collection-objects/cigarettes-apollo-soyuz|관련 사진]] * 이를 기념하여 명명된 소행성(2228 소유스-아폴로)도 있다. * 이 비행을 끝으로 아폴로 계획으로 수많은 새턴 로켓을 발사해 온 [[케네디 우주센터]]의 LC-39A 발사대는 잠시 폐쇄되었다. 그러나 이 이후의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이 개시되면서 LC-39B와 동시에 우주비행사 탑승 및 연료 주입, 그리고 대형화물 적재용 고정식 타워를 추가하고[* 새턴 로켓의 경우 이동식 발사대에 연료 탱크 및 [[보딩 브릿지]]가 붙은 타워가 일체화되어 있었고 이를 로켓 수송용 무한궤도차량(크롤러)를 이용하여 VAB에서 발사장으로 이동시키게 되어 있었다. 현재의 [[케이프 커내버럴]] SLC-40 발사장을 생각하면 되는 구조. ] 우주왕복선 전용 발사대로 개조되었으며, 2011년 7월 셔틀의 마지막 미션인 STS-135의 발사대가 되는 영광을 안고 다시 폐쇄되었다. 현재 LC-39A 발사대는 [[스페이스X]]가 2014년부터 20년간 임대 중이며 2017년부터 [[팰컨 9]]와 [[팰컨 헤비]]를 취급 중이다. 참고로 우주왕복선 시대에 사용되곤 했던 고정식 타워는 스페이스X에 넘어간 이후로는 옆에 붙은 대형화물 적재 장비를 잘라내고 새로운 [[보딩 브릿지]]를 장착하여 계속 쓰고 있다. 한편 이웃한 LC-39B 발사대는 당초 [[아폴로 계획]]의 후속 프로젝트로 계획되었던 [[컨스텔레이션 계획]]의 유일한 산출물인 아레스 I 로켓을 시험발사한 적이 있고 NASA가 [[SLS 로켓]] 발사용으로 리모델링하면서 고정식 타워가 다시 사라졌다. [[아르테미스 계획]]에서도 아폴로 때처럼 MLP에 타워를 세워서 사용할 예정이다. * '''[[아폴로 우주선]]을 사용한 마지막 비행'''이며, 사령선은 로스앤젤레스의 캘리포니아 과학 센터에 전시되고 있다. 스미스소니언 협회는, 워싱턴 D.C.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소유스의 본체와 아폴로 우주선의 실물 모형을 전시하고 있다. * 2017년 개봉된 [[발레리안: 천 개 행성의 도시]]의 시작 부분에서 영화의 주 무대가 되는 우주 정거장의 연합도시 '알파'의 시초가 되는 도킹이 바로 이 프로젝트였다. 이 도킹을 시작으로 중국 우주선, 인공중력 발생 장치, 각종 외계인들의 우주선들이 차례차례 도킹되면서 지구 궤도상에 우주 정거장으로 이루어진 도시가 이루어지는 장면이 백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