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0px-AdenanSatem.jpg]] [[파일:external/www.mynewshub.cc/kchcm1003a008.jpg]] '''Datuk Patinggi Tan Sri Datuk Amar Haji Adenan bin Satem''' [[1944년|1944.]] [[1월 27일|1. 27.]] ~ [[2017년|2017.]] [[1월 11일|1. 11.]] '''[[사라왁]] 인민의 아버지''' [[사라왁]] 주의 전 총리이자, 사라왁 인민에게는 영웅이었다. == 생애 == 1944년 [[쿠칭]]에서 태어났다. [[말레이인]]과 [[믈라나우인]]의 혼혈로 전형적인 [[부미푸트라]]이며 [[무슬림]]이다. 성 요셉 초등학교와 동명의 중학교를 나왔으며, 졸업 후 언론인과 교사로 일하다가 [[호주]]의 [[애들레이드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치안판사로 임명되어 일하다가, 이후 1차산업부의 차관보로 일했다. == 정치 == 1976년 [[통일부미푸트라유산당]](PBB)의 법무보좌관으로 임명된 것을 시작으로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1979년 [[사마라한]] 시의 무아라투앙 지역구에 출마하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으며 2006년까지 무려 '''27년(!)''이라는 긴 세월을 있었다. 그러나 곧 고향인 쿠칭으로 돌아왔고, 이후 [[인도네시아]]와의 접경지대인 탄중다투 지역의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나, 1년만에 내려왔다. == 총리 == 2014년 무려 '''33년(!)'''을 장기집권한 [[압둘 타입 마흐무드]]가 사임한 뒤로 총리직을 물려받았으며, 이후 타입은 총독에 오른다. 동년 "다툭 파팅기" 칭호를 얻었으며, 2016년 총선에서 PBB가 속한 [[국민전선(말레이시아)|국민전선]](BN)의 승리로 승승장구한다. 한마디로 '''[[말레이시아]]판 [[티베트]] 또는 [[위구르]]'''가 되어버린 사라왁 주에서 총리를 한다는 것은 사실상 식민지 제독이나 다름 없는 것이었지만, 그는 최대한의 한도에서 사라왁의 자치를 위한 노력을 했다. 이미 될 대로 말레이시아 본토의 물을 먹은 사라왁이 더 이상 본토의 물을 먹지 말고, 사라왁 고유의 색을 지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한편, 석유 로열티를 5%에서 20%로 수치를 높이는 한편 [[UEC]]를 정식 학위로 인정하지 않는 말레이시아의 교육제도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말레이시아 연방정부가 사라왁에 행한 악행들은 수많은 비판을 받았으며, 더더욱이나 지역 정당들이 BN에 가입하고 이 중 일부가 시대의 흐름에 맞춰(?) 조국을 팔아먹고 말레이시아를 노골적으로 추종하는, 쉽게 말하자면 [[한국]]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또는 [[홍콩]]의 [[친중파]]와 같은 세력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당장 1973년 이후 본토는 사라왁을 어떻게든 본토로 동화시키고자 폭력도 서슴치 않았으며, 이 와중에 [[압둘 라흐만 야쿱]]과 같은 반역자들도 속출했다. 이후 그 누구도 사라왁의 자치를 위해 투쟁한 이는 없었다. 그러나 아데난은 사라왁의 자치를 위해 열렬한 투쟁을 벌인 몇 안 되는 이 중 하나였으며, 덕분에 사라왁 인민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 사망 == 2017년 1월 11일 오후 1시 42분 [[사마라한]]의 사라왁 심장병원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향년 72세. 유해는 쿠칭의 사마리앙 무슬림 묘지에 안장되었다. 사라왁 인민들의 추모가 이어졌으며, [[나집 라작]] 연방총리도 애도를 표했다. == 평가 == 사라왁의 역대 총리들 중에서는 가장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무엇보다도 사라왁의 자치를 위해 투쟁했으니 당연한 일. 이러한 자치 정책 덕에 "아데난이 사라왁의 독립을 추진한다"는 근거 없는 소문까지도 나돈 적이 있었다. 인접한 [[사바]]의 주수상인 [[무사 아만]]과도 종종 비교되나, 무사와 아데난을 비교하는 것은 아데난에게 있어 모독이다. 무사는 사바의 자치는커녕 본토화를 추진하고, 사바를 팔아먹는 원흉이라 되려 까이고 있다. == 비판 == 그러나 이러한 영웅에게도 비판은 따른다. 일단 이 사람은 강력한 자치를 위해 노력했지만, 독립에는 원천반대를 했던 점이다. 위에서 언급한 독립 관련 소문에 대해서도 본인은 "분리독립을 추진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말했으며, 이는 독립운동가들에게 큰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더더욱이나 자치화를 요구했던 사람이, 연방정부의 여권연합인 BN 내에서 활동하고, 한편으로는 본토를 위해 활동했던 전력이 있어서 이는 크게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분류:1944년 출생]][[분류:2017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