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ostino Steffani. [[아우구스티노|아고스티노]]가 이름이고 스테파니는 [[성씨]]다. [[이탈리아]]의 [[작곡가]] 겸 [[신부(종교)|신부]]. [[1654년]] [[7월 25일]]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카스텔프랑코란 곳에서 태어났다. [[베네치아]], [[로마]], [[뮌헨]] 등지를 돌면서 음악공부를 하였고 1674년 [[바이에른]] [[선제후]]에 임관하면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바이에른 선제후의 밑에서 궁정음악감독 등을 역임한 그는 1688년 옛 주군을 떠나서 하노버의 선제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작위)|공작]]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어딘가의 그분]]이 아니다!~~ 을 새로운 주군으로 모시고 그가 죽을 때까지 임관했다. 새로운 주군 밑에서는 음악가보다는 외교가로서 활동했으며 한 때 브뤼셀 대사를 역임할 정도로 비중있는 역할을 했다. 이 시기 동료 음악가인 [[헨델]]이 [[하노버]]로 이주하는데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죽고 후임 선제후로 임명된 [[게오르크 2세]]가 [[영국]] 왕 조지 2세로 등극하여 [[런던]]으로 떠나자 이번엔 헨델을 런던으로 이주시키는 일을 했다. 오오 [[빵셔틀]]! 이렇게 바쁘신 와중에도 종교까지 관심을 가져 1680년 [[성직자]]에 임명되기도 했다. 나중엔 주교가 되어 북독일 [[교황청]] 최고서기관에 취임하기도. 본업인 작곡가로서도 큰 명성을 떨쳤는데 특히 그가 작곡한 [[칸타타]] 형식의 실내 2중창곡들은 전 유럽에 회자될 정도로 유명했다고 한다. 오오 [[엄친아]]. 현재 그의 2중창곡들은 100여곡 이상이 전해지고 있다. [[1728년]] [[2월 12일]] [[프랑크푸르트|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지방에서 숨을 거뒀다. [[분류:1654년 출생]] [[분류:1728년 사망]] [[분류:이탈리아의 작곡가]] [[분류:바로크 시대의 작곡가]] [[분류:터키의 가톨릭 주교]]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스테파니, version=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