쑹아이링(宋藹齡 , 병음: Sòng Àilíng , 송애령)(1889년 6월 14일 ~ 1973년 10월 18일) [[파일:Soong_Ai-ling.jpg]] ||<tablealign=center> 쑹 가문의 세 자매(宋家姐妹, 宋氏三姐妹) || || '''쑹아이링''' -[[쑹칭링]] - [[쑹메이링]] || [목차] == 소개 == 중국의 정치인,중국의 쑹가문의 세 자매중 맏이었다. 은행가였던 쿵샹시와 결혼을 해 별명은 '''돈을 사랑한 여인''' == 생애 == 감리교 목사이자 무역업자인 아버지 [[쑹자수]](영어이름 찰리 쑹)의 3남 3녀 중 장녀로 상하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인 쑹자수는 신식교육을 받아 상당히 앞선 감각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여자도 조국을 위해 큰 일을 할 수 있다"며 1904년 장녀 쑹아이링을 15세의 나이에 미국 [[조지아 주]]의 [[웨슬리언 여자대학]]으로 유학을 보냈다. 그녀는 그곳에서 영어영문학과 학사를 따고 졸업한 후 중국으로 귀국한다. [* 나중에 동생인 쑹칭링과 쑹메이링도 그녀를 따라 [[웨슬리언 여자대학]]으로 유학을 가게 된다.] 1912년 중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아버지의 친구였던 혁명가 [[쑨원]]의 개인비서가 되었는데, 쑨원은 그녀의 지성과 미모에 반해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지만 당연하게도 가족들의 반대로 인해 실패하게 된다. 그녀는 쑨원에게 돌아서서 산서성의 부호출신인 [[쿵샹시]]와 결혼을 했다. [* 쑹아이링이 쿵샹시와 결혼한 후 쑨원은 “아이링이 고리대금업자 놈에게 시집갔다”며 분통을 터트려 주위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했다고 한다...] 그 후 그녀는 자신의 미국유학 시절 쌓아 놓은 인맥을 이용하여 남편 쿵샹시의 사업을 번창하게 했고 그 사업에서 모은 재산을 바탕으로 로비를 해 북양군벌에 로비를 해 남편 쿵샹시가 [[북양군벌]]에서 산동성 청도의 전신국장 등 다양한 직책을 역임하게 했다. [[장제스]]와 쑹메이링의 결혼에도 관여했는데 당시 쑹메이링은 장제스의 청혼을 받았을 때 장제스를 대단한 인물로 생각하지 않고 거절했지만 쑹아이링은 장제스가 크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쑹메이링을 설득해 장제스와 쑹메이링의 결혼을 성사시켰다. 그 후 모두가 알다시피 장제스는 중화민국의 총통이 되어 중국의 패권을 거머쥐게 되었고 그의 손윗동서였던 쿵샹시도 중화민국의 상무장관(1928년–1931년), 재무장관 (1933년–1944년) 및 중앙은행 총재(1933년–1945년)등 민국 정부의 요직을 맡았으며 당연히 그녀 역시 권력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화무십일홍이란 말처럼 그녀의 권세도 끝이 났는데 ,[[중일전쟁]]이 끝나고 남편 쿵샹시가 부정축재 혐의로 실각한 후 그녀 역시 지탄의 대상이 되었던 것. 1947년 신병 치료를 위해 상하이를 떠나 샌프란시스코를 떠났으며 뉴욕에서 수술을 받았다. 중국에 잔류한 남편 쿵샹시에게 미국으로 올 것을 권유하였고 쿵샹시가 이를 따르면서 미국에서 재결합했다. 1954년 [[제2대 중화민국 정부총통 선거]]에 쿵샹시가 부총통으로 출마하려다가 [[장징궈]]의 공격으로 낙마하면서 정치적으로 완전히 끝났다. 그 후 미국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내다 1973년 10월 18일 84세로 세상을 떠났다. 대만에 있던 쑹메이링이 전용기를 타고 급히 달려와 임종을 지켰다. == 매체에서 == [[파일:송가황조.png]] 1997년작 중국 영화 <송가황조>에서 [[양자경]]이 맡아 열연했다. 위의 사진 중 분홍색 옷을 입은 인물인데, 영화 속 쑹아이링의 결혼식 장면이다. [[분류:국민정부의 정치인]][[분류:1889년 출생]][[분류:1973년 사망]][[분류:상하이시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