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조선 의병장]][[분류:처인구 출신 인물]][[분류:1867년 출생]][[분류:1909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 || 성명 ||신현구(申鉉九) || || 생몰 ||[[1867년]] ~ [[1909년]] [[9월]] || || [[출생지]] ||[[경기도]] 죽산군 원삼면 분촌리[br](현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 || 사망지 ||경성형무소 || ||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신현구는 1867년생이며 경기도 죽산군 원삼면 분촌리 출신이다. 그는 1908년 2월 [[정주원(독립운동가)|정주원]] 의병장의 부대에 가담했고, 4월 16일 수십 명의 동료와 함께 경기도 죽산군 근삼면 백암리에 거주하는 백윤삼(白允三)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고 동년 4∼5월 중에도 백윤삼과 이석진(李碩眞)에게서 각각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09년 6월 3일에는 정대준(鄭大俊)외 수 명과 함께 죽산군 서삼면 시암장 내 여인숙 김운선(金雲先) 집에 들어가 일본인 중원방길(中原房吉)외 2명을 처단하고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다가 붙잡혔다. 그후 1909년 8월 17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소위 강도 및 강도살인죄로 교수형을 언도받고 공소하였으나 그해 9월 13일 경성공소원에서 기각되었고, 얼마 후 경성형무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신현구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