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평산 신씨]][[분류:의주군 출신 인물]][[분류:1899년 출생]][[분류:1974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 ||||<table align=right><bgcolor=white><:>[[파일:신동렬.jpg|width=300px]] || || 성명 ||신동렬(申東烈) || || 생몰 ||[[1899년]] [[9월 26일]] ~ [[1974년]] [[1월 21일]] || || [[출생지]] ||[[평안북도]] [[의주군]] 월화면 진음리 || || 사망지 ||[[서울특별시]] || ||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신동현은 1899년 9월 26일 부친 [[신우현]]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고향에서 발발한 [[3.1 운동]]에 가담한 뒤 1920년 만주로 망명하여 부친과 [[조병준]] 밑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연통제 통신원을 맡았다. 이후 의군부(義軍府)한 그는 중국 군관학교 뤄양분교에 입학해 1935년 졸업하고 민족혁명당(民族革命黨) 특파원으로 지하공작을 전개하였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황학수(독립운동가)|황학수]], [[고운기]] 등과 더불어 [[지청천]]의 지령을 받들어 중국 중앙전진군의 마점산(馬點山) 장군 부대에 편입되어 항일투쟁을 전개했으며, 만주에서 공작 활동을 수행하다 [[8.15 광복]]을 맞이했다. 이후 귀국하여 1949년 대한민국 국군에 입대한 뒤 [[6.25 전쟁]]에서 장교로 활동했고, 전쟁 종결 후 대령으로 예편했다. 이후 서울에서 말년을 보내다 1974년 1월 2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신동렬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