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평산 신씨]][[분류:조선 의병장]][[분류:문경시 출신 인물]][[분류:1849년 출생]][[분류:1907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분류:국립대전현충원 안장자]] || 성명 ||신경희(申景熙) || || 이명 ||신목희(申穆熙), 신명희(申明熙) || || 자 ||덕현(德賢) || || 생몰 ||[[1849년]] [[3월 5일]] ~ [[1907년]] [[12월 23일]] || || [[출생지]] ||[[경상북도]] [[문경시|문경군]] 가은면 하괴리 || || 사망지 ||[[경상북도]] [[단양군]] || ||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신경희는 1849년 3월 5일 경상북도 문경군 가은면 하과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896년 1월 예천군에서 의병을 일으킨 [[이강년]] 의병장의 부대에 가담해 참모관으로 종군했다. 1월 11일 안동의진에 의하여 쫓겨나 도주 중인 안동관찰사 김석중(金奭中)과 이호윤(李浩允)·김인담(金仁覃) 등 3명을 체포, 참수하는 데 관여했고, 1월 15일 문경 마고성에서 관군을 상대로 할이전 전투를 벌였지만 패전했다. 이때 그의 신분이 드러나 고향의 본가가 관군에 의해 불태워졌다. 이후 은거 생활을 하던 그는 1907년 단양에서 의병을 다시 일으킨 이강년에게 가담해 단양 복상곡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다가 오른쪽 어깨에 총상을 입고 체포되었다. 이후 압송되다가 도주하여 산중에서 은신하면서 치료를 받았지만 1907년 12월 23일에 끝내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신경희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4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