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table align=center> [[파일:external/img.tf.co.kr/121116_50a5f151828ed.jpg|width=400]] || ||<-2><bgcolor=#ffffff,#191919> [[SK 와이번스]] 시절. || || '''이름''' || 시오타니 카즈히코 (塩谷 和彦) || || '''출생''' || [[1974년]] [[5월 27일]] ([age(1974-05-27)]세) [br] [[효고현]] [[타카사고시]] || || '''국적''' || [[일본]] || || '''포지션''' || [[내야수]] || || '''투타''' || [[우투우타]] || || '''프로입단''' || [[1992년]] ([[한신 타이거즈]]) || || '''소속팀''' || [[한신 타이거즈]](1993~2001) [br] [[오릭스 블루웨이브]]-[[오릭스 버팔로즈]](2002~2005) [br] [[SK 와이번스]](2006) || [목차] == 개요 == 前 [[한신 타이거즈]], [[오릭스 블루웨이브]], [[SK 와이번스]] 소속의 [[내야수]]로 [[KBO 리그]] 최초의 [[일본]] 출신 외국인 타자다.[* 최초의 일본국적 [[외국인 선수]]는 1983년 삼미의 [[장명부]]이고, 최초의 일본 출신 일본혈통 [[외국인 선수]]는 2003년 [[두산 베어스]]의 [[이리키 사토시]].] == 선수 경력 == === [[NPB|일본 프로야구]] 시절 === [[파일:external/www.bekkoame.ne.jp/p40.jpg|width=500]] [[한신 타이거스]] 시절. [[1992년]], 신코가쿠엔 신코 고등학교 시절에 포수로서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고시엔]]에 출전(제74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 같은 해 가을에 열린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한신 타이거스]]로부터 6순위로 지명을 받고 입단했다. 입단 당시에는 “계약금으로 어머니의 무덤을 짓겠다”라고 말했다. 당시 한신의 포수에는 야마다 가쓰히코, 기도 가쓰히코, 세키카와 고이치 등이 활약하고 있어 시오타니는 포수로서의 출전 기회를 받지 못하는 등 2군에서의 선수 생활이 계속되고 있었다. 1996년 10월 9일의 시즌 최종전이 되는 [[주니치 드래곤스]]전에서 1회말에 나카니시 기요오키의 대타로 기용되어[* 이 경기는 나카니시와 기도 가쓰히코의 은퇴 경기였기 때문에 나카니시는 원래 1이닝만 등판할 예정이었다.] 프로 첫 [[홈런]]이 되는 만루 홈런을 때려내 [[한신 타이거즈|한신]]은 일본 프로 야구 사상 최초가 되는 ‘[[한만두|1이닝 만루 홈런 2개]]’를 기록했다. 시오타니가 입단한 이후에도 같은 포수인 [[야노 아키히로]]나 요시모토 료가 한신에 이적해 왔기 때문에 1998년에 출전 기회를 늘리기 위해 [[내야수]](주로 [[3루수]])로 전향하는 등 타격이 안정되면서 가끔 정규 경기에 출전하게 되었지만 당시 [[노무라 카츠야]] 감독에 의한 아들 노무라 가쓰노리의 기용이나 하마나카 오사무를 시작으로 하는 젊은 야수들의 활약에 의해 타석에 들어설 기회가 적었다. 2001년 시즌 종료 후 사이토 히데미쓰와의 맞트레이드로 [[오릭스 버펄로스|오릭스 블루웨이브]]에 이적했고 오릭스에 이적할 당시의 기자 회견에서는 “(한신에서)방출되어서 아까웠다고 생각하게 하고 싶다”, “되돌아보고 싶다” 등의 발언을 했다. 오릭스에서는 2003년에 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규정 타석을 채우는 것과 동시에 [[올스타전]]에 출전을 하는 등 홈런 8개, 타점 46, 도루 7개, 타율 3할 7리의 성적을 남겼다. 다음해인 2004년에는 홈런 9개, 타점 48, 도루 2개, 타율 2할 6푼 9리의 성적을 남긴다. 2004년 시즌 종료 후 분배 드래프트에 의해 계속 오릭스의 선수가 되었지만 2005년에 16경기에만 출전하면서 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 [[SK 와이번스]] 시절 === 2006년에는 [[SK 와이번스]]에 입단하여 계약금 500만엔, 연봉 3,000만 엔에 계약을 맺으면서 KBO에서는 [[이리키 사토시]]와 [[모리 가즈마]]에 이은 세 번째이며 야수로서는 처음으로 일본인 선수(한국명으로의 등록명이 아닌 선수)가 되었다. 시범경기에서 타율 1위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시즌 개막 이후 SK 와이번스의 주전 [[3루수]]를 차지하며 성공한 외국인 선수로서의 길을 밟아가는 듯 했으나 서서히 부진하기 시작했고 한국에서 야구하는 것에 회의감을 느껴 구단에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5월 9일 [[KIA 타이거즈|KIA]]전에서 [[장문석]]이 던진 투구에 손가락을 맞아 골절로 전치 8주의 진단을 받고 5월 14일 귀국과 함께 방출당했다. 한국에서의 성적은 0.297 27안타 3홈런 19타점 1도루. 교체된 선수는 투수 [[제임스 세라노]]. == 이후 == 그 후 2012년, 음식점 매출을 받을 권한을 양도해주겠다고 지인을 속여 현금 550만 엔을 받은 혐의로 체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https://sports.v.daum.net/v/20121116142306516|기사]] == 연도별 성적 == ||<-17><table align=center><bgcolor=#ef8000><color=#373a3c> {{{#ffffff 역대 기록}}}[* [[KBO 리그|KBO]]에서의 성적만 기입] || ||<rowbgcolor=#e1002a> {{{#ffffff 연도}}} || {{{#ffffff 소속팀}}} || {{{#ffffff 경기수}}} || {{{#ffffff 타율}}} || {{{#ffffff 안타}}} || {{{#ffffff 2루타}}} || {{{#ffffff 3루타}}} || {{{#ffffff 홈런}}} || {{{#ffffff 타점}}} || {{{#ffffff 득점}}} || {{{#ffffff 도루}}} || {{{#ffffff 볼넷}}} || {{{#ffffff 사구}}} || {{{#ffffff 삼진}}} || {{{#ffffff 출루율}}} || {{{#ffffff 장타율}}} || {{{#ffffff OPS}}} || || 2006 || [[SK 와이번스|SK]] || 23 || .297 || 27 || 4 || 0 || 3 || 19 || 15 || 1 || 7 || 2 || 12 || .350 || .440 || .789 || ||<-2><bgcolor=#ffff88><color=#373a3c> '''[[KBO 리그|KBO]] 통산''' [br] (1시즌) ||<rowbgcolor=#ffffff,#191919> 23 || .297 || 27 || 4 || 0 || 3 || 19 || 15 || 1 || 7 || 2 || 12 || .350 || .440 || .789 || == 관련 문서 == * [[야구 관련 인물(NPB)]] * [[야구 관련 인물(KBO)]] * [[외국인 선수/역대 프로야구]] [각주] [[분류:일본의 야구 선수]] [[분류:외국인 선수(야구)]] [[분류:타카사고시 출신 인물]] [[분류:1974년 출생]] [[분류:내야수]] [[분류:우투우타]] [[분류:한신 타이거스/은퇴, 이적]] [[분류:오릭스 버팔로즈/은퇴, 이적]] [[분류:SK 와이번스 은퇴/이적]]